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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제1장 ‘중일 정상화’ 40년의 회고 1. 정상화 이후의 40년은 무엇이었는가? 2. 중일 국교 정상화 교섭을 재고하다 제2장 ‘1972년 체제’ 고찰 1. 이분론의 재검토 2. 이분론을 어떻게 초월할 것인가? 제3장 ‘반일’의 고조 1. 2005년 반일 시위 2. 중일 간의 새로운 쟁점 제4장 제도화의 시도와 차질 1. 회복된 양국 정상 간의 왕래 2. 시작된 관계의 제도화 제5장 중일 충돌: 영토·영해를 둘러싼 파워게임 1. 영토·영해 문제의 위치 2. 2010년 어선·순시선의 충돌 3. 센카쿠열도 ‘국유화’를 둘러싼 충돌 4. 중일 양국 간 주장의 대비 5. 힘을 통한 대항으로 6. 아베 정권과 신민족주의 제6장 모델로서의 미중 관계 1. 미중과 중일: 그 대비 2. 미중 관계의 제도화: 안전보장과 위기관리 3. 또 하나의 모델: 제도화된 중러 관계 제7장 중국 외교를 둘러싼 질문 1. 중국 외교의 전환 2. 중국 외교는 공세적인가 3. 여섯 개의 질문과 잠정적인 해답 제8장 외교 행동으로서의 군사력 행사 1. 중국의 대외 군사 행동 2. 한국전쟁(1950~1953) 3. 중월전쟁(1979.2.17~3.16) 4. 제3차 타이완 해협 위기(1995~1996) 5. 외교로서의 대외 군사 행동 제9장 중국의 변신과 현실주의 1. 10년의 주기 2. 중국 외교론 3. 전환점으로서의 2009년 4. 이익집단 5. 중국 신외교의 특징 제10장 21세기 글로벌 강대국의 행방 1. 중국의 자화상: 거자오광의 『중국 재고』로부터 2. ‘사화’되는 중국의 ‘국’: 마틴 자크로부터 3. ‘제국’론 4. 중국은 ‘제국’이 될 것인가? 맺음말 옮긴이 후기 * 중일 관계 연표(1972~2022년) 참고문헌 |
Kazuko Mori,もうり かずこ,毛里 和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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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교 정상화 교섭은 일본의 성공담으로서 말해진다. 총리, 외무대신과 차이나 스쿨이 아닌 외무성 주류 사이의 공동 작업이 잘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확실히 얻은 것은 컸다. 다만 핫토리 류지가 적확하게 지적하는 바와 같이, 최대의 문제는 “국교 정상화로 방치되었던 것은 미증유의 전화(戰禍)를 강제 받은 중국인의 마음”이었다는 점이다. 일본이 이것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는 1972년 이래의 과제였는데, 그 대응이 충분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1972년 체제’는 중일 간의 고도의 전략적 거래에 의해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1972년 체제’는 법보다는 도의, 이성보다는 감정, 제도보다는 사람이 우선되었다. 즉,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 위한 제도를 결여했으며 향후 예상되는 분쟁을 억지·처리하는 메커니즘을 결여했다는 취약함이 있었다. --- p.26 1972년 9월 29일 5일간 교섭을 통해 중일 양국은 국교를 정상화했다. 그로부터 45년 동안 양국 관계는 성숙했을까? 유감이지만 성숙하기는커녕 2005년의 반일 시위, 2010년의 센카쿠 열도 앞바다에서의 충돌, 2012년의 일본에 의한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 ‘국유화’가 도화선이 되었던 중국의 강렬한 반일 시위와 반일 외교 등 국가 간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이와 같은 불안정한 관계는 정상화 이래의 관계의 구조적 취약성에 더하여, 작금의 양국 간의 힘 관계의 격변, 영토 및 영해를 둘러싼 적나라한 이해 충돌의 원인이다. 1972년 이래의 중일 관계는 제도를 결여하고 있고 인적 관계에 의존하며 이성(理性)보다 정(情)에 의해 좌우되는, 취약한 관계를 계속 노정해왔다. 그리고 양자 간에는 예로부터의 이슈에 더하여 센카쿠 열도와 동중국해를 둘러싼 새로운 이슈, 즉 중일 간의 패권 쟁탈도 더해져 왔다. --- p.85 960만km2의 영토를 지닌 ‘대륙국가’ 중국의 세계와 지역이라는 공간에 대한 인식은 작은 섬나라 일본과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 중국이 아시아를 단순한 자신의 ‘주변’으로부터 하나의 국제주체·지역으로 간주하고 대응하기 시작한 것은 겨우 1990년대 후반부터의 일이다. 필자는 이제까지 “중국 외교에는 주변은 있어도 지역은 없다”라고 평가해왔으며, 아시아 지역 외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앞에서 소개한 왕지쓰도 중국에서는 아시아·동아시아 개념이 일반과는 다르며, 이른바 동아시아와 남아시아, 중앙아시아·몽골·러시아 등을 더한 지역을 일괄하여 ‘주변국가’로 개괄하고 있다고 2004년 출간된 그의 공저에서 지적했다. --- p.145 북한의 ‘해방’, 한국전쟁에 어떻게 관여할 것인가는 건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중국의 근간을 뒤흔드는 중대사였다. 해명되어야 할 수수께끼도 많다. 김일성의 대남 침공에 대해 승낙의 사인을 보냈던 것은 이시오프 스탈린이었는가, 마오쩌둥이었는가, 혹은 양자의 합의에 의한 것이었는가? 스탈린도 마오쩌둥도 미군의 즉시 전면 개입을 당초 예측했었는가, ‘미국의 대규모 개입은 없다’라고 생각했는가? 중국이 참전을 결정했던 목적은 무엇인가? 중국이 최종적으로 참전을 결정했던 것은 언제인가? 중소(마오쩌둥과 스탈린)의 전략과 인식은 일치했는가? 1951년 이래 정전 교섭을 정체시켰던 것은 미국·소련·중국·북한 중에 어느 쪽이었는가 등 소련 붕괴 이후 극비 문서가 나오면 나올수록 실은 수수께끼는 증가할 뿐이다. --- p.153 문제는 미국을 대신할 ‘제국’이 생겨날 것인가, 중국이 새로운 ‘제국’의 자리를 지향하고 있는가, 수중에 넣을 수 있을 것인가이다. 