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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시작하며 - 그리스도교 신앙 진리의 역설성ㆍ5
소개글ㆍ19 제1장 역설들 1. 신앙의 삶ㆍ39 2. 증언ㆍ50 3. 적응ㆍ57 4. 영의 요구ㆍ66 5. 육화ㆍ74 6. 무관심ㆍ83 7. 사회적인 것과 영원한 것ㆍ91 제2장 새로운 역설들 1. 생각, 진리ㆍ106 2. 인간ㆍ127 3. 복음과 세상ㆍ142 4. 인간관계ㆍ159 5. 고통ㆍ178 6. 영적인 삶ㆍ197 7. 신앙ㆍ218 제3장 다른 역설들 1. 복음ㆍ245 2. 공의회. 단체성. 반-공의회와 공의회 이후ㆍ272 3. 신비, 교의, 전통, 신앙ㆍ297 4. 신앙의 반석ㆍ338 부록ㆍ355 십자가의 예수님께ㆍ360 세계적 위기에 직면한 교회 1. 인간과 하느님ㆍ367 2. 인간과 인간들ㆍ368 거룩함의 의미가 경감되고 사라지는 내적 이유들 1. 우리 신학 작업의 네 가지 결함ㆍ385 2. 세 가지 실천적 결론ㆍ406 3. 유일한 치료약ㆍ413 육화된 그리스도교 1. 언어의 최선과 최악의 의미ㆍ416 2. 중대한 일탈ㆍ418 3. 그리스도교 신비의 리듬ㆍ421 그리스도교적 요구 1. 배교의 두 증인ㆍ424 2. 그리스도 영의 새로운 힘ㆍ435 마르셀 르페브르 주교의 발언에 관하여 주교님들께 드리는 의견 (1964년 9월 24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87차 총회 발표문) 1. 마르셀 르페브르 주교의 발언ㆍ449 2. 앙리 드 뤼박의 의견ㆍ452 주ㆍ457 인명 색인ㆍ481 |
Henri de Lub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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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은 먼저 마음을 흔드는 역설로 가득 차 있다. 구세주는 가장 교육적인 방법을 사용하신다. 그러나 그분은 또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마태 11,6) 여기서 질문이 제기된다. 모든 영적인 가르침은 필연적으로 역설적 형태를 취해야 하는가?
우리는 영적인 삶의 맛을 잃은 살과 피의 본능에 굴복하고 자연주의의 착각에 빠진다. 그리고 이를 육화된 그리스도교라 칭한다. --- 「역설들」 중에서 단 한 걸음이면 가장 진실한 진리에서 가장 거짓된 오류로 갈 수 있다. 사람들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확증한다. 이처럼 사실에 대한 확증에서 위험하리만큼 진리를 오류와 가깝게 여기며 단죄하는 데까지도 한 걸음에 불과해서 자주 한계를 넘어선다. 이런 경우 큰 오류에 빠지기도 한다. “우리 영의 약점은 큰 문제가 생겨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 문제가 가장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이다.”(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 “거울이 없다면, 자기 얼굴을 볼 수 없다. 적이 없다면, 자신의 결점을 깨달을 수 없다.”(니치렌Nichiren, Kaimokusho, c. VII)= “그는 카이사르를 인정했다…….” 그러나 이것이 과한 양보라고 여기는 사람은 카이사르와 하느님을 혼동하게 된다. 지금 하느님의 뜻을 재발견하느라 바쁘다며 내 형제에게 물 한 잔 주기를 거부할 것인가? “받으려면 마지막 자리를 차지하고, 주려면 아무도 원하지 않는 자리를 차지하라.”(마르셀 레고) 사나운 짐승을 쫓아냈다고 믿는 순간, 그 짐승이 방구석 어두운 곳에 숨어서, 다시 먹이를 노리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들은 예언자들을 찾는다. 이상한 예언자들을 찾는다. 만일 그들이 존재한다면, 그들에게 권리를 주고, 법적인 지위, 대중의 인정, 일종의 자격을 부여하길 원하겠지만 그런 예언자들은 결코 없었고, 있었다면 그것은 잘못된 일이다. 당신은 그런 일을 두둔하는 것이 두렵지 않은가? 여러분은 이미 그런 일이 늘어나고 있다고 믿지 않는가? …… 진정한 예언자들이 나타나면, 그들에게는 보호가 적용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참된 예언자들은 조롱과 모함, 모욕을 당하는 사람들임을 알아야 한다. 이들은 인류를 거스르는 죄를 저지른다고 고발당하는 사람들이다. 플라톤의 의인처럼, 거부와 치욕의 낙인이 찍힌 사람들이다. 과거에 이단자들이 우리 조상들에게 공포를 주었지만, 오늘날에는 더 이상 공포를 주지 않는다면, 우리 마음속에 더 큰 사랑이 있기 때문인가? 아마도 우리가 더 이상 분쟁의 대상, 즉 신앙의 본질 그 자체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감히 말하지 못한 채 그렇게 있는 것은 아닐까? 