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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안개 속에서 _ 헤르만 헤세

1부 혼자가 되는 연습
교토에 도착한 저녁 _ 나쓰메 소세키 (에세이)
손님 _ 알베르 카뮈 (소설)
감히 측량할 수 없는 고독 _ 에밀리 디킨슨 (시)
산책 _ 기 드 모파상 (소설)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 _ 어니스트 헤밍웨이 (소설)
너도 그런 적이 있는가 _ 헤르만 헤세 (시)

혼자 _ 세라 티즈데일

2부 어둠 속의 목소리들
신호수 _ 찰스 디킨스 (소설)
우수 _ 안톤 체호프 (소설)
「블룸펠트, 중년의 독신남」 중에서 _ 프란츠 카프카 (소설)
『인간의 대지』 중에서 _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에세이)

밤에 _ 프란츠 카프카

3부 고독 이후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_ 헤르만 헤세 (에세이)
『어느 여행자의 편지』 중에서 _ 조르주 상드 (편지)
거리의 유령 : 런던 모험기 _ 버지니아 울프 (에세이)
기다리다 _ 다자이 오사무 (소설)
사방이 어둠 속으로 잠겨드는 밤 _ 에밀리 브론테 (시)

저자 소개 20

나쓰메 소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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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sume Soseki,なつめ そうせき,夏目 漱石,나츠메 긴노스케 夏目 金之助

나쓰메 긴노스케는 원치 않은 아이로 태어났다. 갓난아기 적에 시오바라 가문으로 입양되었다가 양부모의 이혼으로 다시 나쓰메 집안으로 돌아왔다. 부모한테서 인정받지 못한 불안한 환경 속에서도 면학에 전념하여 동경제국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친구에게서 ‘돌로 이를 닦는다’는 뜻의 소세키라는 호를 물려받았다. 그는 거의 평생 어디 한곳에 정착하지 못했다. 이곳저곳에서 영어교사 생활을 전전하다가 일본 정부의 명령으로 영국 국비유학을 떠났지만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채 신경쇠약에 시달리면서 자기의 본령을 찾느라 유학생활도 실패했다. 소세키는 뒤늦게 하늘이 내린 자기 재능과 자신이 가야 할
나쓰메 긴노스케는 원치 않은 아이로 태어났다. 갓난아기 적에 시오바라 가문으로 입양되었다가 양부모의 이혼으로 다시 나쓰메 집안으로 돌아왔다. 부모한테서 인정받지 못한 불안한 환경 속에서도 면학에 전념하여 동경제국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친구에게서 ‘돌로 이를 닦는다’는 뜻의 소세키라는 호를 물려받았다. 그는 거의 평생 어디 한곳에 정착하지 못했다. 이곳저곳에서 영어교사 생활을 전전하다가 일본 정부의 명령으로 영국 국비유학을 떠났지만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채 신경쇠약에 시달리면서 자기의 본령을 찾느라 유학생활도 실패했다. 소세키는 뒤늦게 하늘이 내린 자기 재능과 자신이 가야 할 인생을 깨달았다. 도쿄로 돌아온 후 서른일곱 살이 돼서야 기분 전환 삼아 소설 한번 써보지 않겠냐는 친구의 권유로 단편을 하나 쓴 것이 소세키의 인생을 바꾸었다. 그것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였다. 그는 내면에 가득했던 세계를 한꺼번에 폭발시켰다. 『도련님』, 『풀배게』, 『우미인초』, 『산시로』, 『그 후』, 『문』, 『마음』, 『열흘 밤의 꿈』, 『봄날의 소나티네』, 『현대 일본의 개화』, 『나의 개인주의』 등 소설, 하이쿠, 수필, 평론, 한시, 강연, 여러 장르에 걸쳐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일본인이 사랑하는 국민작가 중 한 사람이 되었지만 정작 본인은 국가와 권력을 멀리하였다. 문부성이 박사학위를 선사하자 그것을 거부하였다.

“박사가 아니면 학자가 아닌 것 같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한다면 학문은 소수 박사들의 전유물이 되어 학자적인 귀족이 학문권력을 장악하는 폐해가 속출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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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까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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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t Camus

그 모든 것에 항거하며 인간의 부조리와 자유로운 인생을 깊이 고민한 작가이자 철학자. 1913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몽드비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알사스 출신의 농업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1차 세계대전 중 전사하고, 청각 장애인 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가난 속에서 자란 카뮈는 유년 시절의 기억과 가난, 알제리의 빛나는 자연과 알제 서민가의 일상은 카뮈 작품의 뿌리에 내밀하게 엉기어 있다. 구역의 공립 학교에서 L. 제르맹이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났다. “나는 자유를 빈곤 속에서 배웠다.”라고 하기도 했는데, 알제리에서 보낸 유년기는 그가 작가적 양분을 공급받
그 모든 것에 항거하며 인간의 부조리와 자유로운 인생을 깊이 고민한 작가이자 철학자. 1913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몽드비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알사스 출신의 농업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1차 세계대전 중 전사하고, 청각 장애인 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가난 속에서 자란 카뮈는 유년 시절의 기억과 가난, 알제리의 빛나는 자연과 알제 서민가의 일상은 카뮈 작품의 뿌리에 내밀하게 엉기어 있다. 구역의 공립 학교에서 L. 제르맹이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났다. “나는 자유를 빈곤 속에서 배웠다.”라고 하기도 했는데, 알제리에서 보낸 유년기는 그가 작가적 양분을 공급받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의 도움으로 장학금을 받고 1923년 프랑스 중등학교 리세에 입학했고, 이후 알제리 대학에 입학했으나 1930년 폐결핵으로 자퇴를 했다. 결핵 발병으로 누구보다 좋아했던 축구를 포기했다.

바칼로레아 준비반에서 철학 교수이자 에세이스트인 장 그르니에를 만나 큰 영향을 받고, 이후 평생 그와 교류를 이어갔다. 어렵게 대학에 진학해 고학으로 다니던 알제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해 철학을 전공하는 동시에 정치 활동과 연극 활동에 집중했다. 1932년 장 그르니에가 주도한 조그만 월간 문예지 [쉬드Sud]를 통해 처음으로 첫 에세이 『새로운 베를렌Un Nouveau Verlaine』을 발표했다. 대학시절에는 연극에 흥미를 가져 직접 배우로서 출연한 적도 있었다. 결핵으로 교수가 될 것을 단념하고 졸업한 뒤에는 진보적 신문에서 신문기자로 일했다. 한때 공산당에 가입했던 그는 비판적인 르포와 논설로 정치적인 추방을 당하기도 했고, 프랑스 사상계와 문학계를 대표했던 말로, 지드, 사르트르, 샤르 등과 교류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몰입했다.

