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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1부 인간 동물 창조 질서: 진화는 얼마나 인간적인가? 영장류: 인간은 무엇인가? 직립 원숭이: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감각과 감성: 인간과 원숭이를 나누는 것은? 1.6퍼센트: 유인원은 인간일까? 주체의 계략: 우리는 동물에 대해 얼마나 아는가? 2부 인간의 눈에 비친 동물 양심의 동토대: 종교는 어떤 식으로 우리의 탯줄을 잘랐을까? ?나는 어떤 동물도 학대하지 않았다.?: 고대 이집트의 동물 양치기와 통치자: 고대 유대교의 동물 잃어버린 낙원: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동물 ?신이 황소에게 관심이나 있을까??: 기독교와 이슬람의 동물 위선적인 소 숭배: 힌두교와 불교의 동물 사상가들과 사랑하는 가축: 바로크와 계몽주의 시대의 동물 ?동물도 고통을 느낄 수 있을까??: 연민의 귀환 3부 새로운 동물 윤리 철문: 현대적 동물 윤리로 나아가는 길 보호냐, 권리냐?: 해방의 윤리학 종에 적합한 도덕: 인간과 동물의 윤리학 좋은 것, 더 좋은 것, 가장 좋은 것: 무지의 윤리학 4부 무엇을 해야 할까? 사랑하고 미워하고 먹고: 동물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일상적 혼돈 죽임에 관한 짧은 텍스트: 동물과 법 자연 보호냐, 쾌락 살해냐?: 동물을 사냥해도 될까? 햄과 치즈를 넘어: 우리는 동물을 먹어도 될까? 실험 인형으로서의 동물: 동물 실험은 정당한가? 감옥인가, 천국인가?: 동물의 삶에서 보는 동물원의 장단점 고독의 시대: 보존의 윤리학 화합하지 못하는 삼두 체제: 동물 보호, 동물 권리, 종 보호 쇼펜하우어의 세 단계: 무지의 실용주의 주 참고 문헌 각 장의 제사(題詞) 출처 옮긴이의 글 인명 찾아보기 |
Richard David Prec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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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생각하는 동물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생각하는 유일한 동물인 인간에 관한 이야기다.
--- 「첫 문장」 중에서 지배란 질서를 확립하고,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 규칙을 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서양 문명은 지난 수백 년 동안 야생 동물의 박멸과 경제 동물의 착취에서 거의 어떤 도덕적 문제점도 보지 못했다. 동물과 인간 사이의 명확한 경계 설정이 동물에 대한 사랑에서 괴롭힘에 이르기까지, 사육에서 도살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용을 가능케 했다. 논거는 간단했다. 인간은 신의 특별한 창조물이고, 동물과는 신의 창조 행위 속에서 그저 느슨한 실로 연결되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 p.17 우리 종의 진화를 좀 더 적절하게 이해하고 싶다면 바로 이 유산들과 결별해야 한다. 아무 데서나 장점과 목적을 거론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그래야 직립 보행을 위한 해부학적 능력이 진화의 압박에 의해 목적론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어쩌면 그 능력은 그저 하나의 새로운 가능성이었을지 모른다. 그에 대해 기껏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치명적인 변신이 아니어서 멸종에까지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직립 보행이 생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도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다. 우리 인류는 그저 여러모로 불리한 두 발 보행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매우 성공적으로 생존해 왔다는 사실만 분명히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 조상의 자유로워진 손은 문화적 진화의 행진 속에서야 비로소 진정한 장점으로 자리 잡았다. 문화적 진화는 불과 10만 년 전부터 아주 느리게 시작되었다. --- p.75~76 이렇듯 동물의 의식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는 항상 〈인간의 관점〉이 개입되어 있다. 우리는 일상의 행동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적당히 민감하게 감정을 이입한다. 다른 식으로는 서로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다른 동물들을 우리의 척도에 따라 평가하려는 경향도 그리 놀랍지 않다. 우리는 동물들에게 감정과 성격적 특징을 부여할 때가 많다. 그것도 철저하게 인간적 성격을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의 성격적 특징 외에 다른 것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 p.129~130 그에게 인간은 의심할 바 없이 아주 특별한 존재다. 인간만이 동물과 달리 신적인 로고스, 즉 보편적 이성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축복은 극소수에게만 내려지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그 능력 덕분에 무언가 특별한 존재, 즉 최소한 잠재적으로는 이성적 존재로 규정할 수 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정말 신적인 로고스를 믿은 최초의 철학자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개념이 단기간에 눈부신 성공을 거둔 것은 분명하다. 정치든 법이든, 수학이든 상업이든 곳곳에서 모든 것을 관장하는 이성에 관한 이야기가 회자된다. 감각으로 파악된 개인적 세계는 재빨리 토대를 잃고, 이제는 오직 저 위에서 신적인 이성이 밝게 비추는 추상적인 것의 영역만 중요해진다. --- p.199~200 디틀러와 벤담도 이미 동물의 〈권리〉를 이야기했지만, 솔트는 이 문제를 체계적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영국 대중에 최초로 〈동물권〉 철학을 제시했다. 지금껏 권리의 개념은 여전히 인간에게만 한정되어 있었다. 솔트는 빅토리아 시대에 가장 영향력이 컸던 철학자 스펜서를 소환했다. 스펜서는 모호한 인물이었다. 사회 다윈주의자로서는 진화론을 사회적 게임 법칙으로 끌어들였고, 자유주의자로서는 기독교적 가치관에 맞서 싸웠으며, 법철학자로서는 인간의 모든 자유가 타고난 〈권리〉라는 대원칙을 천명했다. 따라서 인간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도 되는 권리를 갖는다. 