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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투수 살인 사건 그림자 없는 범인 암호 옮긴이의 글 |
Ango Sakaguchi,さかぐち あんご,坂口 安吾,사카구치 헤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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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요코는 필사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들고 물었다.
“부장님, 제 연기에 미래가 있을까요? 어떤 쓴소리도 들을게요.” “갑자기 그 얘기가 왜 나와?” “십 년이 걸리더라도 스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면, 그때의 출연료를 담보로 삼백만 엔을 빌려주셨으면 해요.” 요코는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은 호소마키를 창백한 얼굴로 간절히 바라보다가, 이내 주저앉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투수 살인 사건」 중에서 “당신에게 돈을 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이유가 없다지만, 돈을 못 내면 어쩌시려고요?” “어떻게든 할 겁니다. 각오는 돼 있어요.” “무슨 각오요?” 오시카는 남자답게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그때는 아마, 죽을 겁니다.” “바보.” 미쓰코는 쓴웃음을 지었지만 이내 낯빛을 누그러뜨렸다. ---「투수 살인 사건」 중에서 고이치는 여자에 관해서는 닳고 닳은 안목의 소유자였다. 그는 나이 든 벗들을 배신할 의향은 없었지만, 진실을 알린다는 의미에서-한편으론 그 진실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여동생 마리코에게뿐 아니라 당사자인 하나코 부인에게까지 세 선생의 대화를 낱낱이 보고했다. “하하하. 결국 교로쿠 선생이 가장 순정파인 것 같으면서도 가장 교활하죠. 자기가 뭘 어쩌겠단 말은 없이, 나미키 선생에게는 독을 먹이라고 하고 겐사이 선생에게는 밤중에 베라고 했으니까요.” ---「그림자 없는 범인」 중에서 “그런 교묘한 약품을 써서 독살하는 일은 일본에선 상상할 수 없습니다.” “왜죠? 전쟁에서 패배한 나라는 독약을 쓸 수도 없단 겁니까?” “일반 사람에게 그런 걸 다룰 만한 생활 기반과 기초 지식이 없기 때문이지요.” “몰래 공부할 수는 없습니까? 예를 들어, 일본의 읽고 쓰는 교육의 보급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하던데, 그런 독살 방법이 글로 공개되어 있다면요? 그래도 역시 일본인에게는 독약을 다룰 만한 생활 기반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런 독약은 일반적으로 구하기가 어렵거든요.” “살인을 위해서라면 범인은 꽤 무리를 할 겁니다.” “어쨌든 살인은 아닙니다.” “왜죠?” “지금은 이미 늦었어요. 부검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림자 없는 범인」 중에서 요컨대 범인이 누군지는 짐작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더 나아가 누가 범인이든 상관없을 만큼 기묘하게 무관심한 시대가 도래한 듯했다. 어쩌면 전쟁이라는 대량 살육의 기운이 눈앞까지 다가온 탓인지도 모른다. 이제 모든 것이 지리멸렬해졌는지도 모른다. ---「그림자 없는 범인」 중에서 가미오는 전사했다. 다카코는 실명했다. 이를 천벌이 내린 결과라고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에 야지마는 스스로가 한심했지만, 마음의 고통은 떨칠 수 없었다. 이 암호를 다카코가 썼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을뿐더러, 한 사람은 실명하고 한 사람은 죽은 마당에 과거를 들쑤실 필요는 없었다. 전쟁이란 하나의 악몽일 뿐이라고 마음을 다잡으려 애쓰면서 산 책을 집으로 가져왔지만, 구석에 밀어놓고 다카코에게는 절대 알리지 않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 부담감이 점점 마음을 짓눌러, 가슴속에만 묻어두려 할수록 비밀을 간직하는 괴로움은 점점 쌓여가는 것만 같았다. ---「암호」 중에서 그렇다 해도 가미오는 죽었다. 야지마의 집은 불탔다. 살림살이가 모두 소실되고 열 권 남짓 남은 책도 모두 도둑맞았는데, 그 가운데 다카코의 암호 편지 한 장이 끼워진, 비밀의 유일한 실마리를 품은 그 한 권만이 여러 경로를 거쳐 야지마 자신의 손으로 돌아오다니, 이 무슨 기막힌 운명이란 말인가. ---「암호」 중에서 사정이 있어서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으니 십 분 정도 살펴보게 해달라고 양해를 구한 뒤, 자신의 옛 장서를 찾아보니 열한 권이 나왔다. 암호 문서가 두 장 든 것, 세 장 든 것, 한 장 든 것이 있었는데, 합치니 총 열여덟 장이었다. 야지마는 곧바로 해독에 들어갔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아마도 어제까지 평생 흘린 눈물의 총량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몸이 텅 비어버린 것만 같았다. ---「암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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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는 사건을 쫓고
