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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ann He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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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밤의 꿈을 기억하고, 숙고 끝에 재현하고, 때로는 기록한 지 벌써 수십 년이 지났다. 당시 습득한 방법에 따라 그 의미를 탐구하는 한편, 꿈의 발자취를 더듬고 꿈에 귀기울이다보니 본능이 예리해지는 일도 생기고, 때에 따라서는 경고나 격려까지 읽어낼 수 있었다. 어쨌든 그런 기술로 보통 사람들보다 꿈의 세계와 좀더 친숙해졌고, 의식과 무의식 간의 소통이 한층 원활해진 것은 분명하다. 내가 정신분석학 책을 몇 권 접하고 실제로 정신분석까지 받아본 경험은 단순한 충격을 넘어 실질적인 힘들과의 만남이었다.
---p.13 「꿈의 극장」 중에서 옆에 서 있던 한 남자가 다른 승객들에게 우리에 관해 뭐라고 말했다. 아마 우리가 독일인인 것 같다고 말하는 듯싶었다. 경멸하는 투였고, 손가락으로 우리를 여러 번 가리키기도 했다. 나 또한 그런 행동에 흥분해서 과장된 몸짓으로 손가락질하며 맞대응했다. 그러자 남자가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나는(내 형편없는 영어가 생명의 위협이 될 수도 있다고 느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지 마시오!” 우리를 해치려는 계획을 실행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뒤의 일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위에서(아마 전차에서였을 것이다) 활기찬 거리를 내려다본 기억은 난다. ---pp.87~88 「1917년 7월 26일 일기」 중에서 그때 다시 어둠 속에서 한 인물이 나타났다. 그 역시 취한 듯했고 다리까지 후들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저 정도면 쉽게 넘어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지팡이를 휘둘렀고, 그다음엔 몸싸움을 벌여 제압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힘은 엄청났고, 그가 오히려 나를 제압했다. 그는 내 수중의 돈을 빼앗으며 보수로 가져가겠다는 식의 말을 했다. 처음엔 조끼 주머니의 동전 몇 푼만 가져간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가진 돈은 꽤 많았고, 알고 보니 그 돈을 몽땅 털렸다. 점점 더 섬뜩하고 위협적인 존재로 느껴진 이 남자의 이름은 ‘데미안’이었다. ---p.153 「1917년 9월 12일 일기」 중에서 내가 ‘수다쟁이’ 같다는 느낌은 평소에 종종 생기는 불편한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대화 상대를 배려하기 위해, 혹은 이 대화에 관심이 없다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쓸데없는 말을 주절주절 늘어놓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는 자주 그랬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면 사실 그 자리에 전혀 관심이 없는데도 가만히 침묵하고 있는 걸 견디지 못하고 불안감이나 일종의 의무감에서 아무 말이나 보태곤 했다. ---p.236 「1918년 1월 17일 일기」 중에서 간밤에 무척 많은 꿈을 꾸었다. 일종의 전시회 같은 곳이었는데, 여러 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구조였다. 일부는 우리집 같기도 했다. 나는 어떤 땐 전시회의 기획자이자 평론가 같았고, 어떤 땐 전시회에 참가한 화가 같았다. 전시회에서는 ‘레핀’이라는 러시아 화가의 그림과 소묘가 전면에 등장했다. 그 작품들을 유난히 치켜세웠는지 아니면 거부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내 판단이 불확실하고 기만적이고 틀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 레핀에 대해 덧붙이자면, 이 이름은 어느 책에선가 읽은 것 같다. 