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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mmend e스포츠의 아이콘 프로게이머 임요환
Open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위에서의 희망 1. 게임에 미친 아이 황제의 탄생 누나만 셋이요! 오락실과 축구 고등학교 재수할래? 스타크래프트! 그 마법에 사로잡히다 PC방? 그게 뭔데? 재수학원을 쓰러뜨린 게임의 유혹 지면서 이기는 법을 배우다 인간에 대한 예의, 테란을 선택하다 2. 프로게이머 탄생 PC방 죽돌이라고? 난 프로게이머! 날아라~ 드랍쉽 나는야 테란의 희망 임요환의 명승부 기록1 팀밀리 방식으로 갈고 닦은 나만의 전략 ‘테란의 희망’에서 ‘황제’로 임요환의 명승부 기록2 우물 안 개구리에서 세계 챔피언으로 임요환의 명승부 기록3 3. 감춰진 열정이 폭발하다 승부에 미친 놈 임요환의 명승부 기록4 나는 신이 아니다 임요환의 명승부 기록5 홀로서기…… 이겨야만 한다 임요환의 명승부 기록6 23세, 억대 연봉자가 되다 임요환의 명승부 기록7 임요환의 명승부 기록8 1퍼센트의 희망은 99퍼센트의 절망를 부순다 임요환의 명승부 기록9 최고의 감독, 최고의 선수들 임요환의 명승부 기록10 4. 상실의 시대 나도 놀고 싶다 임요환의 명승부 기록11 인정할 수 없는 슬럼프 게임은 '프로' 사랑은 '아마추어' 현충원으로 향하는 길 편견과의 싸움, 프로게이머는 게임 중독자? 5. 나는 멈추지 않는다 지고 나서 후회하지 말자 연봉 2억의 주장 스타리그 10회 진출의 신화 임요환의 명승부 기록12 50만 서포터즈는 나의 힘! 한국의 임요환이 최고다 6. 30대 프로게이머를 꿈꾸며 지름길은 없다 도전은 계속된다 |
林遙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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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레이어즈_박서SLayerS BoxeR' 게임 아이디를 입력하고 상대의 등장을 기다린다. 조명도 카레라도 모두 사라지고 팬들의 함성도 이젠 들리지 않는다. 순간 완전한 고요 속에 나만이 남는다. 이제 곧 무대의 막이 오를 것이다. 내가 주인공이고 내가 승자이며 나만이 끝낼 수 있는 무대가 열릴 것이다.
---p 17 스타크래프트를 만난 이후 앉으나 서나 내 머릿속은 온통 게임으로 꽉 차버렸다. 생전 꺼내보지도 않던 영어사전을 들고 스타크래프트 용어들을 찾아보면서 스타크래프트의 심오한(?) 세계관에 빠져들었고, 점심때가 가까워 오면 혼잣말로 “미네랄이 부족하군”이라고 중얼거렸다. ---p 38 나는 스스로를 타이르며 재수학원에 등록한 이후로는 한 번도 PC방에 가지 않았다. 나를 통제할 수 없다면 아예 단절시키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토록 하고 싶었던 게임을 뒤로하고 다시 공부에 전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고등학교 때 친구를 재수학원 앞에서 만나게 됐다. ---p 48 남들이 나를 ‘PC방 죽돌이’라고 한심하게 여겨도 개의치 않기로 했다. 내게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꿈이 있었다. 프로게이머! 한국 최고, 아니 세계 최고의 게이머가 되겠다는 꿈은,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나를 도를 닦는 수도자로 만들었다. 주변의 수군거림이나 평가에 초연해졌다. 아니 애써 무시하고 마음의 칼을 갈았다. ---p 66~67 나는 전략적으로 드랍쉽을 많이 사용했다. 사람들이 내 플레이가 신기하거나 특이하다는 얘기를 많이 했지만 난 왜 다른 유저들이 드랍쉽을 사용하지 않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처음에는 다른 테란 유저들도 모두 드랍쉽을 쓰는 줄 알았다. 아마 그건 내가 다른 사람 플레이를 보고 배우거나 따라하는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p 74 첫 우승 상금은 300만 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상금치고 많지 않은 금액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겐 3천만 원, 아니 3억보다도 값진 금액이었다. 스타크래프트를 시작한 지 1년 6개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0개월 만이었다. 처음 스타크래프트를 봤을 때의 느낌, 공부와 담을 쌓고 아버지가 PC방에 잡으러 오면 도망 다니면서 게임을 한 일, 나를 데리고 재수학원에 갔던 어머니에게 실망만 안겨드렸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p 76 이제 2001 WCG의 우승은 한국 프로게이머의 자존심이 걸린 일이 되어버렸다. 게임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선수가 그저 재미로 게임을 하는 외국 선수들에게 힘없이 진다면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결국 ‘우물 안 개구리’라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라는 비감한 생각도 들었다. ---p 107 나는 게임하는 도중에는 눈도 거의 깜박이지 않는다. 