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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서론
II. 고독의 동기 III. 고독의 단점 IV. 고독이 상상에 미치는 영향 V. 고독이 우울한 마음에 미치는 영향 VI. 고독이 열정에 미치는 영향 VII. 고독이 빚어낸 나태함의 위험 VIII. 글을 마치며 요한 G. 치머만의 생애 |
Johann Georg Zimmer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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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성 간의 적절한 결합과 주변인들과의 친밀한 교류를 통해 현세의 궁극적 행복을 추구해야 함을 알아차린다. 이성의 가장 깊은 추론, 상상의 가장 높은 비상, 마음의 가장 섬세한 감수성, 과학의 가장 행복한 발견, 예술의 가장 귀중한 산물조차도 차갑고 쓸쓸한 고독의 영역에서는 미약하게만 느껴지고 불완전하게만 향유된다.
--- p.9 떠들썩한 사회적 기쁨을 고요하고 차분한 고독의 즐거움으로 바꾸게 되는 동기는 다양하고도 우발적이다. 그러나 그 최종적 사유가 무엇이든 간에 대개 그 동기는 현재의 제약에서 벗어나려는 데 있다. 그리하여 세상의 구속에서 벗어나 편안한 휴식의 달콤함을 맛보고 아무런 방해 없이 자유롭게 지적 능력을 행사하며 비웃음을 사지 않고도 종교적 의무를 이행하기 위함이다. --- p.31 고독한 나태와 무기력에 빠진 자는 마치 고인 물과 같이 불순과 부패로 빠져들고 만다. 부패한 정신과 더불어 육체 역시 고통에 시달린다. 이 같은 상태는 과도한 행동보다 더 치명적이며, 회복에 대한 모든 희망을 헛되고 덧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고질병과 같다. --- p.97 사회 안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고독한 상황에서 불운과 고통을 피할 유일한 방도라면 가치 있는 일에 마음을 쏟는 것이다 --- p.292 만족이란 취향과 재능, 성향이 유사한 이들과의 사회적 교류나 신중한 교감을 통하지 않고서 인위적으로 구해지는 것이 아니다. 인류가 그토록 만족스러운 결과를 이끌어낸 문명은 전적으로 사회적 원칙의 적절한 관리를 통해 이루어졌다. --- p.306 즉 타인의 다양한 기질을 참아내고 비뚤어진 성향에 맞춰줌으로써 결국 믿기 힘들 정도로 자신의 기질과 성향이 개선되고 이해력이 향상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행동을 통해 타인을 기쁘게 함으로써 드높은 기쁨을 경험하며 스스로의 자질 향상이라는 크나큰 혜택을 받게 된다. --- p.310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은 나의 경우 일상다반사와 직업적 의무를 잠시 내려두고 여유를 즐길 때 가장 숭고하고 만족스러운 고독의 기쁨을 체감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기쁨을 맛보고자 하는 모든 이들이 고독의 매력에서 비롯된 동일한 위로와 즐거움을 누리길 진심으로 바라는 바다. --- p.3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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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를 빛낸 세기의 고전
200년 동안의 ‘고독’ 베스트셀러 제2부 “행복의 열쇠는 혼자와 사회의 균형에 있다!” 《솔리튜드》는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랑받은 인류 역사의 손꼽히는 고전이자 요한 G. 치머만 ‘고독론’의 최종 결론에 해당한다. 치머만은 ‘고독’에 대한 인식이나 담론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에 《고독에 관하여Uber die Einsamkeit》를 통해 고독과 은둔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세상에 선사하며, 근대 고독 담론의 선구자이자 아버지로 꼽히게 된다. 쇼펜하우어 역시 그의 저서에서 치머만에게 받은 사상적 영향을 이야기한 바 있다. 《솔리튜드》는 《고독에 관하여Uber die Einsamkeit》의 2부이자 하편으로 고독이 내포한 수많은 가능성을 다룬다. 치머만은 고독의 달콤함만을 예찬한 고독 만능주의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놀라울 정도로 중도파에 가까웠다. 고독을 넘어 고립된 상태가 오래 지속되는 것은 무엇보다 위험하다고 말했다. 고독한 연구자는 실제 사회의 모습과 동떨어져 점점 자신만의 궤변 속에 잠기고, 외부와 차단된 유럽의 종교 집단에서는 온갖 추태가 목격되었다. 작가들은 고독한 가운데 방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지만, 그 지식의 활용법을 배울 수 있는 장은 오로지 사회뿐이었다. 18세기 유럽을 대표하는 의사였던 치머만은 자신이 임상 현장에서 목격한 수많은 사례와 방대한 독서를 통해 습득한 역사 지식에 기반하여 고독 연구에 몰두했다. 그리고 어찌 보면 극히 보편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행복이란 고독의 시간과 사회적 만족 사이의 균형에 있다는 것. 무려 기원전에도 과도하게 사회적 만족을 추구하던 이들은 상처를 입고 은둔했으며, 18세기의 고립된 이들은 고독이 내포한 어둠에 잠식당했다. 치머만에 따르면 인류 역사 내내 고요의 시간과 사회적 충만함을 함께 누린 이들만이 완전히 행복감을 느꼈다. 솔리튜드 = 스스로를 마주하는 상태 모든 인간에게는 ‘일시적 은둔’이 필요하다! 요한 G. 치머만이 정의하는 솔리튜드, 즉 고독이란 ‘우리의 정신이 스스로를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지적인 상태’다. 물리적인 상태가 아니며 가정, 마을, 서재는 물론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우리는 고독해질 수 있다. 오롯이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만 있다면 어디든 고독의 장이 되는 것이다. 다만 치머만이 《솔리튜드》를 통해 말하는 ‘이상적인 고독’은 단순한 은둔 상태가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전반적인 태도에 가깝다. 요란하고 물질적인 외적 만족에 매달리는 대신 소박한 자세를 견지하고 자연의 고요함을 즐기며 아끼는 주변인들과의 소소한 관계 속에서 만족을 찾는 것. 사회적 의무를 다하느라, 원치 않는 관계 속에서 애쓰느라 너무나 지치고 힘들 때 ‘일시적 은둔’을 통해 몸과 마음에 충분한 휴식을 주는 것. 그리하여 다시 일어설 힘이 생긴다면 사회와 인류에 적절히 힘을 보태는 것. 치머만은 우리 모두가 고독이라는 장치를 이용해 더 나은 삶을 찾길 바랐다. “우리는 고독하다. 우리는 착각하고 마치 그렇게 고독하지 않은 듯이 행동한다. 그것이 전부다.” 19세기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내용이다. 우리 모두는 어떠한 순간에, 혹은 본질적으로 고독하다. 평생을 바친 시험에 합격해도, 꿈에 그리던 직장에 다녀도, 최고의 친구와 우정을 나눠도, 영혼의 반려자와 사랑을 약속해도 우리는 어느 순간 고독한 자신과 직면해야 한다. 인생이란 어쩌면 고독을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고독을 다루는 일은 그렇기에 무척이나 중요하고도 어렵다. 요한 치머만은 고독이 쓸쓸함이 아닌 위로와 즐거움이길 바랐다. 독자들이 행복하길 바랐다. 동시대, 그리고 후대의 모든 이들이 고독을 잘 다루길 바라는 마음으로 인류에게 《솔리튜드》를 남겼다. 이제 치머만의 마지막 통찰을 만나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