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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사상 소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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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 작가의 말


안경

과테말라

블루의 시간

팔월에 송이

황후사랑

유정문구

세라비

크리스마스를 훔치다


■ 작품 해설 │ 타자의 시선과 자기 정체성 _ 이덕화

저자 소개 1

용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다. 2003년 『문학나무』에 단편소설 「집」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 『티파니에서』 『메종』이 있고, 함께 지은 책으로 『네 여자 세 남자』가 있다. 2020년 직지소설문학상 우수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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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1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224쪽 | 145*210*14mm
ISBN13
9791130824598

책 속으로

나는 안경을 벗는다. 스크래치가 많다. 몇 년째 썼던가를 헤아린다. 나에게 맞는 렌즈와 테를 고른다. 화사한 꽃이 지고 돋아날 초록 잎 색깔의 테다. 내 시력에 맞게 자동 렌즈미터에 렌즈를 끼워 가공한다. 안경테를 내 얼굴에 쏙 맞게 피팅한다. 편하게, 예쁘게.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거울 앞에 선다. 거울 속 얼굴이 또렷해졌다. 놀이동산 남자에게 온 문자를 다시 읽는다. ‘오늘 당신을 위한 날…….’ 나의 날은 내가 만들지. 사장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사장님 안 오셔서 저는 제시간에 퇴근해요. 문 닫고 나오자 어둑해지는 거리에 가로등이 켜진다. 벚나무의 벚꽃이 눈부시게 환하다.(「안경」, 30~31쪽)

이 나라 사람들은 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화산 옆에서도 묵묵히 살아가. 세계 도처에서 사람들이 찾는 이곳의 활화산은 자랑거리이자 위험이야. 저 산 위에서 용암이 솟구쳐도 사람들은 웃으면서 각자의 일을 하지. 화산이 터져 죽게 돼도 그건 신의 뜻이라고 생각해. 무엇을 억지로 떼어버리겠니. 내 곁에서 용암이 솟더라도 나는 나의 일을 하면서 앞으로 나갈 거야.(「과테말라」, 56쪽)

남편은 곧바로 나가더니 한참 지나 소주병을 나발 불며 들어왔다. 진열대 위에 쌓여 있던 노트와 색종이 등을 밀어내더니 구석에 숨겨놓았던 야구 배트를 찾아냈다. 흐흐거리며 나에게 다가왔다. 술에 취해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문방구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나는 흠씬 두들겨 맞았다. 나는 소리조차 낼 수 없을 만큼 생의 의지가 꺾였다. 나는 고스란히 매를 맞았다. 남편도 그런 내게 맥이 빠졌는지 제풀에 꺾여 야구 배트를 내려놓았다. 남편은 강소주를 마시다가 곯아떨어졌다. 온몸이 욱신거리면서 화끈거렸다. 연락을 끊고 산 지 오래된 엄마에게 갖다 준다고 박스로 사놓았던 파스도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다. 대성약국은 휴가 중이었다. 나는 남편이 마시다가 남긴 소주를 컵에 따랐다. 소주를 단숨에 마셨다. 온몸이 욱신거리던 통증이 사라지는 듯했다. 오래전 부엌 바닥에서 등을 돌리고 앉아 술을 마시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병원 한 번 갈 수 없었던 엄마의 치료약이었던 것이다. 힘이 불끈 솟았다.(「유정문구」, 146쪽)

출판사 리뷰

이찬옥 소설집 『과테말라』는 평범한 일상을 배경으로 가난, 성별, 외모, 계층 등으로 인해 차별받고 소외되는 사람들과 그로 인한 사건들을 보여주며 담담하게 그들의 상처를 위로하는 가운데 인간과 윤리에 대한 진지한 사유로 독자들을 이끈다.

표제작인 「과테말라」는 어린 시절 가난하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았던 한 아이에 대한 기억이 수십 년 뒤 커피 향을 통해 되돌아오는 과정을 그린 서정적 회고소설이다. 그 외에 표면적으로는 자매의 잔잔한 여행기 같지만, 그 안에 재혼 가족의 균열, 여성들에게 강요된 희생 등 생각할 거리가 겹겹이 놓여 있는 「블루의 시간」, 가정폭력에 노출된 여성의 삶을 다룬 「황후사랑」과 「유정문구」, 다문화가정의 사춘기 소녀와의 상담을 통해 묻어두었던 어린 시절의 상처를 발견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팔월의 송이」 등이 수록되어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상처받았던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면서 그에 굴하지 않고 다시 힘을 내어 일상을 살아간다. 나에게 맞는 렌즈와 테를 골라 안경을 만들어 쓰고 가로등 불빛이 환한 거리로 나서는 「안경」의 주인공처럼. 상처가 완전히 치유되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어쨌든 우리는 현실을 다시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작가는 과테말라산 커피 향기에 실어 보내준다.

