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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Tatiana Nikolayeva 바흐: 평균율 클라이버 곡집 1권 - 타티아나 니콜라예바 (Bach: The Well-Tempered Clav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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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소개

디스크

CD 1 ~ CD 4

  • 01 Bach : The Well-Tempered Clavier (평균율)

아티스트 소개 2

작곡Johann Sebastian B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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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세바스찬 바흐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독일어: Johann Sebastian Bach, 1685년 3월 21일 ~ 1750년 7월 28일)는 독일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이며, 개신교회의 교회 음악가이다. 교회 성기사와 오케스트라, 듀오 악기를 위한 종교적이거나 세속적인 음악을 창작했고, 그의 작품은 바로크 시대의 종말과 궁극적인 성숙을 동시에 가져왔다. 그는 바로크 시대의 최후에 위치하는 대가로서, 일반적인 작품은 독일음악의 전통에 깊이 뿌리박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위에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양식을 채택하고 그것들을 융합하여 독자적 개성적인 음악을 창조하였다. 종교적 작품은 기존 구교 음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독일어: Johann Sebastian Bach, 1685년 3월 21일 ~ 1750년 7월 28일)는 독일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이며, 개신교회의 교회 음악가이다.

교회 성기사와 오케스트라, 듀오 악기를 위한 종교적이거나 세속적인 음악을 창작했고, 그의 작품은 바로크 시대의 종말과 궁극적인 성숙을 동시에 가져왔다. 그는 바로크 시대의 최후에 위치하는 대가로서, 일반적인 작품은 독일음악의 전통에 깊이 뿌리박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위에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양식을 채택하고 그것들을 융합하여 독자적 개성적인 음악을 창조하였다. 종교적 작품은 기존 구교 음악과 차별화하여 새로운 음악을 통해 개신교회 예배에 기여하고자 노력하였다.

바흐의 집안은 200년에 걸쳐서 50명 이상의 음악가를 배출한 일대 음악가계였다. 바흐 집안의 음악가들은 대대로 개신교회인 루터교회의 경건한 신자들이었고, 교회음악가로도 활동하였다. 또한 그들의 일에 강한 장인(匠人)적인 긍지를 품고 있었다. 이 '신앙'과 '장인기질(匠人氣質)'은 요한 제바스티안에게도 계승되어서, 마치 2개의 정선율(定旋律)과 같이 그의 일생을 관통하게 된다. 제바스티안 이전에도 17세기 초엽 이래 많은 유명한 작곡가를 배출했고, 일족의 중심지이었던 중부독일의 튀링겐 지방에서는 '바흐'가 '거리의 악사'를 가리키는 용어로 쓰였을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제바스티안의 큰할아버지 하인리히 바흐(1615-1692), 그 아들 요한 크리스토프 바흐(1642-1703)와 요한 미하엘 바흐(1648-94)는 음악사(史)에도 이름을 남긴 뛰어난 작곡가들이었다.

바흐는 사후 고전주의 음악사의 흐름에 밀려 완전히 잊혔으나 1802년 독일의 음악사학자인 포르켈이 바흐에 대한 최초의 연구서인 "바흐의 생애와 예술, 그리고 작품"(Uber Johann Sebastian Bachs Leben, Kunst und Kunstwerke)을 1802년에 발표함으로써 전 유럽적 바흐 광풍을 몰고 오게 하였으며 또한 사후 바흐에 대한 재평가에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였다.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온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다.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아주 훌륭한 곡을 많이 작곡 하였다.

