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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이라고 이치던 소설가 _ 사기사와 메구무
쇼토쿠 태가자 점찍은 한국전문 프로듀서 _ 기무라 요이치로 두 발로 한국을 느끼는 하우쿠 시인 _ 마유즈미 마도카 뷰파인더로 한국과 대화하는 사진작가 _ 야마모토 마사후미 어머니의 나라, 한국을 노래하는 뮤지션 _ 사와 도모에 한국문화를 일본에 알리는 전방위 문하기획자 _ 사와 도모에 한국이 인정한 한국문학연구의 거목 _ 사에구사 도시카쓰 '얄미운 한국일 아내'와 사는 저널리스트 _ 히라이 히사시 환갑을 넘어 서울로 유학 온 출판기획자 _ 하기와라 미노루 전후 최초의 유학생, 한국 고소설 박사 _ 오오타니 모리시게 발문 _ 정호승(시인)/한 일본통 특별한 우정으로 한국과 일본의 운명을 풀다 |
曺良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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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사와 메구무 鷺澤めぐむ
여고 3학년이던 1987년, 단편소설 「강변길」로 제64회 〈문학계 신인상〉을 받으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을 비롯한 세 단편이 〈아쿠타가와상芥川賞〉 후보에 올랐으며, 「달리는 소년」으로 제20회 〈이즈미교카泉鏡花 문학상〉을 수상했다. 할머니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더니 1993년, 급기야 서울로 달려와 연세대 한국어학당에 입학했다. 반 년 동안 한국어를 배워 3급 수료증을 받았다. 서울체험을 담은 에세이집 『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과 『그대는 이 나라를 사랑하는가』도 펴냈다. 이양지, 유미리와 함께 일본의 한국계 대표 여성작가였던 그는 2004년 4월 12일 도쿄 자택에서 목을 매어 숨진 채로 발견됐다. 기무라 요이치로 木村洋一郞 고교시절 한국 고교생들과의 친선교류를 위한 일주일간의 한국여행에 참가한 것이 첫 한국체험이었다. 게이오대학慶應大 종합정책학부에 입학해서 제2외국어로 서슴없이 한국어를 고르더니 한국정부의 국비유학생으로 연세대 대학원에서 2년간 공짜로 공부했다. 또한 서울유학중 NHK 서울지국과 한국 EBS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영향이었는지 일본으로 돌아가 NHK 프로듀서 시험에 합격했다. 앞으로 NHK의 한국관련 특집은 본인이 다 책임지겠다며 의욕만만이다. 마유즈미 마도카 黛まどか 1994년 〈가도카와 하이쿠 장려상〉을 받으면서 은행원에서 일본 전통시가인 하이쿠 작가로 변신, 여성 하이쿠 동호인들만의 잡지인 《월간 헵번》을 창간했다. 1999년에는 약 900킬로미터에 달하는 북北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지를 48일 동안 걸어서 답파했다. 이것이 한일 월드컵 축구 공동개최를 앞둔 2001년 8월부터 부산에서 서울까지 영남대로 하이쿠 기행을 감행한 원동력이 되었다. 1999년 일한문화교류회의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NHK 교육방송의 〈안녕하십니까, 한글강좌〉에도 고정출연했다. 야마모토 마사후미 山本將文 1970년대부터 아시아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셔터를 누르다가, 피사체에 무턱대고 카메라만 들이대는 몰인정이 싫어서 연세대 한국어학당에 입학하여 한국말부터 익혔다. 경상남도 합천의 원폭 피해자들, 동토 사할린에 버려진 한국인, 옌벤 조선족, 시베리아 벌목장의 북한주민 등 끊임없이 핍박받는 한국인의 뒤를 추적했다. 사와 도모에 澤知惠 어머니 김영金纓이 대표 지일知日 작가 김소운과 제3공화국 시절 민주화운동의 대모 김한림 사이에서 태어난 큰딸이었다. 도쿄예술대학 2학년 때 앨범 사노 료이치 佐野良一 대학을 중퇴하고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아버지 손에 이끌려 한국 출판사 〈삼중당〉 일본지사에 반강제(?)로 입사했는데, 그게 그만 평생 한국과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대 어학연구소로 유학을 거쳐 《한국일보》 일본지사에서 일했는데, 낮에는 신문사 업무, 밤이면 문화 기획자로 1인2역을 감당했다. 