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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브라만의 아들 사마나들과 함께 고타마 깨달음 제2부 카말라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 곁에서 윤회 강가에서 뱃사공 아들 옴 고빈다 역자의 글 |
Hermann He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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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가 숲을 떠났을 때,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붓다와 고빈다는 그곳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지난 삶 또한 그 숲에 남겨둔 채 자신과 헤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천천히 걸으며 자신의 온 존재를 가득 채운 이 느낌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깊은 물 속으로 뛰어들듯 그는 그 느낌의 밑바닥까지, 그 원인이 자리한 곳까지 가라앉았다. 원인을 알아내는 것이야말로 사유의 본질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오직 그렇게 할 때만 느낌은 깨달음으로 바뀌어 사라지지 않고 하나의 실체가 되며, 그 안에 담긴 것을 빛줄기처럼 내뿜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싯다르타는 천천히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는 이제 자신이 더 이상 젊은이가 아니라 한 사람의 남자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뱀이 낡은 허물을 벗어버리듯 자신에게서 무언가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는 것도 깨달았다. 젊은 시절 내내 그와 함께했고, 한때는 그의 일부였던 것, 바로 스승을 모시고 가르침을 듣고자 하는 소망이 더 이상 그의 안에 없었다. 그는 자신의 길에 나타난 마지막 스승마저 떠나왔다. 가장 높고 지혜로운 스승, 가장 성스러운 분인 붓다조차 떠나왔으며, 그분과 헤어져야 했고, 그분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생각에 잠긴 채 더욱 천천히 걸으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었을까? 내가 가르침과 스승들에게서 배우려고 했지만, 그토록 많은 것을 가르쳐준 그들조차 끝내 내게 가르쳐줄 수 없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제1부 깨달음」중에서 오랫동안 싯다르타는 세속과 욕망의 삶을 살아왔지만, 그 삶의 일부가 되지는 않았다. 사마나로 지내던 뜨거운 세월 동안 억눌렸던 감각들이 다시 깨어났고, 그는 부를 맛보고 욕망을 맛보고 권력을 맛보았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사마나가 남아 있었고, 영리한 카말라는 그것을 정확히 알아보고 있었다. 여전히 생각하고, 기다리고, 단식하는 능력이 그의 삶을 이끌었다. 세속의 사람들, 아이 같은 사람들은 여전히 그에게 낯선 존재였으며, 그 역시 그들에게 낯선 존재였다. 세월이 흘렀다. 풍요로운 생활에 둘러싸인 싯다르타는 그 세월이 흘러가는 것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는 부자가 되어 어느덧 자신의 집과 하인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도시 밖 강가에는 자신의 정원도 갖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좋아했고, 돈이나 조언이 필요할 때면 그를 찾아왔다. 그러나 카말라를 제외하고 그와 가까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젊은 시절의 절정에서 단 한 번 맛보았던 그 높고 밝은 깨어 있음의 상태, 고타마의 설법을 듣고 고빈다와 헤어진 뒤 느꼈던 그 팽팽한 기대, 가르침도 스승도 없이 홀로 서 있던 당당함, 자기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신성한 목소리에 기꺼이 귀를 기울이던 유연한 마음은 서서히 하나의 기억으로 변했고 희미해져 갔다. 한때 가까이에 있었고 자신의 안에서 속삭이던 성스러운 샘물 소리는 이제 멀고 희미하게 들려올 뿐이었다. 그럼에도 사마나들에게서, 고타마에게서, 브라만인 아버지에게서 배운 많은 것들은 오랫동안 그의 안에 남아 있었다. ---「제2부 윤회」중에서 “잘 들어보게, 친구, 잘 들어보게. 나도 자네도 죄인이네. 죄인은 지금 죄인이지만 언젠가는 다시 브라흐마가 되고, 언젠가는 열반에 이르며, 붓다가 될 것이네. 그런데 보게. 이 ‘언젠가’라는 말도 착각이며 하나의 비유에 지나지 않네. 죄인은 붓다가 되기 위한 길을 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발전의 과정에 놓여 있는 것도 아니네. 다만 우리의 생각이 사물을 달리 그려낼 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뿐이지. 