1937년 첫 산문집 『안과 겉』을 발표하고, 이듬해부터 [알제 레퓌블리켕]의 기자로 활동하다가 1940년에 파리로 활동 무대를 옮겨 [파리수아르]의 기자가 된다. 독일에 점령당한 파리에서 검열을 피해 지방으로 옮긴 [파리수아르]를 따라 이동하는 동안에도 집필 활동에 매진한다. 초기의 작품 『표리(表裏)』(1937), 『결혼』(1938)은 아름다운 산문으로, 그의 시인적 자질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1942년 7월, 자신의 첫 소설이자 대표작이 되는 문제작 『이방인(異邦人) L' tranger』을 발표하면서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이즈음 레지스탕스에 가담하여 프랑스 해방 운동에 참여한 카뮈는 철학 에세이 『시시포스 신화』(1943), 희곡 작품 「오해」(1944) 등 다양한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저항운동에 참가하여 레지스탕스 조직의 기관지였다가 후에 일간지가 된 [콩바]의 편집장으로서, 모든 정치 활동은 확고한 도덕적 기반을 가져야 한다는 신념에 바탕을 둔 좌파적 입장을 견지했다. 또 집단적 폭력의 공포와 악성, 부조리함을 알레고리를 통해 형상화한 소설 『페스트』로 문학계의 대반향을 일으켰고 1951년에는 마르크시즘과 니힐리즘에 반대하며 제3의 부정정신을 옹호하는 평론 『반항적 인간』을 발표하여 지성계에 큰 논쟁을 촉발한 사르트르와 격렬한 논쟁을 벌이다가 10년 가까운 우정에 금이 가기도 했다. 하지만, 1956년 『전락』을 발표하면서 사르트르에게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방인』, 『시지프의 신화』를 발표하며 문학가를 넘어 사상가로도 인정받기 시작했고, 실존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엄마, 무명인, 그리고 나의 ‘죽음’을 연달아 맞닥뜨리며 삶의 부조리를 고뇌하는 모습은 이후 오랫동안 수많은 독자를 실존주의의 세계로 이끈다. 「오해」와 「칼리굴라」라는 희곡을 쓰며 희곡 작가로도 활동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57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대문호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알제리 독립을 둘러싼 논쟁에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 가지만, 카뮈는 생전 인터뷰에서 “자동차 사고로 죽는 것보다 더 부조리한 죽음은 상상할 수 없다.”라고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1960년 1월 4일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이때 사고 차량에 있던 가방에서 초고 형태로 발견된 『최초의 인간』은 1994년에야 빛을 보게 된다.

이 외에도 『여름』, 『유배지와 왕국』, 『행복한 죽음』, 『정의의 사람들ㆍ계엄령』, 『결혼, 여름』, 『태양의 후예』, 『젊은 시절의 글』, 『스웨덴 연설ㆍ문학 비평』, 『최초의 인간』, 『여행일기』, 『단두대에 대한 성찰ㆍ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전락·추방과 왕국』, 『안과 겉』 등의 작품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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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디킨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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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ily Dickinson

19세기와 20세기의 문학적 감수성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 소설가.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작은 칼뱅주의 마을 애머스트에서 태어나 평생을 보냈으며, 평생 결혼하지 않다. 평생 살며 1800편의 시를 남겼다. 자신의 시를 직접 출판하거나 세상에 거의 공개하지 않았지만 소수의 친구와 가족, 지인들에게 보여주기를 좋아했다. 자연을 사랑했으며 동물, 식물, 계절의 변화에서 깊은 영감을 얻었다. 말년에는 은둔생활을 했으며 시작 활동을 했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매우 높은 지성을 표현하고 있으며 또한 뛰어난 유머 감각도 보여준다. 운율이나 문법에서 파격성이 있어서 19세기에는 인정받지 못했으
19세기와 20세기의 문학적 감수성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 소설가.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작은 칼뱅주의 마을 애머스트에서 태어나 평생을 보냈으며, 평생 결혼하지 않다. 평생 살며 1800편의 시를 남겼다. 자신의 시를 직접 출판하거나 세상에 거의 공개하지 않았지만 소수의 친구와 가족, 지인들에게 보여주기를 좋아했다. 자연을 사랑했으며 동물, 식물, 계절의 변화에서 깊은 영감을 얻었다. 말년에는 은둔생활을 했으며 시작 활동을 했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매우 높은 지성을 표현하고 있으며 또한 뛰어난 유머 감각도 보여준다. 운율이나 문법에서 파격성이 있어서 19세기에는 인정받지 못했으나, 20세기에는 형이상학적인 시가 유행하면서 더불어 높은 평가를 받았다.

40여 편씩 시를 직접 필사하고 편집한 손제본 형태의 파시클fascicle 40권에 보관했고 더러는 편지봉투를 뜯어 그 안에 적어두기도 했다. 주변의 일상과 자연을 시에 담아 사랑, 죽음, 상실, 영원함, 아름다움, 글쓰기와 읽기의 즐거움을 노래한 시인은 당시 청교도의 엄숙함이나 가부장적 질서, 물질주의 생활양식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리듬과 형식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사유했다. 현재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미국 시인 가운데 한 명이며, 많은 후배 시인들과 비평가는 물론 음악가와 예술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는 페미니스트 뮤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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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드 모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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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y de Maupassant

프랑스의 소설가로 1850년 노르망디에서 태어났다. 1869년 파리에서 법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으나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발발하자 학업을 중단하고 자원입대했다. 종전 후 해군성에서 일하면서 어머니의 지인인 플로베르에게 문학 수업을 받으며 글을 썼다. 플로베르에게 소개받은 에밀 졸라, 투르게네프, 알퐁스 도데 등의 문인들과 친교를 나눴다. 1880년 에밀 졸라를 비롯한 6명의 작가가 펴낸 단편집 『메당의 저녁』에 「비곗덩어리」를 발표했다. 이 첫 작품으로 문단의 극찬을 받으며 데뷔했다. 이후 10년간 「목걸이」, 「텔리에의 집」, 「두 친구」 등 300여 편의 단편과 『
프랑스의 소설가로 1850년 노르망디에서 태어났다. 1869년 파리에서 법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으나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발발하자 학업을 중단하고 자원입대했다. 종전 후 해군성에서 일하면서 어머니의 지인인 플로베르에게 문학 수업을 받으며 글을 썼다. 플로베르에게 소개받은 에밀 졸라, 투르게네프, 알퐁스 도데 등의 문인들과 친교를 나눴다. 1880년 에밀 졸라를 비롯한 6명의 작가가 펴낸 단편집 『메당의 저녁』에 「비곗덩어리」를 발표했다. 이 첫 작품으로 문단의 극찬을 받으며 데뷔했다. 이후 10년간 「목걸이」, 「텔리에의 집」, 「두 친구」 등 300여 편의 단편과 『여자의 일생』, 『벨아미』 등 6편의 장편을 펴내며 프랑스의 대표적인 소설가로 자리매김했다. 신경 질환과 여러 질병을 앓다가 1892년 자살을 기도했으나 실패하고 정신병원에서 수용되었다. 이듬해인 1893년, 4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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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네스트 밀러 헤밍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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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nest Hemingway

