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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_ 미치도록 쓰고픈 마음 8
1장 _ 마흔에 만난 글 새벽의 이유 16 문장공부 23 나를 감당하는 일, 쓰기 29 ‘나’ 각성제 33 마흔의 초고 38 당당한 쓰기 44 삶 트기 49 잘 익은 글, 잘 익은 삶 55 종이 한 장에서 자라는 하루 60 책과 사유의 징검다리 65 글 빚 70 2장 글 안의 일상 꽃을 바로 보다 76 무지개 사탕 83 마음 수명 90 거울 속 엄마 96 이름을 살다 102 돌이 꽃을 피운다 108 태도의 무늬 113 ‘꾸안꾸’의 욕망 118 관리하는 삶 124 마흔의 긴 생머리 132 상처를 흔적으로 139 잘 될 거예요 146 3장 글이 준 선물 엄마 김치 154 기억, 마음이 남기는 이야기 158 내 자리 163 모든 순간이 완성형이라는 믿음 168 가짜 슬픔 173 김밥은 밥이 생명이다 178 봄을 놓아주는 일 184 바보라고 말하는 사람이 바보다 188 은유를 닮은 세상 193 불길한 예감은 왜 틀리지 않을까? 198 두 번째 걸음 201 적기의 사랑 205 감사훈련 210 나에게 노년이 없다면 214 마흔, 노래해야 할 때 221 에필로그 _ 날 보면 당신도 쓰고 싶어질 거예요 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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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문장을 읽으면 따로 떼어 모아두고 내 생각을 적었어요. 생각이 확장되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그런 시간이 쌓여 지금의 새벽 글쓰기 습관이 되었네요. 등 떠밀려 한 게 아니라 스스로 마음이 동해 시작한 일이다 보니 힘든 줄 몰랐습니다. 새벽이 기다려질 지경이었달까요. 그만큼 ‘내가 만들어가는 내 삶’이 간절했다는 말일 겁니다. 그랬던 새벽 기상이 근래에는 슬쩍 힘에 부치는 날도 많은 게 사실이에요. 체력이 닳아가는 나이탓인지, 모든 게 움츠러드는 겨울 탓인지 알람 소리를 듣고도 뒤척이는 날들이 잦아지거든요. 하지만 기어이 자리를 털고 일어납니다. 그건 여전히 존재하는 내 삶에 대한 의지 때문이겠지요. 정해진 하루에 끌려다니고 싶지 않습니다. 해 뜨는 시간보다 먼저 일어나 내 삶을 앞에서 이끌어가고 싶습니다.
그렇게 보면 나의 새벽은 오늘을 잘 살기 위한 담금질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하루 중 머리가 가장 맑은 새벽에 깨어 현상 뒤의 본질을, 나를 넘어 우리를 말하는 글을 읽으며 시야를 터 나갑니다. 오늘을 잘 살기 위해서는 내가 바로 서야 하고, 내가 바로 서려면 너와 나, 즉 ‘우리’를 함께 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시선을 머금은 채 나의 글을 써요. --- pp.17-18 첫 책을 쓰면서도 필명에 대해 고민했더랬어요. 책의 내용은 십수 년 해온 내 직업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교사로서 자괴감이 들게 했던 사건들,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그래서 도망치고 싶기만 하던 순간순간의 감정을 고백하듯 써 내려갔어요. 끓는 마음으로 거침없이 써낸 글에는 나의 치부는 물론이고 나를 아프게 했던 누군가의 치부도 들어 있었죠. 거기에 막상 내 이름 석 자를 달려니 왠지 모르게 멈칫하게 되더군요. 여러 밤을 모로 누워 묻고 또 물었어요. 거짓 한 점 없는, 그저 내가 나를 살핀 글이었습니다. 나의 고백이 같은 방황을 겪을 누군가에게 따뜻한 공감이 되어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고요. 아픈 이야기도 있었지만 반대로 감사와 기쁨, 벅참을 느끼게 한 에피소드들도 분명 쓰였습니다. 바로 그런 순간들이 오늘까지의 나를 이끌었다는 것도 글을 쓰며 알았어요. 그만두려던 일터로 다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은 것도 글을 쓴 덕분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나를 다시 살게 만들어준 글인데 대체 무엇이 두려운 건지 생각했습니다. 주눅 들 이유가 없더군요.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어요. 