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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부 격치에서 과학으로 1. 동아시아에 ‘과학’은 존재했을까 2. ‘과학’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3. 중국은 과학의 원조일까 4. 서양 태엽 시계와 중국의 시간 경험 5. 지도 위의 축지법 2부 대중과학의 탄생 6. 청말 과학 영재학교, 격치서원 7. 중국 근대 조기유학 프로젝트 8. 신비한 잡지 서프라이즈 9. 멋진 신세계, 유스토피아 10. 최면술, 마법과 과학 사이 3부 사이언스 익스프레스 11. 두 개의 진리 12. 과학 열차에 올라타라! 13. 과학자의 사랑법 14. 한의와 양의 논쟁 4부 이데올로기와 과학 15. 광장과 밀실 16. 베이징 원인과 노동하는 인간 17. 열린사회와 그 적들 18. 정치지도자와 과학 소양 19. 과학과 교육 개혁 20. 중국은 왜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적을까 5부 중국 특색의 과학기술혁명 21. 중국의 맨해튼 프로젝트 22. 중국의 실리콘밸리, 중관춘 추억 23. IT 기업과 늑대 전사 24. 우주과학이 된 하늘 신화 25. 언더 더 돔 참고자료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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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카쿠(かがく)로 발음되는 일본어 ‘科學’은, 중국과 한국에서 모두 근대어이자 번역어이다. 너무 익숙한 나머지 ‘과학’이란 단어가 우리말이거나 중국에서 만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면 잘못 안 것이다. 근대 이전에 동아시아에 ‘과학’에 해당하는 활동이 존재했었는지는 더 살펴봐야 할 문제이지만, ‘과학’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한국과 중국에서는 외래어이자 번역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서양의 science와 일본의 かがく, 중국의 k?xue, 한국의 ‘과학’은 모두 같은 것일까? 비록 오늘날 동아시아에서 ‘科學’이라는 용어는 science를 번역한 말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해도 그 말이 가리키는 것은 다를 수 있다. 그 다름을 추적하여 의미의 변화 및 수용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현대 중국의 대중과학을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 「1. 동아시아에 ‘과학’은 존재했을까」 중에서 중국인들이 근대적 유토피아 관념에 주목하게 된 것은 계속되는 서구 열강의 침략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좌절감 및 수치심과 관련이 크다. 현실에서 느낀 좌절감과 나라와 민족의 암울한 미래 앞에서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사회를 상상하는 것은 그들이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위안이었다. 여기에 더해 서양 과학 사상과 진화론의 전래는 순환론적이고 정체된 관념에 갇혀 있던 중국인들로 하여금 직선적이고 역동적인 시간관을 갖게 했으며, 미래에 대해서 낙관적인 기대를 품게 만들었다. 특히 전통 가치관이 무기력하게 무너져 가고 있는 상황에서 서양 과학은 나라와 민족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고, 미래의 ‘신중국’을 상상하고 설계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것이었다. --- 「멋진 신세계, 유스토피아」 중에서 서양의 해부학이 중국에 소개되었을 때, 가장 주목받은 것은 무엇보다 뇌가 인간의 지각과 사고를 담당한다는 생각이었다. 일찍이 마테오 리치도 뇌의 역할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지만, 뇌의 구조와 기능보다 영혼과 영혼의 주인인 절대자에 대한 설명에 더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중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홉슨은 달랐다. 그는 사유 기관으로서의 ‘심(心)’과 생명의 중심으로서의 ‘심장’을 하나로 보는 중국적 관념을 부정하고 뇌가 인체를 제어하고 지각과 사유의 중추 역할을 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매우 위험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마음과 뇌를 별개로 보게 되면 인간은 육체와 정신의 영역으로 분리되어 한의학의 토대는 물론, ‘심’을 인간 본성의 근원으로 여기는 성리학(性理學) 전체가 위협받게 되기 때문이다. --- 「한의와 양의 논쟁」 중에서 중국 IT산업이 굴기하는 데에는 60년대에 태어난 ‘류링호우(六后)’ 세대의 공헌이 컸다. 미국 기업의 파격적인 대우를 마다하고 중국에 돌아와 최고의 인터넷 검색기업 ‘바이두’를 세운 리옌홍(李?宏, 1969년생), 13억 사용자를 가진 중국판 카톡 위챗과 위챗페이,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 등을 거느린 아시아 최대의 인터넷 기업 텐센트의 CEO 마화텅(馬化騰, 1971년생), 프로그래머로 시작했지만, 아이폰의 등장에 자극받아 샤오미를 창업한 후, 극강의 가성비와 디테일로 소비자를 공략해 세계적 기업으로 키워낸 레이쥔(雷軍, 1969년생), 2014년 뉴욕증권거래소의 상장으로 구글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인터넷 기업이 된 알리바바의 마윈(馬云, 1964년생) 등은 모두 류링호우 세대이다. 이들은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추진하던 시기에 사회에 나와 자신만의 힘과 노력으로 창업에 성공했으며, 꾸준한 혁신으로 중국 기업을 세계적 반열에 올려놓았다. 특히 알리바바의 마윈은 류링호우 세대를 대표하는 입지전적 인물로 중국의 IT 굴기를 선두에서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IT 기업과 늑대 전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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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문화운동과 결합해 사회개혁의 최전선에서
중국 사회의 체질을 바꾸기 시작한 ‘미스터 사이언스’! 명 중엽, 선교사들을 통해 서양 과학을 접하기 시작해, 일반 대중들이 과학에 대해 알게 된 것은 1919년 5.4 신문화운동을 전후해서이다. 전면적인 서구화를 표방한 이 운동의 리더들은 서양으로부터 ‘과학’과 ‘민주’를 들여와 중국을 개혁하고 대중을 계몽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스터 사이언스’는 정치·문화운동과 결합해 사회개혁의 최전선에서 중국 사회의 체질을 바꾸기 시작했으며, ‘과학 사회주의’를 표방한 공산주의에 수렴됨으로써 이념적·정치적 결실을 보게 되었다. 물론 현대 중국에서 ‘미스터 사이언스’는 순수과학의 모습뿐만 아니라, 철학, 종교, 정치 등 각 영역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으며 주도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중국에서 과학을 통한 근현대 사회의 형성 과정은 정상성과 비정상성이 혼재하는 시간들이었다. ‘과학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과학의 본질과는 상반되는 비합리적 태도를 낳기도 한 것이다. 특히 중화인민공화국 건국과 함께 일어났던 여러 차례의 정치적 동란은 과학의 발전에 치명적이었다. 사회주의 이념에 종속된 과학은 그것이 지닌 비합리성에도 불구하고 과학계를 휘저었으며, 객관적이고 독립적 연구를 갈망하던 과학자들을 도태시켰다. 그렇지만 이후 개혁개방노선에 따라 시장경제체제가 도입되자, 외국 제품을 모방하는 단계를 거쳐 서구와의 직접 교류를 통한 기술 개발이 시작되었다. 여기에 더해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한 산업환경의 재편은 중국 기업들이 내수를 통해 자본을 축적하고 이를 기초로 세계 시장에서 약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샤오미의 가전제품, 화웨이의 스마트폰, 태양광과 풍력 발전 등 재생 에너지 분야에서의 빠른 성장, 달 탐사와 핵미사일 개발 등 항공우주 분야에서의 굴기, 순수 중국 학자의 노벨상 수상 등은 우리가 중국의 과학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아가면서 우리의 과학이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살피게 하는 자료들이 되어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