1899년 7월 21일 미국 일리노이 주 오크 파크(현재의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의사 아버지와 성악가 어머니 사이를 두었고, 여섯 남매 중 장남이었다. 평생을 낚시와 사냥, 투우 등에 집착했으며, 다방면에 걸쳐 맹렬한 행동을 추구하고, 행동의 세계를 통해 자아의 확대를 성취하려 했다. 그러한 인생관은 그의 작품 전체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고등학생 때 학교 주간지 편집을 맡아 직접 기사와 단편을 썼으며,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1917년 [캔자스시티 스타]의 수습기자로 일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8년 적십자 야전병원 수송차 운전병으로 이탈리아
1899년 7월 21일 미국 일리노이 주 오크 파크(현재의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의사 아버지와 성악가 어머니 사이를 두었고, 여섯 남매 중 장남이었다. 평생을 낚시와 사냥, 투우 등에 집착했으며, 다방면에 걸쳐 맹렬한 행동을 추구하고, 행동의 세계를 통해 자아의 확대를 성취하려 했다. 그러한 인생관은 그의 작품 전체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고등학생 때 학교 주간지 편집을 맡아 직접 기사와 단편을 썼으며,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1917년 [캔자스시티 스타]의 수습기자로 일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8년 적십자 야전병원 수송차 운전병으로 이탈리아 전선에서 복무하기도 했으며,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다리에 중상을 입고 귀국했다. 휴전 후 캐나다 [토론토 스타]의 특파원이 되어 유럽 각지를 돌며 그리스-터키 전쟁을 보도하기도 했다. 1921년, 해외 특파원으로 건너간 파리에서 스콧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 등 유명 작가들과 교유하는 등 근대주의적 작가들과 미술가들과 어울리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23년 『세 편의 단편과 열 편의 시(詩)』를 시작으로 『우리들의 시대에』, 『봄의 분류(奔流)』,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발표했다.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삶을 그린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소설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그후 1920년대 ‘로스트 제너레이션(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피츠제럴드’와 ‘포그너’와 함께 3대 작가로 성장하였다.

그의 첫 소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를 1926년에 발표했는데, 헤밍웨이의 대다수 작품은 1920년대 중반부터 1950년대 중반 사이에 발표되었다. 전쟁 중 나누는 사랑 이야기를 다룬 전쟁문학의 걸작 『무기여 잘 있거라』(1929)는 그가 작가로서 명성을 얻는 데 공헌했으며, 1936년 『킬리만자로의 눈』,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1940)는 출판되자마자 수십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린다. 이후 10년 만에 소설 한 편을 발표하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52년 인간의 희망과 불굴의 정신을 풀어낸 『노인과 바다』를 발표하여 큰 찬사를 받았으며,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통해 “인간은 패배하지 않는다. 인간은 파괴될 수 있지만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고 우리에게 속삭인다.

그러나 이 해에 두 번의 비행기 사고를 당하는데, 말년에 사고의 후유증으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고, 집필 활동도 막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행동의 규범에 철저한 만큼이나 죽음과 대결하는 삶의 성실성과 숭고함을 작품에 투영하려 노력해왔다. 1959년에는 아이다호 주로 거처를 옮겼고, 1961년 여름, 헤밍웨이는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1961년 케첨의 자택에서 엽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대표작으로는 1929년 『무기여 잘 있거라』, 1940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952년 『노인과 바다』 등이 있다. 그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후 10여 년 넘게 긴 침체기를 겪었지만, 인생의 절망과 희망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신념을 잃지 않으면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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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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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ann Hesse

1877년 독일 남부 칼프에서 선교사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기숙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망쳐 나왔으며, 서점과 시계 공장에서 일하며 작가로서의 꿈을 키웠다. 첫 시집《낭만적인 노래》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인정을 받았고, 1904년《페터 카멘친트》가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06년 자전적 소설《수레바퀴 아래서》를 출간했고, 1919년 필명 ‘에밀 싱클레어’로《데미안》을 출간했다. 가장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한 1920년에는《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클라인과 바그너》《방랑》《혼란 속으로 향한 시선》을 출간했다. 1946년《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과 괴
1877년 독일 남부 칼프에서 선교사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기숙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망쳐 나왔으며, 서점과 시계 공장에서 일하며 작가로서의 꿈을 키웠다. 첫 시집《낭만적인 노래》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인정을 받았고, 1904년《페터 카멘친트》가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06년 자전적 소설《수레바퀴 아래서》를 출간했고, 1919년 필명 ‘에밀 싱클레어’로《데미안》을 출간했다. 가장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한 1920년에는《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클라인과 바그너》《방랑》《혼란 속으로 향한 시선》을 출간했다. 1946년《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과 괴테상을 수상했다. 1962년 8월 9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소설과 시, 수많은 그림을 남겼고, 평생을 통해 진정한 자유와 행복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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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티즈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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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ra Teasdale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병약했던 그녀의 곁에는 늘 간호하고 돌봐주는 사람이 있었으며, 결혼 후에 출간한 시집 『사랑 노래』로 1918년에 미국 시협회가 주관하는 컬럼비아대학교 시상(퓰리처상)을 최초로 수상하였다. 그 외에, 『강물은 바다로』, 『불꽃과 그림자』, 『달의 음영』, 『오늘-밤 별들』과 유고 시집 『이상한 승리』를 남겼다. 간결성과 명료성, 고전적인 형식, 열정적이고 낭만적인 주제를 사라 티즈데일 시의 주요 특징으로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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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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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John Huffam Dickens

1812년 2월 7일 영국 포츠머스에서 존 디킨스와 엘리자베스 디킨스의 여덟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호인이었으나 다소 경제관념이 부족한 아버지 때문에 가족은 이사를 반복해야 했고, 결국 1824년 빚 때문에 채무자 감옥에 수감되기에 이른다. 열두 살의 디킨스는 홀로 하숙을 하며 구두약 공장에서 병에 라벨 붙이는 작업을 했는데, 매일 10시간씩 일하며 주당 6실링을 받았던 이때의 혹독한 경험은 후일 여러 작품의 토대가 되었다. 집안 형편으로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속기술을 배워 의회 기자로 일했으나 문학에 대한 꿈을 접지 않았고, 1833년 『먼슬리 매거진』에 첫 단편 「
1812년 2월 7일 영국 포츠머스에서 존 디킨스와 엘리자베스 디킨스의 여덟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호인이었으나 다소 경제관념이 부족한 아버지 때문에 가족은 이사를 반복해야 했고, 결국 1824년 빚 때문에 채무자 감옥에 수감되기에 이른다. 열두 살의 디킨스는 홀로 하숙을 하며 구두약 공장에서 병에 라벨 붙이는 작업을 했는데, 매일 10시간씩 일하며 주당 6실링을 받았던 이때의 혹독한 경험은 후일 여러 작품의 토대가 되었다.

집안 형편으로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속기술을 배워 의회 기자로 일했으나 문학에 대한 꿈을 접지 않았고, 1833년 『먼슬리 매거진』에 첫 단편 「포플러 거리의 만찬」을 발표하면서 작가로서 첫 걸음을 내디뎠다. 이후 어렸을 때 불리던 애칭 ‘보즈’를 필명으로 사용하여 런던의 일상을 그린 단편들을 연재, 1836년 『보즈의 스케치』라는 제목으로 묶어 출간했다. 이듬해 디킨스의 첫 장편소설 『픽윅 클럽 여행기』가 크게 주목받았고, 연이어 『올리버 트위스트』(1838)가 대중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으면서 당대 인기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니컬러스 니클비』(1839), 『오래된 골동품 상점』(1841), 『바너비 러지』(1841) 등 초기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도 사회의 모순과 서민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들을 계속 발표했고, 1843년 12월에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출간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크리스마스 캐럴』(1843)은 인색한 실업가 스쿠루지의 개심을 묘사하여 작자의 그리스도교적 사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후 『종소리』(1844), 『화롯가의 귀뚜라미』(1845), 『생의 전투』(1846), 『유령의 선물』(1848)까지 네 권의 크리스마스 서적을 더 출간했다. 1850년 발표한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비롯한 『블릭 하우스』(1853), 『어려운 시절』(1854) 등의 후기작에서는 사회의 여러 계층을 폭넓게 다룬 이른바 파노라마적인 사회소설로 접근했다.

