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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_나는 왜 낯선 땅을 찾았나
반티에이 쁘리업은 어떤 곳? 1 원두막 수다 ‘엉클 죠’로 살다 “삼촌! 캄보디아에 왜 왔어요” 자원봉사도 아니고, 셀프 유배도 아니야 “나는 백조가 아니었습니다” 마피아와 보이스카우트의 싸움 영화 변호인과 내 인생의 멘토 DJ의 데자뷔, 삼랭시의 귀환 스님들의 현실 참여, 그 깊은 뜻은 국가지도자는 국민에게 어떤 존재여야 할까 수녀를 못 잊은 남성, 신부를 못 잊은 여성 2 앙코르의 미소 사면불의 향기, 자비희사의 덕치 장애인의 자활과 공동체! 뎅기야, 고마워! 붉은 개미, 이 크메르루주 같은 놈 Planting Trees is Planting Peace! 메콩 강 바닥의 마리아, 기적의 마리아 3 거울을 보다 1962년 메이스가 본 한국, 2013년 엉클 죠가 본 캄보디아 캄보디아 민주화운동에 불이 붙었는데 바냔나무와 한국의 재벌 프놈펜 강변의 태극기와 인공기 동물적 본능, 인간적 본능 스님이 살생을 한다고? 4 현실과 마주하다 톤레삽, 거꾸로 흐르는 강 톤레삽의 삼위일체 원시 경제와 현대 경제의 사이 ‘물의 나라’에 물이 없다! 킬링필드와 학살자 심판 히은이의 고통, 한 수사의 번민 5 묵상에 잠기다 봉쇄수녀원은 감옥인가, 천국인가 영적 스케일링_시하누크빌 침묵 피정 1 침묵 속의 자유_시하누크빌 침묵 피정 2 불타는 떨기나무_시하누크빌 침묵 피정 3 에니어그램으로 인생을 복기하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거룩한 방’ “부처야, 같이 놀자” “예수야, 함께 가자” 용서는 신의 영역이라고 하지만 신의 사유화, 신의 국유화 6 캄보디아에서 만난 아름다운 인연 “경영은 이렇게 하라!” 나눅스의 정철상 낮에는 쌀농사, 밤에는 사람 농사, 박진혁 신부 버림받은 영혼의 보금자리, 마더 데레사 수녀원 절대적 사랑이란? 대학생 자원봉사단 착하디 착한 청년, 티럿 아 뚜뜨, 마리! ‘소폭’ 제조에 홀딱 빠진 프랑스 청년 나가는 말_진정한 재미는 무엇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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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자원봉사를 하러 캄보디아에 간 게 아니었다. 가톨릭 선교를 위해 간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평소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이 어디 가느냐고 물어보면 길게 설명하기 복잡하니까 말하기 좋게 “캄보디아에 자원봉사를 하러 간다”고 대답했을 뿐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확한 말도 아니다. 엄밀하게 말해서 내가 살기 위해 캄보디아에 간 것이지 캄보디아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간 것은 아니었다. 상당히 이기적인 발상이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 pp.32~33
성직자들의 현실 참여는 사회 정화의 일환이다. 가톨릭은 기본적으로 좋은 공동체 건설을 지향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국가만큼 중요한 공동체는 없다. 그리고 국가 공동체에서 정치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정치를 잘못해서 공동체가 무너지고, 그로써 수많은 사람이 고통의 나락으로 빠진 사례가 인류 역사에 얼마나 많은가. 정치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를 경우 누군가는 그것을 지적해주어야 하는데, 그 역할을 성직자나 수도자가 해야 한다. --- p.62 사실 노무현은 패장이다. 그의 정치 인생을 관통하는 단어는 영광과 승리가 아니라 좌절과 패배다. 억울한 서거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패장이라고 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동서고금의 역사에는 ‘위대한 패장’이 적지 않다. 한니발과 제갈량이 대표적인 사례다. 스키피오는 한니발, 사마의는 제갈량과 싸워 승자의 월계관을 썼다. 그러나 역사의 월계관은 한니발과 제갈량에게 돌아갔다. 한국 현대사에서는 김구 선생을 들 수 있다. 김구는 이승만에게 졌지만 민족의 지도자로 칭송받고 있다. 노무현도 이명박에게 졌다. 패자 노무현과 승자 이명박이 역사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 p.71 자활훈련에는 좀 냉정한 면이 있다. 장애인들이 버스에 타고 버스에서 내리는 일, 버스 안에서 이동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넘어지는 학생들도 적지 않고 보조장구를 떼면 움직임 자체가 어려운 학생들도 있다. 