바로크 음악에 있어서 바흐는 대위법 기술의 정수를 다한 사람이나, 그것에만 만족하지 않고 당시에 이미 궁정문화에 침투했던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양식을 스스로 받아들여 칸타타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도 했다. 거기에는 그가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배운 여러 나라의 온갖 요소가 모두 투입되어 그만이 지닐 수 있는 최고로 천재적이게 융화되어 일치미를 이루고 있다. 콘티누오(통주저음)만으로 반주되거나 또는 여러 개의 악기로 반주되는 독창이나 중창에 의한 이탈리아식 다 카포 아리아, 오페라적인 아리오소와 레치타티보, 가장 초기의 가브리엘 형태에서 바흐 시대의 프랑스식 서곡에 이르기까지의 관현악 신포니아, 협주곡, 트럼펫의 팡파르, 풍요한 장식성을 지니고 성악성부에 얽혀드는 기악의 오블리가토 성부, 복합창형식, 때로는 성악에까지 적용되는 프랑스의 리드미컬한 춤곡, 이러한 것이 독일의 오랜 전통인 코랄과 결부되고 있다. 대체로 바흐만큼 코랄을 훌륭하게 활용하고 또 코랄을 창작의 중심으로 삼기에 정당함을 느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 나라 양식의 혼합은 기악 분야에서도 볼 수 있다. 프로베르거의 전통, 쿠프랭의 프랑스 모음곡형식, 쿠나우에 의하여 전해진 이탈리아의 소나타 다 카메라양식, 도메니코 스카를라티의 건반 텍스처(鍵盤書法), 푸가에 있어서도 클라비어 푸가는 이탈리아 협주양식의 영향을 나타내나 오르간 푸가는 북독일 오르간 악파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협주곡 분야에서는 끊임없이 비발디가 모범으로 숭앙되며, 가장 이탈리아의 특징을 나타낸다. 이와 같이 바흐의 작품은 매우 많은 여러 가지 양식을 포함하고, 또한 작곡한 분야도 넓으며 바흐 개인으로서도 시대에 따라 기술적, 내용적으로 현저하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개인양식을 간단히 종합하기란 곤란하다고 하겠다.

바흐는 생전에도 동시대의 음악가였던 비발디나 텔레만과 같이 국제적 지명도를 가진 음악가는 아니었다. 사후에는 당시 음악가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작곡가로서는 완전히 잊혀진다. 바흐 생애 후반부에 이미 고전파 음악의 전조가 시작되었고 바흐 음악은 낡은 것으로 취급되었다. 바흐는 비발디나 헨델과 같이 음악가의 프리랜서화를 선도하는 인물도 아니었고 끝까지 교회 음악가로 남았다. 고전파 시대에 바흐는 고전파의 문을 연 아들들의 아버지로서 오히려 유명하였다. 유명인 중에는 모차르트가 바흐의 악보를 찾아서 탐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모차르트 음악에 가끔 훌륭한 푸가가 보이는 것이 바흐의 영향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베토벤 또한 바흐를 연구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그 영향에 대해서는 불분명하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바흐를 극찬하는 말을 남겼다고하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아닌 아들 바흐에 대한 찬사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이다.

그러나 1802년 독일의 음악사학자인 포르켈이 사후 완전히 잊혔던 바흐에 대한 최초의 연구서인 "바흐의 생애와 예술, 그리고 작품Uber Johann Sebastian Bachs Leben, Kunst und Kunstwerke"(1802)를 발표함으로써 바흐에 대한 인식의 전환점을 제공하였다. 근대 인문학으로서의 음악사학의 발전은 낭만주의 시대에 이전 시대의 음악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고 이들의 작품을 출판, 연주하기 시작하면서 바흐는 그 핵심 레파토리로 떠오른다. 바흐 생존 시기나 고전파 시대의 지명도와는 달리 낭만주의 시대에 바흐는 이전 시기 어떠한 음악가보다 높이 평가되기 시작하여 멘델스존 이후 음악가들 중 바흐를 연구하지 않은 작곡가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바흐에 대한 관심은 바흐가 많이 참고하고 편곡을 했던 다른 음악가들, 특히 비발디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켜서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바로크 음악의 부활을 이끌기도 하였다. 오늘 날에도 바흐는-그의 음악이 바로크 음악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도 없고, 바로크 시대 가장 유명한 음악가도 아니었지만-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음악가로 추앙받고 있다.

서양 음악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바흐의 가문에서는 약 200년 동안에 걸쳐 저명한 음악가가 많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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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Tatiana Nikolaye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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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티아나 니콜라예바 ,Tatjana Nikolajewa / Tatyana Nikolayeva

클래식 피아노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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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매일
2004년 08월 26일
시간/무게/크기
크기확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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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사 리뷰