잡지사 경영, 자선사업, 공개 낭독회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을 계속하는 사이에도 『두 도시 이야기』(1859), 『위대한 유산』(1861) 등 선이 굵은 작품들을 계속 발표했으며,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도 잊지 않았다. 1870년 열두 권으로 기획된 대작 『에드윈 드루드의 미스터리』 집필 도중 심장마비로 사망, 문인 최고의 영예인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시인 묘역에 안장되었다.

주요 작품으로 『올리버 트위스트』, 『돔비와 아들』, 『데이비드 코퍼필드』, 『두 도시 이야기』, 『황폐한 집』, 『위대한 유산』, 『우리 모두의 친구』, 『로스트 : 에드윈 드루드의 미스터리』, 『홀리데이 로맨스』 등 많은 소설과 『이탈리아, 물에 비친 그림자의 기억』 등의 에세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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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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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on Pavlovich Chekhov,Антон Павлович Чехов

러시아의 대문호이자 사실주의 희곡의 대가로 불리는 안톤 체호프(Антон П. Чехов, 1860∼1904)는 러시아 남부의 흑해 연안 항구 도시인 타간로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파벨은 항구도시 타간로크에서 잡화점을 운영했다. 그는 자식들에게 새벽 기도와 성가대 활동을 강요했는데, 그것이 작가의 유년 시절의 지각(知覺)을 지배하게 된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파산해 온 가족이 모스크바로 떠난 후 체호프는 타간로크에 혼자 남았다. 이때부터 체호프는 독립심과 가족 부양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갖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스스로 학비를 벌며 공부하던 그는 고학으로 중등학교를 마친 뒤
러시아의 대문호이자 사실주의 희곡의 대가로 불리는 안톤 체호프(Антон П. Чехов, 1860∼1904)는 러시아 남부의 흑해 연안 항구 도시인 타간로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파벨은 항구도시 타간로크에서 잡화점을 운영했다. 그는 자식들에게 새벽 기도와 성가대 활동을 강요했는데, 그것이 작가의 유년 시절의 지각(知覺)을 지배하게 된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파산해 온 가족이 모스크바로 떠난 후 체호프는 타간로크에 혼자 남았다. 이때부터 체호프는 독립심과 가족 부양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갖게 되었다.

어려서부터 스스로 학비를 벌며 공부하던 그는 고학으로 중등학교를 마친 뒤 1879년 모스크바대학 의학부에 입학했다. 재학 중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여 단편소설들을 쓰기 시작했고, 졸업 후 의사로 근무하면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에 나섰다. ‘안토샤 체혼테’, ‘내 형의 아우’, ‘쓸개 빠진 남자’와 같은 필명으로 생계를 위해 유머 잡지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초기 단편들은 쉽게 읽을 수 있는 가벼운 소품들이 대부분이었다. 1885년 12월 체호프는 레이킨의 초대를 받아 페테르부르크로 가게 된다.

거기서 드미트리 바실리예비치 그리고로비치와 알렉세이 세르게예비치 수보린을 알게 된다. 1884년 의사 자격을 얻은 후 결핵을 앓는 와중에도 의료 봉사와 글쓰기를 병행하며 풍자와 유머가 담긴 뛰어난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리고로비치는 체호프의 『사냥꾼』을 읽으면서 그의 위대한 재능이 소모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이 무렵 그에게 당대 최고의 작가 그리고로비치가 천재적인 재능을 낭비하지 말고 문학에 집중하라는 조언의 편지를 보내 온다.

이 충고 이후 1887년 봄 무렵부터 체호프는 이전과는 다른, 보다 객관적인 작가로 변모하게 된다. 한편으로 수보린은 체호프에게 고정 지면을 내주었고, 경제적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 그의 경제적 후원 덕택에 체호프는 원고 마감 시간과 주제의 제약과 같은 현실적 부담에서 벗어나 전업 작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황야』, 『지루한 이야기』, 『등불』 등을 발표하며 작가로서의 위치를 굳히게 되었고, 30세 때 시베리아 횡단 여행을 기점으로 사회문제를 주제로 한 작품을 많이 다루며 사회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이후 작가로서의 자각을 새로이 하여 단편집 『황혼』(1887)으로 푸슈킨상을 받고 희곡 『이바노프』(1887), 중편소설 『대초원』(1888)을 발표하며 그동안의 스타일에 작별을 고했다. 1890년에는 사할린 섬으로 가 당시 제정 러시아의 유형 제도를 면밀히 관찰하고 이에 관한 르포르타주 『사할린 섬』(1895)을 발표한다. 이 작품은 대중의 엄청난 주목을 받았으며, 사할린에서 만난 하층민 유형수들과 정부 제도의 부조리는 이후 발표되는 그의 작품이 민중의 삶에 더욱 밀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1892년 모스크바 근교의 멜리호보에 정착한 작가는 왕성한 창작열로 『6호실』(1892), 『문학 선생』(1889∼1894), 『롯실트의 바이올린』(1894), 『대학생』(1894), 『3년』(1895), 『다락이 있는 집』(1896), 『나의 삶』(1896), 『갈매기』(1896), 『농군들』(1897)과 같은 후기 걸작들을 집필했다.

한편으로 농민들을 무료로 진료하고, 톨스토이, 코롤렌코와 함께 기근(饑饉)과 콜레라 퇴치 자선사업을 펼쳤으며, 학교와 병원 건립 등 사회사업에도 참여했다. 1898년 지병인 결핵이 악화되어 크림 반도의 얄타로 이사한 체호프는 우울과 고독 속에서 나날을 보냈는데, 모스크바 예술극장 여배우 올가 크니페르와의 결혼으로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된다. 이 시기에 그는 『용무가 있어서』(1899), 『사랑스러운 여인』(1899),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1899), 『바냐 외삼촌』(1899), 『골짜기에서』(1900), 『세 자매』(1901), 『약혼녀』(1903) 등을 발표했다.

1904년 1월 17일 체호프의 생일에 초연된 [벚나무 동산]과 창작 25주년 축하연은 그에게 무한한 기쁨을 주었지만, 그의 건강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같은 해 6월 독일 바덴베일레르(Баденвейлер)로 아내 올가 크니페르와 요양을 떠나 거기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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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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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z Kafka

1883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보헤미아(현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나 독일어를 쓰는 유대인 사회에서 성장했다. 1901년 프라하 대학에 입학해 독문학과 법학을 공부했으며, 1906년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어릴 때부터 작가를 꿈꿔 1904년 「어느 투쟁의 기록」, 1906년 「시골의 결혼 준비」를 집필했고, 1908년 노동자상해보험공사에 취직한 이후로도 14년 동안 직장생활과 글쓰기 작업을 병행했다. 「선고」 「변신」 「유형지에서」 등의 단편과 『실종자』 『소송』 『성』 등의 미완성 장편, 작품집 『관찰』 『시골 의사』 『단식 광대』 등 많은 작품을 썼고 일기와 편지 등도
1883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보헤미아(현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나 독일어를 쓰는 유대인 사회에서 성장했다. 1901년 프라하 대학에 입학해 독문학과 법학을 공부했으며, 1906년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어릴 때부터 작가를 꿈꿔 1904년 「어느 투쟁의 기록」, 1906년 「시골의 결혼 준비」를 집필했고, 1908년 노동자상해보험공사에 취직한 이후로도 14년 동안 직장생활과 글쓰기 작업을 병행했다. 「선고」 「변신」 「유형지에서」 등의 단편과 『실종자』 『소송』 『성』 등의 미완성 장편, 작품집 『관찰』 『시골 의사』 『단식 광대』 등 많은 작품을 썼고 일기와 편지 등도 방대한 양을 남겼다. 인간 운명의 부조리성과 인간 존재의 근원적 불안에 대한 통찰을 그려내, 사르트르와 카뮈에 의해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았다. 1917년 폐결핵 진단을 받아 여러 요양원을 전전한 끝에 병이 악화되어 1924년 빈 근교의 한 요양원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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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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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oine Marie Roger De Saint Exupery