스펜서에 따르면 인간은 자유를 갖고 있기에 권리도 가진다. 솔트는 그것이 인간에게만 적용될 이유가 있느냐고 묻는다. 동물도 많은 것을 하거나 하지 않을 자유가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들의 자유도 마찬가지로 권리가 아닌가? 솔트의 생각은 명확했다. 〈감정과 경험이 의심할 바 없이 증명하듯이 실제로 권리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논리적으로 그것이 인간에게만 있고 동물에게는 없는 것이 될 수 없다.〉 --- p.285~286 동물권론자들은 인간이라고 해서 특별히 도덕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모든 특성 가운데 그 어떤 것도 오직 인간만의 것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의 윤리학은 더 이상 〈종 차별주의적〉이어서는 안 된다. 도덕 철학은 철저하게 동물로 확대되어야 한다. 싱어 같은 동물권 철학자들은 인간이 마침내 이 방향으로 걸음을 떼게 된 것을 인간 윤리학의 중요한 발전으로 여긴다. --- p.317 동물에 대해 적절한 생각을 가지려면 철학은 일단 우리가 동물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는 오만함을 내려놓아야 한다. 전통적 윤리학자든 현대적 동물권론자든 어떤 동물에게 존중할 만한 의식이 있고, 어떤 동물은 그렇지 않은지 마치 자로 잰 듯 확정해 버린다. 그러나 인간의 척추동물 뇌는 다른 뇌의 내면에 대해 실제로 무엇을 알고 있을까? 우리가 소나 달팽이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고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평가하고,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것을 우리 자신의 것과 비교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좀 더 신중한 자세로 미래의 윤리학을 우리에게는 없는 지식이 아니라 우리에게 분명히 존재하는 무지를 토대로 구축하는 편이 더 나을 듯하다. --- p.358 상황이 이렇다면 동물의 주체적 권리에서 시작하는 것 말고는 달리 길이 없어 보인다. 이 권리는 심지어 동물 보호법에도 이미 명시되어 있다. 그 첫 문장에 동물은 주변 세계가 아닌 〈공동 피조물〉로서 〈생명과 안녕〉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적혀 있으니까 말이다. 공동 피조물은 주체이지 객체가 아니라는 데 다들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왜 법적으로는 주체가 아니라 객체일까? --- p.401~402 우리는 지금도 동물 보호 정책을 무수한 죽음으로 채워 나가고 있다. 생각해 보라. 동물 보호법은 동물에게 고통과 아픔, 해를 가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규정하지만, 합리적 이유가 있을 때는 허용한다. 매년 2백만 건의 동물 실험이 정말 모두 합리적 이유일까? 가슴에 손을 얹고 대답하라고 하면 DFG나 연방 정부의 지도적 인물들 가운데 과연 몇 명이나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까? 아니면 로비나 생각 부족, 감수성 결핍, 비겁함 때문에 남들에게만 그것을 믿게 하려는 것은 아닐까? --- p.4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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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권리와 인간의 한계
인간 중심적 사고를 해체하는 철학적 성찰 독일 현대 철학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신간 『동물은 생각한다』가 출간되었다. 대중성과 사유의 깊이를 동시에 갖춘 철학자로 평가받아 온 프레히트가 이번 책에서는 〈동물의 권리〉와 〈인간의 한계〉에 대해 면밀하게 탐구한다. 우리는 동물을 사랑하고, 미워하고, 예뻐하고, 먹는다. 반려동물에게는 한없이 다정하지만, 식탁 위의 고기나 실험실의 동물에게는 냉담하다. 동물을 대하는 우리의 이 모순된 태도는 올바르고 도덕적으로 정당한가? 대량 사육, 동물 실험, 수많은 생물의 멸종을 고려하면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동물 문제를 재고해야 한다. 우리가 동물을 이용하고 지배하며 고통을 가할 권리는 대체 언제,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리고 동물과 환경의 무분별한 착취에 맞서 우리는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프레히트는 이 책에서 동물의 권리와 인간의 한계에 대해 끊임없이 반문하며, 우리가 직면한 난제들을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검토한다. 새로운 동물 윤리를 통해 우리는 동물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관계해야 하는지를 다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동물과 어떻게 구별했는가? 인간은 오랫동안 자신을 동물과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로 규정해 왔다. 직립 보행, 도구 사용, 언어, 그리고 이성은 인간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근거로 동원되었고, 그 결과 인간은 스스로에게 〈만물의 영장〉이라는 지위를 부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프레히트는 이러한 인간과 동물의 구분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적 구별일 뿐 자연에 의해 주어진 것도, 자연에서 있는 그대로 찾아낸 것도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것은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지배하는 데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설정한 인위적인 경계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책의 초반부에서는 다양한 과학적 발견과 연구 성과를 검토하며, 인간이 동물을 비교하고 평가해 온 방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인간의 기준으로만 해석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일부 능력은 인간과 동물 사이에 차이를 만들지만, 일부 능력은 그렇지 않〉음에도, 우리는 〈인간의 권리라는 이름으로 아무것도 묻지 않고 동물 자원을 무한대로 이용〉해 왔다. 프레히트는 이러한 태도로 인해 〈지난 수백 년 동안 야생 동물의 박멸과 경제 동물의 착취에서 거의 어떤 도덕적 문제점도 보지 못〉한 것은 아닌지 되묻는다. 인간은 동물을 어떻게 사유했는가?