컴퓨터 화면에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기 때문에 눈 깜박이는 시간조차 아껴야 한다. ---p 131 모여 있던 질럿 부대를 본 순간 정말 암담한 상황에 몰려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대로 포기할 수 없는 일. GG를 치면 16강에도 못 가보고 탈락이었다. 어떻게든 재경기까지는 끌고 가야 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 이런 것일까? ---p 138 게임 이외에는 취미도 없었다. 일도 게임이었고 취미도 게임이었다. 잠깐 여자친구를 사귄 적도 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대학에 적을 두고 있긴 했지만 다른 대학생들처럼 대학생활을 하지 못했다. 당연히 MT도 가보지 못했고 친구들과 여행 한 번 해보지 못했다. 게임 이벤트를 따라 전국 순회를 한 것이 내가 한 여행의 전부였다. ---p 178 누구나 일시적으로 중독 현상을 경험할 수 있다. 그게 게임일 수도 있고, 술이나 담배일 수도 있고, 바둑에 빠질 수도 있고, 음악에 빠질 수도 있다. 지금 기성세대들은 자식이 바둑에 빠져 있으면 어른스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게임이 빠지면 정신없이 노는 것만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p 204 난 SK텔레콤 T1과 또다시 억대 연봉으로 계약하는 데 성공했다. 그것도 프로게이머 가운데 최고 연봉인 2억 원이었다. 동양 팀에 있을 때보다 2배가 오른 나의 연봉. 모두가 부러운 시선을 보냈지만, 나는 그 액수의 10배 이상의 결과를 보여줘야 하는 부담감을 안게 되었다. 그러나 그 부담감이 자신감으로 바뀌면서 나는 프로게이머로서 또 한발 앞서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p 213 얼마 전 다음 팬 카페 ‘임요환의 드랍쉽이닷’ 회원수가 50만 명을 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난 도대체 50만이라는 숫자가 얼마만한 크기인지조차 감을 잡기 힘들었다. 그 많은 팬들이 나를 지키보면서 나를 응원해주고 있었다. 나의 팬들이 없었다면 ‘테란의 황제’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p 223 2004년 9월에 다녀왔던 중국 방문에서는 한류라는 것이 단지 가수와 배우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공항에서부터 나를 알아보기 시작한 팬들은 내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따라와서 사인을 해달라고 아우성이었다. -p 227 24시간이 지나자 손가락이 움직이질 않았다. 정말 기계적으로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을 뿐 감각이 없었다. 감독님이 정해주신 게임 수를 모두 채운 것은 30시간이 지난 후였다. 30시간 동안 꼬박 잠도 안 자고 연습만 한 것이다. 손목이 더 이상 움직이질 않았다. 난 그대로 쓰러져 깊은 잠에 빠졌다. -p 233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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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스포츠의 아이콘 임요환이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e스포츠가 꿈틀거리고 있다. SK텔레콤, 팬택&큐리텔, KTF 등 대기업들이 연이어 e스포츠를 창단했고 프로게이머들의 리그가 열릴 때마다 10만 관중이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e스포츠 발전 포럼을 개최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사회 현상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이 장래 희망 직업 1순위로 프로게이머를 꼽아, 스타크래프트로 대표되는 e스포츠는 우리 사회에 경제, 문화적으로 엄청난 파급 효과를 가져왔다. 스타크래프트가 이렇게 대중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사람이 바로 프로게이머 임요환이다. 임요환은 화려한 현재의 자리에 서기까지 그동안 자신이 흘렸던 피눈물과 노력을 숨김없이 이 책에 드러낸다. 게임만 잘하면 연예인처럼 인기도 얻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는 겉모습만 바라보고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임요환은 그가 흘렸던 피눈물로 따끔하게 충고해주고 있다. 잠 한 숨 자지 않고 30시간을 꼬박 게임 연습할 자신이 없으면 그만두라고, 외부와 단절된 채 게임만 하고 자신과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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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이립三十 而立’이라는 말이 있다. 30대에 비로소 뜻을 세운다는 뜻이다. 가슴으로 살았던 20대를 접고 30이 되면 냉정하게 뜻을 세워 자신만의 길을 간다는 의미이다.