1900년 6월29일 프랑스 리옹의 몰락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19세 때 해군사관학교에 입학 시험에 실패한 뒤 생크루아 미술학교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21세 때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소위에 입관 되었으나 비행사고를 내고 예편되었다. 1920년 공군으로 징병되었다. 1921년 4월에 공군에 입대하여 비행사가 되었는데, 이는 그의 삶과 문학 활동에 큰 시발점이 되었다. 제대 후에도 15년 동안이나 비행사로서의 길을 걸었다. 1926년에는 민간 항공회사 라테코에르사에 입사하여 우편비행 사업도 하였다. 1923년 파리의 회사에 회계사로 입사하면서 시와 소설을 습작하다가 트럭 회사의
1900년 6월29일 프랑스 리옹의 몰락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19세 때 해군사관학교에 입학 시험에 실패한 뒤 생크루아 미술학교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21세 때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소위에 입관 되었으나 비행사고를 내고 예편되었다. 1920년 공군으로 징병되었다. 1921년 4월에 공군에 입대하여 비행사가 되었는데, 이는 그의 삶과 문학 활동에 큰 시발점이 되었다. 제대 후에도 15년 동안이나 비행사로서의 길을 걸었다. 1926년에는 민간 항공회사 라테코에르사에 입사하여 우편비행 사업도 하였다. 1923년 파리의 회사에 회계사로 입사하면서 시와 소설을 습작하다가 트럭 회사의 외판원으로 다시 입사한 후 틈틈이 비행 연습을 한다.

1929년 장편소설 『남방우편기(Ourrier sub)』로 작가로 데뷔하였다. 두 번째 소설 『야간 비행』으로 페미나상을 수상, 이후 『인간의 대지』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을 수상하였다. 『인간의 대지』는 같은 해 미국에서 『바람, 모래와 별들』이라는 제목으로 영문판이 번역·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40년에 나치 독일에 의해 프랑스 북부가 점령되자 미국으로 망명했다. “동화가 삶의 유일한 진실임을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다”고 말했던 생텍쥐페리는 이 시기에 『어린 왕자』를 집필했고, 1943년 미국 Reynal & Hitchcock 출판사에서 불문판과 영문판(캐서린 우즈 역)이 함께 출간되었다. 『어린 왕자』는 1946년 프랑스 Gallimard 출판사에서 다시 출간되었다. 『어린 왕자』는 1935년 비행 도중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나는 과정을 바탕으로 쓰였다. 생텍쥐페리의 대표작인 『어린 왕자』는 26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고 전 세계 1억 부 이상 판매되며 현재까지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 작품이다.

생텍쥐페리는 1943년에 프랑스로 돌아가 공군 조종사로 활동했으며, 1944년에는 제2차 세계대전 군용기 조종사로 지냈다. 1944년 33비행정찰대가 이동하고 이미 5회의출격을 초과하여 8회 출격 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출격하기로 한 7월 31일 오전 8시 반, 정찰 비행에 출격한다. 대전 말기에 정찰비행중 행방불명 되었다. 1944년 7월 31일 세상을 떠난 것으로 짐작한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회항하여 오는 길에 코르시카 수도에서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독일 전투기에 의해 격추당해 전사하였다고 한다. 유작 "성채I(tadelle)”는 이후에 친구들이 생텍쥐페리의 녹음본과 초벌 원고를 정리하여 1948년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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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상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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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Sand,본명 : 오로르 뒤팽 Aurore Dupin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다. 그녀의 아버지는 폴란드 왕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귀족 출신이고, 어머니는 파리 센 강변의 새 장수 딸로 가난한 서민 출신이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상드는 프랑스 중부 시골마을 노앙에 있던 할머니의 정원에서 루소를 좋아하는 고독한 소녀 시절을 보냈다. 18세 때 뒤드방 남작과 결혼했으나 순탄치 못한 생활 끝에 이혼하고, 두 아이와 함께 파리에서 문필 생활을 시작하여 <피가로(Le Figaro)>지에 짧은 글들을 기고하며 남장 여인으로 자유분방한 생활을 했다. 이때 여러 문인, 예술가들과 친교를 맺었는데, 특히 여섯 살 연하였던 시인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여성 작가다. 그녀의 아버지는 폴란드 왕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귀족 출신이고, 어머니는 파리 센 강변의 새 장수 딸로 가난한 서민 출신이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읜 상드는 프랑스 중부 시골마을 노앙에 있던 할머니의 정원에서 루소를 좋아하는 고독한 소녀 시절을 보냈다. 18세 때 뒤드방 남작과 결혼했으나 순탄치 못한 생활 끝에 이혼하고, 두 아이와 함께 파리에서 문필 생활을 시작하여 <피가로(Le Figaro)>지에 짧은 글들을 기고하며 남장 여인으로 자유분방한 생활을 했다. 이때 여러 문인, 예술가들과 친교를 맺었는데, 특히 여섯 살 연하였던 시인 뮈세, 음악가 쇼팽과의 모성애적인 연애 사건은 당시에 상당한 스캔들을 일으켰다. 또한 화가 들라크루아, 소설가 플로베르와의 우정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상드는 이처럼 72년의 생애 동안 우정과 사랑을 나눈 사람들이 2,000명이 넘는 신비와 전설의 여인이자 ‘정열의 화신’이었고, 프랑스 낭만주의 시대의 ‘사랑의 여신’이었다. 상드는 여성에 대한 사회 인습에 저항하여 여성의 자유로운 정열의 권리와 남녀평등을 주장한 처녀작 『앵디아나』(1832)를 발표하여 대성공을 거두었고, 같은 계열 작품인 『발랑틴』(1832), 90여 편의 소설 가운데 대표작인 자전적 애정소설 『렐리아』(1833)와 『자크』(1834), 『앙드레』(1835), 『한 여행자의 편지』(1834∼1836), 『시몽』(1836), 『모프라』(1837), 『위스코크』(1838)등 연이어 발표한 소설로도 큰 호평을 받았다.

이후에 장 레이노, 미셀 드 부르주, 라므네, 피에르 르루 등과 교제하면서, 그들의 영향으로 인도주의적이며 사회주의적인 소설을 썼다. 이 계열의 작품으로는 『프랑스 여행의 동료』(1841), 『오라스』(1841∼1842), 『앙지보의 방앗간 주인』(1845), 『앙투안 씨의 죄』(1845), 그리고 대표작이자 대하소설 『콩쉬엘로』(1842∼1843), 『뤼돌스타드 백작 부인』(1843∼1844), 『스피리디옹』(1838∼1839), 『칠현금』(1839), 『테베리노』(1845) 등이 있다. 또한 상드는 1844년의 『잔』을 필두로 해서 소박하고 아름다운 일련의 전원 소설들을 발표했는데, 이 계열의 작품으로는 『마의 늪』(1846), 『소녀 파데트』(1848∼1849), 『사생아 프랑수아』(1849), 『피리 부는 사람들』(1853) 등이 있다.

