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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대문
공미숙
푸른사상 2025.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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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작가의 말

파란 대문
파장
초코파이와 카스타드
스토커
홀로 남겨진 시간
무풍 에어컨

작품 해설 │ 폭력을 응시하는 서늘한 시선 _ 심영의?

저자 소개 1

광주에서 태어나 2020년 광주전남작가회의 기관지 『작가』 소설 부문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2년 『창작21』 소설 부문 신인상을 수상했고, 2023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에 선정되었다. 2025년 광주문화재단 지역문화 예술육성 지원사업 기금 수혜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1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200쪽 | 145*210*12mm
ISBN13
9791130823393

책 속으로

어느 날 애벌레 한 마리가 뜨겁게 달궈진 길을 꿈틀꿈틀 대며 천천히 기어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지금의 불완전한 나를 받아들이자고 다짐했다. 그제야 마음에 평온이 찾아왔다.
오래전 읽은 책에 대략 이런 글귀가 있었다.
―꿈꾼다면, 꿈을 항상 말하고 다녀라. 말은 나비가 되어 멀리멀리 날아서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줄 것이다. 나의 꿈을 알게 된 사람들의 응원과 기도로 원하는 꿈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글 쓰고 싶다는 소망을 혼자서 중얼거리기도 하고 친구나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다. 말하다 보니 더욱 절실해졌다. 어느 날 직장에 근무하던 중, 인터넷에서 내가 사는 지역에서 글쓰기 강좌 수강생 모집 광고가 불현듯 보였다. 머리에서 생각하기도 전에 손가락은 이미 수강 신청을 클릭하고 있었다. 말을 입 밖으로 뱉음으로 인해 목표가 뚜렷해지고 망설임이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 나는 작가가 됐다.
우리는 각자 마음속에 빗장 걸린 파란 대문이 있다. 대문 안에는 웃음 속에 슬픔이, 용기 속에 두려움이, 행복 속에 불행이, 안정 속에 불안함이, 자유 속에 속박이, 안주 속에 탈출의 욕구가 공존한다. 어느 순간 한쪽으로 급격히 기울 때, 우린 문밖의 삶을 꿈꾼다.
파란 대문 밖 너머 나의 삶은 소설가의 삶이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행복의 집’에 막 입소한 나는 이모보다 큰아빠인 원장을 졸졸 따라다녔다. 밤에 잠이 오지 않으면 살며시 방을 빠져나와 원장실로 갔다. 책상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는 큰아빠 품에 안겼다. 그는 가끔 내게 신문 기사 내용을 읽어줬다. 강도가 들어와 일가족을 죽였다. 집에 불이 나서 모두 죽었다. 추운 겨울 노숙자들이 갈 곳이 없어서 얼어 죽었다 같은 내용이었다.
“수인아, 방금 기사를 읽은 것처럼 세상 밖은 정말 무서운 곳이야. 매일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집이 없어 길거리에서 잠을 자. 먹을 게 없어서 굶는 사람도 있단다. 네가 있는 이곳이 제일 안전해. 알겠어?”
나는 파란 대문 안에만 있으면 모든 게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 p.28~29, 「파란 대문」 중에서

엄마가 병원에 입원한 지 2주가 넘었다. 병원 안은 고장 난 로봇들로 가득한 공장을 연상시켰다. 팔, 다리, 허리, 손에 붕대를 감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나사가 풀린 로봇을 보는 것 같다. 움직일 때마다 붕대를 감아놓은 곳에서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엄마와 나는 움직일 수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나는 점점 엄마의 고통에 무덤덤해졌다. 병실의 공기는 탁하면서도 무거웠다. 기저귀를 교체할 때마다 얼른 이 상황이 끝났으면 했다. 엄마가 화장실이라도 갈 수 있다면 그나마 살 것 같았다. 오빠, 언니는 점점 통화 횟수가 줄었다. 메신저 가족 대화방에서만 엄마의 안부를 물었다. 내게는 단답형으로 고생한다는 말뿐이었다.
--- p.53~54, 「파장」 중에서

