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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인간 복제 시대의 인간성과 야만성
1부 인간 복제와 슬로터다이크 논쟁 1장 인간 복제, 어디까지 와 있는가 2장 인간 복제와 포스트휴머니즘 3장 인간 사육인가, 인간 해방인가 4장 인간 복제-담론의 과잉, 철학의 부재 2부 인간 복제에 관한 철학적 성찰 5장 태어난 인간과 만들어진 인간 6장 요나스의 목적론적 생명 철학과 인간 복제 7장 니체의 초인과 복제 인간 8장 인간 복제 시대의 가족-생식 기술의 사회적 효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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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전체적으로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부는 21세기의 핵심 기술로 부상한 생명 공학 및 인간 복제가 어느 정도 발전했으며, 왜 격렬한 찬반의 논쟁을 일으켰는가를 다룬다. 우선, 생명 공학이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가?" 를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이러한 문제에서 촉발된 슬로터다이크 논쟁을 상세하게 소개함으로써 인간 복제가 과연 "인간 사육"인지 아니면 "인간 해방"인지를 비판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후반부는 인간 복제 기술이 일으킬 수 있는 철학적 문제들을 철저하게 해명한다. 슬로터다이크의 논쟁 상대자였던 하버마스의 입장을 통해 생명이 언제 시작하는지, "태어난 인간"과 "만들어진 인간"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살펴봄으로써 생명 공학 및 인간 복제의 부정적 잠재력을 통제할 수 있는 윤리의 가능성을 탐색하며 "인간을 초월하는 목적론적 질서가 없다면, 인간 복제를 과연 윤리학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을 제기하는 한스 요나스의 목적론적 생명 철학을 통해 생명의 존엄성을 해명한다. 또한 유전 공학 기술이 과연 니체의 초인을 산출할 수 있는가를 니체의 과학 비판을 토대로 살펴본다. 그리고 끝으로 생식 기술이 끼칠 수 있는 사회적 효과를 비판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인간 복제 시대에 가족 제도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가늠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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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터다이크의 주장―인간 사육인가 인간 해방인가
이 책에서 전개되는 논의의 기준선이 되는 슬로터다이크는 1999년 7월 16일 바이에른 주의 엘마우 성에서 발표한 〈인간 농장을 위한 규칙: 하이데거 휴머니즘 서한에 대한 답신(Regeln fur den Menschenpark : Ein Antwortschreiben zu Heideggers Brief uber den Humanismus)〉에서 ?문명 과정은 장기적으로 인류의 특성을 유전적으로 변화시킬지도 모른다?고 주장함으로써 철학적 스캔들을 불러일으켰다. 부제가 암시하듯이 슬로터다이크는 ?휴머니즘은 이제 끝났다?는 하이데거의 명제를 끌어들이면서 근본적으로 인간의 야만성을 잠재우고 길들이는 휴머니즘의 역할을 생각할 때 인간을 유전학적으로 선별하고 사육할 수 있도록 만든 생명 공학은 포스트휴머니즘의 도래를 의미한다고 역설했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의 야만성을 독서를 통한 계몽 등 인문학적 교육을 통해 극복하려 했던 서구 휴머니즘의 이상은 이미 실패로 돌아갔다. 휴머니즘은 현대 대중 매체의 끊임없는 오락 추구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의 야만을 길들일 수도 없고, 제어할 수도 없다. 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휴머니즘과 그에 기반을 둔 새로운 인간성 창조이다. 둘째, 새로운 인간성 창조는 현대 과학 기술의 총아인 유전 공학의 적극적인 활용을 요구한다. 즉 선별과 사육을 통해 바람직한 특성을 가진 태아를 만들어내는 일의 가능성을 적극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인간성의 야만을 극복하고 바람직한 인간성의 함양을 위해 중요한 것은 이제 윤리적 인간 교육이 아니라 유전자 변형 혹은 조작을 통한 인간 사육(Menschenzuchtung)이다. 셋째, 이른바 바람직한 인간성 창출에 적합한 기준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엘리트 그룹이 있어야 한다. 한 사회의 엘리트 그룹은 당연히 철학자여야 한다. 철학자와 과학자(특히 유전 공학자)가 연합해야 하며 유전 공학에서 생명 정치(Biopolitik)로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미래 사회의 과제는 인간기술의 규준 마련에 놓여 있다. 이로 인한 논쟁의 주제는 다양했으나 가장 문제로 대두되었던 것은 두 번째 주장과 관련된 것이다. 인간의 선별과 도태에 대한 생각은 독일에서 곧 나치의 인종주의 철학과 과학을 연상시킨다는, 독일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접어두더라도 슬로터다이크의 주장이 이처럼 거센 반발을 사게 된 원인은 생명 복제가 불러일으키는 철학적?윤리적 문제,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그 실현 가능성이 높아져가고 있으며 이젠 거의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시피 한 인간 복제의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렸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슬로터다이크의 엘마우 강연과 그에 대한 논쟁 슬로터다이크의 이러한 극단적 주장은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켜서, 하버마스의 제자로 추정된 아쓰호이어(Thomas Assheuer)는 슬로터다이크가 생명 공학과 관련된 윤리적 물음을 배제함으로써 생명 윤리(Bio-Ethik)를 배척하고 엘리트 인간을 사육하려는 생명 정치(Bio-Politik), ?차라투스트라의 기획?을 감행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슬로터다이크는 비판 이론이 시대의 징후를 읽어내기는커녕 잘못된 경보만 울리고 있다고 반박한다. 이 밖에도 슬로터다이크의 엘마우 강연과 그것이 유발한 논쟁은 그 후 독일의 많은 철학자들의 비판과 반박의 대상이 되었다. 투겐트하트(E. Tugendhat)는 슬로터다이크가 도덕의 본질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통해 잘못된 유전자 결정론을 주장했다고 본다. 인간의 윤리적 자기 이해는 슬로터다이크가 이해하듯이 유전적으로 결정되어 있지 않으며 도덕은 사회적?