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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콘텐츠가 둘러싼 사회 7
1장 일루지오: 50억 명의 경험기계 20 경험기계 이야기 20 / 경험기계의 시초, 텔레비전 26 / 콘텐츠, 경험기계가 되다 29 / 콘텐츠의 자본화: 참여자 수의 폭발 32 / 경험기계와 화장실의 공통점 37 2장 구별짓기: 손가락 스펙터클 43 상향비교 기계 43 / 제1의 콘텐츠와 제2의 콘텐츠 47 / 카타프로네인으로서의 제2의 콘텐츠 50 / 정상성의 강박 57 / 내면을 끄집어내기 61 / 내면으로부터의 과시: 장인 자본주의와 스펙터클의 기원 65 / 과시의 이미지: 대유튜브의 도시 71 / 내면 없는 과시: 연예인의 부동산 74 3장 분류하기: 알고리즘이 만든 군집 78 알고리즘, 개인화를 대량생산하다 78 / 알고리즘, 만남을 대량생산하다 82 / 알고리즘과 통념의 만남 86 / 챗GPT가 게임플레이를 한다면? 92 4장 길들이기: 감언 생산자로서의 비인간 98 가짜 칭찬에도 춤출 수 있다 98 / 감언의 소멸과 감언기계 101 / 인지적 구두쇠와 감성적 낭비꾼 104 / 무감언기계, 알파고의 흔적 106 / 과의존 이후 닥치는 일들 111 5장 접합하기: 콘텐츠는 외로움을 먹고 산다 116 문제는 권태다 116 / 문명화,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 123 / 은둔자의 뿌듯한 하루 124 / 여행하는 은거인 131 / 프로테우스 효과 138 6장 시빌리테: 예의 바른 콘텐츠 141 시빌리테, 가면을 쓰는 능력 141 / 호칭의 상징: 자기통제와 공동체의 유지 143 / 호혜의 콘텐츠: 안전과 신뢰의 생산 148 / 콘텐츠와 호혜적 감수성 151 / 보이지 않지만 넘치는 협력 158 / 게임에서 게임하지 않는 사람들 163 / 매너와 자유로움: 호그벡 마을의 게임 165 / 정직하지 않은 마을: 버튜버의 세계 170 / 가장 설득력 있는 행동은 모방이다 176 / 예의 바른 유저 179 7장 위치감각: 길을 여는 감수성 184 고정관념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184 / 역사적으로 형성된 감수성 190 / 20대 여성과 대도시 195 / 성소가 된 기업 199 / 콘텐츠 프리덤과 동료의 성공 201 / 감수성 읽기와 새로운 지역 모델 207 / 혈연, 학연, 흡연 그리고 세연: 문제는 세계관이다 211 / 게임에서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 불만을 분해하는 감수성 214 / 현존감의 두 얼굴: 중독과 치료 216 / ‘세상에서 가장 긴 거리’의 교육적 효과 221 8장 이동하기: 문화 엘리트의 공간들 225 ‘창조성 민주주의’의 파동 225 / 다중격차의 시작: 2015년 체제 227 / 대도시의 중산층 235 / 5.8km에서 580km까지: ‘강남 궁정’의 탄생 238 / 확산자, 옴니보어 241 / 옴니보어, 과시 계급이 되다 246 9장 무사무욕: 통념을 비트는 ‘케트맨’ 251 부차선 이데올로기의 허점 251 / 열정은 확률을 거부한다 255 / 의도된 일탈정신: 콘텐츠는 어떻게 기회를 만드는가 259 / 동심원 구조 속의 뒷사람 264 / 곳곳의 케트맨들 266 10장 아방가르드: ‘자유로운 정신’의 사회 269 ‘항준적 사고’와 콘텐츠의 발전 269 / 몰입에 자유로운 정신 273 / 글로벌 소통에 민감한 정신 278 / 도시와 지역의 바이브 정신 285 / 콘텐츠, 사회 활력소 289 출처 2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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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비인간과 네트워킹할 때 비인간의 반응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비인간은 피곤해하지도 지겨워하지도 않는다. 또한 상호 관계 상실로부터 받는 상처에 대한 걱정도 없다.