습관화되고 수동적인 신앙인에게 교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신비도 아니고, 우리 안에서 성취되어야 하는 신비도 되지 못할 것이다. 그 결과, 이단은 더 이상 우리에게 충격을 주지 않는다. 적어도 더는 영혼을 앗아 가려 했던 것처럼 우리 마음을 혼란에 빠트리지도 않는다. …… 그 결과 우리는 이단자에게 좋은 존재가 되는 것이 어렵지 않고, 이단자와 함께 길을 개척해도 반감이 들지 않는다. --- 「새로운 역설들」 중에서 “교부들의 가르침이 무시되고 사도 전승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겨지고 있다. 반면 교회 안에서는 개혁자들이 발견한 것을 매우 경청한다. 그들은 신학자가 되기보다 사변적인 사람이 되는 것을 배웠다. 세상의 지혜가 십자가의 영광을 밀어내고 명예의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다.”(바실리오 성인Saint Basil) 가장 심오한 신앙에서 가장 철저한 무신론으로 가는 데에는 머리카락의 굵기만 한 거리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굵기는 심연이다. 신랑은 신부를 ‘그의 목에 있는 머리카락 한 올’만으로도 알아본다. --- 「다른 역설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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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원천으로,
그리고 그 한계를 넘어서 앙리 드 뤼박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대부분을 작업한 인물이다. 이는 그리스도교의 원천을 통해 교회를 쇄신하려고 한 그의 사상이 인정받았음을 보여 준다. 『역설들』에서는 그리스도교의 원천을 바탕으로 신학을 깊이 연구하며 본질을 탐구하는 이러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제1장 역설들’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 성경이나 교부들의 전통에서 원천을 찾으려는 그의 모습을 엿볼 수 있고, ‘제2장 새로운 역설들’에서는 교회로부터 침묵을 강요받은 1950년 이후 생각과 진리, 인간, 복음과 세상, 인간관계, 고통, 영적인 삶, 신앙과 관련된 통찰을, ‘제3장 다른 역설들’에서는 복음과 신앙, 공의회와 관련된 내용을 통해 그 시대 상황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잘 보여 준다. 신학은 역설을 신앙의 근본적 특성으로 인식하고 수용한다. 그리스도교 신앙 자체가 역설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역설은 그리스도 신앙 이해의 열쇠다. 드 뤼박은 신학의 일반적 정의로 알려진 ‘신앙의 이해intelligence de la foi’를 넘어 ‘신앙을 통한 이해 intelligence par la foi’를 더 강조한다. 신앙을 통한 이해를 더 강조한 것은 신앙 진리가 내포한 역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그 역설적 진리의 깊이를 탐구하여 그 안에 담긴 심오한 의미를 파헤치기 때문이다. ─ ‘이 책을 시작하며’ 중에서 아는 만큼, 체험하는 만큼 더 깊은 신앙을 가질 수 있다 신앙은 삶 속에서 실천하고 체험함으로써 깊어진다. 이런 신앙의 여정에서 『역설들』은 중요한 길잡이가 된다. 이 책은 두꺼워 보이지만 관련 있는 주제별로 짧은 글을 모았기에 조금씩 묵상하고 기도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 짧은 글 자체에 전하고자 하는 것이 모두 담겨 있기에 가볍게 어느 페이지나 펼쳐서 시작해도 훌륭한 묵상 글이 된다. 매일 이렇게 묵상하고 기도하면 이 책은 우리의 ‘희미한 신앙’을 살아 있는 신앙이 되게 하고, 신비를 이해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아는 만큼, 체험하는 만큼 매번 새로운 깨달음을 주면서 말이다. 이 깨달음을 신앙의 삶에 녹여낸다면 하느님과의 관계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 이 책은 각 단편을 따로 떼어 묵상하거나 다른 유사한 단편들과 연결하여 묵상하면서 풍미를 음미할 수 있다. 그렇기에 어느 페이지를 펼쳐 읽든 독자에게 열려 있으며, 매일 읽을 수 있는 기도서나 묵상서로 여겨도 좋을 것이다. 또한 신자나 비신자, 평신도나 사제를 막론하고 모든 현대인을 위한 훌륭한 영적 도서가 될 수 있다. 이 책은 느긋하게, 욕심 없이 읽어야 한다. 어느 때든, 어디를 가든, 영적 쉼이나 여유가 필요할 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 ‘소개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