아니, 죄인 안에는 지금 이 순간, 바로 오늘 이미 미래의 붓다가 존재하고 있네. 그의 미래는 이미 온전히 그 안에 있지. 자네는 그 사람 안에서, 자네 자신 안에서, 그리고 모든 사람 안에서 되어가고 있는 붓다,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붓다, 숨겨진 붓다를 존중해야 하네. 친구 고빈다, 세상은 불완전한 것도 아니고 완전함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고 있는 것도 아니네. 아니, 세상은 매 순간 완전하네. 모든 죄는 이미 그 안에 은총을 품고 있고, 모든 어린아이 안에는 이미 노인이 있으며, 모든 갓난아이 안에는 죽음이 있고, 모든 죽어가는 사람 안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이 자신의 길을 얼마나 걸어왔는지 알 수 없네. 강도와 도박꾼 안에는 붓다가 기다리고 있고, 브라만 안에는 강도가 기다리고 있지. 깊은 명상 속에서는 시간을 없애고, 지나간 삶과 지금의 삶과 앞으로 올 삶을 모두 동시에 존재하는 것으로 바라볼 수도 있네. 그러면 모든 것이 선하고, 모든 것이 완전하며, 모든 것이 브라만이네. 그래서 내게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선하게 보이네. 죽음도 삶처럼, 죄도 성스러움처럼, 영리함도 어리석음처럼 선하게 보이지. ---「제2부 고빈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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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을 따라가는 삶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길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답을 배운다. 무엇이 옳은 삶인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성공하는지 누군가는 끊임없이 말해준다. 그러나 남이 알려준 답을 충실히 따랐는데도 마음 한편이 비어 있는 순간이 찾아온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는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싯다르타는 누구보다 배우기를 원했고 누구보다 진리를 갈망했다. 브라만의 아들로 자라 경전을 익혔으며, 집을 떠나 사마나들과 함께 혹독한 고행을 경험한다. 마침내 완전한 깨달음을 이룬 고타마 붓다까지 만나지만, 그 앞에서도 싯다르타는 멈추지 않는다. 붓다의 가르침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아무리 완전한 가르침이라 해도 다른 사람이 깨달은 진리를 그대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싯다르타의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는 카말라에게 사랑을 배우고, 카마스바미와 함께 장사하며 재산을 모으고, 욕망과 쾌락의 세계를 경험한다. 수행자의 삶과는 가장 멀어 보이는 곳까지 걸어가면서 그는 자신이 그토록 경계했던 삶 속으로 깊이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을 잃는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방황을 실패라고 말하지 않는다. 싯다르타에게 고행이 필요했던 것처럼 욕망도 필요했고, 사랑이 필요했던 것처럼 절망과 상실도 필요했다. 한때 버리고 싶었던 삶의 순간들이 훗날에는 모두 하나의 길이었음을 그는 강 앞에서 비로소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 작품에서 강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수많은 목소리를 품으면서도 하나의 강으로 존재한다. 싯다르타는 뱃사공 바수데바와 함께 강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삶 역시 이와 같다는 사실을 배운다. 기쁨과 슬픔, 사랑과 미움, 탄생과 죽음은 서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삶 안에서 함께 존재한다. 그래서 『싯다르타』의 깨달음은 삶을 떠나 얻는 것이 아니다. 삶 한가운데로 들어가 사랑하고, 실패하고, 욕망하고, 후회하고, 다시 시작하며 얻는다. 싯다르타는 더 이상 완벽한 스승이나 완벽한 가르침을 찾아 헤매지 않는다. 자신이 살아온 모든 시간을 받아들이면서 비로소 자기 자신의 삶과 화해한다. 1922년에 발표된 『싯다르타』가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어느 길이 옳은지 끊임없이 정답을 요구받는 오늘의 독자에게 이 작품은 다른 질문을 건넨다. 누군가의 답을 따라가는 대신, 자신의 삶을 끝까지 살아볼 수 있는가. 헤르만 헤세는 싯다르타의 긴 여정을 통해 삶에서 겪은 어떤 경험도 쉽게 버려지는 시간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찾는 답은 어쩌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상처와 실패까지 품고 끝까지 살아낸 자기 자신의 삶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