[작품 해설 중에서]

문학은 궁극적으로 삶 전체에, 그것의 내면적이고 외면적인, 욕망과 현실의 전체적인 삶에 뿌리내리고 있어야 한다. 그럼으로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삶에 불가결한 것들을 깊고 높은 것으로 끌어 올려 형상적인 힘으로 삶을 고양시킬 수 있다. 그런 가능성을 이찬옥 이번 창작집에서 보여준다.

이찬옥 창작집 『과테말라』의 여덟 편의 작품을 보면 개별 소재는 상당히 다르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일상 속에서 상처 입은 사람이 과거의 기억을 회상, 인물들과의 관계와 자기 삶을 재해석하는 소설들이라는 특징을 보여준다. 이 작품들은 평범한 생활공간과 사물에 축적된 상처를 불러내고, 그 상처를 돌봄과 관계의 윤리로 다시 해석하는 작품들이다.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는 기억의 서사로 가난·외모·계층·성별에 의해 상처받은 주변부 인물들을 형상화한다. 안경·커피·문구류·트리·불꽃 같은 생활 사물의 상징화를 통해 드러낸다. 폭력과 죽음을 과장하지 않는 절제된 문체, 낭만적 사랑보다 생활과 돌봄의 사랑을 중시하는 시선은 이찬옥 작가의 미덕이다. 완전한 치유보다 상처를 안고 다시 살아가는 결말,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보고 어디까지 개입할 것인가에 대한 윤리적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므로 많은 사유를 하게 한다.

(중략)

이 소설집의 가장 큰 성취는 평범한 사물과 생활 장면 속에서 인간의 상처와 존엄을 발견한다는 점이다. 거창한 관념을 앞세우지 않으면서도 계급·성차별·가정폭력·돌봄·죽음·종교의 문제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또한 피해자를 일방적으로 불쌍한 존재로만 그리지 않는다. 인물들은 상처받으면서도 문방구를 열고, 개를 돌보고, 가족과 축제를 보며, 커피를 마시고, 다시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 이 작품군에서 회복은 극적인 해방이 아니라 다시 일상을 살아가는 힘으로 표현된다.

― 이덕화(문학평론가, 평택대 명예교수)

[‘작가의 말’ 중에서]

작년 12월엔 창작 레지던시인 담양 ‘글을낳는집’에 있었다. 작가로서 처음 갖는 자발적인 유폐였다. 늘 집으로부터 벗어나 어디든 가서 글을 쓰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러지 못했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하는 핑계로 환경 탓을 했다.

단편 한 편을 머릿속에 구상하고 갔으나 생각처럼 풀리지 않았다. 매일 글집 사모님이 해주신 맛깔스러운 세 끼 식사를 하고 자연 속을 산책하는 호사를 누리면서도 책상 앞에 앉으면 한참 동안 나무나 고양이가 있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면서 해찰했다. 문득 내가 있는 방이 문학상을 탄 모 작가가 거처한 명당이라고 한 것이 떠올라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글집에는 시인, 동화작가, 소설가 등 다섯 명이 함께 있었다. 아침 식사를 같이 한 뒤에는 꼭 티타임을 가졌다. 모두 커피를 좋아해서 커피콩을 갈고 커피를 내려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나는 ‘과테말라’에 관한 소설을 쓰고 있었고 소설을 쓰며 마시려고 과테말라 원두를 가져갔다. 함께한 문우들은 내가 가져간 낙엽 타는 냄새가 나는 과테말라 커피를 좋아했다. 커피를 마실 때마다 내가 쓰는 소설 내용을 궁금해하며 좋은 소설을 쓰라고 응원했다. 내가 가져간 원두가 다 떨어지도록 소설의 진도는 많이 나가지 못했다. 그때 소설을 쓰는 강미 작가가 웃으며 말했다. 과테말라 커피가 다 떨어졌는데 소설은 다 썼나요? 정신이 번쩍 났다. 그렇게 채찍질을 받으며 소설 「과테말라」에 마침표를 찍었다. 글집을 퇴소하기 얼마 전에는 명랑 요정 윤미경 작가에게 영감을 받아 소설 「안경」을 시작했다.

(중략)

이번 소설집 작품들은 내가 혼자 쓴 게 아니라는 느낌이 더욱 든다. 유려하진 않지만 여러 사람의 다정한 혼이 깃들인 작품이라 정이 간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문학은 궁극적으로 사람과 삶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을 다시 되새긴다.

추천평

이찬옥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프랑스적 심미의 미학에 눈뜨게 된다. 그가 대학에서 전공한 프랑스 문학의 근저가 소설 서사의 그림자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내연과 외연을 타 넘는 그림자는 유연하고 따뜻하고 야릇하고 냉소적이다가 온전히 우리의 정서와 맞물린다. 소설 「안경」에서 안경의 본질이 사람 심층을 읽게 하는 정감이 그것이다. 안경의 광학이 자연현상을 지나 우리에게 와서 본다는 것, 안다는 것의 합일로 의식세계를 확장시키는 감동은 안경사의 대인 의식이 여리면서 힘이 센 까닭을 묻고 답하게 한다. 나만의 이 독법을 다른 독자 또한 공유하기를 바란다. - 황충상 (소설가, 동리문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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