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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보은기 덤불 속 그림자 개화기의 살인 옮긴이의 글 |
Ryuunosuke Akutagawa,あくたがわ りゅうのすけ,芥川 龍之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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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부족한 게 없어 보여도 나름의 고생은 있는 모양이군.’
-그런 생각이 들어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미소를, -말은 이렇게 하지만 호조야 부부에게 악의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저처럼 사십 년 동안 악명만 떨치며 사는 사람이라면 타인의, -특히 행복할 법한 타인의 불행을 보면 절로 미소를 띠는 법입니다. 그때도 저는 그 부부의 탄식이 가부키를 보는 듯 유쾌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저 한 사람에게 국한된 일은 아닐 겁니다.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소설은 반드시 슬픈 이야기이기 마련이니까요. ---「보은기」중에서 저는 소란스러운 인파 속에서 창백한 머리를 보자마자 무심코 우뚝 멈춰 섰습니다. 그 머리는 그 사내의 머리가 아니었습니다. 아마카와 진나이의 머리가 아니었습니다. 저 두꺼운 눈썹, 저 툭 튀어나온 광대뼈, 저 미간의 흉터…… 무엇 하나 진나이와 닮지 않았습니다. 하지만-저는 갑자기 햇빛과 제 주변 인파들, 청죽 위에 얹혀 있는 머리, 그 모든 것들이 어딘가 아득한 세계로 흘러가 버렸나 싶을 정도로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그 머리는 진나이가 아니었습니다. 제 머리였습니다. 이십 년 전의 저, -진나이의 목숨을 구했던 그 무렵의 저였습니다. ---「보은기」중에서 사실 한 남자를 죽인다는 게 당신 생각처럼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어차피 여자를 빼앗을 거라면 남자는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다만 저는 죽일 때 허리에 찬 검을 쓰지만 당신들은 검을 쓰지 않고 그냥 권력으로 죽이거나, 돈으로 죽이거나, 그게 아니면 상대를 위하는 체하면서 자기 실속만 차리는 말 몇 마디로 죽이겠지요. 그러면 피를 흘리는 일 없이 그자는 멀쩡하게 살아갈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래도 그건 죽인 겁니다. 죄의 경중을 따진다면 당신이 나쁜지 제가 나쁜지, 어느 쪽이 더 나쁜지 알 수 없지요. ---「덤불 속」중에서 진사이는 맥주를 다 마시고는 덩치 큰 몸을 천천히 일으켜 계산대 앞으로 다가갔다. “진 사장님. 나한테 반지 언제 사줄 거예요?” 여자는 이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연필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 반지가 없어지면.” 진사이는 잔돈을 뒤지면서 턱으로 여자의 손가락을 가리켰다. 거기엔 이미 이 년 전부터, 금을 얇게 펴서 양 끝을 붙인 약혼반지가 끼워져 있다. “그럼 오늘 밤에 사주세요.” 여자는 순식간에 반지를 빼더니 계산서와 함께 그의 앞에 내던졌다. “이건 호신용 반지예요.” ---「그림자」중에서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부인은 의사가 돌아가고 난 뒤 저녁까지 하녀를 상대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목욕과 식사를 마치고 열 시까지는 축음기를 듣고 계셨구요.” “손님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까?” “네,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감시를 그만둔 시간은?” “열한 시 이십 분입니다.” 요시이는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그림자」중에서 저는 저의 최후에 앞서 지난 삼 년 동안 늘 제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던 저주스러운 비밀을 고백하고, 그로써 경들 앞에서 저의 추악한 마음을 폭로하고자 합니다. 경들이 어쩌면 이 유서를 읽은 후 고인인 저를 기억해 주시고 조금이나마 연민의 정을 느끼신다면, 그건 저로서는 뜻밖의 큰 행복이 되겠지요. 하지만 또한 저를 죽어도 싼 미치광이로 여기고 시신에 매질을 하는 게 마땅하다고 한들 저로서는 유감스러운 마음이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제가 고백하려는 사실이 너무도 뜻밖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저를 신경쇠약 환자라고 부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개화기의 살인」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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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보다 기묘한 것은 인간
표제작 〈개화기의 살인〉은 메이지 유신으로 신분제와 전통적 질서가 크게 흔들리고, 서양의 과학과 문물이 빠르게 유입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이야기는 죽음을 앞둔 한 남자의 고백으로 시작한다. 그는 지난 3년 동안 마음속에 감춰두었던 비밀을 밝히고 자신의 “추악한 마음”을 세상에 드러내겠다며 살인에 얽힌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새로운 문명과 과학, 합리주의가 밀려들던 시대. 그러나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인간의 마음까지 합리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과 욕망, 질투 앞에서 이성은 흔들리고, 그 균열은 결국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사건으로 이어진다. 아쿠타가와는 살인의 동기를 추적하면서 사건의 비밀 너머에 있는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근대적 이성과 인간의 본능 사이에 놓인 간극. ‘개화’라는 빛 아래에도 인간의 어둠은 여전히 존재한다. 제목 속 ‘개화기’와 ‘살인’이라는 두 단어의 강렬한 대비가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라쇼몽 효과, 하나의 사건과 여러 개의 진실 〈덤불 속〉은 아쿠타가와식 미스터리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한 남자의 죽음을 둘러싸고 여러 인물이 각자의 기억과 경험을 증언하지만, 그들의 진술은 서로 엇갈린다.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판단할 결정적인 단서는 끝내 주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각각의 증언에 드러나는 모순과 욕망이 사건을 더욱 미궁에 빠뜨린다. 