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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장 고요한 봄의 빛에 감싸여
바다 _ 다자이 오사무   
봄 _ 다자이 오사무   
아, 가을 _ 다자이 오사무
귤 _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연말의 하루 _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연말 _ 구보타 만타로   
봄은 깊어 _ 구보타 만타로  
설날 _ 구보타 만타로   
생각나는 것들 28 _ 나쓰메 소세키
이상한 소리 _ 나쓰메 소세키   
꿩 _ 나쓰메 소세키   
묵즙일적 _ 마사오카 시키
병상육척 _ 마사오카 시키
앙와만록 _ 마사오카 시키
9월 14일 아침 _ 마사오카 시키
런던의 소세키에게 _ 마사오카 시키  

2장 무엇이 그리워 쓰는 시인가
문조 _ 나쓰메 소세키   
마음 _ 나쓰메 소세키   
가을 풀 _ 나카 간스케   
머리에 꽂은 꽃 _ 쓰무라 노부오  
꽃 이야기 _ 데라다 도라히코   
나의 색비름 _ 마쓰네 도요조   
복숭아가 있는 풍경 _ 오카모토 가노코  
병실에 드리워진 꽃 _ 오카모토 가노코  
꽃집의 창 _ 가타야마 히로코   
가을 안개 _ 미야모토 유리코   
새 모이 _ 미야모토 유리코   
추운 밤 _ 미야모토 유리코   
하늘의 아름다움 _ 미야모토 유리코   
모깃불 _ 미야모토 유리코   
생활 _ 하야시 후미코

3장 붓을 드는 것이 울적하구나
서리 내린 밤 _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가을밤 _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머위 _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추억 _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얼음가게의 깃발 _ 이시카와 다쿠보쿠  
병실에서 _ 이시카와 다쿠보쿠   
망제 _ 나카하라 주야   
풀 베는 냄새 _ 스스키다 규킨  
서재와 별 _ 기타하라 하쿠슈   
아이와의 여행 _ 다야마 가타이  
여름의 하루 _ 도쿠토미 로카   
어느 밤 _ 도쿠토미 로카   
가을, 쓸쓸하다 _ 도쿠토미 로카
눈 _ 도쿠토미 로카

저자 소개 20

가타야마 히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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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roko Katayama,かたやま ひろこ,片山 廣子

도쿄에서 외교관의 딸로 출생했다. 상류계층에서 성장하며 익힌 서양적 기품과 교양을 바탕으로 시인, 수필가, 번역가로 활동했다. 미션스쿨인 도요에이와여학원을 다니며 영어와 서양 문화를 배우고, 졸업 후에는 시인이자 국문학자인 사사키 노부쓰나에게 사사했다. 시가집으로 『물총새』 『들에 살며』가 있다. 마쓰무라 미네코라는 필명으로 싱, 예이츠 등의 아일랜드 문학을 번역하여 일본에 아일랜드 문학을 소개하는 선구자적 역할을 하며 쓰보우치 쇼요, 모리 오가이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노년에 집필한 수필집 『등화절』은 제3회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수상했다. 가타야마 히로코는 당대의 뛰어난
도쿄에서 외교관의 딸로 출생했다. 상류계층에서 성장하며 익힌 서양적 기품과 교양을 바탕으로 시인, 수필가, 번역가로 활동했다. 미션스쿨인 도요에이와여학원을 다니며 영어와 서양 문화를 배우고, 졸업 후에는 시인이자 국문학자인 사사키 노부쓰나에게 사사했다. 시가집으로 『물총새』 『들에 살며』가 있다. 마쓰무라 미네코라는 필명으로 싱, 예이츠 등의 아일랜드 문학을 번역하여 일본에 아일랜드 문학을 소개하는 선구자적 역할을 하며 쓰보우치 쇼요, 모리 오가이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노년에 집필한 수필집 『등화절』은 제3회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수상했다. 가타야마 히로코는 당대의 뛰어난 문인들과 문학적으로 정서적으로 깊게 교류했으며, 호리 다쓰오의 소설 『성가족』의 모델이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흠모했던 여인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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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타 만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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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taro Kubota,くぼた まんたろう,久保田 万太郞

