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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 사카구치 안고
요나가 아씨와 미미오 / 전쟁과 한 여자
* 다카미 준
신경 / 인간
* 다자이 오사무
후지 백경 / 비용의 아내
* 다나카 히데미쓰
사요나라 / 여우
* 오다 사쿠노스케
비 / 속취

저자 소개 6

사카구치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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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o Sakaguchi,さかぐち あんご,坂口 安吾,사카구치 헤이고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로 다자이 오사무와 더불어 ‘무뢰파(無賴派)’의 대표 작가이다. 본명은 헤이고. 1906년 10월 20일 니가타현 니가타시에서 아버지 니이치로와 어머니 아사 사이의 5남으로 태어났다. 사카구치가의 선조는 지금의 후쿠오카현 가라쓰의 도공이었다가 후에 니가타로 이동해 온 지방 부호다. 아버지 니이치로는 당시 중의원 의원이자 니가타 신문사 사장이었고 한시 시인으로도 알려진 정치가로서 언제나 다망했으며 장남을 제외한 자식들에게는 무관심하고 냉담했다. 사카구치가의 재산은 체면과 의리를 중시했던 니이치로의 대에서 탕진되게 된다. 니이치로의 전처와 첩의 아이까지 합한 열세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로 다자이 오사무와 더불어 ‘무뢰파(無賴派)’의 대표 작가이다. 본명은 헤이고. 1906년 10월 20일 니가타현 니가타시에서 아버지 니이치로와 어머니 아사 사이의 5남으로 태어났다. 사카구치가의 선조는 지금의 후쿠오카현 가라쓰의 도공이었다가 후에 니가타로 이동해 온 지방 부호다. 아버지 니이치로는 당시 중의원 의원이자 니가타 신문사 사장이었고 한시 시인으로도 알려진 정치가로서 언제나 다망했으며 장남을 제외한 자식들에게는 무관심하고 냉담했다. 사카구치가의 재산은 체면과 의리를 중시했던 니이치로의 대에서 탕진되게 된다. 니이치로의 전처와 첩의 아이까지 합한 열세 명의 형제 중 열두 번째 아이로 태어난 안고는, 어린 시절 이미 방랑벽이 있었으며, 골목대장 행세를 하며 싸움질을 하고 돌아다녀 어머니의 미움을 사는 한편, 주로 무사들의 군담을 숙독했고, 남몰래 닌자의 인술을 연구하기도 했다. 1919년 니가타 중학교에 입학했으나 이 무렵부터 집과 학교를 싫어해서 수업을 빠지고 홀로 방황하는 날들을 보내다 낙제하게 되고, 다니자키 준이치로와 발자크 등의 소설을 탐독하며 지내다가 결국 1922년에 퇴학당했다. 그해 가을 상경해 부잔 중학교에 입학했고 에드거 앨런 포와 이시카와 다쿠보쿠 등을 인생의 낙오자로서 사랑하며 그들의 작품을 숙독했다.

막연하게 엄격한 구도자의 삶을 동경하여 1926년, 도요 대학 인도철학윤리과에 입학한다. 입학 후 불교서와 철학서를 섭렵하는 데 몸을 혹사하며 공부에 매진한 탓에 생긴 신경쇠약 증세를 극복하기 위해 다시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티베트어, 라틴어, 프랑스어 등 어학을 맹렬히 공부한다. 1930년, 대학을 졸업한 후 동인지 [말]과 [청마]를 창간했다. 1931년에 발표한 단편소설『바람 박사』와 『구로타니 마을』이 소설가 마키노 신이치의 극찬을 받음으로써 신진 작가로 급부상한다. 1932년 여류 작가 야다 쓰세코를 알고 사랑에 빠지지만 1936년 절교한 후 신생을 기하며 교토를 방랑하면서 그녀와의 사랑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눈보라 이야기』를 썼다. 1946년, 전후의 시대적 본질을 예리하게 통찰하고 파악한 「타락론」과「백치」에 의해 일약 시대의 총아, 오피니언 리더로 떠오르며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에세이 「타락론」에서는 전쟁에 졌기 때문에 인간이 타락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인간에게는 타락의 본성이 있고 혼란은 필연적이며, 타락을 통해 다시 일어날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타락론」을 소설화한 것이 「백치」다.

