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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들국화
2. 이불
3. 옮긴이의 말

저자 소개 2

저이토 사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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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o Sachio,いとう さちお,伊藤 左千夫

본명은 이토 고지로. 가인이며 소설가이다. 지바 현 출신으로 메이지법률학교(현 메이지대학)에 입학하였으나 안과 질환으로 중퇴하였다. 마사오카 시키의 가론집인 『가인에게 바치는 글』에 감동을 받아 1900년에 시키에게 사사하게 되었다. 마사오카 시키가 세상을 떠난 후에 단가 잡지인 《아시비》와 《아라라기》를 창간하여 아라라기파의 기초를 다졌으며 시마키 아카히코, 사이토 모키치, 고이즈미 지카시 등의 가인을 육성하였다. 시키의 계승자로 근대 단가의 혁신을 이끈 인물로 평가된다. 또한 소설가로서도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1905년에 발표한 순애보 소설 「들국화의 무덤」은 나쓰메 소세키에
본명은 이토 고지로. 가인이며 소설가이다. 지바 현 출신으로 메이지법률학교(현 메이지대학)에 입학하였으나 안과 질환으로 중퇴하였다. 마사오카 시키의 가론집인 『가인에게 바치는 글』에 감동을 받아 1900년에 시키에게 사사하게 되었다. 마사오카 시키가 세상을 떠난 후에 단가 잡지인 《아시비》와 《아라라기》를 창간하여 아라라기파의 기초를 다졌으며 시마키 아카히코, 사이토 모키치, 고이즈미 지카시 등의 가인을 육성하였다. 시키의 계승자로 근대 단가의 혁신을 이끈 인물로 평가된다. 또한 소설가로서도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1905년에 발표한 순애보 소설 「들국화의 무덤」은 나쓰메 소세키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대표작으로는 「이웃집 아내」, 「봄의 조수」 등이 있다.

이토 사치오의 다른 상품

저다야마 가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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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yama Katai,だやま がたい,田山 花袋

도치기현 온라쿠군(邑?郡) 다테바야시초(館林町)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현재의 군마현 다테바야시시이다. 다야마 쇼쥬로와 테츠 부부의 차남으로서 태어났다. 다야마 가타이의 집은, 대대로 아키모토 번의 무사 집안 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1877년 서남전쟁 때에 경시청 순사로서 종군하여 전사했다. 다야마 가타이는 12살부터 한학숙에서 한시문을 배웠고, 14세 때에는 한시집을 엮을 정도록 한학에 뛰어났다. 또 게이엔파의 와카나 서양문학도 가까이했다고 한다. 형을 따라 상경하여, 1890년, 야나기타 구니오를 알게 된다. 다음해에 오자키 고요의 밑으로 입문하여, 그의 지시로 에미 스
도치기현 온라쿠군(邑?郡) 다테바야시초(館林町)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현재의 군마현 다테바야시시이다. 다야마 쇼쥬로와 테츠 부부의 차남으로서 태어났다. 다야마 가타이의 집은, 대대로 아키모토 번의 무사 집안 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1877년 서남전쟁 때에 경시청 순사로서 종군하여 전사했다. 다야마 가타이는 12살부터 한학숙에서 한시문을 배웠고, 14세 때에는 한시집을 엮을 정도록 한학에 뛰어났다. 또 게이엔파의 와카나 서양문학도 가까이했다고 한다.

형을 따라 상경하여, 1890년, 야나기타 구니오를 알게 된다. 다음해에 오자키 고요의 밑으로 입문하여, 그의 지시로 에미 스이인의 지도를 받는다. "참외밭"를 처음으로 발표하고 다음해부터 본명 로쿠야 대신 가타이라고 칭하기 시작했다. 당초는 겐유샤의 영향을 받고 있었지만, 1896년에 구니키다 돗포, 시마자키 도손과 알게 된다. 다음해, 돗포, 구니오들과 "서정시"를 간행하여, 여기에 40편의 시를 실는 등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 한다. 모파상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1902년에 "아카츠키 총서"의 제5편으로서 썼던 "쥬자에몬의 최후"를 발표하여, 이 작품으로 작가로서의 역량을 인정받게 된다. 1899년에 결혼하여, 오하시 오토와의 소개로 하쿠분칸(博文館)에 근무하여, 교정 일을 한다.