문화적 현상으로서, 학습과 교육을 통해서만 비로소 습득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유전적 요인의 가능성 자체를 독단적으로 배제하지는 않지만 슬로터다이크는 지나치게 많은 것을 유전자에게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슈패만(R. Spaemann)의 슬로터다이크 비판 역시 핵심을 찌른다. 슈패만은 유전자 조작을 통한 유전 형질 변경의 위험성은 좋음과 나쁨에 대한 기준의 자의성에서 비롯된다고 보며, 이러한 기준을 명확히 하지 못하면서 무책임하게 유전자 조작을 감행하는 것은 결코 허용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교육을 사육으로 대체하려는 슬로터다이크의 구상이 특히 위험한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장을 방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슈패만은 유전성 질환 등을 치료하기 위해 시행되는 인간 복제 또한 결코 인간 복제라는 ?수단?을 정당화하지 못한다고 보는데, 치료용 인간 복제를 위해서 불가피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배아 실험은 ?몇몇 인간의 보다 나은 삶을 돕는다는 명목 하에 과학이 저지르는, 명백한 살인 행위?라고 여긴다. 생명 윤리학자인 호네펠더(L. Honnefelder)는 수정란은 이미 인간이며, 자기 목적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수단화는 궁극적으로 인간 존엄성의 침해를 의미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인간을 대상으로 한 유전자 실험은 안 된다는 견해를 피력한다. 호네펠더는 슬로터다이크가 왜곡된 자연 이해에 의해 인간 사육의 가능성을 주장했다고 본다. 즉 슬로터다이크는 자연이 어떤 청사진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이 가운데 고장난 부분은 인간에 의해 수리 가능하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슬로터다이크는 휴머니즘이 이젠 더 이상 인간의 야만을 순화시킬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유전학적 인간 사육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주어지는 것처럼 말하지만, 이 시대에 중요한 것은 휴머니즘과 도덕의 폐기 처분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물음과 아울러 바람직한 도덕성의 정립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의 법학자 드워킨(R. Dworkin) 같은 경우는 유전 공학의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생명 복제와 유전자 조작에 대한 철학자들의 우려가 혹시 기우에 불과한 것은 아니냐고 되묻는다. 드워킨은 유전 공학을 인간의 신 노릇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보며, 인간은 지금까지 언제나 자연의 재앙을 막기 위해서 노력해왔고 앞으로도 이 노력은 계속될 것이고불치병을 고치기 위해 유전자 복제 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페니실린의 사용과 본질적으로 아무런 차이도 없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인간을 고안하고 만들어낼지도 모른다는 전망은 무엇이 어떻게 잘못될지 알 수 없다는 두려움을 주지만 이러한 두려움 때문에 유전 공학적 탐구를 처음부터 거부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드워킨의 입장이다. 슬로터다이크 논쟁이 부각시킨 윤리적 근본 문제들 이러한 논쟁을 통해 저자들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중대한 질문을 던진다. 첫째, 유전자 조작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훼손을 의미하는가? 이 훼손의 정도는 유전 공학적 탐구 자체를 금지시킬 정도로 큰 것인가? 아니면, 불치병과 유전성 질환 치료 등 선한 목적은 이러한 훼손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둘째, 인간의 유전자 의존도는 얼마나 큰 것인가? 우리의 도덕적 판단 능력도 유전되는가? 아니면 우리의 성격과 지적 능력, 외모와 건강과는 달리 도덕성은 오직 후천적 교육의 몫일 뿐인가? 셋째, 유전자 조작을 통한 도덕성 함양은 왜 위험한 환상인가? 우생학적 목표를 성공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 우리는 왜 교육에만 매달려야 하며, 왜 유전자 조작이라는 보다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을 써서는 안 되는가? 넷째, 왜 인간은 불치병과 유전성 질환 치료, 인구와 성비 조절, 유전학적 인종 개선 등 적지 않은 이점에도 불구하고 우연에 의한, 따라서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자연 생식을 통해서만 이 세상에 출현해야 하는가? 인간은 반드시 자연 생식을 통해 탄생되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시대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뒤처진 구태의연한 독단은 아닌가? 다섯째, 도대체 인간은 언제부터 인간인가? 언제부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품위를 인정받아야 하는가? 즉 배아 연구는 어떤 목적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살인 행위인가? 아니면, 보다 많은 사람들의 보다 큰 행복을 위해서 불분명한 형이상학적 불안감 따위는 떨쳐버리고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인가? 슬로터다이크의 엘마우 강연에 의해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바 있는 이들 윤리적 근본 물음들은 단지 독일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적어도 유전 공학 분야에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선진국?이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유전 공학의 눈부신 발전과 도전에서 비롯된 문제들에 대한 국내 철학계의 대응을 살펴보며 아직 미흡한 그 반응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를 바라고 있다. 또한 슬로터다이크의 논쟁을 분석함으로써 한편으로는 인간 복제의 철학적 의미를 해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문명의 도전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인간 이해의 실마리를 모색하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