1947년 가지 미치요와 결혼하고, 전후의 시대상을 반영한 소설과 에세이, 탐정소설, 역사 연구, 문명 비평 르포르타주 등 다채로운 집필 활동을 전개하여 전후의 난세에 문화와 역사 및 사회의 흐름에 대한 대중의 지적 갈증을 해소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와 동시에 세무 당국을 상대로 한 소송, 경륜 부정 사건 고발, 각성제와 수면제 중독에 의한 정신착란 발작 등 실생활 면에서도 언제나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1955년 2월 17일 지방 취재 여행에서 돌아온 후 자택에서 뇌일혈로 급사했다. 향년 50세였다. 전후 일본 사회의 혼란과 퇴폐를 반영한 작풍을 확립하고 시대의 새로운 윤리를 제시함으로써 일본인에게 충격과 감동을 안겨준 사카구치 안고는 다자이 오사무와 오다 사쿠노스케 등과 함께 전후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무뢰파 작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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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미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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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見順,다카마 요시오高間芳雄

근대 일본의 시인, 소설가. 1907년에 후쿠이(福井) 현의 지사인 사카모토 산노스케(阪本鐥之助)의 서자로 후쿠이 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다카마 요시오(高間芳雄). 제1고등학교를 거쳐 1930년에 도쿄 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하고, 노동운동에 참가했다가 1933년에 검거되어 전향했다. 유치 중에 아내가 다른 남자와 달아나 이혼했다. 전향과 가정붕괴의 이중고 속에서 쓴 「잊지 못할 옛 친구」가 제1회 아쿠타가와(芥川) 상 후보작이 되어 단번에 주목을 받았다. 요설적 설화형식을 주장하여 기성 리얼리즘의 극복을 추구했으며 장편 「어느 별 아래서」와 평론 「문학 무력설」로 인텔리
근대 일본의 시인, 소설가. 1907년에 후쿠이(福井) 현의 지사인 사카모토 산노스케(阪本鐥之助)의 서자로 후쿠이 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다카마 요시오(高間芳雄). 제1고등학교를 거쳐 1930년에 도쿄 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하고, 노동운동에 참가했다가 1933년에 검거되어 전향했다. 유치 중에 아내가 다른 남자와 달아나 이혼했다. 전향과 가정붕괴의 이중고 속에서 쓴 「잊지 못할 옛 친구」가 제1회 아쿠타가와(芥川) 상 후보작이 되어 단번에 주목을 받았다. 요설적 설화형식을 주장하여 기성 리얼리즘의 극복을 추구했으며 장편 「어느 별 아래서」와 평론 「문학 무력설」로 인텔리 작가로서의 독자적 지위를 구축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현대사의 동란 속에서 자신을 상대화하는 데 성공했다. 전쟁 전후에 쓴 일기가 귀중한 기록으로 남았다. 일본근대문학관 창설과 자료수집에 진력했다.

기존의 리얼리즘을 극복하기 위하여 문체의 변화에 대하여 쓴 평론 「묘사 뒤에서 자고 있을 수 없다(描のうしろにてゐられない)」(1936), 아사쿠사를 배경으로 서민들의 풍속을 그린 장편 『어느 별 아래(如何なる星の下に)』(1940), 패전 이후의 기록 『다카미 준 일기(高見順日記)』(1966) 등의 작품이 있고, 대표 시집으로 『수목파(樹木派)』(1950), 『죽음의 심연에서(死の淵より)』(1964) 등이 있다. 다카미 준은 가마쿠라문고(鎌倉文庫)를 경영하면서 일본근대문학관의 창설과 자료 수집에 진력하였으나, 네 번에 걸친 수술 끝에 58세 때 식도암으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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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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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zai Osamu,だざい おさむ,太宰 治,츠시마 슈지津島修治

1909년 6월 19일, 일본 아오모리 현 쓰가루 군 카나기무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가진 자로서의 죄책감을 느꼈고,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성장한다. 1930년, 프랑스 문학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도쿄제국대학 불문과에 입학하지만, 중퇴하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소설가 이부세 마스지[井伏_二]의 문하생으로 들어간 그는 본명 대신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35년 소설 「역행(逆行)」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1909년 6월 19일, 일본 아오모리 현 쓰가루 군 카나기무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가진 자로서의 죄책감을 느꼈고,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성장한다.

1930년, 프랑스 문학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도쿄제국대학 불문과에 입학하지만, 중퇴하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소설가 이부세 마스지[井伏_二]의 문하생으로 들어간 그는 본명 대신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35년 소설 「역행(逆行)」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35년 제1회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단편 「역행」이 올랐지만 차석에 그쳤고, 1936년에는 첫 단편집 『만년(晩年)』을 발표한다. 복막염 치료에 사용된 진통제 주사로 인해 약물 중독에 빠지는 등 어려운 시기를 겪지만, 소설 집필에 전념한다. 1939년에 스승 이부세 마스지의 중매로 이시하라 미치코와 결혼한 후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많은 작품을 썼다.

