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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다자이 오사무 수치 / 가정의 행복 사카구치 안고 벚나무 숲 만개한 꽃 아래 / 타락론 다케다 린타로 대흉의 제비 / 그대, 죽지 말지어다 오다 사쿠노스케 길 / 흙발 그대로의 문학 다나카 히데미쓰 야호(野狐) / 사요나라 후기 우울과 파멸의 망령들, 혹은 영원한 저항의 사도들 |
Dazai Osamu,だざい おさむ,太宰 治,츠시마 슈지津島修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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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작가란 ‘얼간이 같은 짓의 진창’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좀 더 분명하게 의식해야만 합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중에서 소설가 따위, 아주 한심해. 인간쓰레기야. 거짓말만 잔뜩 쓰고 있어. 조금도 로맨틱하지 않은걸. 영원히 남의 얼굴을 하고 태연하게 있겠다는 속셈이잖아. ---「수치」중에서 술도 담배도, 또 맛있는 안줏거리도 지금의 일본인에게는 사치니 그만두라고 한다면, 일본에 좋은 예술가는 단 한 명도 없게 됩니다. 그것만은 단언할 수 있습니다. 위협하는 게 아닙니다. 당신은 아까부터 정부니 국가니 하면서 짐짓 중대한 일인 양 거드름을 피우며 말하고 있습니다만, 우리를 자살로 이끄는 정부나 국가는 냉큼 사라지는 편이 낫습니다. 아무도 아깝다고 생각 안 합니다. ---「가정의 행복」중에서 그곳은 벚나무 숲 한가운데였습니다. 사방의 끝은 만개한 꽃들에 가려져 그 너머 안쪽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평소와 같은 두려움이나 불안은 어느새 사라졌습니다. 벚꽃 너머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도 더는 없습니다. 그저 고요하게, 그리고 소곤대면서, 꽃잎이 계속 지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는 처음으로 벚나무 숲의 만개한 꽃 아래 앉아 있었습니다. 언제까지라도 그곳에, 그렇게 앉아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이제 돌아갈 곳이 없었으니까요. ---「벚나무 숲 만개한 꽃 아래」중에서 나는 천황제에서도 지극히 일본적인(따라서 독창적이라고 할 수도 있을) 정치적 작품의 면모를 본다. 천황제는 천황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천황은 간혹 스스로 음모를 꾸밀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그 음모조차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이 섬으로 유배되거나 산속으로 도망치는 결말로 끝이 났으며, 결국 언제나 정치적인 이유로 존립을 인정받아왔다. 심지어 사회적으로 완전히 잊혔을 때에도 기어이 정치적인 이유로 추대되어 존재를 나타내곤 했는데, 그 존립의 정치적 이유란 말하자면 정치가들의 후각에 의한 것으로, 그들은 일본인의 성벽(性癖)을 통찰한 끝에 그 기질 속에서 ‘천황제’를 발견했다. 이는 다만 천황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체할 수만 있다면 공자가든 석가가든 레닌가든 상관없었다. 단지 그럴 수 없었을 뿐이다. ---「타락론」중에서 살아라, 타락하라. 이 정당한 절차 외에 진정으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편리한 지름길이 있을 수 있겠는가. ---「타락론」중에서 “아아, 전쟁에 나가고 싶다.” 이런 의미 없는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동안 차라리 빗발치는 포탄 아래를, 총을 메고 나아가고 싶었다. 그럼으로써 지금 내가 빠져 있는, 어리석고 괴로워할 보람조차 없는 수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단숨에 죽고 싶었다. ---「대흉의 제미」중에서 갑자기 멈춰 선다. 지독한 숨 가쁨이 찾아온 것이다. 가슴속 장기를 짓눌러 터뜨릴 듯한 호흡곤란이다. 눈앞이 새하얘진다. 붉은 기침이 터진다. 사에키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허둥지둥 자신의 기침 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서 있다. 