구약성서에 비유된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은 두 권으로 된 48개의 전주곡과 푸가곡집이다. 각 권은 24짝의 전주곡과 푸가곡들로 구성되었으며 모든 장조와 단조의 조성으로 씌어져, 조성에 내재한 모든 가능성들을 탐구한다. 1권은 바흐의 쾨텐 시절 말년인 1722년에 완성되었고, 2권은 그로부터 20년 후인 1744년에 라이프치히 시절에 나왔다. 오늘날에는 1권과 2권을 합쳐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사실 바흐는 '평균율 클라비어(Das woltemperierte Klavier)'란 제목을 1권에만 붙였다. 비록 바흐의 제자인 요한 크리스토프 알트니콜이 자신의 사본 표지에 '평균율 클라비어 2권(Des Wohltemperirten Klavier Zweyter Theil)'이라고 썼다고는 하지만(이것은 과연 바흐가 의도한 것이었는지 의심이 간다), 바흐가 남긴 자필본에도 그것을 베낀 사본에도 2권에다 그런 타이틀을 붙인 예를 찾아볼 수는 없다. 1권과 2권을 한데 묶는 습관은 바흐가 세상을 떠난 후 최초로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의 판본 중의 하나를 만들었던 음악편집자 슈벤케(Schwenke)의 필사본(1781)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슈벤케는 1권과 2권을 통틀어 <48개의 전주곡과 푸가>라고 불렀고, 이것이 습관적으로 받아들여져 결국 두 권의 작품들을 제 1권의 제목으로 통칭, '평균율 클라비어'란 제목을 쓰게 된 것이었다.
사실 평균율에 기초해서 모든 장조와 단조의 작품을 쓴 것은 바흐가 처음으로 시도한 일이 아니었다. 바흐보다 한 세대 위의 독일 작곡가인 파헬벨이 평균율에 기초한 17개에 이르는 작품을 자신의 모음곡에 쓴 바 있고, 얼마 후에 역시 독일 작곡가인 피셔(Fischer, Johann Caspar Ferdinand 1670년경-1746)가, 비록 난이도가 높은 5개의 조성(D플랫 장조, b플랫 단조, e플랫 단조, F샤프 장조, g샤프 단조)은 포기했지만, 바흐가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권을 내놓기 20년 전인 1702년에 이미 <아리아드네 무지카, 20곡에 달하는 전주곡과 푸가에 의한 새로운 오르간 곡집>(Ariadne Musica Neo-Organeodum per XX Praeludia totidem Fugas)이란 제목의 모든 조성에 의한 '작은 전주곡과 푸가' 20곡을 남겼었다. 더군다나 마테존(Mattheson, Johann 1681-1764)이라는 독일 작곡가는 바흐의 첫 작품이 나오기 직전인 1719년에 처음으로 24개의 조성 모두를 사용한 평균율을 자신의 저술 <모범적인 오르간 주자의 증언>(Exemplarische Orgarnisten-Probe)에서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바흐의 작품은 그 모든 선구적 작품들을 한순간에 빛바래게 만들었다.
그것은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이 당대에 알려진 모든 양식의 건반음악 작곡법 발전과정에서 나타난 기교적 난점들을 완벽하게 극복하고, 최고의 걸작품으로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피아니스트이며 지휘자였던 한스 폰 뷜로우가 "구약성서"에 비유하기도 했지만,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은 후대의 연주가나 작곡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은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꾸준히 공부하면서 위대한 연주가 및 작곡가로 성장했으며, 슈만은 젊은 제자들에게 늘 그것을 공부하라고 독려했다. 그리고 열렬한 바흐 예찬론자인 쇼팽이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일용할 양식으로 삼았던 일은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쇼팽은 그 곡집의 전주곡과 푸가 한 두 곡을 연주하지 않고는 일을 시작하지 않았다고 한다. 말하자면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은 뛰어난 음악가들까지도 평생 동안 공부시켰던, 서양 음악사상 가장 위대한 교습용 작품이기도 했던 것이다. 바흐가 이 작품을 음악교육용으로 썼다는 점은 1권의 처음에 나오는 12개의 전주곡이 E플랫 장조 한 곡을 제외하고는 11곡 모두가 <빌헬름 프리데만 바흐를 위한 클라비어 소곡집(1720)>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사실만을 상기해 봐도 잘 알 수 있다. 바흐는 1722년 1권의 표지에서 "이미 기술을 연마한 연주자들뿐만 아니라 음악을 배우기 시작한 어린 학생들의 연습을 위해" 작곡했다고 했지만, 그 가치를 너무 겸손하게 표현했다는 느낌이 든다. 교육적 측면에서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의 가치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쇼스타코비치를 감동시켰던 니콜라예바
여성으로서 바흐의 건반 음악에 두각을 나타낸 연주자들을 기억하는 일은 매우 흥미롭다.
멀게는 <평균율> 전곡을 최초로 녹음했던 연주자 중의 한 사람인 폴란드 태생의 반다 란도프스카(Wanda Landowska), 가깝게는 최근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여주며 강건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영국의 앤절러 휴이트(Angela Hewitt)를 언뜻 떠올릴 수 있겠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우리의 기억 속에 가장 뚜렷하게 남아 있는 가장 훌륭한 여성 바흐 전문 연주자를 먼저 말해야 한다면, 단연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러시아가 배출한 두 사람, 즉 로절린 튜렉(Rosalyn Tureck)과 타티아나 니콜라예바를 기억해내야 할 것이다. 냉전시대에, 소련은 튜렉이라는 커다란 별에 대항할 수 있는 인물로 니콜라예바(튜렉보다 10년 연하다)를 앞세움으로써 국가적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다.