가수 김연자 씨의 일본 컴백 공연, 그리고 연극배우 추송웅 씨의 <빨간 피터의 고백>을 무대에 올려 대성공을 거둔 게 다 이 무렵의 일이다. 1990년 다시 서울로 건너와 이번에는 인간문화재 황혜성 선생 밑에서 한국요리를 배우더니 한창 음식 맛에 취할 즈음 극단 학전의 <지하철 1호선> 일본 공연에 징검다리를 놓는 등 한국문화를 일본에 소개하느라 동분서주했다. 일본잡지의 한국문화 관련 자유기고가이자 서울 안내 책자와 초보 한국어회화 서적을 내기도 했다. 사에구사 도시카쓰 三枝壽勝 교토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이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나 갑자기 '문학'이라는 매개를 통해 이웃나라를 살펴보자는 생각이 들어 인생행로를 180도 틀어버렸다. 늙은 유학생으로 경희대 국문과 학부와 석사과정을 거의 동시에 밟았다. 1981년부터 국립 도쿄외국어대학 교수로 강단에 서서 한국 근현대문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2003년 3월에 퇴임할 때까지 20여 년 동안 일본인은 물론 유학 온 한국인들까지 그의 한국문학 강의를 들었다. 히라이 히사시 平井久志 현재 교도통신共同通信 서울지국장이다. 1983년 본사의 해외 어학연수 프로그램에 지원,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1년 동안 한국어를 마스터했다. 귀국 후에도 서울올림픽, 민주화 투쟁, 6·29선언 등 굵직한 사안이 터질 때마다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더니 순환근무의 관례를 깨뜨리며 세 번에 걸쳐 서울 상주 특파원으로 활동했다. 한국 처녀 임은영 씨를 아내로 맞아 두 딸을 두었다. 하기와라 미노루 萩原實 도쿄대 신문연구소, 일본 최대 광고회사 덴쓰電通를 거쳐 서른두 살에 대형출판사인 〈도쿠마서점間書店〉에 입사했다. 해외담당 국제부장 시기를 전후하여 한국관련 출판에 본격적으로 손을 대게 되었고, 여러 한국인 지인知人들도 생겨났다. 그 무렵부터 제대로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일에 치여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퇴직과 동시에 보따리를 싸 서울로 달려왔다. 자비로 경희대에서 1년 반 동안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코스를 마쳤고, 여전히 한국관련 출판물로 현역 활동중이다. 오오타니 모리시게 大谷森繁 한국 고소설 전문가로, 일본 최초의 한국어학과인 덴리대天理大 조선어학과를 졸업하여 일본인 최초의 한국 유학생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청주대 교환교수를 시작으로 고려대에서 한국문학 공부를 병행하며 한국외국어대학 전임 외국인 강사로 한국학생들을 지도했다.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서는 「조선의 도피사상과 그 문학」 「시조의 해학성에 관하여」 등 수많은 논문을 발표했고, 2003년부터 도쿄한국문화원이 발간하는 월간 《한국문화》에 〈한국 고소설 이야기〉를 연재하며 노익장을 과시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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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한일韓日간 진정한 우정을 말한다
1965년 12월 18일 오전 10시 36분, 한국의 이동원, 일본의 시나 에쓰사부로 외무장관은 한일기본조약과 협정비준서를 교환했다. 1951년 시작된 14년간의 협상이 일단락되고, 서울 시내에 육군 4개 사단이 진주하는 비상계엄령 55일 동안 학생 168명, 민간인 173명, 언론인 7명이 구속되는 1964년의 '6·3사태'가 퇴색되는 순간이었다. 40년이 지난 2005년. 한 달 앞으로 다가온 2005년은 양국 정부가 선언한 '한일 우정의 해'다. 그리고 '해방 60년 을사조약 100년'이다. 