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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폐하고 축소되었던 루쉰의 연서를 다시 읽다 평범하고 뜨겁지 않은 열정 속에서 2 1925~1926 1926~1927 1929~1932 3 한 사내로 기억될 루쉰 역자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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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어느 한 자락도 소홀히 여기지 않았던 한 사내
루쉰을 말할 때 사람들은 항상 그의 사상이 당시 젊은이들과 진보 세력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언급한다. 쉬광핑도 실은 그 청년들 중 하나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루쉰 역시 청년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쉬광핑과의 연애 과정을 통해 루쉰은 정신적인 힘을 얻어 젊음을 발산했다고 할 만하다. 1999년 홍콩에서 발행되는 <아시아위클리亞洲週刊>는 새천년을 맞는 특집으로 중국 대륙 안팎의 저명한 중국인 작가들에게 의뢰하여 20세기 중국문학 걸작 순위를 매겼는데, 루쉰의 소설집 《외침》이 1위를 차지하였다. 사후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루쉰은 중국인 누구에게나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으며, 한때는 사회주의 정부에 의해 우상으로 숭배되기까지 하였다. 그것은 비단 중국뿐 아닐 것이다.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의 민주주의라는 현대사의 쟁점 한가운데 있었던 독자라면 누구나 루쉰의 책 한 권쯤은 읽었을 것이며, 그가 이야기한 ‘희망’과 ‘길’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접근은 루쉰을 어떤 틀로 고정시키며 그가 혁명의 활로를 찾았던 민중에게서 멀어지게 만드는 것 같다. 그를 규정하고 있는 명칭들-작가, 평론가, 문학사가, 금석문연구가, 목판화운동가, 지식인 혁명가 등-만 해도 그렇다. 이 책 《루쉰의 편지》는 루쉰을 어느 책에서보다 쉽게 전면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편지 매 편마다에는 사상적 깊이뿐 아니라 평범한 일상의 소재로 위대한 가르침을 발견해내는 정신력, 천진난만하게 열애 속에 잠겨 있는 모습들이 세세하게 어우러져 있다. 짙은 눈썹 아래 반짝이는 눈 루쉰과 그의 작품들에 관해 강의하거나 연구하는 사람들은 종종 사회 투쟁에 대한 부분만을 중시한다. 그러다 보니 그의 결혼과 애정상의 처리 과정과 관련 인물과의 관계 등을 소홀히 다루거나 심지어는 개인적인 정서와 정신적인 면모를 외면하거나 경시하곤 한다. 물론 루쉰의 결혼이나 연애, 가정사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도 있지만 다소 금기시하는 경향이다. 또한 주안(朱安) 부인과 쉬광핑 사이에서 발생한 갈등 상황이나 복잡한 심리 상태, 연애 중의 표현 방식 등은 고의적으로 축소하거나 은폐하려고 한다. 이런 시각으로 본다면 이 책 《루쉰의 편지》에 실린 1925년 6월 28일자와 7월 16일의 편지를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또, 그의 편지에 담긴 일화, 즉 루쉰이 하문(夏門)대학에 있을 때 철조망이 튼튼한지 시험해보기 위해 뛰어내린 에피소드 등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더욱이 ‘밤에 소변을 볼 때 아래층으로 내려가지 않고, 도자기로 만든 타구(침 따위를 뱉는 그릇)에 소변을 본 일이나, 인적이 없을 때는 창가에 선 채로 아래를 향해 소변을 본 일’을 고백하는 부분에서는 어쩌면 실망과 놀라움을 금치 못할지도 모른다. 루쉰과 쉬광핑의 내적 소통 루쉰과 쉬광핑의 편지에는 서로 다른 개성이 점차 공감대를 형성하고 소통, 융화하면서 하나가 되는 과정이 뚜렷이 드러나 있다. 무엇보다 공통된 저항정신의 표현과 구사회를 타파하려는 실천적인 활동, 사회개혁에 몸 바쳐 문화를 변혁시키려는 의지의 표현이 많다. 그래서 그들의 편지를 통해 당시 사회의 자화상을 읽고 시대적 희망을 엿볼 수 있다. 루쉰과 쉬광핑은 둘 다 사회의식과 개혁의지가 강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모두 강렬한 정서와 뚜렷한 경향성을 지니고 있었고 편지를 통해 드러냈다. 만약 그들이 서신의 교류도 없고 토론도 없고 내적소통도 없었다면, 근본적인 일치감도 없었을 것이다. 루쉰과 쉬광핑의 편지를 통해 그들이 어떻게 사회문제, 정신문화를 논하고 개혁에 관한 구체적 구상을 가졌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당시 사회정신의 각종 현상이 부분적으로 조명되어 개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긴박했던 심정과 절박함이 드러난다. 