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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
Ryuunosuke Akutagawa あくたがわ りゅうのすけ 芥川 龍之介
해외작가 문학가
출생
1892년 03월 01일
사망
1927년 07월 24일
출생지
일본 도쿄
직업
소설가
데뷔작
노년
작가이미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해외작가 문학가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1892년 도쿄의 서민 지역인 시타마치에서 태어났다. 외가에 양자로 들어가 두 이모가 그를 양육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도쿄제일고등학교를 거쳐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해 차석으로 졸업했다. 기쿠치 칸, 구메 마사오 등과 재학생 시절 동인지 『신사조』를 발간해 『라쇼몬』 『코』 등의 단편을 발표했는데 나츠메 소세키로부터 단편 『코』가 절찬을 받으며 일약 다이쇼 시대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 전공인 영문학을 비롯해 프랑스, 독일, 러시아문학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아 간결하면서도 평이하고 명쾌한 필치가 특징이지만 한문에도 조예가 깊었다. 왕조물’, ‘기독교물’, ‘에도물’, ‘개화기물’, ‘현대물’ 등의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나생문(羅生門)』, 『마죽(芋粥)』 등 150편 정도의 단편 소설을 남겼다.

초기에는 일본 고대 설화 문학에서 소재를 취해 보편적이면서 현대적인 인간 에고이즘의 내면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썼고, 이후 예술지상주의적인 경향의 작품들, 에도 시대 그리스도교 박해를 다룬 기리시탄 작품들, 일본의 근대화를 주제로 한 작품들 등을 쓰다가 말년에는 자살을 염두에 둔 듯 자신의 삶을 무자비하게 조롱하고 야유하는 자전적인 작품들이 많다. 1927년 7월 24일 새벽, 비가 세차게 내리는 가운데 다바타의 자택에서 치사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자살했다. 그가 밝힌 자살의 이유는 ‘장래에 대한 그저 막연한 불안’이었다. 아쿠타가와의 자살은 관동대지진과 더불어 일본 근대사에서 다이쇼라는 한 시대의 종언으로 느껴질 정도로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던졌다. 1935년 아쿠타가와의 친구였던 문예춘추의 사주 기쿠치 칸이 아쿠타가와상을 제정했고 현재까지도 이 상은 일본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으로 인정된다.
1927 자살
도쿄대 영문과 졸업
제3차 『신사조』 발간

작가의 전체작품

작가의 추천

  • 우치다 햣켄 씨는 나쓰메 선생님의 문하로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선배다. 문장이 탁월하고 고토(琴)에도 조예가 깊다. 우치다 햣켄 씨의 작품은 소탈하고 서민적이지만 그 몽환적 특색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단순히 우정 때문만이 아니라, 나는 진심으로 우치다 햣켄 씨가 시적 천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작품 밑줄긋기

권*현 2026.07.04.
p.259
이것은 철학자 매그가 쓴 [바보의 말] 속의 몇 문장입니다.-바보는 언제나 자기 말고 다른 이가 바보라고 믿습니다.-우리가 자연을 사랑하는 이유에는 자연이 우리를 미워하거나 질투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작용한다.-가장 현명한 삶은 한 시대의 습관을 경멸하면서, 그렇지만 그 습관을 전혀 깨지 않고 사는 것이다.-우리가 가장 자랑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갖지 못한 것들뿐이다.-어느 누구도 우상을 파괴하는 것에 대해 이견이 없다. 동시에 또한 어느 누구도 우상이 되는 것에 대한 이견이 없다. 하지만 우상의 자리 위에 편안히 앉아 있을 수 있는 자는 신들에게나 가장 은총 입은 자, 바보이거나 악인이거나 영웅이거나.-우리의 삶에 피요한 사상은 삼천 년 전에 다떨어졌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저 오래된 장작에 새 불을 댕기고 있을 뿐이리라.-우리의 특색은 우리 자신의 의식을 초월하는 것이 보통이다.-행복은 고통을 동반하고, 평화는 권태와 함께 온다면?-자신을 변호하는 일은 타인을 변호하는 것보다 어렵다. 의심되는 자는 변호사를 보라.-긍지. 애욕, 의혹. 모든 죄는 삼천 년간, 이 세 가지에서 발단했다. 동시에 아마도 모든 미덕 역시.-물질적 욕망을 멸하는 것이 반드시 평화를 불러오지는 않는다. 우리는 평화를 얻기 위해서 정신적 욕망도 멸해야만 한다.-우리는 인간보다 불행하다. 인간은 갓파만큼 진화하지 않았다.-이루어지는 일은 할 수 있는 것이며, 할 수 있는 일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필경 우리의 삶은 이러한 순환 논법을 벗어날 수 없다. 다시 말해 시종 불합리하다.-보들레르는 백차가 되고 나서, 그 인생관이 오직 한 단어, 여음 이라는 단어로 표백되었다. 하지만 그에 대해 말해 주는 것은 꼭 이런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천재성, 그의 삶은 충분히 유지해 줄 만한 시적 천재성을 신뢰했기 때문에 위장이라는 단어 하나를 잊었던 것이다.-만일 이성에만 충실하려 한다면, 우리는 당연히 우리 자신의 존재를 부정해야만 한다. 이성을 신으로 삼은 볼테르가 행복하게 일생을 바친 것은 곧 인간이 갓파보다도 진화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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