외국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에게는 너무 안쓰럽게 보인다. 거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긴다. 그러나 그런 ‘값싼 자비’는 금물이다. 아주 위험한 상황이 아니면 장애인들 스스로 해결하도록 놔둔다. 센터 학생 전체가 버스를 타고 시하누크빌 해변으로 야유회를 갈 때였다. 초보 자원봉사자들이 학생들을 도와주려 하자 오 신부가 점잖게 제지했다. “그냥 놔두세요. 자기들끼리 잘합니다. 장애인들끼리 힘을 합쳐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게 하는 것도 중요한 교육이거든요.” --- p.89 캄보디아에서는 이른바 한국 스타일이 안 통한다. 한국 스타일대로 ‘빨리빨리’ 했다가는 큰일 난다. 캄보디아 스타일로 ‘느릿느릿’ 해야 한다. 한국 사람들은 대체로 성질이 급하다.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에서 보고 웃은 적이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소변을 보러 가는 한국 남성들은 소변기 앞에서 지퍼를 내리는 게 아니라 소변기 앞으로 걸어가면서 지퍼를 내린다는 내용이었다. 한국의 국제전화 번호마저 ‘082(빨리)’이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정해졌는지 모르겠지만 우리와 딱 들어맞는다. 최근 한국에서는 느림보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슬로 시티’를 내세우는 지방자치단체도 있다. 그동안 얼마나 빨리 달려왔기에 이런 운동까지 생겨났을까. 이제는 한숨 돌릴 때가 온 것 같다.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나는 캄보디아에 가서야 느림보 생활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 p.100 캄보디아에서 스님들이 탁발하는 현장을 옆에서 보고 있으면, 탁발 수행의 경건함과 엄격함이 자연스럽게 몸에 와닿는다. 오렌지색 가사를 걸친 스님들은 무거운 발우(밥통)를 들고 기러기 떼처럼 무리지어 이 집 저 집 밥을 얻으러 다닌다. 맨발이다. 한 줄로 집 앞에 서서 염불을 하면, 밥과 반찬을 들고 나오는 사람이 있고, 스님들은 그것들을 발우에 넣는다. 음식을 준 사람은 합장을 하고 서 있고, 스님들은 다시 염불을 한다. 감사의 기도다. 스님들은 비가 오는 날에도, 땡볕이 내리쬐는 날에도 탁발을 해야 한다. 힘겨운 고행이다. --- p.154 역사의 물줄기는 언제 어떻게 바뀔 것인가. 말없이 흐르는 톤레삽 강은 알고 있을 것이다! 똑같은 톤레삽 호와 톤레삽 강에서 그들의 선조들은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웠다. 순류든 역류든 자연은 사람이 활용하기 나름이다. 캄보디아는 다시 신발끈을 동여매고 있다. 출발이 늦었지만 아주 늦지는 않았다. 크메르제국의 영화를 되찾는 것은 오직 그들의 몫이다. ‘톤레삽 강의 기적’을 꿈꿔봤다. 독일이 ‘라인 강의 기적’을,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듯이 캄보디아도 ‘톤레삽 강의 기적’을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그 비결 또한 톤레삽 강에 있을 것이다. 역류와 순류를 거듭하는 톤레삽 강. 이렇게 특별한 강과 함께 숨 쉬고 살아온 캄보디아 사람들은 독일 사람들이나 한국 사람들보다 더 창조적일지 모른다. ‘강물이 바다로 흐른다’는 고정관념은 애초에 없을 테니 말이다. -- pp.162~163 과거에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먼저 고독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 고독은 나에게 많은 신비함을 체험하게 만들었다. 벤치에 홀로 앉아 눈을 뜨면 분주하게 돌아가는 세상이 보였지만, 조용히 눈을 감고 묵상을 하면 까마득히 멀어져간 내 어린 시절이 생생하게 재현되었고, 돌아가신 어머님과 아버님을 만날 수 있었으며, 먼발치의 예수님을 볼 수 있었다. 평소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이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을 모두 구경할 수 있었다. 종종 드넓은 우주가 눈앞에 펼쳐지기도 했다. --- p.209 짧았던 정치활동도 그랬다. 내가 정치 입문을 하게 될 줄 하느님 말고 누가 알았을까. 노무현 대통령의 억울한 서거는 나를 정치판으로 끌어들였다. 이때 나는 민주당에 입당하는 길을 택하지 않고 국민참여당 창당이라는 험난한 길을 걸었다. 사람들은 내 선택을 무척 의아해했다. 