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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eline Virginia Woo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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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여성이 픽션을 쓰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사소한 의견 하나를 제시하는 게 전부입니다.
---p.9 만일 셰익스피어에게 ‘주디스’라고 하는 재능이 뛰어난 누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 어쩌면 그녀는 사과 창고에 숨어 몰래 몇 장의 글을 끼적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썼다 해도 그것들을 조심스럽게 숨기거나 불태웠겠지요. ---p.75 걸작이란 오롯이 단독으로 빚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여러 사람이 오랜 세월에 걸쳐 함께 생각해 온 결과물이므로 한 사람의 목소리 이면에는 다수의 경험이 깔린 셈입니다. ---p.104 여성이라면 모두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치된 에프라 벤의 무덤에 꽃을 올려야 하겠지요. 그녀야말로 여성들이 자신의 생각을 말할 권리를 얻어 준 장본인이니 말입니다. ---p.105 19세기 초 중산층 가정에서는 단 하나의 거실을 공유했다는 사실 때문일까요? 여성이 글을 쓴다면 그녀는 가족 모두가 공유하는 거실에서 써야 했지요. 나이팅게일 양은 이에 대해 맹렬히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여성들은 삼십 분의 여유도 가질 수 없다……. 오롯이 자기만을 위한 시간 말이다.” ---p.105 가치를 매기는 일이 아무리 유쾌한 소일거리라 한들 그것은 더없이 헛된 일이며, 가치를 측정하는 이들의 판결에 따르는 것이야말로 가장 비굴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쓰고자 하는 바를 쓰는 것, 중요한 건 바로 그것이지요. ---p.164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들에 의해 좌우됩니다. 그러니 시는 지적 자유의 영향을 받지요. 여성은 단지 이백 년 동안만이 아니라 태초부터 늘 가난했으며, 아테네 노예의 아들보다도 지적 자유가 없었습니다. 자연히 여성에게는 시를 쓸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지요. ---p.167 그러나 리얼리티가 닿는 건 무엇이든 고정되어 영구적인 것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하루의 껍데기를 벗겨 내고 난 뒤 남는 것이며, 그것이 지나간 시간과 우리의 사랑, 그리고 미움에서 남겨진 것이겠지요. ---p.170 이제 나는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한 채 교차로에 묻힌 이 시인이 아직도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녀는 여러분과 내 안에, 그리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을 재우느라 오늘 밤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다른 많은 여성 안에 살아 있지요. ---p.1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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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에게 천재적인 누이가 있었다면?
울프가 주목한 것은 여성에게 재능이 있었느냐가 아니라 그 재능을 펼칠 조건이 주어졌느냐는 문제였다. 책의 화자는 가상의 대학 ‘옥스브리지’를 거닐다 잔디밭에 들어섰다는 이유로 제지당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대학 도서관에도 자유롭게 들어가지 못한다. 남성 대학의 풍성한 식사와 여성 대학의 소박한 식탁을 대비시키며 교육과 부, 기회의 차이를 드러낸다. 대영박물관에서는 남성들이 여성에 관해 수많은 책을 썼지만 정작 여성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무엇을 생각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찾기 어렵다는 사실과 마주한다. 울프는 여기서 셰익스피어에게 그와 똑같은 천재성을 지닌 누이 ‘주디스’가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를 상상한다. 셰익스피어가 교육받고 극장에서 재능을 펼치는 동안 그의 누이는 교육에서 배제되고 집안일과 결혼을 요구받았을 것이다. 이 가상의 인물을 통해 울프는 재능만으로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에도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물질적·사회적 조건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연간 500파운드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 울프는 마거릿 캐번디시와 애프라 벤, 제인 오스틴, 브론테 자매, 조지 엘리엇 등의 삶과 작품을 따라가며 여성 문학의 계보를 되살린다. 글을 써서 돈을 벌었던 애프라 벤에게서 중요한 전환점을 발견하고, 공동 거실에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 글을 써야 했던 제인 오스틴의 창작 환경에도 주목한다. 이어 가상의 작가 메리 카마이클을 통해 여성들이 남성과의 관계를 넘어 여성들 사이의 관계와 그동안 문학에서 다루지 않았던 삶을 자신의 언어로 쓰기 시작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 긴 탐색 끝에 “여성이 글을 쓰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명제에 도달한다. ‘연간 500파운드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은 단순한 소유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을 경제적 기반, 방해받지 않고 생각할 시간과 공간, 자신의 경험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할 자유를 뜻한다. 하나의 방에서 시작된 ‘자유’에 관한 이야기 『자기만의 방』의 힘은 주장만큼이나 그것을 펼쳐 보이는 방식에 있다. 울프는 논문처럼 정답을 제시하는 대신 ‘메리’라는 가상의 화자를 내세우고 실제 역사와 문학, 개인적 경험과 상상을 자유롭게 엮어 독자가 질문을 따라가게 한다. 그 과정에서 ‘자기만의 방’은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 여성이 자신의 생각과 언어를 지켜낼 수 있는 자유의 상징으로 확장된다. 울프가 묻는 것은 여성에게 재능이 있는가가 아니라, 그 재능을 펼칠 시간과 공간, 경제적 자유와 기회가 여성에게 충분히 주어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다. 여성의 교육과 사회 참여가 크게 확대된 지금, 울프가 보았던 풍경은 분명 달라졌다. 그렇다면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오늘의 여성에게 ‘연간 500파운드의 수입’은 무엇이며, 오늘의 ‘자기만의 방’은 어디에 있는가. 1929년에 쓰인 『자기만의 방』은 바로 그 질문에서 다시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