시인, 소설가, 극작가. 도쿄 출생으로 에도 시대의 옛 정취, 도쿄 서민들의 정서와 생활을 사실적으로 그린 하이쿠를 많이 남겼다. 문인 하이쿠의 대표 작가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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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하라 하쿠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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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마』, 『작가의 계절』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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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 간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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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하고 신경과민과 두통에 시달렸던 간스케는 유년의 대부분을 집에서 보냈다. 도쿄 제국대학 영문과 재학 시절 나쓰메 소세키의 강의를 들었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소세키의 집에 자주 방문했다. 다만 자신의 성격상 소세키와 원하는 만큼 가까워지지 못했으며 오히려 무척 서먹서먹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간스케는 소세키의 문하생 중에서도 그리 눈에 띄지 않았으며 문단의 인물들과도 밀접하게 교류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창작 태도와 작품을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해준 사람은 소세키였다는 말처럼 그의 첫 작품인 《은수저》(1921)는 소세키의
1885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하고 신경과민과 두통에 시달렸던 간스케는 유년의 대부분을 집에서 보냈다. 도쿄 제국대학 영문과 재학 시절 나쓰메 소세키의 강의를 들었고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소세키의 집에 자주 방문했다. 다만 자신의 성격상 소세키와 원하는 만큼 가까워지지 못했으며 오히려 무척 서먹서먹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간스케는 소세키의 문하생 중에서도 그리 눈에 띄지 않았으며 문단의 인물들과도 밀접하게 교류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창작 태도와 작품을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해준 사람은 소세키였다는 말처럼 그의 첫 작품인 《은수저》(1921)는 소세키의 추천으로 《아사히 신문》에서 연재되었다. 《은수저》는 몸이 약한 주인공을 달래고 먹이는 이모와의 관계를 통해 누군가를 어릴 때부터 보살펴온 사람이 쏟을 수 있는 사랑의 풍미가 얼마나 깊은지 알려주는 자전적인 작품이자 일본 문학 사상 가장 아름다운 소설로 꼽힌다. 그 밖의 주요 작품으로는 《개》(1922), 《새 이야기》(1949) 등이 있다. 시에 대한 열망을 늘 품고 있던 간스케는 30대 중반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어머니의 죽음》(1934) 등 여러 시집도 남겼다. 1965년에 아사히상을 받았고, 도쿄에서 뇌출혈로 사망했다

나카하라 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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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야마구치현에서 태어났다. 13세에 [보초신문]에 기고한 단카가 입선하며 본격적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학교 중퇴와 자퇴를 반복하며 문학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고바야시 히데오, 오오카 쇼헤이, 다자이 오사무 등의 문인들과 인연을 맺고 다다이즘, 상징주의, 생철학 등이 융합된 자신만의 독보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한다. 니혼대학 자퇴 후 프랑스어학원 아테네 프랑세에서 프랑스어를 배웠고 베를렌, 랭보의 시를 번역했으며 다수의 동인과 기고 활동 중에 시집 『염소의 노래』를 발표하고 상업적 실패를 겪지만 이후 문단의 재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장남 후미야가 소아결핵으로 사망하자
1907년 야마구치현에서 태어났다. 13세에 [보초신문]에 기고한 단카가 입선하며 본격적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학교 중퇴와 자퇴를 반복하며 문학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고바야시 히데오, 오오카 쇼헤이, 다자이 오사무 등의 문인들과 인연을 맺고 다다이즘, 상징주의, 생철학 등이 융합된 자신만의 독보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한다. 니혼대학 자퇴 후 프랑스어학원 아테네 프랑세에서 프랑스어를 배웠고 베를렌, 랭보의 시를 번역했으며 다수의 동인과 기고 활동 중에 시집 『염소의 노래』를 발표하고 상업적 실패를 겪지만 이후 문단의 재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장남 후미야가 소아결핵으로 사망하자 그 충격으로 환청과 신경쇠약에 시달리다 1937년에 30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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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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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sume Soseki,なつめ そうせき,夏目 漱石,나츠메 긴노스케 夏目 金之助

나쓰메 긴노스케는 원치 않은 아이로 태어났다. 갓난아기 적에 시오바라 가문으로 입양되었다가 양부모의 이혼으로 다시 나쓰메 집안으로 돌아왔다. 부모한테서 인정받지 못한 불안한 환경 속에서도 면학에 전념하여 동경제국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친구에게서 ‘돌로 이를 닦는다’는 뜻의 소세키라는 호를 물려받았다. 그는 거의 평생 어디 한곳에 정착하지 못했다. 이곳저곳에서 영어교사 생활을 전전하다가 일본 정부의 명령으로 영국 국비유학을 떠났지만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채 신경쇠약에 시달리면서 자기의 본령을 찾느라 유학생활도 실패했다. 소세키는 뒤늦게 하늘이 내린 자기 재능과 자신이 가야 할
나쓰메 긴노스케는 원치 않은 아이로 태어났다. 갓난아기 적에 시오바라 가문으로 입양되었다가 양부모의 이혼으로 다시 나쓰메 집안으로 돌아왔다. 부모한테서 인정받지 못한 불안한 환경 속에서도 면학에 전념하여 동경제국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친구에게서 ‘돌로 이를 닦는다’는 뜻의 소세키라는 호를 물려받았다. 그는 거의 평생 어디 한곳에 정착하지 못했다. 이곳저곳에서 영어교사 생활을 전전하다가 일본 정부의 명령으로 영국 국비유학을 떠났지만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채 신경쇠약에 시달리면서 자기의 본령을 찾느라 유학생활도 실패했다. 소세키는 뒤늦게 하늘이 내린 자기 재능과 자신이 가야 할 인생을 깨달았다. 도쿄로 돌아온 후 서른일곱 살이 돼서야 기분 전환 삼아 소설 한번 써보지 않겠냐는 친구의 권유로 단편을 하나 쓴 것이 소세키의 인생을 바꾸었다. 그것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였다. 그는 내면에 가득했던 세계를 한꺼번에 폭발시켰다. 『도련님』, 『풀배게』, 『우미인초』, 『산시로』, 『그 후』, 『문』, 『마음』, 『열흘 밤의 꿈』, 『봄날의 소나티네』, 『현대 일본의 개화』, 『나의 개인주의』 등 소설, 하이쿠, 수필, 평론, 한시, 강연, 여러 장르에 걸쳐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일본인이 사랑하는 국민작가 중 한 사람이 되었지만 정작 본인은 국가와 권력을 멀리하였다. 문부성이 박사학위를 선사하자 그것을 거부하였다.

