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들어가는 말
01 겸손 성찰하는 사람 내려다봄이 아닌 다가섬으로 진정한 믿음 어떻게 살고 계시나요 사랑을 주세요 나 먼저 그리스도의 방법 성모님을 찬미합니다 전지전능한 자의 겸손함 비방하는 죄 위로받으셔도 돼요 세상 모두를 속여도 내면을 들여다보십시오 기도에는 겸허함과 존경이 필요합니다 죽음의 의미 02 사랑 좋아하지 않는 일 이웃을 내 자신같이… 하느님은 사랑의 신입니다 위선자가 되지는 마세요 희망 진정한 사랑 참행복 다정하여라 가정에서부터 시작하세요 사랑의 빛을 퍼뜨리는 사람 항상 우리 곁에 진정한 기도 공포로써 죄를 깨닫게 해선 안 됩니다 우리 모두의 길입니다 인간의 진정한 보물 03 용기 미래를 꿈꾸세요 기도의 힘을 믿으세요 연약한 인간이지만 성모 마리아처럼 도움이 필요한 가족을 위해 언제나 저희를 도우소서 용서를 구하세요 복음을 선포하십시오 직시 매일 아침 기도합니다 나는 인간을 믿습니다 희망 안에 밝은 미래가 있습니다 시류를 거슬러서 진리로 가야 합니다 04 변화 성장의 고통 공모자 솔직한 대화 실천하는 삶 방향의 전환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닫힌 마음을 열게 하시는 분 한계를 넘어서는 일 준비가 되었나요? 가득한 기쁨으로 감사의 기도를 먼저 드리세요 종교의 지혜 서로 돕지 않으면 안 됩니다 05 공동선 젊은이들에게 하느님의 말씀 교육의 사명 이 땅의 정치인들에게 이 땅의 정의 실업자를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특별한 가치를 가진 존재입니다 공동체 갈등을 겪을 때 침묵 속에서 이제 행동하게 하소서 공동체 안에만 있지 마세요 노동은 인간을 위한 것입니다 늙음에 대해서 수호자가 되어 주십시오 위험한 시대 06 믿음 타인을 재단할 수 있는 자 누구입니까? 슬퍼하지 마세요 사랑으로 구원하시는 분 망설이지 마세요 마지막 순간까지 무감각한 사회 결혼 생활의 행복 평생의 친구 기적은 일어납니다 악의 목소리를 분별하세요 마음의 평화 반석 없이는 진짜 사랑 죽음을 앞둔 자를 대하는 자세 자비를 가지세요 종교라도 무언가를 강요할 수 없습니다 |
|
예수님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무엇도 - 악이나 죽음조차도 - 예수님 사랑으로 인한 구원의 힘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특히 고통스런 일들을 겪었을 때 사람들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알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고통을 겪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기를 꺼려 합니다. 가슴으로 이해하지 못할 뿐더러 타인의 불행으로서 동정하는 마음을 갖기 십상이니까요. 예수님의 사랑도 그와 같습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맞이해 본 적 없는 사람, 예수님의 이끄심을 느껴 본 적 없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그 믿음을 말하는 사람을 의심합니다. ---「희망」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은 착취, 노예, 사회적 질병에 대해 공모하는 셈입니다. 우리의 침묵을 통해, 행동하지 않음을 통해, 무관심을 통해 우리들은 그것들의 공모자가 됩니다. 세상의 부조리 앞에서 지금 우리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요. 더 나은 세상을 만들자는 바람은 허상에 불과한 것일까요. 우리들의 관심사는 어디에 쏠려 있는 것일까요. 여러분의 주요 관심사는 무엇인지, 가장 많이 떠올리는 대화의 소재는 무엇인지 한번쯤 자신을 돌아볼 때입니다. ---「공모자」 유일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침묵으로써 손을 힘껏 잡아 주는 일입니다. 물론 이는 서로 간의 신뢰의 정도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후에는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몸의 통증도 마음의 통증도 그 사람의 안에서 일어나는 이상, 누구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외로움에 시달리기 때문에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신경 써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일이 중요합니다. (병의) 말기를 맞이한 상대의 침묵을 귀중하게 여기는 한편 고독한 마음에 신이 깃들 수 있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죽음을 앞둔 자를 대하는 자세」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입장에 있는 종교에서는 당연히 의견을 말할 권리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조언을 구한다면 나도 나의 의견을 말합니다. 교구를 통솔하는 역할을 짊어진 이상, 공동체뿐만 아니라 나의 생활에서 조언을 얻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개인에게 무언가를 강요할 권한은 없습니다. 하느님이 우리 인간을 구태여 자유로운 존재로서 창조했다면 책임을 짊어지는 존재는 자신입니다. 성직자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빼앗을 권한은 없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손에 죄를 범할 자유까지 맡기셨습니다. 가치관과 한계, 계율에 대해 훈계하는 일은 확실히 가능하지만 이를 강요하는 일은 결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종교라도 무언가를 강요할 수 없습니다」 |
