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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에덴동산, 심해
지구의 2/3가 바다, 그중 바다의 93%는 200미터 이하의 심해다. 200미터 아래로 내려가면 어스름한 빛만이 스며들다가 1,000미터 아래로 내려가면 한 점 빛조차 없는 암흑의 바다가 시작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깊은 바다에는 생물이 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생태계의 기본이 되는 것은 빛을 받아 광합성을 하는 식물인데 빛이 없는 곳에서는 식물이 살 수 없고, 식물이 살지 못하면 이를 통해 영양을 섭취하는 다른 동물들도 살아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1,000미터 이하로 내려갈 수 있는 장비가 없이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짐작만 할 수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심해는 원시적인 관측만으로 짐짓 추측되어 왔을 뿐이다. 하지만 첨단 과학 장비인 잠수정이 개발되면서 추측과 오해가 난무했던 심해 연구는 점차 과학적인 체계를 잡아가고 있고, 놀라운 생태계의 비밀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심해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20세기의 가장 놀라운 발견으로 손꼽고 있는 것은 단연 열수분출구의 발견이다. 황화수소의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는 이 뜨거운 오아시스에서 살아가는 관벌레나 옆새우의 생태계가 생명 기원의 비밀을 풀어낼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있다고 기대되기 때문이다. 생명의 기원에 대한 수많은 이견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최초의 생명체가 따뜻한 곳에서 탄생했을 거라는 데 대체적으로 일치하고 있다. 아직까지 심해는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를 훨씬 더 많이 품고 있지만, 심해가 생명체의 근원을 찾을 수 있는 과학의 에덴동산이라는 데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발광의 미스터리를 밝혀줄 친절한 안내서 이 책에 실린 생물들은 그동안 쉽게 볼 수 없었던 신기한 생물들이 많다. 외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뱀파이어오징어, 네온사인과도 같은 빛을 내는 발광 해파리, 먼지로 된 섬처럼 둥둥 떠다니는 거대한 라바신, 파수꾼처럼 세 다리로 서 있는 세 다리 물고기 등 진귀한 심해 생명체가 우리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특히 이 책은 빛이 들어오지 않는 암흑과도 같은 심해의 환경 때문에 생물들이 스스로 빛을 내도록 진화한 이유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심해 생물들의 90% 이상이 빛을 내는 발광 생물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어둠 속에서도 잘 볼 수 있는 민감한 시력과 몸을 숨기면서도 필요한 경우 상대방에게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상태로 자신의 몸을 변화시켜온 것이다. 육지의 생물들은 눈으로 상대방을 보고 울음소리로 자신의 의사를 알린다. 그러나 어두운 심해에서는 볼 수도 없고, 소리조차 잘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심해 생물들에게 빛은 통신수단으로 이용될 뿐만 아니라 같은 종류의 암수가 서로 짝을 짓거나, 먹이를 유혹하거나, 혹은 적을 놀라게 하는 용도로도 사용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목적은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탐사팀이 채집된 생물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먹이를 주지 않을 경우, 심해 생물들은 짝짓기를 하지 않는 반면 스스로 빛을 내는 것은 포기하지 않았다. 생명체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번식 본능보다 생존을 위한 발광이 더욱 중요한 생존 본능인 것이다. 심해 생물들이 어둠 속에서 전하는 빛의 신호는? 기술의 발달과 관심의 증폭으로 심해 생물들의 비밀이 하나씩 벗겨지고는 있지만 이들의 생태계를 연구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 가장 큰 어려움은 심해 생물들이 살아가고 있는 자연 그대로를 방해하지 않고 관찰하는 것이다. 마치 열대 우림 속에 숨어드는 동물생태학자들처럼 조용히 장기간 관찰을 해야 심해 생태계의 미스터리를 밝힐 수 있지만 잠수정을 타고 심해 속으로 들어가는 과학자들의 등장은 마치 록스타처럼 눈길을 끌고 우렁찬 것이다. 대형 모터로 움직이는 잠수정에다 심해 속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밝기의 조명까지 달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 책이 출간되기 전에 먼저 이 책을 읽어본 서울과학고의 이형우 학생은 “생물들이 마치 찍히고 싶지 않은데 찍힌 것 같다”고 솔직하게 느낌을 말해주었는데 이는 꽤 정확한 지적이었던 것이다. 카메라를 적으로 알고 몸을 둥그렇게 말아서 물고기가 아닌 것처럼 위장하는 등가시치(본문 51쪽)나 잠수정이 다가가자 다리를 잘라 버리며 도망치는 콜로보네마(본문 54쪽)에서 보듯이 과학자와 잠수정은 심해의 생물들을 놀라게 할 뿐이다. 한 과학자는 “극단적으로 말해 그물에 잡힌 심해의 생물들은 느리고 멍청하고 욕심 많은 것들뿐이다”고 말하는데, 이는 심해 연구의 어려움을 일깨워주는 의미심장한 말이다. 우리는 언제쯤 우리 힘으로 심해를 탐사할 수 있을까? 이 책에는 심해 연구에 필수불가결한 잠수정의 개발에 대해 거의 한 장을 할애하고 있다. 잠수정 없이 심해를 연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세계 최초로 심해를 탐사한 1872년 챌린저호의 탐사, 잠수공 배티스피어를 타고 최초로 심해에 내려갔던 비비 박사, 그리고 우리의 기대에 부흥하는 최첨단 유인 잠수정 앨빈호부터 1만 미터 심해를 탐사할 수 있는 일본의 무인 잠수정 가이코에 이르기까지 잠수정 개발의 역사를 통해 심해 연구에서 잠수정이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2006년 6,000미터급 한국산 무인 잠수정이 개발되면 우리에게도 심해는 더 이상 낯선 탐험 지대는 아니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