“박사가 아니면 학자가 아닌 것 같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한다면 학문은 소수 박사들의 전유물이 되어 학자적인 귀족이 학문권력을 장악하는 폐해가 속출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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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야마 가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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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yama Katai,だやま がたい,田山 花袋

도치기현 온라쿠군(邑?郡) 다테바야시초(館林町)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현재의 군마현 다테바야시시이다. 다야마 쇼쥬로와 테츠 부부의 차남으로서 태어났다. 다야마 가타이의 집은, 대대로 아키모토 번의 무사 집안 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1877년 서남전쟁 때에 경시청 순사로서 종군하여 전사했다. 다야마 가타이는 12살부터 한학숙에서 한시문을 배웠고, 14세 때에는 한시집을 엮을 정도록 한학에 뛰어났다. 또 게이엔파의 와카나 서양문학도 가까이했다고 한다. 형을 따라 상경하여, 1890년, 야나기타 구니오를 알게 된다. 다음해에 오자키 고요의 밑으로 입문하여, 그의 지시로 에미 스
도치기현 온라쿠군(邑?郡) 다테바야시초(館林町)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현재의 군마현 다테바야시시이다. 다야마 쇼쥬로와 테츠 부부의 차남으로서 태어났다. 다야마 가타이의 집은, 대대로 아키모토 번의 무사 집안 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1877년 서남전쟁 때에 경시청 순사로서 종군하여 전사했다. 다야마 가타이는 12살부터 한학숙에서 한시문을 배웠고, 14세 때에는 한시집을 엮을 정도록 한학에 뛰어났다. 또 게이엔파의 와카나 서양문학도 가까이했다고 한다.

형을 따라 상경하여, 1890년, 야나기타 구니오를 알게 된다. 다음해에 오자키 고요의 밑으로 입문하여, 그의 지시로 에미 스이인의 지도를 받는다. "참외밭"를 처음으로 발표하고 다음해부터 본명 로쿠야 대신 가타이라고 칭하기 시작했다. 당초는 겐유샤의 영향을 받고 있었지만, 1896년에 구니키다 돗포, 시마자키 도손과 알게 된다. 다음해, 돗포, 구니오들과 "서정시"를 간행하여, 여기에 40편의 시를 실는 등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 한다. 모파상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1902년에 "아카츠키 총서"의 제5편으로서 썼던 "쥬자에몬의 최후"를 발표하여, 이 작품으로 작가로서의 역량을 인정받게 된다. 1899년에 결혼하여, 오하시 오토와의 소개로 하쿠분칸(博文館)에 근무하여, 교정 일을 한다.

1904년, 러일전쟁에서는 제2군 사진반으로서 종군하게된다. 전쟁을 겪은 후 자연주의 문학 분야를 자각하여, 평론 "노골적인 묘사"니 소설 "소녀병"을 발표하여, 새로운 문학의 담당자로서 활약하게 된다. 1906년 하쿠분샤로부터 "문장세계"가 창간되자 편집 주임이 된다. 문장세계는 당초 실용문의 투서 잡지를 목적으로 발행되었지만, 다야마들의 영향을 받게되어 자연주의 문학의 거점이 된다. 1907년에, 중년작가의 여제자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그렸던 "이불"을 발표했다. 여제자와 헤어졌던 남자가, 그녀가 사용하였던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냄새를 맡으며, 슬퍼한다라는 묘사는, 독자, 더 나아가 문단에 충격을 주게 되었다. 이 작품에 의해서, 일본의 자연주의 문학의 방향이 결정되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거기다가 "생(生)", "처(妻)," "연(緣)의 장편 3부작, 장편소설 "시골교사"를 써, 도손과 나란히 시대를 대표하는 자연주의 작가가 되었다. 다이쇼 시대에 들어오고 나서는 자연파의 쇠퇴와 신예 작가의 등장으로 문단의 주류로부터 밀려나게되지만 "일등병의 총살"등의 작품을 정력적으로 발표했다.