노년에는 방대한 자서전인 『내 생애의 이야기』(1847∼1855)를 집필하였고, 초기의 연애 모험소설로 돌아가서 『부아도레의 미남자들』(1857∼1858)과 『빌메르 후작』(1860), 『검은 도시』(1861), 『타마리스』(1862), 『캥티니양』(1863), 『마지막 사랑』(1866), 『나농』(1872), 손녀들을 위한 동화 『할머니 이야기』(1873∼1876) 등을 발표했다. 그리고 25편의 희곡을 포함하여, 평론과 수필, 일기, 비망록, 기행문, 서문, 기사 등 180여 편에 달하는 수많은 글을 남겼다.

특히 그녀의 편지들은 조르주 뤼뱅에 의해 파리의 클라시크 가르니에 출판사에서 총 26권으로 편집되었는데, 이 방대한 규모의 기념비적인 서간집은 세계문학사에서 서간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고 있다. 그동안 왕복 서간집으로는 『상드와 플로베르』(1904), 『상드와 뮈세』(1904), 『상드와 아그리콜 페르디기에』, 『상드와 피에르 르루』, 『상드와 생트뵈브』, 『상드와 마리 도르발』, 『상드와 폴린 비아르도』등이 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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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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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eline Virginia Woolf

본명은 애들린 버지니아 스티븐으로 188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모더니즘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평생 정신 질환을 앓으면서도 다양한 소설 기법을 실험하여 현대문학에 이바지하는 한편 평화주의자, 페미니즘 비평가로 이름을 알렸다. 빅토리아 시대 소위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 환경에서 자랐고, 주로 아버지에게 교육을 받았다. 비평가이자 사상가였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의 서재에서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오빠 토비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한 후 리턴 스트레이치, 레너드 울프, 클라이브 벨, 덩컨 그랜트, 존 메이너드 케인스 등과 교류하며 ‘블룸즈버리
본명은 애들린 버지니아 스티븐으로 188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모더니즘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평생 정신 질환을 앓으면서도 다양한 소설 기법을 실험하여 현대문학에 이바지하는 한편 평화주의자, 페미니즘 비평가로 이름을 알렸다.

빅토리아 시대 소위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 환경에서 자랐고, 주로 아버지에게 교육을 받았다. 비평가이자 사상가였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의 서재에서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오빠 토비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한 후 리턴 스트레이치, 레너드 울프, 클라이브 벨, 덩컨 그랜트, 존 메이너드 케인스 등과 교류하며 ‘블룸즈버리 그룹’을 결성하기도 했다. 이 그룹은 당시 다른 지식인들과 달리 여성들의 적극적인 예술 활동 참여, 동성애자들의 권리, 전쟁 반대 등 빅토리아시대의 관행과 가치관을 공공연히 거부하며 자유롭고 진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어머니의 사망 후 정신질환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아버지의 사망 이후 울프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다. 평생에 걸쳐 수차례 정신 질환을 앓았다. 1905년부터 문예 비평을 썼고, 1907년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리먼트]에 서평을 싣기 시작하면서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파도』 등 20세기 수작으로 꼽히는 소설들과 『일반 독자』 같은 뛰어난 문예 평론, 서평 등을 발표하여 영국 모더니즘의 대표 작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소설가로서 울프는 내면 의식의 흐름을 정교하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 내면서 현대 사회의 불확실한 삶과 인간관계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1970년대 이후 「자기만의 방」과 「3기니」가 페미니즘 비평의 고전으로 재평가되면서 울프의 저작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졌고, 「자기만의 방」이 피력한 여성의 물적, 정신적 독립의 필요성과 고유한 경험의 가치는 우리 시대의 인식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버지니아 울프는 픽션과 논픽션을 아우르며 다작을 남긴 야심 있는 작가였다. 그녀의 픽션들은 플롯보다는 등장인물들의 내면에 더욱 초점을 맞춘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해 쓰였다.

주요 작품으로는 소설 『출항』, 『밤과 낮』, 『제이콥의 방』, 『댈러웨이 부인』, 『파도』,『현대소설론』 등과 페미니즘 비평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에세이 『자기만의 방』과 속편 『3기니』 등이 있다. 1927년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쓰인 『등대로』를 발표하며 소설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고 『올랜도』, 『파도』, 『세월』 등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평화주의자로서 전쟁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쳐 왔던 울프는 1941년 독일의 영국 침공이 예상되는 가운데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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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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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zai Osamu,だざい おさむ,太宰 治,츠시마 슈지津島修治

1909년 6월 19일, 일본 아오모리 현 쓰가루 군 카나기무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가진 자로서의 죄책감을 느꼈고,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성장한다. 1930년, 프랑스 문학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도쿄제국대학 불문과에 입학하지만, 중퇴하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소설가 이부세 마스지[井伏_二]의 문하생으로 들어간 그는 본명 대신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35년 소설 「역행(逆行)」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1909년 6월 19일, 일본 아오모리 현 쓰가루 군 카나기무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가진 자로서의 죄책감을 느꼈고,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성장한다.

1930년, 프랑스 문학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도쿄제국대학 불문과에 입학하지만, 중퇴하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소설가 이부세 마스지[井伏_二]의 문하생으로 들어간 그는 본명 대신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35년 소설 「역행(逆行)」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35년 제1회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단편 「역행」이 올랐지만 차석에 그쳤고, 1936년에는 첫 단편집 『만년(晩年)』을 발표한다. 복막염 치료에 사용된 진통제 주사로 인해 약물 중독에 빠지는 등 어려운 시기를 겪지만, 소설 집필에 전념한다. 1939년에 스승 이부세 마스지의 중매로 이시하라 미치코와 결혼한 후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많은 작품을 썼다.

1947년에는 전쟁에서 패한 일본 사회의 혼란한 현실을 반영한 작품인 「사양(斜陽)」을 발표한다. 전후 「사양」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인기 작가가 된다. 그의 작가적 위상은 1948년에 발표된, 작가 개인의 체험을 반영한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을 통해 더욱 견고해진다. 수차례 자살 기도를 거듭했던 대표작은 『만년(晩年)』, 『사양(斜陽)』, 「달려라 메로스」, 『쓰기루(津?)』, 「여학생」, 「비용의 아내」, 등. 그는 1948년 6월 13일, 폐 질환이 악화되자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人間失格)』을 남기고 카페 여급과 함께 저수지에 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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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브론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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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ily Bronte,Emily Jane Bronte, 필명 : 엘리스 벨(Ellis Bell)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1818년 영국 요크셔주 손턴에서 목사인 패트릭 브론테와 마리아 브랜웰 사이에서 여섯 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그중 셋째 딸이 『제인 에어』로 영국 문학사에 길이 남은 작품을 쓴 샬럿 브론테다. 아버지는 목사였지만 문학에 조예가 깊었고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남매들은 10대 초반부터 산문과 시로 습작을 한다. 목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하워스 교구에서 자라났는데, 세 살 때 어머니가 사망하고 청소년기에 세 명의 언니들도 병사했다. 월터 스콧, 바이런, 셸리 등의 작품을 좋아했고, 이야기를 짓고 일기 쓰기를 즐겼다. 에밀리는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1818년 영국 요크셔주 손턴에서 목사인 패트릭 브론테와 마리아 브랜웰 사이에서 여섯 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그중 셋째 딸이 『제인 에어』로 영국 문학사에 길이 남은 작품을 쓴 샬럿 브론테다. 아버지는 목사였지만 문학에 조예가 깊었고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남매들은 10대 초반부터 산문과 시로 습작을 한다.