나는 시간이 겹치지 않게 그가 매일 들르는 카페에 가서 좋아하는 바닐라라떼를 포기하고 똑같은 음료를 주문했다. 여직원 중에는 간식을 사 와서 그의 책상에 몰래 놔두고 간 사람이 있었다. 점심시간에 밖에서 커피를 사 와서 그에게 직접 건네기도 했다. 나는 속으로만 끙끙 앓았다. 바로 앞에 있지만, 그가 있는 곳은 나에게는 너무나 먼 거리였다.
그의 행동을 눈으로만 쫓는 것에 나는 심한 갈증이 일었다. 어느 순간, 그의 손이 닿았던 곳을 만져보고 싶었다. 나는 대담해졌다. 그가 커피나 물을 마시고 버린 종이컵, 출입문 손잡이, 복합기, 에어컨 리모컨, 그가 쓰레기통에 버린 종이. 점점 그의 손이 닿았던 물건들을 몰래 만져보고 수집했다. 자리에 없을 땐 책상으로 가 컴퓨터 키보드를 손으로 슬며시 쓸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이미 그가 남겨놓은 손 온도가 사라지고 없었다.
--- p.107, 「스토커」 중에서

순규가 대학원을 다니는 사이 은희는 임신했고, 아이를 낳았다. 은희가 아이를 키우는 동안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다. 순규는 집안일은 은희에게 모두 맡긴 채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오로지 책만 봤다. 은희는 우는 아이를 등에 업고 남편이 공부하고 있는 어깨너머로 책을 보곤 했다. 다음 시간은 자신의 시간이라고. 언젠가는, 언젠가는 자신도 저 자리에 앉아 그녀가 좋아하는 숫자를 붙잡고 씨름할 날이 올 거라고. 그토록 원하던 시간 속에 머물 수 있을 거라고. 그 황홀한 시간이 주어질 거라고. 은희는 여름날 남편 등 뒤로 흐르는 땀방울마저도 부러웠다. 그러나 시간은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졌다. 순규가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에 일주일에 한 번씩 강의하러 가는 시간에도 은희의 자리는 그대로였다. 순규에게 공부하고 싶다고 말하려 할 때마다 또다시 은희 앞에 다양한 형태의 단단한 벽이 가로막곤 했다. 한 번도 내뱉지 못한 말은 싹을 피우지 못했다. 그러나 아주 잊은 건 아니었다.

--- p.164, 「무풍 에어컨」 중에서

출판사 리뷰

공미숙의 소설집 『파란 대문』에 실린 단편들은 기본적으로 폭력에 대한 이야기다. 표제작인 「파란 대문」에서 작가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에 대해 풀어나간다. 안전할 것이라 믿었던 보육원의 파란 대문 안은 소녀들에게 성폭행의 현장이었고, 사회에 나가서도 소위 ‘가족 같은’ 회사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성추행에 시달린다. 그 외에도 「초코파이와 카스타드」에서는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착취의 구조에 대해, 「스토커」에서는 심리적, 언어적 폭력으로 가득한 결핍된 가정환경에서 자란 인물의 왜곡된 욕망에 대해, 「무풍 에어컨」에서는 노년의 여성이 모성이라는 미명하에 강요당하는 돌봄노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소설의 인물들은 그러한 폭력에 무너지지 않는다. 「파란 대문」의 ‘수인’이 고통의 단계를 매기는 것은 폭력을 참고 견디기만 하지 않겠다는 의미이고, 작가의 등단작인 「홀로 남겨진 시간」에서 어린 시절 ‘지숙’에게 믿음을 배신당한 결과로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던 ‘영은’은 중년에 다시 만난 지숙과 화해한다. 이는 폭력으로 가득한 우리 사회에 작가와 문학이 보내는 깊고 무거운 메시지이기도 하다.

추천평

소설집 『파란 대문』에 실린 여섯 편의 단편을 관통하는 이미저리는 폭력에 대한 깊은 사유라 할 수 있다. 폭력은 단지 한 개인의 신체와 영혼을 병들게 하는 데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시대적 맥락과 분리할 수 없는 징후다.
본디 소설이 지향하는 것은 유토피아적 삶이지만 그것은 디스토피아적 현상을 통해 그 가능성을 탐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작가가 독자에게 주는 신뢰는, 결국 우리가 마주하는 폭력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깊이 있게 바라보는 깊은 눈에 있다. 공미숙 소설은, 소설의 인물이 감당하고 있는 삶의 세부를 담담하게 살피면서 그들에게 깊은 애정을 잃지 않고 있다. 이는 소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작가가 충분하게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심영의 (소설가, 문학평론가, 전 전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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