아래에서 중국에 있어서 느슨하며 관용적인 ‘제국’의 길이 있을 수 있는지의 여부를 고려해보도록 하겠다. 필자는 현대 중국에는 역사로부터 계승해왔던 ‘3개의 신화’가 있으며 이 신화에 속박되어 ‘자승자박’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 첫 번째 신화: 주권은 유일하고 절대적이며 불가침이다. · 두 번째 신화: 중국은 일체(一體)라고 보는 ‘대일통’론은 무조건 옳다. · 세 번째 신화: 반드시 정치(당)가 군을 통제한다고 확신한다. 주권 신화는 19세기 중엽 이래의 굴욕의 역사가 ‘일등 국가’가 되는 것을 통해서 불식된다면 뒷전으로 물러나게 될지도 모르며, ‘잃어버린 타이완’을 회복함으로써 극복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 상당히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중국의 역사책을 펴서 읽어보면, 제국의 주변 통치는 결코 일원적이지 않았으며 ‘대일통’은 결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대일통’ 신화의 흡인력은 대단히 강하다. --- p.214 필자 자신은 쇼와 천황에게는 전쟁에 대해서 법적 책임이 있고, 침략한 상대국의 사람들에 대한 중대한 책임도 물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후 70년을 맞이하여 시대는 변했고 세대도 담당자도 실로 바뀌었다. 물리적으로 말하더라도 이러한 문제에 마무리를 짓는 일은 절망적으로 어려워지고 있다. 어쨌든 시대를 초월하여 전쟁의 어두운 유산을 계승해나간다는 각오가 필요한 듯하다. 하지만 적어도 국민 차원에서 국민의 전쟁책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그 책임을 수행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최소한의 합의를 만들어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그런 자리의 하나가 된다면 매우 다행스러울 것이다. --- p.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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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류하는 중일관계
21세기에 들어와 동아시아의 강자이자 글로벌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공세적이고 확장적인 외교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일본도 패전국으로서의 전후 레짐에서 탈피를 꾀하며 이에 ‘힘으로 대항’하면서 긴장이 계속되고 있다.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치는 중일관계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중국이 이렇게 급속히 대국이 되어 힘을 과시할 것이라고는, 일본의 ‘전후 레짐으로부터의 탈피’가 이렇게 빠르고 강력하게 추진될 것이라고는 예측하기 어려웠으며, 중국과 일본 양국 관계가 새로운 ‘힘의 대치’ 시대로 진입해 커다란 망망대해를 표류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라고 이야기한다. ■ 중일관계의 네 가지 단계와 세 가지 이슈 저자는 1972년 중일 국교 정상화 이래 40여 년의 중일 양국 관계를 묘사하면서 동시에 주로 21세기에 들어선 이후부터를 ‘현실주의’의 시각에서 다시 고찰한다. 먼저 중일 국교 정상화 이후 40년간을 크게 1970년대의 ‘전략적 우호 시기’,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의 ‘허니문 15년’, 1990년대 중반에서 2010년의 ‘구조 변동 시기’, 2010년부터 현재까지의 ‘힘의 대항’, 네 가지 단계로 나눈다. 또한 중국과 일본 양국 간의 중요 이슈로 ‘역사 문제’, ‘지역 패권과 리더십 문제’, 영토·영해, 자원, 저작권 등 ‘구체적 이익 문제’의 세 가지를 든다. ‘구조 변동 시기’까지는 이 세 가지 이슈가 개별적으로 분쟁화하는 사례가 많았지만 ‘힘의 대항’에 진입한 이후부터는 일본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입 문제, 센카구 열도/ 댜오위다오 문제 등처럼 이 세 가지 이슈들이 상호 간에 결합되어 뒤얽혀져 버렸다고 고찰한다. ■ 성숙한 국가 관계를 바라며 한중일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환경, 중일 양국 간 관계는 낙관하기 어렵다. 불신과 대립이 더 깊어질 가능성도 크다. 저자는 동아시아의 주요 3국은 모두 대단히 젊은 국민국가이며 성숙함에 도달하기에는 아직 긴 과정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중일 관계에 대해서, 먼저 관계의 제도화와 이성화를 통해 아무리 격렬한 대립이 있더라도 대화의 채널은 결코 닫지 않을 것, 미중 관계·미일 관계를 살펴보면서 상호 관계를 다국 간의 협력 관계에서 고려할 것, 힘에 의한 대항이나 군사적 확장으로 연결되는 움직임을 방지할 수 있는 양국 간 및 다국 간 메커니즘을 최대한 일찍 구축할 것을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 책에서 두 개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음을 밝힌다. 첫 번째는 중일 관계의 전제에는 쇼와 천황의 전쟁책임, 아시아 사람들의 피해에 대한 책임 등, 일본의 전쟁책임 문제가 있고 이를 어떻게 마무리 지을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배타적인·정적인 민족주의로부터 중일 양국 국민들이 하루빨리 벗어나길 바란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