|
나의 장점과 단점만을 생각하는 삶에서 벗어나야 할 때이다
‘나’가 중심이 되고 강조되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아’를 중요시하고 우선시하는 이유를 보면 수긍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사회에서 부조리한 희생과 폭력을 당하며 살아야 했으니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권리로서 주장하게 된 일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이제 그 자아관의 병폐가 심각해졌다. ‘나.’ ‘나.’ ‘나.’ ‘나.’ 무슨 일에서건 나, 나의 가족, 나의 자식만을 챙기면서 이기적이고 편협한 사회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거기에 더해 겉으로 꾸미는 모습에 치중하는 사회인 탓에 자신의 ‘단점’을 과장하고 자신의 ‘장점’은 무엇인지 예민하게 신경 쓰는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취임식에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했던 말 또 “서로가 서로를 위해 하는 기도가 삶을 바꾸는 기적과도 같다”라고 한 말에 사회문제의 해결책이 들어 있다. 상대를 위한 기도를 함으로써 자신 안에 함몰되어 있는 지엽적인 관점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이며 자기 성찰임을 분명히 알려 준 교황의 말씀이다. 자신의 장단점에 쏠린 눈길에서 벗어났을 때 넓은 세상과 타인을 돌보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폭력, 불의, 죄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속삭이는 악한 목소리를 믿어서는 안 됩니다” ‘악’한 자의 유혹은 편하고 달콤하다. ‘약’한 인간의 속성을 잘 아는 그들은 끊임없이 정도를 걸으려는 인간을 유혹하여 자신들과 같아지도록 만든다. “인생은 원래 그런 거야” “이렇게 안 하면 너만 손해 보는 거야” 하면서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덕적 마지노선을 버리도록 한다. 또 악한 자들은 공포를 조장하며 불의를 계속 유지하고자 한다. ‘내 말을 듣지 않겠다는 거지? 그럼 당신 인생이 어떻게 힘들어질지 보여 주겠어’라는 압박감을 주며 희생양을 찾아 단죄한다. 참으로 쉬운 방편이다. 일상이 망가질까, 억울하게 낙인찍히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개인들은 권력의 은근한 폭력 앞에서 입을 다무는 길을 택하게 된다. 사회체제를 미리 생각하다 보면 일상 앞에서 무기력해지고, 그 거대함으로 인해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수동적이 되어 버린다. 문제에 직면하면 논의를 통한 해결 방법을 강구해야 하지만 가톨릭에서는 그와 함께 기도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하느님에게 따지고 대들 정도로 절박하고 간절하게 기도하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앞서 밝혔듯 기도는 하느님과의 만남이며 하느님의 응답을 듣는 통로이자,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실천하지 않는다면 아는 것이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리스도의 삶은 부당한 악을 거부하고 의를 따르는 길이었음을 몸소 보여 주고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우정은 환상이 아니며 현존임을, 실천으로써 증명하고 있다. 다른 이들을 위한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사는 교황은, 자신의 일신이 잘못될까 전전긍긍하는 우리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교황은 사람들 속에 머물기 위해 공동 숙소 내의 한 평짜리 방에서 지내고, 마피아를 파문하면서도 방탄차에 올라타기를 거부하며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필연적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는 사랑과 믿음, 용기를 분명하게 확인시켜 주고 있다. 또한 “무신론자는 자신의 양심을 따른다”고 말하는 열린 마음으로 사람과 세상을 포용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걸어간 길은 제한 없는 사랑의 길, 의를 따르는 양심의 길이었다. 원리 원칙보다는 도덕적 문제가 제기되는 경우가 다반사인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잘못을 저지르는 행위가 우리를 하느님으로부터 멀리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종교를 떠나 세계적인 관심과 환호를 받는 이유는 야만적인 지금의 세계가 당장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이미 오랜 시간 자신의 삶으로써 실천하며 걸어온 데 있다. 다름 아닌 인류 보편의 공동선을 추구하고 차별 없는 사랑을 실천하는 일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