루쉰은 당시 북경 군벌정부의 정치는 부패와 오염의 수준을 가리켜 ‘검은 물감이 든 항아리’라고 표현한다. 쉬광핑은 여사대 사건으로 당시 교육계를 개탄한다. 편지에 드러난 그 시대의 사회적 정치적 상황, 정신문화 현상, 각종 인물에 대한 것은 결코 간단한 서술이라 할 수 없다. 사회상황을 언급하고 있는 실제적인 재료, 사회 정신문화에 걸쳐 폭넓은 내용은 서술, 논의, 애정표현, 자아분석, 유희적 필치 등 루쉰만의 개성적 표현으로 드러난다. 여기에 그가 가진 특유의 우울함과 고매한 인품, 자상함과 소심함, 강철 같은 표상과 아이 같은 천진무구함, 간절함, 유머와 증오, 강인함과 선하고 부드러운 일면 등은 모두 편지의 풍부한 재료로 다뤄지고 있다. 루쉰다운(?) 연애 《루쉰의 편지》 전편에 흐르는 루쉰과 쉬광핑의 연애와 결혼은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고자 하는 의욕과 고군분투하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신문화 조류와 사회 변혁 운동의 과도기에 한 시대의 문화와 사상 의식, 도덕 관념, 정서적 방식, 일상생활의 방식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가에 대한 대표적인 실례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루쉰이 사상가이자 구사회, 구문화, 구도덕, 구관습에 맞선 선각자였고, 자신의 깊고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개혁을 주장해온 신문화의 기수였지만 쉬광핑과의 사랑은 오늘날 보아도 불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루쉰과 쉬광핑이 가정을 이루고 몇 해가 지나서 자신들의 편지 모음집(《양지서》)을 출간했을 때도 연서의 특징이 강하거나 애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편지는 제외시켰다. 해설이 없다면 연서로서의 특징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스승과 제자, 연령의 차이, 가정적인 문제, 사회 환경, 심리적인 복잡성 등이 얽혀 특수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사랑은 연인관계로 발전하고 다시 새로운 가정을 꾸리기까지 수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들 편지에서 애정표현이 다분히 함축적이고 완곡한 표현을 해야 했던 것과 때때로 은폐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루쉰은 자신의 첫 결혼에 대해 ‘이왕에 인류의 도덕을 자각하게 된 이상 양심상 그들 젊은이와 늙은이가 죄를 저지르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다. 또한 상대를 원망하지 않고 그저 부부로 살면서 평생을 희생하면서 4천 년간 드리운 낡은 장막의 악습의 폐단을 끊어내기를 바랄 뿐이다’(《루쉰 전집》)고 할 정도로 수동적이었다. 하지만 ‘5ㆍ4운동’를 전후해서 신문화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루쉰의 그런 생각은 흔들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루쉰의 편지》 중 1925년 편지를 보면 초기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지만, 흔쾌히 답장에 응하고 교류가 진전되면서 여름 무렵에는 상당히 친밀한 관계에 도달한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그들이 결합한 것은 그로부터 2년 후인 1927년이다. 그때까지의 편지들에는 루쉰의 갈등이 드러나 있다. 특히 1926?1927년의 편지에서는 남하를 결심해 쉬광핑은 광동(廣東)의 성립(省立)여자사범학교의 교원으로 루쉰은 하문대학의 교수로 있으면서 자신들의 사상적 모순, 심리적 갈등, 애틋한 그리움, 향후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생활을 건설할 것인가에 대한 토의가 진지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오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루쉰 정신’에 대한 인간적인 접근 《루쉰의 편지》를 통해 독자는 루쉰의 문화적 측면에 쉽게 접근할 것이다. 그런 측면은 다른 작품에서도 쉽게 드러나지 않고, 선명하게 부각된 적도 없다. 소설 <비누>, <장명등>, <구경거리>와 산문시 <아름다운 이야기>, <나그네>, 그리고 잡문 <뇌봉탑의 도괴에 대한 재론>, <춘말한담> 등의 작품은 모두 1925년에 창작되었고, 작품집 <들풀> 중에 많은 단편은 쉬광핑과 편지를 왕래하는 동안 집필되었다. 그 외에 그와 쉬광핑의 연애 초기 단계에 쓴 소설 <죽음을 애도하며>와 산문시 <사화>가 있다. 이 사실은 루쉰의 심리적 풍부함과 복잡성을 탐구하는 데 참고가 될 뿐 아니라, 예술적 언어와 애정의 전달 방식 등의 측면에서 새로운 이해를 가져온다. 