1947년에는 전쟁에서 패한 일본 사회의 혼란한 현실을 반영한 작품인 「사양(斜陽)」을 발표한다. 전후 「사양」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인기 작가가 된다. 그의 작가적 위상은 1948년에 발표된, 작가 개인의 체험을 반영한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을 통해 더욱 견고해진다. 수차례 자살 기도를 거듭했던 대표작은 『만년(晩年)』, 『사양(斜陽)』, 「달려라 메로스」, 『쓰기루(津?)』, 「여학생」, 「비용의 아내」, 등. 그는 1948년 6월 13일, 폐 질환이 악화되자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人間失格)』을 남기고 카페 여급과 함께 저수지에 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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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카 히데미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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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emitsu Tanaka,たなか ひでみつ,田中 英光

1913년~1949년. 소설가. 도쿄 출생하여 어머니의 집안인 다나카 가에 호적을 올렸다. 가마쿠라에서 성장했으며 1932년 와세다 대학 정경학부 재학 중 조정 일본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했다. 당시의 체험을 바탕으로 「올림포스의 과실」을 썼다. 1935년부터 동인잡지에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다자이 오사무에게 사사했다. 주재원으로 있던 당시 경성(현, 서울)에서의 체험, 형님의 영향으로 입당한 공산당에서의 체험, 애인과의 신주쿠에서의 생활이 문학의 배경에 있다. 1948년 다자이의 자살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 무렵부터 수면제, 여자, 술에 빠져 퇴폐적 생활을 보냈으며 『여
1913년~1949년. 소설가. 도쿄 출생하여 어머니의 집안인 다나카 가에 호적을 올렸다. 가마쿠라에서 성장했으며 1932년 와세다 대학 정경학부 재학 중 조정 일본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했다. 당시의 체험을 바탕으로 「올림포스의 과실」을 썼다. 1935년부터 동인잡지에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다자이 오사무에게 사사했다. 주재원으로 있던 당시 경성(현, 서울)에서의 체험, 형님의 영향으로 입당한 공산당에서의 체험, 애인과의 신주쿠에서의 생활이 문학의 배경에 있다. 1948년 다자이의 자살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 무렵부터 수면제, 여자, 술에 빠져 퇴폐적 생활을 보냈으며 『여우』 등과 같은 무뢰파적 작품을 발표하게 되었다. 1948년 11월, 다자이 오사무의 무덤 앞에서 자살했다. 향년 36세였다. 대표작으로는『올림포스의 과실』, 『지하실에서』, 『여우』, 『안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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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사쿠노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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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kunosuke Oda,おだ さくのすけ,織田 作之助