안고는 인간을 쫓는다 표제작 〈투수 살인 사건〉은 프로야구 특급 투수의 이적을 둘러싼 소문에서 시작된다. 거액의 계약과 여러 사람의 이해관계가 얽힌 가운데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기차 시간과 이동 동선, 계약서의 필체와 증언 등이 중요한 단서로 떠오른다. 독자는 흩어진 정보를 맞춰 보고 알리바이의 빈틈을 찾으며 사건의 진실에 다가간다. 야구와 연예계라는 대중적인 소재에 정교한 미스터리 구조를 결합한 이 작품은 단서를 수집하고 논리적으로 해답을 찾아가는 추리의 즐거움을 충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안고가 끝까지 바라보는 것은 범인의 정체만이 아니다. 같은 사실도 누가, 어떤 의구심을 품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는 점을 보여주며, 일견 믿음직해 보이는 단서와 판단까지 다시 돌아보게 한다. 〈그림자 없는 살인〉은 한 부호의 수상한 죽음을 둘러싸고 전개된다. 범인과 범행 방법에 관해 가능성이 제시되지만 사건은 하나의 명쾌한 결론으로 쉽게 수렴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추리소설이 범인을 밝혀 혼란을 질서로 되돌려 놓는다면, 이 작품은 진실을 완전히 확정할 수 없을 때 생겨나는 불안과 의심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 〈암호〉는 전쟁을 겪은 남자가 자신의 책에서 발견된 수상한 흔적을 누군가가 남긴 암호라고 의심하며 시작된다. 그것은 정말 비밀을 담은 메시지일까, 아니면 불안에 사로잡힌 사람이 별것 아닌 흔적에 의미심장한 역할을 부여한 것일까. 암호를 해독하려는 시도가 계속될수록 작품의 중심은 미해결의 수수께끼에서 이를 바라보는 인간의 마음으로 옮겨 간다. 진실을 찾으려는 욕망이 때로는 원하던 진상을 마주하게 하지만, 때로는 존재하지 않는 의미를 만들어 낼 수도 있음을 치밀하게 묘사했다. 범인을 의심하기 전에 자신의 추리를 의심하라 다자이 오사무, 오다 사쿠노스케와 함께 무뢰파를 대표하는 작가 사카구치 안고는 기존 사회의 도덕과 질서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추리소설에서도 이어진다. 안고는 정통 추리소설의 형식을 능숙하게 활용하면서도, 모든 사건이 반드시 하나의 정답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모든 가치가 흔들리던 시대에 안고가 주목한 것은 인간의 내면, 그중에서도 욕망과 불안이었다. 그는 무너진 질서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집요하게 포착했고, 추리라는 장르 형식 안 답 에 시대의 혼란과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을 담아냈다. 정보가 넘쳐나지만 무엇을 믿어야 할지는 더욱 불분명해진 오늘날, 안고의 작품이 여전히 의미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편적인 정보로 타인의 의도를 추측하고, 몇 가지 의심스러운 단서만으로 진실을 판단하며, 자신의 해석에 맞는 증거를 찾아가는 모습은 소설 속 인물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단서는 사건을 가리키지만 의심은 인간을 향한다 『투수 살인 사건』은 세 편의 작품을 통해 추리소설이라는 장르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투수 살인 사건〉에서는 흩어진 단서와 알리바이를 맞춰 가는 지적 쾌감을, 〈그림자 없는 살인〉에서는 해결로써 해소되지 않는 미스터리의 긴장감을, 〈암호〉에서는 작은 의심이 헤어나지 못하는 집착으로 변해가는 심리적 불안을 만날 수 있다. 세 작품을 관통하는 것은 단순히 “누가 범인인가”라는 질문만이 아니다. 우리는 왜 어떤 것을 선택해 단서라고 믿는가. 의심은 무엇을 거쳐 확신이 되는가. 진실을 찾으려는 추론은 언제부터 자신이 만든 이야기가 되는가. 사카구치 안고는 독자가 진실에 가까워졌다고 믿는 순간, 그 믿음 자체를 다시 의심하게 만든다. 『투수 살인 사건』은 범인을 찾는 미스터리를 넘어, 우리가 무엇을 근거로 진실을 믿게 되는지를 끝까지 추적하는 작품이다. 책을 덮고 나면 사건의 결말만큼이나, 끝내 답을 내릴 수 없는 인간이라는 미스터리가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 시리즈 소개 니케북스 문학 큐레이션 니케북스 문학 큐레이션은 ‘단숨에 읽는 손안의 고전’을 지향합니다. 고전을 통해 오늘을 이해하고, 오늘의 감각으로 고전을 새롭게 만나는 경험이 되길 희망합니다. 이 기획은 큐레이션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서로 다른 주제 아래 작품을 선별한 하위 시리즈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대를 초월해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고전의 깊이는 놓치지 않되, 부담 없이 펼칠 수 있는 만듦새까지 고려했습니다. 니케북스는 오래된 이야기들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을 독자와 함께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니케북스의 ‘비명과 침묵’ 시리즈 공포와 미스터리, 가장 먼저 읽어야 할 고전들 니케북스 문학선 ‘비명과 침묵’은 미스터리와 공포 문학의 원형을 이루는 고전들을 새롭게 소개한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설명할 수 없는 사건과 감춰진 진실, 그리고 이름 붙일 수 없는 공포에 매혹되어 왔다. 이 시리즈는 범죄와 추리, 기이한 환상과 심리적 불안을 통해 인간 내면의 어두운 심연을 탐색한 작품들에 주목한다. 오늘날의 추리소설과 스릴러, 호러 장르를 가능하게 한 상상력의 기원을 여기에서 만날 수 있다. 비명은 공포와 경악 앞에서 터져 나오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목소리이고, 침묵은 범죄와 죽음이 남긴 가장 완전한 흔적이다. ‘비명과 침묵’은 공포와 미스터리라는 두 장르를 상징하는 이름으로, 두려움의 순간과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사이에서 탄생한 고전들을 소개한다. 이 시리즈에 실린 작품들은 단순히 범인을 찾거나 공포를 자극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욕망과 광기, 죄와 양심, 이성과 미신이 교차하는 경계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시대와 언어를 넘어 살아남은 이 고전들은 오늘의 독자에게 여전히 낯설고도 강렬한 경험을 선사한다. 각 언어권 전문 번역가들의 원문에 충실한 번역과 작품의 역사적 맥락 및 장르적 의의를 짚어 주는 해설은 고전과 현대 독자 사이의 거리를 좁혀 준다. 한여름 밤의 서늘한 전율부터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불안과 공포까지, ‘비명과 침묵’은 미스터리와 공포 문학의 가장 오래된 목소리를 현재로 불러오는 시리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