독자는 흩어진 진술을 따라가며 사건의 실체를 스스로 조합하고, 서로 다른 진실 가운데 무엇을 믿을지 판단해야 한다. 〈덤불 속〉은 훗날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에 중요한 모티프를 제공했다. 하나의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이 자신의 관점과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다르게 기억하고 설명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이른바 ‘라쇼몽 효과’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쿠타가와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히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에게 불리한 진실까지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는가? 범인을 찾는 것보다 인간의 말과 기억을 믿을 수 있는지를 묻는다는 점에서 〈덤불 속〉은 지금 읽어도 놀랍도록 현대적인 미스터리다. 선의와 악의를 쉽게 판단할 수 있을까? 〈보은기〉는 ‘은혜를 갚는다’는 행위를 서로 다른 인물의 시선에서 바라보며 선의와 악의의 경계를 흔든다. 한 사람에게 은혜였던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원한이 되고, 누군가의 희생은 예상치 못한 또 다른 보은으로 이어진다. 같은 사건을 바라보면서도 인물들이 부여하는 의미는 전혀 다르다. 아쿠타가와는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를 쉽게 판단하지 않는다. 대신 하나의 행동이 사람의 입장과 욕망에 따라 얼마나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덤불 속〉이 서로 다른 ‘증언’을 통해 사실의 불확실성을 드러낸다면, 〈보은기〉는 서로 다른 ‘관점’을 통해 선과 악의 판단을 흔든다. 의심하는 순간, 현실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단편 〈그림자〉는 네 작품 가운데 가장 기묘하고 환상적인 미스터리다. 불륜에 대한 의혹과 질투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살인의 가능성으로 이어지고, 도플갱어와 꿈이 뒤섞이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마저 흐려진다. 의심이 깊어질수록 무엇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무엇이 인간의 불안이 만들어낸 환상인지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여기서 가장 두려운 것은 범인의 존재가 아니다. 한번 시작된 의심이 인간의 마음을 장악하고, 결국 자신이 보고 있는 현실마저 믿지 못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아쿠타가와는 외부에서 벌어진 사건을 추적하던 미스터리를 인간의 내면으로 끌어들인다. 사건이 인간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인지, 불안한 인간의 마음이 현실을 왜곡하는 것인지 그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그림자〉는 범죄소설에서 심리적 공포소설로 넘어간다. 범인을 찾은 뒤에도 미스터리는 끝나지 않는다 아쿠타가와에게 사건은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출발점이다. 단서를 따라갈수록 기억은 흔들리고, 욕망은 사실을 왜곡하며, 진실과 거짓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무슨 일이 있어났는가’를 묻던 추리는 어느 순간 ‘인간은 왜 그렇게 말하고, 믿고, 행동하는가’를 묻는 탐색으로 바뀐다. 그래서 그의 미스터리는 범인을 찾아냈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 사건 뒤에 남겨진 인간의 마음이 더 큰 수수께끼가 되기 때문이다. 아쿠타가와는 그 수수께끼에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흩어진 증언을 맞추고, 인물들의 말 뒤에 숨은 욕망을 의심하고, 무엇을 진실로 받아들일 것인지를 판단하는 마지막 몫은 독자에게 남겨둔다. 『개화기의 살인』은 범인을 찾아가는 네 편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건을 통해 인간을 추리하게 만드는 네 편의 미스터리이다. · 시리즈 소개 니케북스 문학 큐레이션 니케북스 문학 큐레이션은 ‘단숨에 읽는 손안의 고전’을 지향합니다. 고전을 통해 오늘을 이해하고, 오늘의 감각으로 고전을 새롭게 만나는 경험이 되길 희망합니다. 이 기획은 큐레이션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서로 다른 주제 아래 작품을 선별한 하위 시리즈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대를 초월해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고전의 깊이는 놓치지 않되, 부담 없이 펼칠 수 있는 만듦새까지 고려했습니다. 니케북스는 오래된 이야기들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을 독자와 함께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니케북스의 ‘비명과 침묵’ 시리즈 공포와 미스터리, 가장 먼저 읽어야 할 고전들 니케북스 문학선 ‘비명과 침묵’은 미스터리와 공포 문학의 원형을 이루는 고전들을 새롭게 소개한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설명할 수 없는 사건과 감춰진 진실, 그리고 이름 붙일 수 없는 공포에 매혹되어 왔다. 이 시리즈는 범죄와 추리, 기이한 환상과 심리적 불안을 통해 인간 내면의 어두운 심연을 탐색한 작품들에 주목한다. 오늘날의 추리소설과 스릴러, 호러 장르를 가능하게 한 상상력의 기원을 여기에서 만날 수 있다. 비명은 공포와 경악 앞에서 터져 나오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목소리이고, 침묵은 범죄와 죽음이 남긴 가장 완전한 흔적이다. ‘비명과 침묵’은 공포와 미스터리라는 두 장르를 상징하는 이름으로, 두려움의 순간과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사이에서 탄생한 고전들을 소개한다. 이 시리즈에 실린 작품들은 단순히 범인을 찾거나 공포를 자극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욕망과 광기, 죄와 양심, 이성과 미신이 교차하는 경계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시대와 언어를 넘어 살아남은 이 고전들은 오늘의 독자에게 여전히 낯설고도 강렬한 경험을 선사한다. 각 언어권 전문 번역가들의 원문에 충실한 번역과 작품의 역사적 맥락 및 장르적 의의를 짚어 주는 해설은 고전과 현대 독자 사이의 거리를 좁혀 준다. 한여름 밤의 서늘한 전율부터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불안과 공포까지, ‘비명과 침묵’은 미스터리와 공포 문학의 가장 오래된 목소리를 현재로 불러오는 시리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