다자이 오사무, 사카구치 안고와 함께 사회통념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저작활동을 펼친 전후 무뢰파 작가. 스탕달의 영향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제3고등학교에 5년 재학하다 중퇴했다. 「비」로 다케다 린타로(武田麟太郎)에게 인정을 받았으며, 오사카에서 나고 자란 오다사쿠(애칭)는 왁자한 오사카 풍경과 저잣거리 사람들의 삶과 사랑을 생생하게 묘사한 장편소설 『메오토젠자이(부부 단팥죽)』로 큰 사랑을 받았다. 「권선징악」 등 역작을 차례로 발표했으나 장편 『청춘의 역설』이 반군국주의 작품으로 발금처분을 받았다. 1946년에 패전 직후의 혼란스러운 세상을 묘사한 단편을 발표했으며, 사소
다자이 오사무, 사카구치 안고와 함께 사회통념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저작활동을 펼친 전후 무뢰파 작가. 스탕달의 영향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제3고등학교에 5년 재학하다 중퇴했다. 「비」로 다케다 린타로(武田麟太郎)에게 인정을 받았으며, 오사카에서 나고 자란 오다사쿠(애칭)는 왁자한 오사카 풍경과 저잣거리 사람들의 삶과 사랑을 생생하게 묘사한 장편소설 『메오토젠자이(부부 단팥죽)』로 큰 사랑을 받았다. 「권선징악」 등 역작을 차례로 발표했으나 장편 『청춘의 역설』이 반군국주의 작품으로 발금처분을 받았다. 1946년에 패전 직후의 혼란스러운 세상을 묘사한 단편을 발표했으며, 사소설의 전통에 결별을 선언한 평론 「가능성의 문학」을 집필, 그 실험적 작품이라 여겨지는 장편 『토요부인』을 [요미우리신문]에 8월부터 연재했으나 폐결핵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이미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아 건강을 해친 상태였다. 한편 「수필 오사카」, 「오사카의 얼굴」, 「오사카의 발견」 등 오사카의 감수성을 유쾌하고도 시니컬한 필체로 써내려간 산문을 다수 남겼다. 모든 사상이나 체계에 대한 불신, 옛 전통에 대한 반역을 목표로 삼았으며 고유의 감각과 직관에 바탕을 둔 스탕달풍의 템포가 빠른 작풍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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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소설 및 역사에 관심을 갖고 관련 서적들을 꾸준히 번역 · 출판하고 있다. 리나라의 일반 독자에게는 자료가 풍부하지 않은 일본의 역사를 소개할 때는 가능한 한 쉽게 풀어쓴 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문학 쪽으로는 숨겨진 양서를 발견하여 출판하는 작업도 계속하고 있다.옮긴 책으로는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 『그럼, 이만…… 다자이 오사무였습니다.』, 『운명의 승리자 박열』, 『붉은 수염 진료담』, 『추리소설 속 트릭의 비밀』 등이 있으며, 역사 쪽으로는 ‘인물과 사건으로 읽는 일본, 칼의 역사’ 시리즈를 20권쯤 기획,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다이라노 기요모
일본의 소설 및 역사에 관심을 갖고 관련 서적들을 꾸준히 번역 · 출판하고 있다. 리나라의 일반 독자에게는 자료가 풍부하지 않은 일본의 역사를 소개할 때는 가능한 한 쉽게 풀어쓴 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문학 쪽으로는 숨겨진 양서를 발견하여 출판하는 작업도 계속하고 있다.옮긴 책으로는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 『그럼, 이만…… 다자이 오사무였습니다.』, 『운명의 승리자 박열』, 『붉은 수염 진료담』, 『추리소설 속 트릭의 비밀』 등이 있으며, 역사 쪽으로는 ‘인물과 사건으로 읽는 일본, 칼의 역사’ 시리즈를 20권쯤 기획,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다이라노 기요모리』 등을 출간했다.

대학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유학 및 직장 생활을 하다 지금은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나쓰메 소세키, 다자이 오사무, 와시오 우코, 나카니시 이노스케, 후세 다쓰지, 야마모토 슈고로, 에도가와 란포, 쓰보이 사카에 등의 대표작과 문제작을 꾸준히 번역해 소개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번역한 작품도 상당수 있으며 앞으로도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 · 작품을 소개하여 획일화된 출판시장에 다양성을 부여할 계획이다. 우리나라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기 위해서 출판을 시작했다.

번역서로는 『계절이 없는 거리』, 『판도라의 상자』, 『갱부』, 『혈액형 살인사건』, 『사형수와 그 재판장』, 『불령선인 / 너희들의 등 뒤에서』, 『젊은 날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다자이 오사무 자서전』,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 『그럼, 이만…… 다자이 오사무였습니다.』, 『그럼, 안녕히… 야마자키 도미에였습니다.』, 『붉은 흙에 싹트는 것』, 『운명의 승리자 박열』, 『세계 3대 명탐정 단편 걸작선』, 『붉은 수염 진료담』, 『추리소설 속 트릭의 비밀』, 『엽기의 끝』, 『스물네 개의 눈동자』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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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5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376쪽 | 436g | 130*210*19mm
ISBN13
9791190156196

책 속으로

여자는 유곽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기에 육체에 정상적인 애정의 기쁨, 이 없었다. 따라서 이 여자와의 동거에 남자로서는 거기에 가장 큰 불만, 이 있을 테지만, 정조관념이 없다는 것도 보기에 따라서는 신선한 것으로, 가정적인 어두움이 없다는 점이 노무라는 마음에 들었다. 유희의 상대로 그 유희에는 마지막 만족이 결여되어 있지만, 어쨌든 늘 유희적인 관계에 있는 것만으로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노무라는 생각했다. 전쟁 중이 아니었다면 같이 살 마음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모든 것이 파괴될 것이다. 살아남아도 노예가 될 것이라 생각했기에 가정을 건설하겠다는 마음은 없었다.
--- 사카구치 안고 「전쟁과 한 여자」 중에서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런 나도 조금 이상하기는 했다. 얼마 전까지 아유코의 정부였던 고로와 실실 웃으며 오토리사마 구경을 가다니, 나의 신경도 평범한 사람과 조금 다른 구석이 있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아유코도 어떤 마음이었던 걸까? 고로와 만날 약속이 있었다면 S군이 함께 가자고 했을 때 거절하면 됐을 텐데, --- 아무래도 아유코의 신경 역시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듯했다. / 나는 조금 전에 아유코의 오빠를 평범한 사람과 신경이 다른 구석이 있는 사내인 것처럼 이야기했었는데, 생각해보니 우리는 모두가 그런 듯했다.
--- 다카미 준「신경」 중에서