쓸쓸한 한때다. ---「길」중에서 단정하게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모아두고 서재에 반듯하게 앉아서는 ‘자, 어디 책상 위 먼지부터 떨어볼까’ 하고 쓰기 시작한 작품에서 이제 대체 무슨 매력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흙발 그대로의 문학」중에서 나는 이 공안에 내 나름의 해석을 내리고 싶지는 않다. 그저 필사적으로 인생을 살아내고 수행하기만 하면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으리라고 단순하게 믿고 있는 나에게, 이 공안이 “체념하라, 내 마음이여, 짐승이여, 잠을 자라” 라고 말을 거는 것 같은 기분일 따름이다. ---「야호」중에서 ‘사요나라.’ ‘신이여, 항상 헤어지는 그대 곁에 있으라’도 아니며 ‘다시 만날 날까지’ 따위의 감미로운 소망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 허무적인 이별을 뜻하는 일본어. 나는 그런 덧없고 서늘한 이별의 말만이 살아남았다는 점에서, 일본 역사와 사회의 더할 나위 없이 빈곤한 슬픔을 떠올린다. ---「사요나라」중에서 일본인의 전쟁 도덕이란 ‘살아서 돌아올 생각 마라’다. 출정할 때 ‘다시 만날 날까지’를 기원하는 작별 인사 따위를 나누는 일은 당치도 않다. 아무래도 ‘이리 될 운명이니 작별합니다’라는 체념의 ‘사요나라’가 가장 걸맞다. 게다가 여자들은 ‘사요나라’ 뒤에 ‘용서하세요’를 덧붙인다. ‘이런 운명이 된 것을 용서해주십시오’라며 국가 권력에 대해 한층 비굴하게 사죄하고 있는 셈이다. 참으로 노예의 말인 것에 기가 막힐 따름이다. ---「사요나라」중에서 나는 나 자신을 죽음의 사자(使者)라 믿으면서도 실은 아직 삶의 세계에 ‘사요나라’를 고하고 싶지 않다. ---「사요나라」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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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의 권위와 사상에 반기를 든
젊은 저항자들의 문학사조, 무뢰파 “서로 서투른 거짓말은 하지 말기로 합시다. 나는 당신의 문장을 서점 매대에서 읽고 몹시 불쾌했습니다. 이 글만 보면 마치 당신 혼자서 수상자를 결정한 것 같습니다. 이것은, 당신의 문장이 아닙니다. 분명 누군가에게 강요받아 쓴 글임에 틀림없습니다. 게다가 당신은 그걸 노골적으로 과시하려고 애쓰기까지 하는군요.” 이 인용문은 현대의 어느 문학상 응모자가 심사 결과에 실망하여 불만을 품고 쓴 글처럼 읽힌다. 그러나 이 글의 작자는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작가, 다자이 오사무다. 1935년 제1회 아쿠타가와상 공모에 낙선한 그는 당시 특정 심사위원을 향한 이와 같은 노골적인 항의의 글을 『문예통신』이라는 문예지에 공개서한 형식으로 발표했다. 이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인신공격성 발언은 물론 협박에 가까운 과격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조그만 새를 기르고 무용을 구경하는 게 그리도 고상한 삶인가? 확 찔러버릴까 보다.’ 그런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천하의 몹쓸 놈이라고도 생각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가 실명을 거론하며 ‘저격’한 인물은 훗날(196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되는 당대의 문호이자 『설국』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였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는 아쿠타가와상 최종심에 오른 그의 작품을 두고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작가의 현재 생활에 불쾌한 구름이 끼어 있는 탓에 재능이 온전히 발휘되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었다”며 사생활을 이유로 낙선시킨 데 대해 다자이 오사무가 울분에 차서 쓴 당돌하기 그지없는 도발적 선언문이었다. 다자이 오사무를 한없는 자기혐오와 우울의 늪에 빠져들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 허무와 파멸의 작가로 알고 있는 오늘날의 독자라면 생경하게 느껴질 만한 일화다. 그러나 그가 이끌었던 문학사조인 ‘무뢰파’의 사상을 이보다 명료하게 보여주는 사례도 없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의 젊은 세대가 느낀 열패감과 소외감은 컸다. 