최근 나는 평생 사회적 궁핍만을 그림으로 그리다가 실제로 러시아에서 굶어죽은 러시아 화가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렇다면 그는 예술을 삶으로 증명한 사람이다. 그에 비하면 나 같은 예술가는 삶을 피해 예술로 도망친 인간에 불과하다. ---pp.306-307 「1918년 8월 13일 일기」 중에서 주위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맑고 선명했다. 세상 모든 것이 완벽한 질서 속에서 햇살처럼 명료했다. 이제는 어머니가 죽었으면서도 왜 여전히 살아 있는지 완벽히 이해되었고, 사람들이 왜 생김새와 관습, 언어는 달라도 본질적으로는 같고 나와 가까운 형제인지도 뼛속 깊이 이해되었다. 고통과 슬픔, 추함까지도 필연적이며 신이 의도했거나 그리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아름답고 밝게 바뀌어 세상의 질서와 기쁨을 소리쳐 말해주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이 깨달음의 산에 올라 지혜로워졌다는 사실을 완전히 자각하기 전에 어떤 행동으로 부름을 받았음을 느꼈다. ---p.385 「아름다운 꿈」 중에서 하루를 보내고 녹초가 되어버린 지금, / 내 간절한 바람이 / 별 총총한 밤하늘을 다정히 / 지친 아이처럼 맞아주었으면. 하던 일 모두 멈추고, / 하던 생각 모두 잊어버려라, / 이제 내 안의 모든 감각이 / 잠 속에 빠져들려 하나니. 보는 눈 없는 곳에서 영혼이 / 자유롭게 날개를 펼치려 하나니, / 밤이 그리는 마법의 원 안에서 / 천 번이나 깊게 살기 위해. ---pp.470~471 「잠자리에 들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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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가장 아름다운 밤의 유희다.”
무의식의 반영이자 창작의 원천으로서의 꿈 오늘 하루 겪은 일이 그날 밤 꿈에 나타나는 경험을 누구나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우리 내면에 영향을 미친 사건이 꿈으로 나타나는 무의식적 현상이다. 그중에는 별 의미 없는 가벼운 꿈도 있지만, 내면 깊숙이 자리한 욕망을 끌어내는 꿈도 있다. 무의식을 반영한 꿈은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나아가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한다. 헤세는 이러한 꿈의 기능에 주목하여 꿈을 기록하고 거기서 유의미한 메시지를 얻고자 했다. 헤세는 꿈이 지닌 무한한 창조성에도 매료되었다. 의식의 한계를 뛰어넘는 비현실적인 요소가 등장하는 꿈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는 이 ‘밤의 유희’를 놀이처럼 즐기면서 시를 쓰곤 했다. 다만 헤세는 모든 예술 활동을 꿈의 초현실성에 기대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꿈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은 예술가의 태만이며, 꿈이 주는 메시지에만 의존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 그러나 균형 잡힌 태도로 꿈을 대한다면 분명 꿈이 건네는 ‘선물’을 받을 수 있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우리는 꿈이 신의 뜻에 따른 소명이라든지 인간 삶의 주된 사안이 되어야 한다고 믿지 않는다. 그렇다고 꿈을 너무 적게 꾸거나 꿈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태도도 올바르지는 않다. 그렇다, 우리는 때때로 이 신비로운 심연을 들여다보고, 그 파편화된 이미지 속에서 어떤 ‘전체’와 ‘진실’의 단서를 발견하고,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꿈의 환영들이 이루는 선물을 받아야 한다. _24쪽 현실의 새장을 깨뜨리고 자아를 찾아가는 꿈의 기록 어릴 적부터 예민한 성격이었던 헤세는 제1차세계대전의 여파로 우울증을 앓다가 요양원에서 정신분석치료를 받게 된다. 그는 심리분석가 카를 융과 교류하면서, 융의 제자인 랑 박사에게 치료를 받으며 꾸준히 꿈을 기록했다. 헤세의 꿈 일기는 그날의 꿈을 기록한 내용과 꿈을 설명하는 글로 나뉘어 있다. 그는 단순히 꿈을 옮겨 적는 데 그치지 않고 꿈속 인물과 사건을 자신의 현실 경험과 연관 지어 분석했으며, 때로는 편지로 랑 박사와 꿈에 대한 해석을 주고받기도 했다. 