만년은 종교적 심경에 이르러, 정신주의적인 작품을 많이 남겼다. 1928년 말에 뇌일혈로 입원했다. 거기다가 후두암에 걸려, 1930년 5월13일, 자택에서 향년 5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도손의 글이 새겨진 묘는 다마영원(多磨園)에 있다. 그는 유언에 따라 토장되었으며 현재 다테바야시시(館林市)에는 다야마 가타이 기념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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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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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zai Osamu,だざい おさむ,太宰 治,츠시마 슈지津島修治

1909년 6월 19일, 일본 아오모리 현 쓰가루 군 카나기무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가진 자로서의 죄책감을 느꼈고,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성장한다. 1930년, 프랑스 문학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도쿄제국대학 불문과에 입학하지만, 중퇴하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소설가 이부세 마스지[井伏_二]의 문하생으로 들어간 그는 본명 대신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35년 소설 「역행(逆行)」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1909년 6월 19일, 일본 아오모리 현 쓰가루 군 카나기무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가진 자로서의 죄책감을 느꼈고,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성장한다.

1930년, 프랑스 문학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도쿄제국대학 불문과에 입학하지만, 중퇴하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소설가 이부세 마스지[井伏_二]의 문하생으로 들어간 그는 본명 대신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35년 소설 「역행(逆行)」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35년 제1회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단편 「역행」이 올랐지만 차석에 그쳤고, 1936년에는 첫 단편집 『만년(晩年)』을 발표한다. 복막염 치료에 사용된 진통제 주사로 인해 약물 중독에 빠지는 등 어려운 시기를 겪지만, 소설 집필에 전념한다. 1939년에 스승 이부세 마스지의 중매로 이시하라 미치코와 결혼한 후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많은 작품을 썼다.

1947년에는 전쟁에서 패한 일본 사회의 혼란한 현실을 반영한 작품인 「사양(斜陽)」을 발표한다. 전후 「사양」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인기 작가가 된다. 그의 작가적 위상은 1948년에 발표된, 작가 개인의 체험을 반영한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을 통해 더욱 견고해진다. 수차례 자살 기도를 거듭했던 대표작은 『만년(晩年)』, 『사양(斜陽)』, 「달려라 메로스」, 『쓰기루(津?)』, 「여학생」, 「비용의 아내」, 등. 그는 1948년 6월 13일, 폐 질환이 악화되자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人間失格)』을 남기고 카페 여급과 함께 저수지에 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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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토미 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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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카라는 필명은 헤이안 시대의 여성 작가 세이쇼나곤(?少納言)의 『베갯머리 서책(枕草子, 마쿠라노소시)』의 “갈꽃은 볼품이 없다”에서 연유한다. 형 소호의 지도를 받으며 성장했다. 소호·로카 형제는 일찍 서구 기독교 휴머니즘 정신을 받아들였다. 오랜 기간 닦은 영어 실력을 기반으로 외국 문학을 가까이 접할 수 있었다.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문인은 톨스토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추구한 작가로서 일본의 경승지를 찾아 거주하곤 했다. 기행 소품 『자연과 인생』(1900)은 가나가와현의 자연 관찰과 사색의 산물이다. ‘자연 3부작’이라 불리기도 하는 초기 작품에는 인간이 대자연의 일부
로카라는 필명은 헤이안 시대의 여성 작가 세이쇼나곤(?少納言)의 『베갯머리 서책(枕草子, 마쿠라노소시)』의 “갈꽃은 볼품이 없다”에서 연유한다. 형 소호의 지도를 받으며 성장했다. 소호·로카 형제는 일찍 서구 기독교 휴머니즘 정신을 받아들였다. 오랜 기간 닦은 영어 실력을 기반으로 외국 문학을 가까이 접할 수 있었다.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문인은 톨스토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추구한 작가로서 일본의 경승지를 찾아 거주하곤 했다. 기행 소품 『자연과 인생』(1900)은 가나가와현의 자연 관찰과 사색의 산물이다. ‘자연 3부작’이라 불리기도 하는 초기 작품에는 인간이 대자연의 일부에 불과하며 대자연은 조물주의 화신이라는 인식이 잘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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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라다 도라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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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ahiko Terada,てらだ とらひこ,寺田 寅彦

