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930~40년대
선線│추상주의 소론│남풍南風│파시波市│백일홍│자화상│백자항아리│군담│그림에 부치는 시詩│무제 Ⅰ| 무제 Ⅱ 1950년대 산처기山妻記│파리에 보내는 편지│신인양성이 급하다│여름 2제│곡마단│여인│서울에 돌아와서│다시 서울에 돌아와서│의욕의 서울│포도│산방기山房記│무제│수화樹話│호박│순대튀김│서울│예술소론藝術小論│국전의 명랑성│중세기적 우화의 세계│미술대학의 이상│여인의 지성│서울의 산│그림 안 파는 이야기│가시 울타리랑 걷어치우고│청백자 항아리│놀란 토끼│까치│여섯 평 공방에서 허송세월│내 아끼는 딸에게│자화상을 그리며│처녀 출품│파리 통신 Ⅰ│파리 통신 Ⅱ│파리 통신 Ⅲ│파리 통신 Ⅳ│내 사랑하는 아이들에게│파리의 지붕 밑 1960년대 봄이 오고 있는데│하늘│산山│빗속의 광채│파리 화첩 - 마로니에, 포도, 파리의 굴뚝, 카페, 베르니사주, 국화│아내에게 주는 편지│상봉上峰│무제│배꽃│밤섬과 비둘기│비둘기│서울│편편상片片想│고향의 봄│가을의 소리│피카소와 돋보기│상 파울로전의 인상│항아리│무제 Ⅰ│무제 Ⅱ│새해│화문 2제畵文二題 - 불상의 파편, 우리동네│둥근 달과 항아리│표지화여담表紙畵餘談│소냐│자연스러운 생활│뻐꾸기와 꽃향기│어글리 서울│뉴욕 통신│미술대학의 사명│입체파에서 현대까지│전위미술의 도전 |
수화
김환기의 다른 상품
|
간혹, 외방에 머무르지만 여인숙박기旅人宿泊記에 무직이라 쓴 적은 없다. 농農이라고 써왔고, 요즘 와서는 화畵라고 쓰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요 다음은 또 무엇이라고 쓸지 나 스스로도 모를 일이나, 그림 이외에 또 다른 재미남직한 새로운 대상을 내가 발견하는 날까지는 죽으나 사나 그림을 할 것이고, 또 그럴 수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되나, 현재 나는 그림을 하면서도 늘 세상을 물색하는 내 마음의 오입을 어찌할 수 없다.
---「1930-40년대 ‘자화상’」중에서 나는 이 수많은 항아리를 사 들고 올 때마다 비싸게 생각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너무도 쌈으로 해서 항아리들이 불쌍하기도 했다. 도자기가 미에 관한 한 나는 조선조의 항아리에 자신이 있다. 불원하여 백자항아리의 세계가 오고 새로운 인식이 전개되리라. ---「1930-40년대 ‘백자 항아리’」중에서 참 먼 옛날 같습니다. 뒷산에 대포알이 쿵쿵 쏟아지고 주춧돌까지 찌르르 울려 왔습니다. 진정 나는 피로했습니다. 대포알에 맞아 죽으면 죽었지 꼼짝할 기운이 없었습니다. 연방 꾸르릉- 산울림과 동시에 주춧돌이 울리고 집이 흐늑흐늑 했습니다. 이 처참한 소리와 울림은 차츰 가까워 오고 있었습니다.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단 하나의 길이란 나도 사람들 무리에 끼여 남향하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까도 말했지만 그때의 내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서 무엇이고 정신적 결단을 내릴 기운이 없었습니다.죽는다는 것, 산다는 것을 구별할 수가 없었습니다. 될 대로 되어라. ---「1950년대 ‘의욕의 서울’」중에서 동서양 미술사며 문화사, 고고학 강의실도 이 미술관 내에 두어야 하며, 작품 해설, 작품 감상 시간도 여기 미술관에서 하게 된다. 매년 1명의 외국 유학 장학생을 양성한다. 우리 학원에 이러한 제도를 둠으로써 세계적인 대예술가가 틀림없이 우리나라에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파리국립미술학교의 ‘로마상’ 이상의 빛나는 성과가 오르리라고 믿는다. 학생들에게 공부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재미나는 환경과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싶다. 그리고 옹색지 않은 시설도 마련해 주고 싶다. ---「1950년대 ‘미술대학의 이상’」중에서 서울의 애정은 중앙청이 있어서가 아니요 반도호텔이 있어서가 아니다. 남대문·동대문·덕수궁·창경원·비원·경복궁- 이런 것들이 있어서 서울인 것이요, 서울에 애정이 가고 다소 자랑도 되는 것이다. 창경원 담장을 끼고 걸어 보라. 덕수궁 담장을 끼고 걸어 보라. 옛날 총독부의 그 동물원 같은 철책 밖을 걷던 그것과 다시 생각해 보라. 시청 광장에서 바라다보는 덕수궁의 담장이 왜 눈에 거슬렸을까. 오늘 우리가 역사의 민족이요 생활을 가진 민족으로 자랑을 한다면 저러한 담장 안에 들어 있는 건물만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런 것들을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담장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950년대 ‘서울’」중에서 꽃 심고 푸성귀뿌리고 짐승들과 새와 그렇게 하고 살고 싶어. 너는 찬성해 주겠지. 우리 둘이만을 위해서 우리들은 살고 싶고 노력하고 싶어. 이것이 나의 진실이야. 나는 절대로 행복한 사람이야. 너도 절대로 행복한 사람이고. 나 파리에 가면 그전부터 생각해왔던 거지만 되도록이면 거기서 오래오래 아니 가능하다면 영주永住 하고 싶어. 그러나 나 같은 마음 약한 예술가가 누구보다도 고국을 그리워할 거야. 허나 언젠가 불국사에서 느낀 것이지만, 애인이 있는 곳이 고향인 것 같아. 그 쓸쓸한 이방인으로서는 파리에서 혼자서 어떻게 살아낼 수 있겠나 말이야. 나 혼자서는 ‘파리 영주’는 생각할 수도 없으려니와 추호도 자신이 없어. 허나 너와 더불어 있다면 난 가능할 것 같아. 같은 게 아니라 자신이 있어. 조국이 더 큰 거라면 사랑하는 사람은 조국이기도 해. 애인과 조국은 분리할 수 없는 불가분한 것이 아닐까? ---「1960년대 ‘아내에게 주는 편지’」중에서 더러 허물없는 친구가 있어 왜 추상을 안 하느냐고 물으면 아직도 지구상에는 구상으로 표현하고 싶은 많은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고 대답한다는 피카소, 금세기의 전반을, 아니 피카소에게 있어서는 평생을 쉴 사이 없이 새로운 미술의 발견을 위하여 앞장서 왔던 그의 만년의 일들은 여전히 언제 보아도 어제의 일이 아닌 새로운 일인 것이다. ---「1960년대 ‘전위미술의 도전’」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