대일청구권 8억 달러의 차관으로 일본이 잠정적으로 청산했다고 간주하는 과거사 문제, 이를 필두로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 영유권, 동해 표기, 신사참배 등 양국이 해결해야 할 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일본열도의 한류 열풍으로 인해 양국간 관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한 명의 배우가 '욘사마'로 대변되는 한류는 15만 원대 배용준의 사진집 10만 부가 사전예약됐다는 보도(11월 26일자)를 통해 점점 그 열기를 더해가고 있지만, 대중문화의 속성상 일시적인 유행이라는 평가 등 그 지속성 여부가 아직 불투명하다. 다만 한국과 일본의 젊은 세대들이 양국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정치적인 접근방식으로 인해 언제나 국익에 비추어 실리적인 수준에서 정체됐던 기존의 한일관계가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진정한 의미의 민간교류, '시민사회, 생활세계'의 차원에서 가능해진 것이다. 문화교류를 통해 한일양국에 호의적인 세대가 성장, 성숙하면 한국과 일본의 오늘과 내일을 새롭게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과 일본인 모두 상대국에 진정한 친구 하나가 있다면 '한일 우정의 해'는 그 실질적인 의미와 의의를 획득할 수 있다. 문화를 화두로 한일이 가슴 대 가슴으로 만났다 2005년은 한일국교정상화 40년이다. 역사적인 기념일을 앞두고 이미 일본에선 양국 관련 서적이나 아트마켓 같은 예술 분야, 영화 같은 대중문화 부문에서 다양한 담론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제1회 일본영화제 개최, 도쿄 아트마켓, '한일 연대 21' 발족 등). 그러나 한국에선 과거사 청산 문제와 관련, 논의의 맹아조차 미약한 실정이다. 한국도 거창한 구호들을 떠나 일본인과 얼굴을 맞대고 서로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마음산책에서 펴낸 신간 『열 명의 일본인, 한국에 빠지다』는 각종 언론매체에 비친 일본이 아니라 양국 문화계에서 맹렬하게 활동중인 일본인의 생생한 육성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오늘과 내일을, 나아가 그들이 사랑하는 우리의 모습을 되짚어보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열 명의 일본인, 한국에 빠지다』는 2004년 봄 자살로 생을 마감한 한국계 대표 여성작가 사기사와를 비롯, 한국에 사로잡힌 일본문화인 열 명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NHK PD, 하이쿠 시인, 사진작가, 뮤지션, 문화기획자, 교수, 신문기자, 출판기획자 등 문화계 전반을 아우르듯 주인공의 면면은 다채롭지만 그들은 주저없이 한 목소리로 말한다. "한국을 사랑한다"고. 앞뒤 재는 법도 없는 그들의 진솔한 고백엔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한일관계의 상투적인 설정도 무력해진다. 그동안 일본 정치권의 실언들과 어업협정, 종군위안부 문제 등 역사적 현안과 관련 양국관계를 되짚고 전망하는 서적들은 많았지만, 이 책에선 기존의 정치사회적인 선입견을 넘어 한국과 일본이 36.5도의 가슴과 가슴으로 만나고 있다. 한 일본통이 전하는 애한파愛韓派 일본인 10인 우리에게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인 일본인을 소개하는 조양욱은 현재 일본문화연구소 소장으로 한국외대 일어과 시절부터 일본에 빠져 지낸 일본통이다. 교도통신, 《조선일보》 문화부, 《국민일보》 도쿄특파원, 문화부장을 지낸 그는 대학원까지 일본어를 정식으로 전공한 '진골' 특파원이었다. 오랜 시간 일본의 한가운데서 일본을 지켜본 조양욱이 역시 오랜 시간 가까이에서 지켜본 지인知人들, 일본 문화계의 대표 애한파 열 명을 추려내었다. 열 명의 주인공이 저마다 한 장章으로 구성된 『열 명의 일본인, 한국에 빠지다』는 이들의 상세한 약력을 서두로 한 편 한 편이 독립적인 인생단막극을 연상시킨다. 또한 그들의 목소리를 되도록 가감 없이 싣고 그 출전을 자세히 밝힘으로써, 이제는 우리가 이들 애한파에게 다가가는 통로 역할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