무뢰파 문학의 작가 세대는 사실상 일본이 일으킨 전쟁의 또 다른 피해자나 다름없었다. 그들의 위 세대, 즉 당대의 기성세대가 전쟁을 일으켰고, 전선에 내몰려 죽임을 당하거나 국가의 대의 아래 폭력을 강요당한 것은 젊은 세대였음에도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일본을 다시 일으켜야 하는 과업도 결국 그들의 몫이 되었다. 일본은 망했어도 일본을 망하게 한 장본인들은 망하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러한 전후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채 노역에 가까운 국가 재건의 대업을 떠맡은 젊은이들의 암담한 심정은 말로 헤아릴 수 없었으리라. 당시 문단의 젊은 지식인들은 그러한 패배의 그림자 속에서 기성의 가치와 도덕을 부정하며 무뢰파라는, 일단의 문학 운동을 전개한 것이었다. 세상의 가식과 위선에의 거부 철저한 타락을 통한 구원을 부르짖다 무뢰파는 기성세대의 자기기만이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보았다. 전쟁도 패전 후의 비극도 바로 그들의 위선과 가식이 불러온 결과라고 말이다. 그리하여 스스로의 삶을 “부끄러움 많은 생애”라고 고백하는 등 내밀하고 부끄러운 자아를 숨김없이 말함으로써 오히려 자신을 실토하지 못하는 기성 사회의 수치를 비꼬았다. 하지만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보내는 다자이 오사무의 공개서한에서도 드러나듯이 노골적인 적대감의 발산을 굳이 감추려 들지도 않았다. 이는 오롯이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행동이었다기보다는 기성세대의 도덕적 허영, 즉 진정 비열한 윤리적 타락이라 여긴 그것을 세상에 까발려 그들 스스로 치부를 돌아보게끔 하려는 젊은 세대 나름의 당돌한 시도였을지도 모른다. 무뢰파 작가들은 끊임없이 타락하라며 부르짖었다. 그들이 기성 사회의 허위의식을 무엇보다도 혐오했다는 사실을 안다면 이 타락이 오늘날에 생각하는 단순한 도덕적, 윤리적 타락이 아님은 명백해진다. 비록 무뢰파 작가가 자신의 실제 인생에서나 작품 속에서 술과 약물에 취해 기행을 일삼고 방탕한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이를 통한 개인적 구원을 세상에 설파하려 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들 삶에서의 타락과 그들이 세상에 요청한 타락은 언뜻 모순되어 보일지 모르겠으나, 세상의 기망으로부터 먼저 자유로워지는 것이야말로 추악하고 무너진 세계에서 승리하는 것임을 공통되게 피력하고 있다. 그들의 방탕한 삶이란 그러한 주장의 다소 과장되고 자기 파괴적이기까지 한 ‘퍼포먼스’를 희생을 감내하면서까지 실제 자신의 인생에 적용해 보여준 일종의 실천으로 보아야 할 터다. 허무와 절망의 사도들이 남긴 승리의 묘표들 모든 시대의 젊은 세대를 위한 영원한 경전 이제껏 한국에서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과 그의 자살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만 예민한 영혼이 거쳐 온 지난한 내면적 고뇌의 종착역이라는 데 그쳐 있었다. 그러나 이제 젊은이들은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이 그려낸 우울과 파멸로부터, 오묘한 타락의 시선으로 들여다본 인생의 통찰과 저항의 의지를 읽는다. 작가의 자살로 귀결되는, 절망의 끝이라는 처절한 영역도 외려 숭고한 저항의 실현으로 여겨지고 있다. 스스로를 기성세대와 그들이 바꾸려 하지 않는 사회구조의 피해자라고 느끼며 출구 없는 불안과 우울의 지하도를 헤매는 세대에게 다자이 오사무가 소구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우울과 절망을 교감할 수 있는 귀중한 파멸의 전거가 문학이라는 이름의 경전으로 이미 존재하는 까닭이다. 무뢰파 작가들은 병으로, 또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방식으로 단명했다. 그리하여 기성 사회의 구성원이 되지 않은 채 저항하는 젊은 세대의 일원으로 영원히 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옛 일본의 작가들이 취한 타락의 태도는 치열한 저항의 기록으로서, 새로이 절망하기 시작한 모든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감정적으로 격한’ 위로를 줄 우울과 파멸의 경전으로 세상에 남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