‘테란의 황제’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프로게이머 임요환을 보면 이 말이 무색하게 들린다. 현재 SK텔레콤 T1 팀의 주장인 프로게이머 임요환은 25세에 연봉 2억을 받고 그를 신처럼 추앙하는 다음팬카페 ‘임요환님의 드랍쉽이다(cafe.daum.net/yohwanfan)’ 회원이 50만 명을 넘는 기록을 세웠다. 미팅에 입고 갈 옷을 고르며 가슴 설레어하고 홍대 클럽을 어슬렁거리며 친구와 신나게 놀 스케줄을 짜고 있어야 할 20대에 그는 30대도 이루기 힘든 ‘인생의 월척’을 낚은 것이다. 그의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게임에 미친 놈’임요환의 성공은 우연이 아니다. 그 성공 뒤에는 광기에 가까운 몰입과 폭발적인 열정, 그리고 끊임없는 도전이 숨어있다. 20대의 자유를 볼모로 그는 하루에 10시간이 넘게 게임의 적수와 싸워야 했다.‘PC방 죽돌이’라고 자신을 폄하하는 주위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계가 알아주는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운 뒤에 열심히 게임만 했다. 임요환은 1999년 SI 팀 소속 프로게이머로 데뷔한 뒤 현재까지 6년 동안 게이머로서 활동하고 있다. 언론의 반짝 스타가 된 후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리는 프로게이머가 많은 게임 판에서 6년 동안 게이머로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 또한 그가 세운 기록 중의 하나이다. ‘게임’이라는 한 우물을 파고 있는 임요환은 지독한 연습벌레이다. 게임을 앞두고 30시간이 넘게 게임 연습만 한 적도 있다. 왕따 대우를 받던 스타크래프트 종족 테란을 선택하고,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외면당하던 드랍쉽을 선택해 자신만의 전략을 만들어낸 것도 끊임없는 연습으로 얻어낸 결과이다. 깨어 있는 시간 전부를 게임만 하는 임요환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3세에 동양제과에 소속되면서 연봉 1억을 받는 최초의 프로게이머로 등극하고, 2001년 첫 번째 월드 사이버 게임즈에서 스타크래프트 종목 금메달을 따내 대한민국 게이머의 위상을 드높였다. 또한 ‘스타리그 10회 진출’이라는 성공신화를 창조한다. 2004년 10월 4일 기준으로 657전 397승 260패의 승률 60.4퍼센트를 기록한 프로게이머 임요환은 현재‘30대 프로게이머’라는 또 다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게임 연습을 하고 있다. 20대의 젊음을 단순한 유희로 소비하고, 아무런 준비 없이 ‘청년실업’과 맞닥뜨려 울상 짓고 있는 20대와 30대. 그리고 입시경쟁의 시스템만 탓하고 ‘꿈’도 없이 표류하는 10대들. 과연 이들이 무언가에 미쳐서, 그 폭발적인 에너지를 분출해 본적은 있는지 짚어봐야 한다. 꿈과 목적 없이 방황하는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임요환의 광기는 신선한 자극이 될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 집에 공부하러 갔다가 우연히 스타크래프트에 빠진 임요환은 보잘것없는‘PC방 죽돌이’에 지나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골찌를 간신히 면하던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고 친구들과 축구하고 오락실에 다니는 재미로 10대를 보냈다. 어릴 적부터 오락실에 드나드는 아들을 못마땅하게 여긴 부모님은 컴퓨터를 사주지 않았고, 게임에 빠져 대학입시에 실패한 아들을 바로 재수학원에 등록시킨다. 부모님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 재수학원을 열심히 다니던 어느날, 임요환은 게임 한 판 하자는 친구의 권유로 다시 PC방에 발을 들여놓게 되고, 자신의 진로를 프로게이머로 결정한다. 재미로, 취미로 하는 게임에 빠진 임요환은 세계가 알아주는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운 뒤, ‘PC방 죽돌이’라고 폄하하는 주위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한다. 그리고, 정말로 세계가 알아주는 프로게이머가 된다. 공부는 뒷전이었지만 임요환은 자신이 세운 목표가 분명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집중력으로 반드시 그 목표를 달성했다. 예를 들어 중학교 3학년 때 인문계 고등학교 원서를 쓸 수 없을 만큼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시험을 40일 남겨두고 자신이 그렇게 좋아하던 오락실도 축구도 발을 끊은 채 공부만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재수를 운운하던 담임선생님의 걱정을 비웃 듯 무난히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공부를 잘 해야만 대학에 꼭 입학해야만 인생의 성공가도를 달린다고 생각하는 기성세대의 입장에서 보면 임요환의 성공은 한편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케이스다. 누구나 가는 길을 가야한 인정받는 틀에 박힌 세상 속에서 임요환은 게임에 미쳐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피나는 노력으로 그 길을 개척했다. ‘공부 못하는 놈들이나 하는 소일거리’로 치부되던 게임을 전문직업으로 각인시킨 임요환의 노력은 우리시대 新 성공모델을 제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