목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하워스 교구에서 자라났는데, 세 살 때 어머니가 사망하고 청소년기에 세 명의 언니들도 병사했다. 월터 스콧, 바이런, 셸리 등의 작품을 좋아했고, 이야기를 짓고 일기 쓰기를 즐겼다. 에밀리는 1847년 엘리스 벨이라는 남성의 가명으로 『폭풍의 언덕』을 출간한다. 목사의 딸로서 교사 생활을 잠깐 한 것이 전부인 평범해 보이는 그녀가 모든 사람에게 강렬한 충격을 주는 작품을 내놓은 것이다.

1846년 샬럿이 에밀리의 시를 발견하고는 출판사에 시집 출판을 문의하여 세 자매의 가명을 제목으로 한 공동 시집 『커러, 엘리스, 액튼 벨의 시 작품들』을 냈다. 1847년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과 앤의 『아그네스 그레이』가, 그리고 샬럿의 『제인 에어』가 출간되었다. 언니 샬럿이 쓴 『제인 에어』가 출간 즉시 큰 인기를 얻으며 성공을 거둔 것과 달리 『폭풍의 언덕』은 출간 당시 작품 내용이 지나치게 야만적이고 잔인하며 비윤리적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에밀리는 마치 자신이 직접 그 폭풍을 맞은 듯, 작품을 출간한 이듬해인 1848년, 폐결핵에 걸려 30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다.

에밀리는 『폭풍의 언덕』이라는 한 권의 대작으로 국내 소설가로만 알려져 있으나, 영미권 대학의 영문학과에서는 중요한 시인으로서 인정받고 있다. 에밀리는 어릴 때부터 가족의 잇따른 죽음을 경험해야 했지만 상상력을 통해 “죽음에서 아름다운 생명을 불렀”으며, 피아노와 외국어를 독학하면서 좁은 집에 머물렀지만 “성스러운 목소리로, 현실의 세상에 대해 속삭”였다.

에밀리 브론테의 다른 상품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배화여자대학교, 그리스도대학교, 성결대학교 등에 출강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중이다. 『아름다운 세상이여, 그대는 어디에』 『헌신자』 『워싱턴 블랙』 『노멀 피플』 『심장은 마지막 순간에』 『동조자』 『결혼이라는 소설』 『오 헨리 단편선』 『로마제국 쇠망사』(공역)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김희용의 다른 상품

프랑스 누벨 소르본에서 비교문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인문, 실용, 한국문학 등 편집 일을 배우다가 민음사에서 프랑스어 작품 담당 편집자로 자리 잡았다. 세계문학전집을 비롯하여 ‘밀란 쿤데라 전집’,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편집했다. 말레이시아로 이주하여 번역 일을 하며 지내고 있다.

박경리의 다른 상품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카리타스학 및 가톨릭 사회복지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 대학교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지냈으며 현재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또한 바른번역 소속으로 기회가 될 때마다 독일의 양서를 번역 및 소개하고 있다. 역서로는 《지혜를 읽는 시간》, 《아이디어가 없는 나에게》, 《만들어진 제국, 로마》, 《미안하지만 스트레스가 아니라 겁이 난 겁니다》 등이 있다.

이은미의 다른 상품

1975년 경상남도 거창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다.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04년 모스크바 국립사범대학교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분신」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5년 [대학문학상] 소설 부문에 당선되었고, 1996년 [문학과 사회]로 등단했다. 소설집 『고양이의,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를 위한 소설』, 『내 아내의 모든 것』, 『파우스트 박사의 오류』, 장편 소설 『고양이의 이중생활』, 『다시, 스침들』, 『우주보다 낯설고 먼』 등을 펴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악령』, 『카라마조프가
1975년 경상남도 거창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다.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04년 모스크바 국립사범대학교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분신」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5년 [대학문학상] 소설 부문에 당선되었고, 1996년 [문학과 사회]로 등단했다. 소설집 『고양이의,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를 위한 소설』, 『내 아내의 모든 것』, 『파우스트 박사의 오류』, 장편 소설 『고양이의 이중생활』, 『다시, 스침들』, 『우주보다 낯설고 먼』 등을 펴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 등을 번역했다. 현재 서울대학교에서 러시아 문학과 소설 창작을 강의하고 있다.

김연경의 다른 상품

20여 년간 문학 편집자로 책을 만들고 읽어왔다. 특히 일본 문학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품고 고전에서부터 근현대, 스낵 컬처까지 다양한 작품을 소개했다. 지금은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을 직접 옮겨 독자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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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6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272쪽 | 324g | 120*188*20mm
ISBN13
9791199936003

책 속으로

이부자리는 몹시 고마웠지만 위에 덮은 두 장도 아래에 깐 두 장도 그냥 요에 불과해서 어깨 언저리까지 다다스노모리의 바람이 으슬으슬 스며들었다. 인력거도 춥고 목욕탕도 춥고 마침내 이불 속까지 추운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교토에서는 솜을 넣은 소매 달린 자리옷을 만들지 않는다는 말을 주인에게 듣고서 교토란 참으로 사람을 춥게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나쓰메 소세키, 교토에서 도착한 저녁」중에서

이런 비극과 마주한 채 다뤼는 외딴 학교에서 가진 것 없는 투박한 삶에 만족하며 거의 수도사같이 지내고 있었다. 석회를 바른 벽과 좁은 침상, 하얀 목재 선반들, 우물, 매주 보급되는 물과 식량 덕분에 영주가 된 듯한 기분마저 느낄 때도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이렇게 눈이 내린 것이다. 아무런 경고 없이, 비라는 전조도 없이. 원래 그런 고장이었다. 사람 아닌 것들도 살아가기 혹독한 곳. 물론 사람이라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다뤼의 고향이었다. 그는 다른 곳에서는 언제나 추방당한 기분이 들곤 했다.
---「알베르 카뮈, 손님」중에서

완전히 혼자. 그는 내일도 혼자일 것이고 언제나 혼자일 것이며 그 누구도 그래 본 적 없을 만큼 혼자일 것이다.
---「기 드 모파상, 손님」중에서

“저 영감님 지난주에 자살하려고 했어.” 한 웨이터가 말했다.
“왜요?”
“절망적이었나 봐.”
“무슨 일로요?”
“아무것도 아닌 일로.”
“아무것도 아닌 일인지 어떻게 알아요?”
“돈이 많거든.”
---「헤밍웨이,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중에서

근무하기 외로운 역이라고 나는 말을 건넸는데, 저 위에서 내려다볼 때 내 관심을 사로잡은 것도 바로 그 점이었다. 방문객이 드물 것 같아서, 내가 달갑지 않은 방문객은 아니기를 바랐다.
---「찰스 디킨스, 신호수」중에서