--- p.16 그래서 자율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콘텐츠산업을 낳고 확대하는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발전 단계 중에서 가장 고도화된 단계라고 할 수 있다. --- p.64 유사한 사람들을 모으는 데 콘텐츠만큼 좋은 장치는 없다. 유튜브는 노래와 음식처럼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모으는 장치이고, 게임은 비슷한 놀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으는 장치다. --- p.82 그래서 칭찬카드는 팀 내의 신뢰와 협력 구축에 가장 필요한 장치다. 희생과 공헌을 한 사람에게 칭찬카드로 특별한 고마움을 표시함으로써 협력이 생성되는 것이다. --- p.100 전원을 내리고 바로 방문을 부수어 아이를 방에서 끌어내 거실로 내놓는다. 세인은 뿌듯해하며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아이를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있다. 유일한 피난처에서 강제로 쫓겨나면 약자는 강자의 먹이가 될 뿐이다. --- p.134 호그벡 마을은 잘 조성된 현실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가상의 공간이고, 치매 노인들에게는 거대한 경험기계다. --- p.167 버튜버는 이런 위험사회에서 태동했다. 그들에게 최우선 과제는 안전함을 확보하는 것이다. 버튜버는 익명성을 통해 안전을 보장받는다. 누구도 진짜 얼굴을 알지 못한다. 또한 누구도 그 진짜 얼굴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 p.173 콘텐츠산업의 탈권위주의적 특성은 기존의 관료적 특성과 충돌했고, 관료적 특성에 내재한 남성 지배적 위계 구조는 콘텐츠산업이 확장됨에 따라 그 정당성이 위협받고 있다. --- p.197 케트맨 전략은 어떤 것에 대항하여 형성하는 자아실현이다. 내면적 저항은 때로는 정신 건강에 필수적이다. 자아는 무언가에 대항하며 형성되기 때문이다. 즉 기본적으로 조직에서 일하는 인간은 일차적으로 조직과 동일시하는 행위를 해야 하지만, 동시에 조직에 대한 저항도 행한다. --- p.2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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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가 만들어낸 인간-비인간 네트워크
20세기에 미국의 철학자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은 사람들은 ‘쾌락을 주는 가짜’보다 ‘고통도 있는 진짜’를 추구하기 때문에 ‘경험기계’에 들어가 현실을 잊길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말했다. 그러나 21세기 한국의 대학생들은 그런 가상 세계에 “안 들어갈 이유가 있느냐?”고 되묻는다. 당연하다. 그들은 이미 가상과 실제가 섞여 있는 현실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가상과 실제가 섞여 있는 현실, 즉 일상을 거대한 경험기계로 만든 것이 바로 콘텐츠다. 우리는 매일 OTT와 게임, 유튜브와 SNS를 통해 가상과 현실을 넘나든다. SNS, 유튜브, 게임 같은 콘텐츠를 기반으로 우리는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무수한 만남을 경험한다. 콘텐츠를 매개로 한 새로운 만남은 기존의 만남과는 완전히 다른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인간과 인간의 만남에 직접 개입하는 비인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만남에서 새로운 행동과 관습, 윤리들이 생성되고 있다. 비인간의 개입이 바꾼 콘텐츠 세상 콘텐츠가 제공하는 가상 세계는 굳이 관심을 둘 필요가 없는 이들의 삶을 ‘화려하게 치장해서’ 보여줌으로써 상향비교의 기계가 되고,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불편하지만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것을 원천차단하고, 콘텐츠의 ‘가짜 감언’에 빠져들도록 ‘길들이기’한다. 그래서 혹자는 청년들이 타인을 만나고 세계를 경험할 기회를 스마트폰 때문에 잃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콘텐츠라는 경험기계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버튜버(버추얼 유튜버)는 사생활의 노출이라는 위험을 피해 콘텐츠 생산자에게 안전을 제공한다. 팀 기반 게임을 하면서는 우리 팀의 승리를 위해 ‘지원형 영웅’을 맡는 유저가 되거나, 그 역할을 맡아 희생한 유저를 ‘최고의 플레이어’로 선정함으로써 협력과 호혜적 감수성을 배운다. 알고리즘이 연결해준 취향의 공동체는 온라인을 벗어나 오프라인에서의 관계를 촉진하기도 한다. 실제로 11년 동안이나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온 ‘하나 씨’는 위험한 현실로부터의 도피처를 콘텐츠의 세계에서 찾았을 뿐 아니라 게임을 통해 사람과 관계 맺는 법을 배움으로써 세상으로 나올 용기도 얻었다. 콘텐츠 리터러시가 필요한 까닭 비인간이 끼면서 인간과 인간의 직접적인 만남은 줄어들기도 하고 촉발되기도 한다. 어떤 방향이든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는 더 깊어질 것이다. 콘텐츠가 만드는 ‘인간-비인간 네트워크’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즐거움을 확장한다. 그런 즐거움을 배경으로, 콘텐츠자본의 시대가 열렸다. 또한 콘텐츠자본은 기존의 경제자본과 학력자본과 무관하게 모든 개인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회가 콘텐츠에서 돌파구를 찾는 이들에게 실제로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지, 또한 그렇게 만들어낸 콘텐츠가 오히려 기존의 편견을 강화하고 새로운 과시 공간이 되어 누군가를 소외시키지 않는지에 관해서는 더욱 세심한 관찰과 고민이 따라야 한다. 좋은 것은 나쁜 것의 앞면이다. 즐거움은 스스로의 미래에 그리고 다른 누군가에게 고통으로 바뀔 수도 있고, 편익과 유대의 뒤로는 사익과 배제가 늘 따라붙는다. 비인간과의 공생이 만들어내는 콘텐츠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심화할 수도, 완화할 수도 있다. 게임의 몰입성이 게임 폐인을 양산할 것인지,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 치료제가 될 것인지는 우리의 콘텐츠 리터러시에 달린 것일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