단지 작품만 접했을 때와 전혀 다른 이해가 가능해질 것이다. 문학작품에서뿐 아니라 사상적인 부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처음부터 루쉰이 여사대 사태에 직접적으로 가담한 것은 아니었다. 1924년 10월 양음유가 물리적인 폭력을 사용하고 학생들을 퇴학시킨 직후 반양의 기류가 고조되자 <뇌봉탑의 도괴를 논하며>라는 글을 발표했는데, 비록 직접적으로 여사대 분쟁을 거론하지 않았지만 내포된 의미는 여사대의 학생 운동 정신을 지지하고 있음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 외에도 ‘타마더 논쟁’,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물에 빠진 개는 패야 한다’ 등의 논쟁도 둘의 편지를 통해 정리되고 완성되어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읽을 것인가 “사람들은 편지야말로 꾸밈없는 가장 솔직한 문장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처음 편지를 보낼 때 나는 형식적으로 대하려고 노력했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양지서》를 출간하면서도 민감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면 때때로 의도적으로 모호한 표현을 썼다. 왜냐하면 우리가 거쳐 갔던 곳의 현지 장관, 우체국장, 교장 등이 나의 편지 내용을 빌미로 뜻하지 않았던 화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문장은 당시 있는 그대로 공개하였다.”(《양지서》, 서언) 굳이 루쉰이 이렇게 밝히고 있는 이유는 물론 지탄받을 만한 ‘일부 현지 인사’의 비열함을 간접적인 방법으로 폭로하고 비난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편지에 담긴 내용 전부가 ‘액면 그대로’가 아니라는 설명이기도 하다. 결국 다른 의미를 내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엮은이 리우푸친은 함축적으로 표현된 애정과 정서적인 감응(感應)을 드러내기 위해 이 책 《루쉰의 편지》에서 몇 가지 감상 방법을 제시한다. “만약 사회적, 정치적 부분의 감상에만 치우친다면 그 안에 내재된 숭고한 정신문화와 연서가 지닌 특수한 정신적 가치를 소홀히 여기게 된다. 반대로 애정과 연애 방면에만 집중하여 애정표현의 전달방식이나 심미적인 표현에만 흥미를 갖는다면 전체적으로 풍부한 사회내용과 정신문화상의 가치를 발견할 수 없다. …… 나는 본서에 실린 편지들의 성격이 변화무쌍한 생명체 같다고 생각한다. 처음 접했을 때의 인상과 해설을 덧붙이기 위해 다시 반복해서 읽고 난 뒤의 감흥은 전혀 달랐다. 편지 매 편마다 주안점이라고 여겼던 시각마저 변화를 겪었고, 당시 심리상태에 따라 연상된 감상법 또한 달랐다. 게다가 루쉰의 편지는 각 편마다 모두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었기에 내가 통일시키고 싶어도 일률적인 감상이란 불가능했다. 하지만 현대인, 특히 오늘날의 청년으로 확대해 보았을 때 내 판단의 보편적 욕구는 루쉰 정신의 계승과 루쉰 식의 정신적 각성의 요구로 귀결된다. 또한 루쉰 식의 열정과 용기, 루쉰 식의 고결한 지조와 개혁정신, 진취적 정신, 고군분투하는 의식의 발현이다. 루쉰의 편지는 연애, 결혼, 가정, 새로운 생활의 추구 및 사회투쟁과도 매우 관계 깊으며, 개인의 정신개조사업과의 연관 측면에서도 상당히 구체적인 감성 재료를 제공하고 있다.” 구성 (1) 북경에서의 시기(1925년 3월~1926년 8월) 쉬광핑의 첫 편지부터 편지의 주된 소재는 국가적 대사와 학내 분쟁 등이나 신변잡기적인 일상과 음식, 날씨 등에 관한 것들이다. 이러한 소재는 루쉰과 쉬광핑의 모든 편지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오문午門까지 끌려갔던 일’에 대한 뒷이야기, 상대에게 서로 ‘시험문제’를 냈던 일, 단오절에 저녁식사를 하고 취한 척했던 일에서 둘의 애정이 표면화되고, “꽃무늬 블라우스는 괜찮은가요”라는 식의 유희적인 내용이 빈번히 등장하기 시작한다. (2) 남하하여 떨어져 지내던 시기(1926년 9월~1927년 1월) 이 시기의 편지들은 매번 언제 편지를 부쳤으며 언제 며칠자 편지를 받았는지로 시작된다. 이전 시기에 비해 해학적인 표현은 거의 없으며, 개인적인 안부가 넘쳐난다. 루쉰이 하문을 떠나기로 결정하는 부분에서 루쉰의 불안은 쉬광핑의 충언으로 안정을 되찾으며, 하문을 떠나 광주에 가기로 한 결정이 쉬광핑과 함께하고 싶어서임이 드러나는 편지는 감동적이다. (3) 상해에서의 시기(1929년 5월~1932년 11월) 1929년 루쉰이 북경에 있는 모친을 간병하러 간 사이와 1932년 루쉰이 약 보름간 북경에 체류하면서 상해에 남아 있는 쉬광핑에게 쓴 편지들이다. 1932년의 편지에는 아들 해영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져 있어 아버지 루쉰의 모습까지 상상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