1904년, 러일전쟁에서는 제2군 사진반으로서 종군하게된다. 전쟁을 겪은 후 자연주의 문학 분야를 자각하여, 평론 "노골적인 묘사"니 소설 "소녀병"을 발표하여, 새로운 문학의 담당자로서 활약하게 된다. 1906년 하쿠분샤로부터 "문장세계"가 창간되자 편집 주임이 된다. 문장세계는 당초 실용문의 투서 잡지를 목적으로 발행되었지만, 다야마들의 영향을 받게되어 자연주의 문학의 거점이 된다. 1907년에, 중년작가의 여제자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그렸던 "이불"을 발표했다. 여제자와 헤어졌던 남자가, 그녀가 사용하였던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냄새를 맡으며, 슬퍼한다라는 묘사는, 독자, 더 나아가 문단에 충격을 주게 되었다. 이 작품에 의해서, 일본의 자연주의 문학의 방향이 결정되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거기다가 "생(生)", "처(妻)," "연(緣)의 장편 3부작, 장편소설 "시골교사"를 써, 도손과 나란히 시대를 대표하는 자연주의 작가가 되었다. 다이쇼 시대에 들어오고 나서는 자연파의 쇠퇴와 신예 작가의 등장으로 문단의 주류로부터 밀려나게되지만 "일등병의 총살"등의 작품을 정력적으로 발표했다.

만년은 종교적 심경에 이르러, 정신주의적인 작품을 많이 남겼다. 1928년 말에 뇌일혈로 입원했다. 거기다가 후두암에 걸려, 1930년 5월13일, 자택에서 향년 5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도손의 글이 새겨진 묘는 다마영원(多磨園)에 있다. 그는 유언에 따라 토장되었으며 현재 다테바야시시(館林市)에는 다야마 가타이 기념관이 있다.

다야마 가타이의 다른 상품

역자: 오석윤
동국대 일문과 및 동대학원 졸업.
역서로 『태양의 아이』『한국사람 다치하라 세이슈』『일본 대표 단편선』저서로 『요이땅 니혼고』가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0년 07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98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9087052

책 속으로

나는 무슨 일 때문에 전보를 보낸 것인지 궁금했지만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재빨리 식사를 마친 다음에 다시 어머니의 방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허리띠를 동이고 이불 위에 일어나 앉아 있었다. 내가 옆으로 다가앉았지만 아무 말이 없다. 가만히 보니 고개를 숙인 어머니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 왜 그러세요? "
내가 낮은 목소리로 묻자 어머니는 그제야 눈물을 닦으며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 마사오, 미안하다...... 다미코가 죽었다. 내가 죽인 거야. "
" 네? 다미코가 왜요? "
내가 질문을 던지자 어머니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소리내어 흐느꼈다.

P.64~65

출판사 리뷰

<들국화>
15세 소년과 17세 소녀의 첫사랑 이야기. 두 사람이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똑같이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얄궃은 운명에 휩쓸려 여자는 다른 남자를 만나 결혼하지만 결국 죽음에 이른다. 그제서야 그녀와의 관계가 참사랑이었음을 알고 후회하지만 이미 그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후 남자는 결혼을 하고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아픈 추억으로 남아 있는 첫사랑을 회상한다.

<이불>
아내가 있고 아이가 셋이나 딸린 35세 소설가가 자신에게 문학수업을 받는 19세의 아리따운 여제자에게 사랑을 느끼고 현실과의 사이에서 고민한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가 사랑의 감정을 건드리며 몇 번이나 육체 관계를 가질 기회를 갖지만 선을 넘지 못한다. 결국 그녀가 떠나자 남자는 뒤늦게 눈물을 흘리며 애타게 그녀를 그리워한다.

일본 소설가 이토 사치오의 <들국화>와 다야마 가타이의 <이불>의 2편을 묶었다. 두 작품 모두 자전적 요소가 강할 뿐만 아니라 발표 시기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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