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以文
1625년 산동성 제남부 출생. 명나라 사대부 왕충추(王忠推)의 아들이며, 초명은 봉강(鳳崗)이다. 1636년 도적떼의 약탈을 피해 평안도 앞바다의 가도(?島)로 피신했다. 1637년 병자호란이 끝나고 청군이 가도를 점령했을 때 사로잡혀 심양(瀋陽)으로 압송되었다. 그리고 남한산성에서 끌려와 그곳에 머물던 봉림대군을 만났다. 1645년 봉림대군이 풀려나자 양복길(楊福吉) · 풍삼사(馮三仕) · 왕미승(王美承) · 배삼생(裵三生) · 왕문상(王文祥) · 정선갑(鄭先甲) · 황공(黃功) 등과 함께 조선으로 건너왔다.
봉림대군이 왕위에 오른 뒤 명나라의 회복을 염원하며 북벌 논의
1625년 산동성 제남부 출생. 명나라 사대부 왕충추(王忠推)의 아들이며, 초명은 봉강(鳳崗)이다. 1636년 도적떼의 약탈을 피해 평안도 앞바다의 가도(?島)로 피신했다. 1637년 병자호란이 끝나고 청군이 가도를 점령했을 때 사로잡혀 심양(瀋陽)으로 압송되었다. 그리고 남한산성에서 끌려와 그곳에 머물던 봉림대군을 만났다. 1645년 봉림대군이 풀려나자 양복길(楊福吉) · 풍삼사(馮三仕) · 왕미승(王美承) · 배삼생(裵三生) · 왕문상(王文祥) · 정선갑(鄭先甲) · 황공(黃功) 등과 함께 조선으로 건너왔다.
봉림대군이 왕위에 오른 뒤 명나라의 회복을 염원하며 북벌 논의에 참여하였다. 평생토록 명나라 신하로서 정체성을 간직하며 살다가 1699년 서울 어의동 황조인촌(皇朝人村)에서 세상을 떠났다. 1815년 5대손 왕덕일(王德一)이 그의 생애를 정리하여 이 책 『상생공연보(庠生公年譜)』를 편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