결국 블룸펠트는 혼자 남을 것이다. 자기에게 종속된 어떤 생명체를 곁에 두며, 보호하고, 애정을 베풀고, 끊임없이 보살펴주고 싶은, 그런 나이든 여자들의 욕망 같은 게 그에게는 없다. 그런 목적이라면 고양이나 카나리아, 심지어 금붕어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것조차 여의치 않다면, 창가에 놓아둔 꽃으로도 만족할 것이다. 이에 반해 블룸펠트는 동반자를 원한다. 크게 돌봐줄 필요가 없고, 가끔 발길질을 해도 상처받지 않고, 급하면 길거리에서도 잘 수 있고, 그런데도 그가 원할 때면 짖고 뛰고 손을 핥아줄 수 있는 그런 존재.
---「프란츠 카프카, 블룸펠트, 중년의 독신남」중에서

완전한 밤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 진짜 삶은 찾아오지 않았다. 하늘엔 여전히 초승달이 떠 있다. 프레보가 비행기 뒤편으로 갔다가 샌드위치를 가지고 돌아온다. 나는 포도송이를 조금 떼어 먹는다. 배가 고프지 않다. 배도 고프지 않고 목이 마르지도 않다. 전혀 피곤하지도 않다. 이렇게 10년 동안 비행기를 몰 수 있을 것 같다. 달이 죽었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중에서

고독의 밑바닥까지 들여다봤던 자, 누구인가? 체념의 땅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자, 누구인가? 심연 너머로 몸을 숙이자, 시야가 캄캄해지면서 나는 끝도 없이 밑으로 떨어졌다. 피로에 무릎이 무너져 내릴 때까지 체념의 땅을 배회했지만, 길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을 영원처럼 여전히 계속해서 내 발 앞에 펼쳐졌다.
---「헤르만 헤세,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중에서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그들과 함께 가지 않은 것이 후회되더군. 하지만 갔더라면 그 또한 벌써 후회하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으로 나 자신을 위로했지. 나와 닮은 사람들과 살아가기가 불가능한, 그런 날들이 있지. 모든 것이 우울로, 자살로 이어지니까 말이야. 세상에서 그보다 슬픈 일은 없어. 그보다 우스운 것도 없지.
---「조르주 상드, 어느 여행자의 편지」중에서

도대체 나는 매일 여기 앉아서 누구를 기다리는 걸까요. 어떤 사람을? 아니요,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나는 인간을 싫어합니다. 아니, 무서워해요. 사람과 얼굴을 마주 보고 ‘별일 없으시죠.’, ‘날이 추워졌네요.’ 같은 마음에도 없는 인사를 주워섬기고 있자면 어째선지 나 같은 거짓말쟁이는 세상에 없을 것 같다는 괴로운 마음에 죽고 싶어집니다.
---「다자이 오사무, 기다리다」중에서

머리 위로는 구름 너머 구름이고,
아래로는 황야 너머 황야다 ;
그러나 황량함은 끝내 나를 꺾지 못하리;
나는 가지 않겠다, 갈 수 없다.

---「에밀리 브론테, 사방이 어둠 속으로 잠겨드는 밤」중에서

출판사 리뷰

“혼자 있는 시간은 정말 외로움뿐일까”_『고독 이야기』

두 번째 책 『고독 이야기』는 사람들이 가장 익숙하게 사용하지만 동시에 가장 오해하는 감정 중 하나인 ‘고독’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종종 고독을 외로움과 같은 의미로 말한다.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반드시 결핍을 뜻하지는 않는다. 때로 고독은 세상의 소음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이며, 감정과 사유가 가장 깊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고독 이야기』는 바로 그런 고독의 여러 얼굴을 문학 안에서 찾아가는 책이다.

찰스 디킨스는 공포와 불안을 통해 고독을 이야기하고,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늦은 밤 어느 바의 적막을 보여준다. 프란츠 카프카는 기묘한 이야기로 고립을 그려내며, 알베르 카뮈와 생텍쥐페리는 인간과 세계 사이의 거리를 바라본다. 안톤 체호프와 다자이 오사무는 조용한 슬픔을 이야기하고, 헤르만 헤세와 버지니아 울프는 혼자 있는 시간을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비춘다. 에밀리 브론테, 로버트 프로스트, 세라 티즈데일,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서는 더욱 섬세한 형태의 고독을 만날 수 있다. 짧은 문장 안에서 고독은 때로 위안이 되고, 때로 존재를 묻는 질문이 된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보다, 오히려 혼자일 때 더 깊이 읽히는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이 책은, 밤이 깊어질수록, 마음이 조용해질수록, 책 속의 문장들은 독자에게 더욱 선명하게 다가갈 것이다.

* 왜 지금, 다시 고전인가 - 작품이 아니라 감정과 풍경을 주인공으로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소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짧은 영상과 빠른 정보, 끊임없이 갱신되는 콘텐츠 사이에서 독서는 점점 더 속도를 요구받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역설적으로, 천천히 읽고 머무를 수 있는 이야기들을 찾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정원을 가꾸고, 식물을 들이고, 혼자 여행을 떠나고, 일부러 조용한 시간을 만들며 자신만의 리듬을 회복하려는 움직임들.『정원 이야기』와 『고독 이야기』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이 책들은 단순히 고전문학을 다시 소개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안에서 다시 필요해진 감정들, 다시 돌아보고 싶은 풍경들을 문학 안에서 찾아보려는 작업에 가깝다.

왜 사람들은 정원에 끌리는가.
왜 혼자 있는 시간을 지키려 하는가.
왜 우리는 여전히 밤이 되면 조금 더 솔직해지는가.

헤세와 카뮈, 버지니아 울프와 카프카, 모파상과 상드가 남긴 문장들은 오래전 쓰였지만, 오늘의 독자에게도 여전히 현재형으로 남아 있다. 「이야기의 낮과 밤」은 그 오래된 문장들을 다시 꺼내 와, 지금 우리의 삶 가까이에 놓아두고자 한다. 고전을 ‘읽어야 하는 책’으로 남기는 대신, 지금의 감정으로 ‘다시 만나는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서다.

독자는 더 이상 ‘누구의 작품인가’만을 따라가지 않는다. 대신 ‘나는 지금 어떤 시간을 지나고 있는가’, ‘내가 읽고 싶은 감정은 무엇인가’를 따라 책을 펼치게 된다. 이는 빠르게 소비되는 콘텐츠 시대 속에서 천천히 읽는 경험, 그리고 문장을 통해 자신만의 속도를 회복하는 독서 방식에 대한 제안이기도 하다.

*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문학 시리즈

「이야기의 낮과 밤」, 낮에는 세계를 읽고, 밤에는 자신을 읽는 이야기. 『정원 이야기』 와 『고독 이야기』는 이 시리즈의 시작이다. 앞으로도 정원과 고독을 넘어 또 다른 삶의 풍경들로 이어질 예정이다. 해외문학과 한국문학을 오가며, 하나의 감정과 하나의 풍경을 중심으로 새로운 앤솔러지를 만들어간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 속에서, 이 책들은 조금 천천히 머무르는 시간을 이야기한다. 끝없이 밀려드는 이야기들 사이에서, 독자 각자의 삶 안에 작은 정원 하나와 조용한 밤 하나를 남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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