1878년 도쿄에서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의 아낌없는 지원 아래 어렸을 적부터 과학적 탐구 정신을 키워 나간다. 고등학교 시절에 당시 영어 교수로 있던 나쓰메 소세키를 만나 하이쿠에 흥미를 가지게 됐으며, 물리학 교수 다마루 다쿠로의 가르침을 받고 물리학에 뜻을 둔다. 도쿄 제국 대학 물리학과에 진학하면서 상경한 이후엔 가인(歌人) 마사오카 시키, 다카하마 교시 등과 교류하며 문학적으로 현저한 영향을 받는다. 이때부터 문예지 [호토토기스]에 수필 및 사생문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문필 활동을 시작한다. 학부를 졸업하고 조교수를 거친 후 우주 물리학 연구를 위해 국비
1878년 도쿄에서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의 아낌없는 지원 아래 어렸을 적부터 과학적 탐구 정신을 키워 나간다. 고등학교 시절에 당시 영어 교수로 있던 나쓰메 소세키를 만나 하이쿠에 흥미를 가지게 됐으며, 물리학 교수 다마루 다쿠로의 가르침을 받고 물리학에 뜻을 둔다. 도쿄 제국 대학 물리학과에 진학하면서 상경한 이후엔 가인(歌人) 마사오카 시키, 다카하마 교시 등과 교류하며 문학적으로 현저한 영향을 받는다. 이때부터 문예지 [호토토기스]에 수필 및 사생문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문필 활동을 시작한다. 학부를 졸업하고 조교수를 거친 후 우주 물리학 연구를 위해 국비 유학생 자격으로 베를린 대학교에 입학한다. 유럽과 미국을 여행하고 귀국한 다음엔 이학부 교수로 취임한다. 「라우에의 회절 무늬 실험 방법 및 그 설명에 관한 연구」(1917)로 제국 학사원 은사상을 수상하고, 정부 및 군대로부터 각종 조사 활동과 연구를 위촉받는다. 과학 저술로는 『바다의 물리학』(1913), 『지구 물리학』(1915, 1933)이 있으며, 『후유히코슈』(1923), 『만화경』(1929), 『가키노타네』(1933) 등 수필집도 펴냈다. 1935년 전이성 골종양 으로 세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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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오카 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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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ku Masaoka,まさおか しき,正岡 子規

하이쿠시인, 수필가. 근대 하이쿠 예술을 집대성한 인물. 시키 혹은 호토토기스라 불리는 두견새는 목에서 피를 토하도록 운다는 중국설화 때문에 폐결핵을 상징하는 새가 됐다. 대학시절 폐결핵이 발병한 이래 줄곧 병상을 멀리 떠나지 못했던 그는 필명을 시키라 짓고 하이쿠 연구와 창작에 몰두했다. 그가 만든 하이쿠 잡지 『호토토기스』는 하이쿠시인을 위한 창작의 장이 됐고 시키와 평생의 벗이었던 소세키의 작품이 처음 발표되기도 했다. 수필집 「병상육척」은 고통스런 일상을 위트 있고 아름다운 문체로 써낸 산문으로 이름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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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네 도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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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모토 유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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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iko Miyamoto,みやもと ゆりこ,宮本 百合子

1899년 도쿄 출생. 1916년 3월 오차노미즈 고증학교를 졸업하고, 4월 일본여자대학 영문과 예과에 입학하였으나, 데뷔작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를 『중앙공론』9월호에 발표하고 학교를 자퇴해 작가 생활에 들어갔다. 1918년 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그곳에서 아라키 시게루를 만나 이듬해 결혼하였다. 1930년 일본 프롤레타리아 작가 동맹에 가입하였으며, 이듬해 11월에는 일본 공산당에 가입하였다. 작품활동으로 인해 여러 차례 검거와 석방을 되풀이 하였으며, 1938년 1월 부터 이듬해 봄까지 집필 금지를 당하여 정신적,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았다. 태평양 전쟁 발발
1899년 도쿄 출생. 1916년 3월 오차노미즈 고증학교를 졸업하고, 4월 일본여자대학 영문과 예과에 입학하였으나, 데뷔작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를 『중앙공론』9월호에 발표하고 학교를 자퇴해 작가 생활에 들어갔다. 1918년 아버지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그곳에서 아라키 시게루를 만나 이듬해 결혼하였다. 1930년 일본 프롤레타리아 작가 동맹에 가입하였으며, 이듬해 11월에는 일본 공산당에 가입하였다. 작품활동으로 인해 여러 차례 검거와 석방을 되풀이 하였으며, 1938년 1월 부터 이듬해 봄까지 집필 금지를 당하여 정신적,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았다. 태평양 전쟁 발발 직후 검거되어 시력과 언어장애 등을 얻었지만, 작품활동을 계속 하였으며, 1951년 1월 21일 급성 뇌수막염균 패혈증으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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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키다 규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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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현 출생. 초기에는 시인으로 활동하면서,『봄이 간다』『백양궁』등의 작품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 후 오사카마이니치신문사에 입사하여 1915년부터 마이니치신문에 수필「차 이야기」연재를 시작. 이 수필은 매체를 바꿔 가면서 1930년까지 총 811회 발표했다. 또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와 기쿠치 칸 등 차기 문학자들에게 발표 기회를 부여하며, 신인 발굴이라는 측면에서도 일본 문학계에 큰 공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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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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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uunosuke Akutagawa,あくたがわ りゅうのすけ,芥川 龍之介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1892년 도쿄의 서민 지역인 시타마치에서 태어났다. 외가에 양자로 들어가 두 이모가 그를 양육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도쿄제일고등학교를 거쳐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해 차석으로 졸업했다. 기쿠치 칸, 구메 마사오 등과 재학생 시절 동인지 『신사조』를 발간해 『라쇼몬』 『코』 등의 단편을 발표했는데 나츠메 소세키로부터 단편 『코』가 절찬을 받으며 일약 다이쇼 시대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전공인 영문학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러시아문학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아 간결하면서도 평이하고 명쾌한 필치가 특징이지만 한문에도 조예가 깊었다. 왕조물’, ‘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1892년 도쿄의 서민 지역인 시타마치에서 태어났다. 외가에 양자로 들어가 두 이모가 그를 양육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도쿄제일고등학교를 거쳐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해 차석으로 졸업했다. 기쿠치 칸, 구메 마사오 등과 재학생 시절 동인지 『신사조』를 발간해 『라쇼몬』 『코』 등의 단편을 발표했는데 나츠메 소세키로부터 단편 『코』가 절찬을 받으며 일약 다이쇼 시대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전공인 영문학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러시아문학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아 간결하면서도 평이하고 명쾌한 필치가 특징이지만 한문에도 조예가 깊었다. 왕조물’, ‘기독교물’, ‘에도물’, ‘개화기물’, ‘현대물’ 등의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나생문(羅生門)』, 『마죽(芋粥)』 등 150편 정도의 단편 소설을 남겼다.