오히려 책 표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내 이름 석 자를 새기기로 했습니다. --- pp.45-46 그렇게 닫혀 있던 제가 글을 쓰면서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글 앞에서는, 글로 엮인 관계 안에서는 주저 없이 나를 쏟아내게 돼요. 바라는 것 없이 마음이 열리고 눈매가 풀어집니다. 어지간해서는 터놓지 못했던 속말이 글을 타고서는 시키지 않아도 술술 흘러나와요. 덮어놓고 거리를 두며 살아온 내가 그 본능을 거스르기가 쉬웠을까요? 공개하는 글을 쓴다는 건,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적당히 감추고, 적당히 흐리게 글을 썼지요. 실제보다 조금은 더 괜찮은 엄마, 괜찮은 아내인 척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극히 나다운 일상을 살던 어느날 내가 쓴 글을 다시 마주했을 때, 그때 내가 느낀 공허함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그럴듯하게 써놓았지 만 속은 텅 빈 글을 마주했을 때 속이 화끈거릴 정도로 수치스러웠습니다. 짐작이 가시나요? ‘처음부터 다시’ 라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억지스레 채워서 빈 마음으로 돌아갈 바에야, 흠 많고 부족해도 나를 드러내고 인정하는 글을 쓰자 싶었어요. 왜 글을 쓰는가를 생각하니 어렵지 않더군요. 조금 더 성숙하고, 조금 더 지혜로운 나로 살려면, 초라하더라도 일단은 지금의 나를 인정해야 했습니다. 느리더라도 진솔한 글을 써야겠다 싶었습니다. --- pp.50-51 마흔을 갓 넘겼던 그때, 나를 찾을 수 있다기에 글을 썼어요. 불리는 대로 살던 이름, 늘 명치 끝에 께름칙하게 걸려 있던 내 이름 석 자를 어떻게든 쑥 밀어내고 내키는 대로 시원하게 살고 싶었더랍니다. 내 이름으로 사는 모든 순간이 자랑스럽고 만족스러울 수는 없겠지만, 그렇더라도 체한 듯 억지를 쓰며,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살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십수 년 다닌 직장을 그만둘까 고민했습니다. 내 이름에 걸쳐진 못마땅한 것들을 싹 걷어내고 조금 더 새롭고 근사한 다른 어떤 걸 채워넣어야 불안하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그게 진짜 나이며 진짜 삶일 것 같았어요. 하지만 착오였습니다. 옷만 바꿔입는다고 달라질 내가 아니잖아요. 여전히 나는 나인데, 역할 하나 바꾼다고 잘 살아질 리 있을까요. 살아온 시간의 바닥부터 차곡차곡 써보고 알았습니다. 문제의 답은 언제나 그 문제안에서 찾아야 하듯, 내 삶을 해결할 방법도 이미 내 안에 있었다는 걸요.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나다움을 찾아 사는 게 진짜 내 삶이었습니다. 이 삶에도 이유가 있다는 믿음으로, 지금 내게 닥친 불안을 요령 없이 그대로 통과해보기로 했습니다. --- pp.105-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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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보면 당신도 쓰고 싶어질 거예요
글을 쓰는 마흔이 늘면서 ‘글쓰기’ 책과 ‘마흔’을 내세운 책들이 서점가를 점령했다. 이는 세대의 특징을 반영한다. 그동안 가정에만 충실했던, 지금 막 마흔을 넘긴 세대가 이제껏 자신을 내세우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는 커다란 반증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마흔, 우리는 지금 노래해야 합니다.”라고 외치는 이유는, 삶이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글로 적고 나니, 내 삶은 온전히 내 것일 때 가장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퍼스널브랜딩그룹 『책과강연』의 ‘문장공부’ 커뮤니티 운영자이다. 수백 명의 문우들과 좋은 문장을 나누는 일로 오랜 문장 수련을 거쳤다. 저자의 아름다운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도 또 개성 있는 저자의 문체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유의미한 선택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