헤세는 꿈을 기록할 때 학술적인 용어는 거의 쓰지 않고 스스로의 언어로 꿈을 이해하려 했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이를 먹으면서 잃어가는 어린 시절의 가능성, 즉 본래의 자아를 되찾고자 했다. 꿈속의 무질서한 언어를 최대한 일반 언어로 다듬어 문학으로 탈바꿈하면서, 자전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헤세에게 꿈이란 무의식을 뛰어넘은 의식의 예술이자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일기에는 꿈과 관련된 내용뿐만 아니라 지극히 사적인 일화도 다수 등장한다. 아내 미아와 세 아들의 이야기, 학창 시절 친구들과의 교류, 연극과 책에 대한 감상, 화가로서의 자아, 정원 가꾸기 등의 이야기에서는 인간 헤세의 솔직한 삶을 엿볼 수 있다. “시인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아” 도망쳤던 신학교로 돌아가 수업을 받는 악몽을 꾸거나, 내향적인 자신과 달리 사회성이 뛰어난 지인을 부러워하는 모습에서 그의 인간적인 매력이 드러난다. 1917년 9월 9일 꿈의 잔영: 나는 신학교를 연상시키는 장소에 있었다. (…) 학우들이 나를 어쩐지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았다(꿈에서 자주 있는 일이었다). 마치 내가 무슨 사고를 쳤거나 병이라도 앓고 있는 것처럼. (사실 현실에서도 당시 신학교를 도망치려던 시도가 좌절된 후 친구들은 나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갑자기 강렬한 아픔이 밀려왔다. 내 어린 사춘기 시절은 얼마나 아름답고 풍요롭고 비범했던가! 내 안에 얼마나 많은 가능성과 미래가 있었던가! 나는 대다수 친구보다 얼마나 뛰어났던가! 하지만 이제 그 모든 것이 허망하게 사라져버렸다. 연상: 마지막에 느꼈던 감정, 즉 행복하고 정신적으로 빛나던 청소년기의 찬란함이 되돌릴 수 없이 사라졌다는 감정은 내게 무척 익숙했고 일찍부터 자주 찾아왔다. 얼마 전에는 융 박사와도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그는 무의식에 집중하면서부터 당시의 많은 것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색채에 대한 강렬한 기쁨 같은 것들 말이다. _142쪽 『데미안』부터 『황야의 이리』까지, 꿈속에서 길어 올린 보석 같은 이야기들 헤세는 1916년부터 1927년까지 십 년 넘도록 정신분석과 꿈 해석을 활용해 내면으로 가는 탐사 여행을 떠났다. 이 경험은 그의 작품에 복잡성과 깊이를 더했고, 그 결과 『데미안』(1919)부터 『황야의 이리』(1927)에 이르는 걸출한 문학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꿈은 헤세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대상이었으며, 그의 작품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꿈은 네 영혼의 내용물을 들여다볼 수 있는 구멍이고, 그 내용물이란 세계 전체다”라는 헤세의 말처럼, 우리도 꿈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본다면 무의식에 숨겨진 보석 같은 이야기들을 길어 올릴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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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꿈’을 단지 백일몽이 아닌 ‘삶을 위한 레시피’로 삼은 작가의 뜨거운 기록이 있다. 무의식의 의식화, 그것은 바로 꿈을 현실로 살아내는 용기이며, 꿈을 꿈으로만 치부하지 않는 영혼의 혜안이자, 매일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눈부신 성장의 드라마다. 헤세의 아름다운 꿈 이야기를 통해 바로 당신의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찬란한 영혼의 여정을 떠날 수 있기를 꿈꾼다. 온 세상이 당신에게 등을 돌려도, 꿈은 바로 당신의 편이 되어줄 것이다. 꿈의 무의식은 현실의 의식을 지켜주는 최고의 반려자이자 다정한 파트너이기에. - 정여울 (작가, 『데미안 프로젝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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