초기에는 일본 고대 설화 문학에서 소재를 취해 보편적이면서 현대적인 인간 에고이즘의 내면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썼고, 이후 예술지상주의적인 경향의 작품들, 에도 시대 그리스도교 박해를 다룬 기리시탄 작품들, 일본의 근대화를 주제로 한 작품들 등을 쓰다가 말년에는 자살을 염두에 둔 듯 자신의 삶을 무자비하게 조롱하고 야유하는 자전적인 작품들이 많다. 1927년 7월 24일 새벽, 비가 세차게 내리는 가운데 다바타의 자택에서 치사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자살했다. 그가 밝힌 자살의 이유는 ‘장래에 대한 그저 막연한 불안’이었다. 아쿠타가와의 자살은 관동대지진과 더불어 일본 근대사에서 다이쇼라는 한 시대의 종언으로 느껴질 정도로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던졌다. 1935년 아쿠타가와의 친구였던 문예춘추의 사주 기쿠치 칸이 아쿠타가와상을 제정했고 현재까지도 이 상은 일본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으로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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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모토 가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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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oko Okamoto,おかもと かのこ,岡本 かの子

도쿄에서 태어났으며 아토미 여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 『문예세계』, 『요미우리신문』 등에 단가, 시를 투고했다. 작은 오빠, 그리고 친구인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영향을 받았다. 졸업 후에는 『명성』과 『스바루』 등에 단가를 발표했다. 1910년에 우에노 미술학교의 학생이었던 오카모토 잇페이와 결혼하나 서로의 강한 개성이 격돌했고, 가족의 불행도 있었기에 결혼생활은 파탄을 맞이했다. 그 결혼생활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 부부가 종교편력을 시작했고 결국에는 대승불교에 다다르게 되었다. 1936년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모델로 한 작품으로 문단에 등장. 그 후, 「모자서정」, 「가령」,
도쿄에서 태어났으며 아토미 여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 『문예세계』, 『요미우리신문』 등에 단가, 시를 투고했다. 작은 오빠, 그리고 친구인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영향을 받았다. 졸업 후에는 『명성』과 『스바루』 등에 단가를 발표했다. 1910년에 우에노 미술학교의 학생이었던 오카모토 잇페이와 결혼하나 서로의 강한 개성이 격돌했고, 가족의 불행도 있었기에 결혼생활은 파탄을 맞이했다. 그 결혼생활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 부부가 종교편력을 시작했고 결국에는 대승불교에 다다르게 되었다. 1936년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모델로 한 작품으로 문단에 등장. 그 후, 「모자서정」, 「가령」, 「노기초」 등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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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카와 다쿠보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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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uboku Ishikawa,いしかわ たくぼく,石川 啄木,본명 : 石川 一

1886년 이와테 현에서 태어났다. 모리오카 보통중학교를 중퇴한 후 문학지 『묘조』의 동인으로 활동하며 시부타미 보통소학교·야요이 보통소학교 대리교사와 『하코다테 일일신문』 ·『호쿠몬신보』 ·『오타루일보』 ·『구시로 신문』 기자 등 여러 직장을 전전했다. 이후 『아사히 신문』 교정계에 취직하여 후타바테이 시메이 전집을 교정하고 아사히가단의 선자選者로 일했으나 1912년에 폐결핵으로 요절했다. 저서로는 가집 『한 줌의 모래』, 『슬픈 장난감』, 시집 『동경』, 소설 『구름은 천재로소이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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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시 후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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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miko Hayashi,はやし ふみこ,林 芙美子