니콜라예바는 1924년 베지차에서 태어났다. 모스크바 중앙 음악학교(Moscow Central School of Music)에서 알렉산더 골덴바이스(Alexander Goldenweis)한테 배웠고, 이어 음악원에 진학해 역시 골덴바이스 선생의 지도를 받아 1947년에 연주가로서의 학업을 마쳤다. 니콜라예바는 그 후 예프게니 골루베프(Evgeny Golubev)선생도 사사해서 1950년에는 작곡공부까지 끝냈다. 놀라운 음악적 기억력을 지닌 피아니스트로도 유명한 그녀는, 바흐에서 스트라빈스키까지, 항시 약 50곡 정도의 피아노 협주곡들을 암보로 연주할 수 있었는가 하면,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전 48곡, 베토벤 <소나타> 전 32곡, 쇼스타코비치의 <전주곡과 푸가>24곡을 포함시킨 시리즈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훌륭한 작곡가이기도 했던 니콜라예바는 학생시절 졸업을 위해 준비한 칸타타 '행복에 관한 노래(Pesn o schast'ye)'와 피아노 협주곡 외에, 교향곡, 피아노 5중주곡, 피아노를 위한 작품, 실내악곡, 그리고 연가곡 <아이슬란드>(Islandiya) 등 여러 가지 작품들을 남겼다.
니콜라예바는 학생 시절 이전인 1945년에 이미 데뷔무대를 가졌고 러시아와 해외무대에서 차분히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50년에는 바흐 타계 200주년을 기념하며 실시된 동독의 라이프치히 바흐 연주 국제 콩쿠르에서 당당히 우승함으로써 세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라이프치히 콩쿠르에 입상한 것을 계기로 그녀는 적어도 20대 중반의 나이에 바흐의 음악과 아주 깊은 인연을 맺을 수 있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라이프치히 바흐 연주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니콜라예바는 유능한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의 마음을 크게 움직였다. 쇼스타코비치는 곧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모델로 한 <24개의 전주곡과 푸가>(op.87)를 썼다. 쇼스타코비치가 니콜라예바의 바흐 연주를 듣지 못했다면 그 명곡을 내놓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작품을 니콜라예바에게 헌정했고, 1952년 12월 23일과 28일에 레닌그라드에서 그 곡을 초연했던 피아니스트도 당연히 니콜라예바였다.

그렇다면 쇼스타코비치를 그렇게 열광시켰던 니콜라예바의 바흐 연주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우리는 그 당시 실황기록을 뒤져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도 쇼스타코비치가 받았던 당시의 감동을 공유할 수 있다. 그녀가 남긴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명 녹음들이 있기 때문이다. 니콜라예바는 개성이 매우 강한 피아니스트였다. 비르투오소 테크닉을 가지고 있었고,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심오하고 강렬한 기질을 타고난 연주가였다. 그녀의 그런 기질은 물론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연주에 십분 발휘되어 있다. 그녀가 연주하는 전주곡은 쾌활하고 맹렬하고 긴박하며 생동감이 넘치지만, 니콜라예바의 연주는 대부분의 다른 연주들보다 약간 느린 편이다. 특히 느린 악곡을 연주할 때는 음표 하나하나에 충분한 의미를 담아 연주하기 때문에 찰지고 감칠맛이 나는데, 매우 느린 '아다지오'를 연주할 때는 거의 질척질척한(sludge sound) 사운드를 느낄 정도다. 하지만 그녀의 연주는 대위구조를 돋보이게 하고, 묵직한 악센트를 구사하며, 다이내믹한 진행을 하기 때문에 늘 듣는 이를 긴장시킨다.

니콜라예바 연주의 장점 중의 중요한 한 부분은 그렇게 풍성한 연주를 펼치면서도 긴장감을 잃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녀는 어떠한 센티멘털리즘에도 빠지지 않으면서 최고로 시적이며, 끝까지 강력한 긴장감을 보여준다. D샤프 단조 푸가는 일반적으로 광선이 흩뿌려진 어둡고 비통한 음악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니콜라예바가 슬픔에 잠겨 허우적거리지 않으면서 팽팽한 긴장감의 시상을 전개해나가는 것을 보라! 그녀의 열정적인 정서 충동은 뚜렷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늘 잘 조절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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