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결코 생물학적 사실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그것은 언제나 종교, 철학, 경제 구조 등 여러 요인과 얽히며 변화되어 왔기 때문이다. 농경 사회의 출현과 가축화는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 동물은 더 이상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계획적으로 번식되고 이용될 수 있는 자원〉으로 편입되었다. 인간은 자연을 정복할 수 있는 주체로 자신을 상정했고, 동물은 그 질서 속에서 기능과 효용에 따라 분류되었다. 프레히트는 〈인간이 자연을 폭력적으로 지배할수록 그들의 눈에 지배당하는 족속들은 점점 더 영혼이 없는 존재로 비칠〉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고대 이집트, 고대 유대교,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 기독교와 이슬람, 힌두교와 불교, 바로크와 계몽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동물을 어떻게 사유해 왔는지를 폭넓게 탐구해 나간다. 인간은 〈2천 년 넘게 주변 환경을 이용하고 착취하도록 창조된 세계의 합법적 지배자〉로 자리매김했다. 그 과정을 분석해 보면,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결국 각 시대와 문화가 선택한 결과일 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이를 통해 인간은 특별한 존재로, 동물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부차적인 존재로 이해하는 사고방식이 얼마나 오만한 전제 위에서 형성된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동물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 현대에 이르러 인간은 다시금 동물을 도덕적으로 사유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슈바이처는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무한대로 확장된 책임〉을 강조했고, 피터 싱어와 톰 리건은 〈윤리학에서 동물을 배제하는 것은 도덕적 수치〉라고 주장하며 동물의 권리를 요구했다. 도덕의 범위를 인간 너머 다른 동물로 확대해야 한다는 요청이다. 다시 말하자면, 〈동물은 살해당하지 않고 먹히지 않고 학대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프레히트는 이런 새로운 접근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 한계를 분명히 개진한다. 단일한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에는 위험이 따른다는 것이다. 동물은 인간과 동일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도덕적 고려의 대상에서 배제될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간의 개념과 사고 모델만 동물에게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동물의 능력까지 여전히 우리 종의 척도로 평가〉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동물 생명을 이처럼 대규모로 잔인하고 냉혹하게 경시했던 적은 인류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우리는 새로운 위계를 세우는 대신 위계를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 온 사고방식부터 재검토해야 한다. 우리는 동물과 어떻게 관계해야 하는가? 프레히트의 논의는 추상적인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반려동물, 육류 섭취, 대량 사육, 사냥, 동물 실험, 동물원 등 일상 속 구체적인 사례들을 차분히 분석한다. 인간은 동물 보호를 외치면서도 동시에 무자비하게 죽이는 데 주저함이 없다.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동물을 함부로 이용해도 된다는 식이다. 그 합당한 이유란 대체로 빈약하고, 실상은 경제적 효율과 편의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동물의 의식에 대한 우리의 이런 인식에는 항상 〈인간의 관점〉이 개입된다. 따라서 자연과 동물, 나아가 인간 자신에 대해 내리는 판단 역시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 프레히트는 〈동물에 대해 적절한 생각을 가지려면 철학은 일단 우리가 동물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다는 오만함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거듭 설파한다. 여기에 〈미래의 윤리학을 우리에게는 없는 지식이 아니라 우리에게 분명히 존재하는 무지를 토대로 구축하는 편이 더 나을 듯하〉다고 덧붙인다. 이 책은 독자에게 명료한 결론이나 절대적 행동 지침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인간이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며,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재정립할 것을 촉구한다. 동물 윤리를 다시금 정의한다는 일은 곧 인간이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자 하는가를 묻는 철학적 성찰의 과정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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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히트가 우리 종에 대해 말하고 인간의 특별한 창조 신화를 철저하게 파헤치는 대목이 퍽 흥미롭다. - 쥐트도이체 차이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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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인간의 지배적인 역할에 의문을 던진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 노르트도이처 룬트풍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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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혀 있지 않는 자세로 의욕적으로 쓴 유익한 책이다. - WDR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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