1903~1951.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 후쿠오카 현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부터 가난한 부모를 따라 여러 지방을 떠돌아다녔다. 여학교 졸업 후 도쿄에 올라와 잡일꾼, 사무원, 여공, 카페 여급 등 갖가지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작가를 꿈꾸며 고단한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1930년 자신의 가난한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방랑기』를 출판해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했다. 대공황의 와중에도 60만 부나 팔린 『방랑기』를 비롯한 그녀의 작품은 당시 도시 생활자의 밑바닥 삶, 특히 여성의 자립과 가족, 사회 문제를 생생하게 그려내 대중에게 사랑받았고 사후에도 다
1903~1951.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 후쿠오카 현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부터 가난한 부모를 따라 여러 지방을 떠돌아다녔다. 여학교 졸업 후 도쿄에 올라와 잡일꾼, 사무원, 여공, 카페 여급 등 갖가지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작가를 꿈꾸며 고단한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1930년 자신의 가난한 삶이 그대로 녹아 있는 『방랑기』를 출판해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했다. 대공황의 와중에도 60만 부나 팔린 『방랑기』를 비롯한 그녀의 작품은 당시 도시 생활자의 밑바닥 삶, 특히 여성의 자립과 가족, 사회 문제를 생생하게 그려내 대중에게 사랑받았고 사후에도 다수의 작품이 영화, 연극, 드라마로 제작됐다. 1948년 제3회 여류문학자상을 수상했다. 대표작으로는 『청빈의 서』, 『만국』, 『뜬구름』, 『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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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무라 노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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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외국어대학교 대학원에서 일본어학을 전공하고 통번역사로 일했다. 전문 번역가로 좋은 일본 문학을 찾아 소개하고 있다. 번역서로 《풀꽃》, 《책은 시작이다》, 《봄은 깊어》, 《심호흡의 필요》, 《세상은 아름답다고》, 《나쓰메 소세키 - 인생의 이야기》, 《다자이 오사무 - 내 마음의 문장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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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2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312쪽 | 388g | 125*188*18mm
ISBN13
9791191783018

책 속으로

이제 서른일곱 살이 됩니다. 얼마 전에 어느 선배가, 자네, 용케 그럭저럭 살아왔군, 하고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나 자신도 서른일곱까지 살아왔다는 것이 거짓말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 다자이 오사무 「봄」 중에서

그는 이 글을 쓰고 나서 얼마 후 〈점귀부〉, 〈겐카쿠 산방〉에 이어 〈갓파〉를 쓴 것이다. 그리고 그 후, 그는 죽었다. ……
어쩌면 그때, …… 이미 그때 그는 죽음을 의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싸우기라도 하듯 힘껏 수레를 미는” 그의 모습은 너무도 비참하다. 흐린 하늘 아래, 휘몰아치는 바람 속에서 어떻게 하면 자신을 단단히 붙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까? …… 울려고 해도 이제는 눈물이 다 말라 버린 해협의 공허한 눈을 들고, 그저 멀리 앞길을 지켜보는 그의 뺨의 납과 같은 차가움이여…….
--- 구보타 만타로 「연말」 중에서

그래도 희망의 축소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앉는 것은 고사하고 한 시간만이라도 고통 없이 편안히 누워 있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 하는 것이 어제오늘의 내 희망이다. 작은 바람일까?
이제 내 희망은 더는 작아질 수 없을 만큼 작아졌다. 이 다음 차례는 희망이 영 (零) 이 되는 시기다. 희망이 영이 될 때, 석가는 이를 열반이라 하고, 예수는 이를 구원이라 하겠지.
--- 마사오카 시키 「묵즙일적」 중에서

나는 지금까지 소위 선종 (禪宗) 의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을 오해하고 있었다. 깨달음이란 어떠한 경우에도 아무렇지 않게 죽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깨달음이란 어떠한 경우에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 있는 것이었다.
--- 마사오카 시키 「병상육척」 중에서

뭘 입고 있었는지, 어떤 머리 모양을 하고 있었는지는 거의 알 수 없었다. 눈에 비친 것은 단지 그 얼굴이다. 그 얼굴은 눈도, 입도, 코도, 하나하나 따로 서술하기가 어렵다. 아니, 눈과 입과 코와 눈썹과 이마
가 함께 하나가 되어, 오로지 나 한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얼굴이다. 백 년 전부터 이곳에 서서, 눈도 코도 입도 한결같이 나를 기다려 온 얼굴이다. 백 년이 지나도 나를 따라 어디까지나 갈 얼굴이다. 말없이 말을 하는 얼굴이다.
--- 나쓰메 소세키 「마음」 중에서

봄 안개는 사람의 마음을 칭칭 감아서 사바세계의 한복판으로 데려간다. 가을 안개는 금욕적이고 은둔적인 기분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아직은 가을 안개 쪽을 좋아한다.
가끔은 차분한 머리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 미야모토 유리코 「가을 안개」 중에서

