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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이프성에 갇히다 하회탈 붉은 달 트라이앵글 자연을 그대 품안에 와인은 빗물을 타고 꿈꾸는 노스탤지어 너 그리고 나 ■ 작품 해설 │ 더 강하게 다시 태어나기 _ 박덕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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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활활 타오르는 햇살 아래에서 지나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듯하여 석준은 눈시울을 한껏 좁힌다. 지나가 라라처럼 슬픔에 가득 찬 깊숙한 눈빛으로 그를 끌어당기며 손짓하는 것만 같다. 이제야말로 그는 지나를 꽉 잡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이프성의 붉고 육중한 문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이프 성에 갇히다」, 40~41쪽)
순간, 남편의 눈동자가 노을빛으로 물든다. 아득한 우주에 붉은 달이 둥실 떠오른다. 범접할 수 없는 외로움과 슬픔이 가득하다. 부조리로 가득 찬 지엄한 실존의 벽에 부딪쳐서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남편의 모습에 그 여자는 숨이 턱 막힌다. 그가 그토록 좋아하던 알베르 카뮈의 환영이 어른거리고 있음을 그 여자는 또렷이 감지한다. ‘인간은 자기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천재(天災)나 전쟁이 있는 한은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그러나 반항하면서 죽어야 한다.’ 그 여자는 남편의 환청을 들으면서 붉은 달에 휩싸인 핏발 선 눈동자를 언제까지나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다. 마침내 그 여자는 손을 들어서 남편의 부릅뜬 두 눈을 애틋하게 감싸준다. 그 여자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비가 되어 하염없이 흐른다.(「붉은 달」, 105~106쪽) “기수야, 이곳에서 죽으면 우리 영혼은 어디로 갈까? 고향으로 가기는 너무 멀지 않겠니?” 아내는 기수의 손을 더듬어 잡았다. 기수는 그저 아련한 시선으로 지평선을 바라보기만 했다. “글쎄요…….” “난 내 고향에 묻히고 싶다. 너희들이 제사를 지내주지 않아도 괜찮아. 그저 내 땅에 묻히고 싶어. 그곳이 영원한 내 집이야. 이곳에서는 모든 게 너무 낯설어. 난 월표고 뭐고 이제는 타기 싫다. 그까짓 거 타서 좁은 아파트에서 새처럼 갇혀서 먹이만 축내고 살면 뭐 하니. 죽으면 박제된 것같이 화사하게 분장을 해서 두껍고 단단한 관에 꼭꼭 갇혀 있으면 뭐 해. 화장해서 낯선 이곳 땅에 뿌리기도 싫구. 난 고향 땅에 묻혀서 곱게 썩어 흙이 되고 싶어.”(「꿈꾸는 노스탤지어」, 246~247쪽) 너는 흐릿한 눈을 들어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 한 여인이 너의 가슴속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너는 두 팔을 벌려서 그 여인을 가슴에 가만히 껴안는다. 그 여인은 긴 머리를 흩날리면서, 아득한 벽공을 흰 눈동자로 바라본다. 머리 위에는 꽃뱀을 이고, 가슴에는 한 송이 장미꽃을 품어 안고 있다. 여인의 모습에는 진정한 용서와 화해와 평화가 아련하게 풍기는 듯 고즈넉하기만 하다. 내가 처음 보는 너의 모습이다. 그윽한 향기가 내 콧속으로 스며들자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이 비로소 환히 보인다. 이제 나는 너를 떠나도 될 것 같다. 나는 세차게 발을 굴러서 몸을 날린다. 눈부신 햇살 아래 난만하게 피어 있는 벚꽃 구름을 향해서.(29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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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해설 중에서
시련은 물론 인간을 힘들게 하지만 결코 부정적인 것만으로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은 시련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알고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며 삶의 소중함을 깨달아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 간다. ‘나무가 하늘 높이 자라려면 뿌리는 더 깊이 땅속으로 내려가야 한다’라는 말에서처럼 지금보다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자면 그만큼 깊은 시련도 함께 따르는 법이다. 『죄와 벌』의 라스콜니코프는 노파를 살해한 뒤 깊은 죄책감에 시달린 뒤 비로소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났다. 『데미안』의 싱클레어는 극심한 불안과 혼란을 거치며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했다. 김선주 소설의 인물들도 나름의 깊은 시련을 겪는다. 자녀를 잃은 극단적인 슬픔에 시달리기도 하고, 인생을 걸고 행한 결과물 앞에서 큰 좌절에 부딪치기도 하고, 온전한 가정이 완전히 파괴될 공포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 인물들은 대개 그 시련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냄으로써 참다운 인물로 거듭나는 자리에 선다. (중략) 이 인물들은 상처를 입고 실패하며 후회하지만, 끝내 절망에 머물지 않는다. 여행을 떠나고, 자연을 찾고, 사랑을 기억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다시 삶을 향해 걸어간다. 그들은 각각 문학 속에서, 자연 속에서, 가족의 기억 속에서, 고향을 향한 그리움 속에서 삶의 의미를 되찾는다. 김선주의 소설은 복잡한 스토리나 파격적인 구성을 앞세우지 않는다. 대신 인간 내면의 상처에 대해 성찰하는 인물들을 내세워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잊혀가는 사랑과 양심, 자연과 고향의 가치 등을 꾸준히 환기한다. 이들 소설은 고통받는 영혼들의 스스로에 대한 ‘성찰의 기록’이자 결국 그로부터 새로운 가치를 찾아가는 ‘회복의 서사’로 읽힌다. ― 박덕규(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