인간의 일생은 지옥이어서, 촌선척마(寸善尺魔), 라는 건,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1치의 행복에는 1자의 요사스러운 일이 따라옵니다. 인간 365일, 아무런 걱정도 없는 날이, 하루, 아니, 한나절 있다면, 그건 행복한 사람입니다.
--- 다자이 오사무 「비용의 아내」 중에서

오카다는 병기를 전부 버림으로 해서 온몸으로 전쟁을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이유도 없이 방화, 살인, 상해, 강도, 강간을 행하는 전쟁이야말로 일반 사람의 신경으로는 견딜 수 없는 광적인 행동으로, 그것을 거부하여 정신이 이상해져버린 오카다와, 그것을 견디며 혹은 그것을 즐거워하며, 그것을 거부한 오카다에게 잔인한 린치를 가한 분대장 들, 그리고 그것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본 우리들 중 누가 진짜 광기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일까? 나는 전쟁이라는 광기를 견디지 못한 오카다의 신경에서,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건강함을 느낀다.
--- 다나카 히데미쓰 「사요나라」 중에서

스스로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테지만 그는 자존심의 작용으로 생겨난, 무엇인가에 대한 적대의식에 끊임없이 탄력을 붙여가고 있는 소년이었다. 상처받기 쉬운 자존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끊임없이 승리감에 굶주려 있었다.

--- 오다 사쿠노스케 「비」 중에서

출판사 리뷰

무뢰파 작가란, 제2차 세계대전 종결 직후의 혼란기에 반속(反俗), 반권위, 반도덕적 언동으로 시대를 상징한 일련의 작가들(다자이 오사무, 사카구치 안고, 다카미 준, 오다 사쿠노스케, 다나카 히데미쓰)을 말한다. ‘파’라고는 하지만 동인지나 결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시 중의 억압에서 해방된 사람들이 공감을 담아 명명한 이름이다. 그들은 1930년대 중후반부터 작가로서의 위치를 확보했으며, 반속 · 반질서를 바탕으로 하는 무뢰적 자세도 그 시기에 이미 형성되어 있었으며, 전후 그것이 단번에 분출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크게 나누면 2가지 경향이 있었다. 하강적인 자세로 파멸을 향한 생활의 무뢰에 무게를 두었던 작가와, 기존 리얼리즘에 대한 부정에서 새로운 방법의 추구에 무게를 두었던 작가가 있다. 전자로는 다자이, 사카구치, 오다, 다나카 등이 있으며, 후자로는 다카미, 이시카와 준, 이토 세이 등이 있으나 무뢰파로서의 주류적 존재는 전자들이었다. 그 이름의 유래는 다자이의 ‘나는 리베르탱입니다. 무뢰파입니다. 속박에 반항합니다. 때를 얻은 듯한 얼굴을 하는 자들을 조소합니다.’(판도라의 상자)에 있다고 한다. 생활과 표현, 양면에서 반속을 관철시키려 했던 그 자세를 문학적 성실함으로 보아 지금도 열렬한 지지를 보내는 독자들이 적지 않다.

이 책에는 그처럼 치열한 삶을 살았던 무뢰파 작가들의 단편소설 가운데 우리나라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작품을 중심으로 수록 작가마다 2편씩 선별하여 실었다. 단, 다자이 오사무는 우리나라에도 이미 전집이 나와 있기에 2작품 모두 처음 소개하는 작품은 아니며, 다나카 히데미쓰의 「여우」도 예전에 소개된 적이 있으나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기에 다시 실었다.
일본의 혼란기를 치열하게 살았던 무뢰파 작가들의 삶과 문학은 단순히 기존 권위에 대한 부정과 도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혼란기 일본에서의 인간적 고뇌를 상징하는 것이며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려는 순수한 인간의 몸부림이었다. 순수한 인간이었기에 혼란 속에서 그 고뇌는 더욱 컸던 것이리라. 그들의 고뇌를 함께 경험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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