가끔씩 먼지 털듯이 하나하나 집어내는 비평을 받을 때가 있다. 괴롭기도 하고 그런 것에 남보다 곱절은 더 영향을 받는 탓인지, 완전히 넋이 나가 버려 썩은 물고기처럼 이삼일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버린다. 내 작품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나 자신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한동안 갈 곳을 잃어버리지만, 다시 책상 앞에 앉아서 한 자 한 자 쓰기 시작한다. 나에게 종교라는 게 있다면, 그저 한 자 한 자 쓴다, 라는 것이다.
--- 하야시 후미코 「생활」 중에서

‘생명’이라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변덕스럽고 헛된 표현을 가진다고 해도, 거기에는 아름다움이 있고,
힘이 있고, 반짝임이 있다. 온갖 사물 중에서 풀로 태어난 생명만큼 겸손하고 소박하고 정직하고 또한 참을성이 강한 것은 많지 않다. 풀은 나에게 그야말로 ‘말’이다. 잠깐이라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신기한 존재이다. 발굽이 없기에 늘 한자리에 서 있는 작은 짐승이다. 목청이 없기에 늘 침묵하고 있는 작은 새이다.
--- 스스키다 규킨 「풀 베는 냄새」 중에서

“도쿄에는 별님이 없어.”
그렇게 우리 집 아이는 자주 말한다.
“아아, 난 서재가 없구나.”
이것은 아이의 아버지인 내가 하는 탄식이다.
--- 기타하라 하쿠슈 「서재와 별」 중에서

인생은 생각하는 인생보다 보는 인생이다. 듣는 인생이다. 보는 것에서, 듣는 것에서, 여러 가지 현상이 그 의미를 풍부하게 했다.
눈만 밝으면 된다. 눈이 감겨 있다면, 귀만 밝으면 된다. 귀도 들리지 않는다면, 만져서라도 인생을 알고 싶다.
--- 다야마 가타이 「아이와의 여행」 중에서

지금은 오후 4시다. 구름 사이로 흘러나와 서쪽의 햇빛이 쨍하고 비쳐왔다. 뜰에 한가득 지기 시작하는 코스모스, 피기 시작하는 국화, 아직 남아 있는 다홍색 맨드라미, 벌과 등에가 떼 지어 있는 팔손이나무의 크고 하얀꽃, 희미하게 노란색을 품은 잔디, 잎이 갈색으로 마르고 시든 싸리나무와 자작나무와 낙엽송, 다들 석양에 쓸쓸히 빛나고 있다. 선명하지만, 울고 있다. 아름답지만, 쓸쓸하다.
오늘은 쓸쓸한 날이다.

--- 도쿠토미 로카 「가을, 쓸쓸하다」 중에서

출판사 리뷰

일본의 첫 수필 문학은 11세기 초 헤이안 시대의 궁녀 세이 쇼나곤의 《마쿠라노소시(베갯머리 서책)》라고 알려져 있다. 천 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이어져 와 지금까지도 많은 일본인들에게 읽히고 있는 만큼, 수필이 일본인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아온 문학 장르인지 알 수 있다.

일본의 수필은 일상의 소재를 가지고 그저 생각나는 대로 자유롭게 쓴 것이 많다. 일본 3대 수필 중 하나인 《쓰레즈레구사》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무료하게 온종일 벼루 앞에 앉아, 마음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시시한 것들을 생각나는 대로 쓰고 있으니……”라는 유명한 구절은 일본 수필 문학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데, 그 속에서 자연과 일상을 대하는 일본인의 태도와 삶의 방식을 느낄 수 있다.

화려한 귀족 문화를 꽃피웠던 헤이안 시대에 시작된 만큼, 일본의 수필 문학은 섬세하고 기교적인 면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상에 주관적으로 몰입하면서 공감을 나누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객관적이고 관조적으로 자연과 사물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세속을 벗어난 불편함 속에서 한적함과 여유로움을 느끼기도 하고, 덧없고 쓸쓸함 속에서 삶의 본질적인 모습을 보기도 하고, 죽음을 앞둔 이의 체념과 비애 속에서 당연한 듯 누리는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되돌아보기도 한다.

나쓰메 소세키, 다자이 오사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등을 비롯해, 도쿠토미 로카, 구보타 만타로 등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 총 열아홉 명의 수필 마흔다섯 편을 통해 일본 고유의 정취, 특히 애절함, 쓸쓸함, 무상함, 소박함, 한적함 등 일본 특유의 정서와 미의식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늘 가까이에 있는 일상과 자연이라도 찬찬히 바라보고 가만히 귀 기울이면, 뜻밖의 발견과 새로운 생각을 던져줄 때가 있다. 그러한 것들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삶을 여유롭고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수필을 청한(淸閑)의 문학이라고 했다. 이 책을 읽는 독자 한 분 한 분의 마음속에, 삶 속에, 한 줄기 맑고 한가로운 바람이 불어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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