내가 진보정당을 할 때는 너무 뜻밖의 길이었는지 대부분 물어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나는 스스로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길을 나 홀로 걸어가야만 했다. 내 인생은 늘 내 뜻과는 다르게 풀렸다. --- p.228 상처를 직접 받은 당사자로서 치가 떨리는 복수심을 버린다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세월이 많이 흘렀거나 가해자가 진심으로 뉘우쳤거나 죄에 상응하는 벌이 가해졌을 경우 피해자는 가해자를 용서하기도 한다. 만일 누가 내 물건을 훔쳤을 경우, 물건 주인인 나는 훔친 자를 용서할 수 있다. 용서의 주체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 내 목숨을 빼앗아갔을 경우에는 문제가 달라진다. 용서의 주체인 내가 이 세상에 없는데 가해자를 상대로 어떻게 용서라는 화해성사가 가능하겠는가. 내 목숨의 주인은 하느님이다. 그렇기에 목숨이 걸린 용서는 하느님만이 할 수 있다는 논리가 여기서 나온다. 인간에게 용서라는 행위가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다. -- pp.247~248 “절대적인 사랑……. 사람은 말이다, 그런 사랑이 있어야 살 수 있어. 맞는 말이야. 평등한 사랑만으로는 살 수 없지. 그런 점에서 엄마의 사랑이 최고야. 어떤 조건도 붙지 않은 사랑이잖아. 그래서 엄마의 사랑은 신이 준 선물이라고 하지. 사람은 누구나 자기 부모가 아니라도 따뜻하게 인간적으로 대접해주는 사람을 평생 잊지 못해. 그 아이들에게는 그런 사랑이 필요한데……. 남은 기간 아이들에게 그런 기억을 남겨줄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 --- pp. 276~277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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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홍보수석이 캄보디아에서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한 사연
저자는 경제신문 기자로,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열심히 살았다. 56년생 베이비부머로 언제나 경쟁 속에서 바쁘게 살아왔지만 지치지 않았다. 하지만 쉰여덟,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자, 인생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빠졌다. ‘나는 누구일까’ ‘무엇 때문에 이리도 바쁠까’ ‘내 삶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일까.’ 예순의 나이에 접어드는 이때에 일부러 변곡점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다시 인생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 것이었다. 그동안 살아온 세월이 있기에 한국에서는 각종 요청과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딱 1년만 쉬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생각한 저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지인과의 연락도 끊은 채 떠났다. 하지만 육체가 쉬는 기간은 아니었다. 저자는 장애인 자활공동체에서 땀 흘리며, 예수회 신부들과 함께 묵상하는 시간 속에서 두 번째 인생 항로를 찾았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인생의 두 번째 방황을 …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한 저자에게 캄보디아 인생 피정은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한 건전한 일탈”이었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 날을 맞이한 것처럼” 캄보디아행을 결심했다. 그는 왜 캄보디아를 선택했을까? 한자리했던 사람들은 흔히 미래의 도약을 위해 선진국을 찾는다. 캄보디아는 킬링필드 시기를 지나치긴 했지만, 여전히 혹독하게 가난한 곳이다. 저자는 두 번째 인생을 위해서는 절대고독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직감했다. 사실 캄보디아 봉사단체에서는 아무도 그를 환영하지 않았다. 고령자이고, 고위 공직자였으니 궂은일을 잘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는 ‘청와대에서 일했던 사람’이란 딱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호칭부터 ‘엉클 죠’로 바꾸었다. “개똥이면 어떻고 소똥이면 어떤가.” 뒤늦은 시작을 위해선 몸부터 낮춰야 했다. 나이 많은 아저씨에게 마음의 리셋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 아닌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형제들과 함께 생활하다 저자가 머물렀던 곳은 장애인직업기술학교 ‘반티에이 쁘리업’으로 예수회 신부들이 주도하는 단체다. 1991년에 세워진 이래, 세계 곳곳에서 장애인 재활공동체의 모범으로 삼고 있다. 한국의 ‘꽃동네’ 같은 장애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시설’과는 전혀 다르다. 널리 알려진 대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회 출신이다. 예수회 신부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곁에서 함께 하는, 낮은 삶을 스스로 선택한 종교인들이다. 저자는 반티에이 쁘리업에서 그들과 함께 묵상하고 대화하는 ‘특권’을 누린다. 저자는 봉사 활동을 할수록 배워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기 일을 스스로 처리하는 ‘자활’과 공동체 생활을 통한 ‘함께 사는 지혜’를 터득해 나갔으니까 말이다. 요리도, 나무 심기도, 집짓기도 모두 배움의 시간이었다. 한국에서라면 혼자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는 ‘아저씨’가 참 많이도 배웠다. 다시, 노무현의 정신을 잇는 삶을 살고 싶다 한국에서 떠나올 때, 저자는 ‘노무현의 정신’을 잇는다는 주위의 탄복에 고개를 저었다.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역시 저자의 삶에서 ‘노무현’이 차지하는 공간은 컸다. 캄보디아의 북한 식당에 가면, 남북경협을 위해 애쓴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이 떠오르는 식이다. 먼 곳까지 떠나왔으나, 캄보디아에 와 있는 수사와 수녀들도 노무현에 대해 물어와 그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노무현에 대한 그의 생각은 뜻밖에 한 신부의 말을 듣고 정리되었다. “이 선생님은 살면서 경험을 많이 했겠지요. 성경을 읽을 때 이 선생님이 겪었던 중요한 체험을 대입해서 묵상해보세요. 이것도 기도의 한 방법입니다.” 그때부터 저자는 ‘불타는 떨기’ 이야기 속에서 하느님과 자신,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떠올리는 것처럼, 성경 구절을 읽고 묵상할 때마다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린다. 그리고 캄보디아에서 두 번째 방황을 마친 지금, 장차 신학을 배우고 봉사하며 살아가고자 한다. 이것이 ‘아름다운 패장’ 노무현의 정신을 이어가는 길이라고 믿는다. 인생의 진정한 ‘재미’를 찾았다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는 가난한 캄보디아 서민들, 그들과 동고동락하는 자원봉사자들, 스스로 좁은 봉쇄구역에 가둔 채 기도와 묵상에 전념하는 가톨릭 수도자(수녀)들, 이들의 삶을 관통하는 공통의 키워드는 ‘재미’였다. 재미가 없다면 하루도 버티기 어려운 생활 아닌가. 재미는 사랑이고, 관심이고, 나눔이고, 봉사다. 그리고 이런 활동에서 우러나오는 보람과 즐거움이다. 잠깐 웃고 마는 말초적 오락이나 순간적으로 심신을 흥분시키는 쾌락은 진정한 의미의 재미가 아니다. 관계 속에서 참 가치를 나누고 눈빛만으로도 통하는 마음이 진짜 재미다. 재미야말로 이 시대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다. 100년을 산다 해도 짧은 인생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재미있게 사는 것일까. 돈이나 권력이 인생의 재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돈과 권력이 너무 많아서 재미없게 사는 사람들이 널렸다. 그걸 지키려 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돈 한 푼 없고 권력 한 톨 없지만 재미있게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돈이나 권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 재미있어야 한다. 돈과 권력은 행복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행복은 재미에 달려 있다. 두 번째 방황에서 저자는 말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재미있게 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