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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두 세계 … 10
2장 카인 … 48 3장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처형된 죄인 … 88 4장 베아트리체 … 126 5장 새는 힘들게 싸워 알을 깨고 나온다 … 167 6장 야곱의 싸움 … 201 7장 에바 부인 … 243 8장 종말의 시작 … 291 |
Hermann Hesse
헤르만 헤세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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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속에서 스스로 우러나오는 대로 살아 보려 했을 뿐이다. 그게 왜 그리도 힘들었을까?
---p.6 그건 정말 다행이었다. 우리 집엔 평화와 질서, 안식이 있다는 것, 의무와 올바른 양심, 용서와 사랑이 있다는 것. 그리고 한 걸음만 내달리면 어머니 품으로 도망칠 수 있는 곳에 저 시끄럽고 조야한 것, 음침하고 폭력적인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 역시경이로운 일이었다. 그런데 가장 신기한 건 이 두 세계가 서로 얼마나 맞닿아 있는가, 얼마나 가까이서 공존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p.12 어떤 장소에서건, 어떤 놀이를 하건, 어떤 일을 하건, 어떤 생각을 하건 휘파람 소리가 파고 들어오지 않는 곳은 없었다. 그건 나를 종속적으로 만들었고 이제는 나의 운명이 되었다. ---p.43 자기감정의 일부를 생각으로 바꾸는 걸 배운 어른은 아이에게는 이런 생각이 없다고, 그래서 경험도 당연히 없을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내 생애에 그때만큼 이 경험하고 고통을 당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p.66 “만일 동물이나 인간이 어떤 특정한 일에 자신의 모든 주의력과 의지를 집중시킨다면, 그걸 이루어 내고 말아. 그게 다야. 네가 말한 바도 정확히 바로 그거야. 어떤 사람을 충분히 세심하게 바라봐. 그럼 너는 그에 관해 그 자신보다 더 많이 알게 될 거야.” ---p.103 “운명과 마음은 하나의 개념에 대한 두 이름이다.”그 말을 난 이제 이해했던 것이다. ---p.155 “새는 힘들게 싸워 알을 깨고 나온다. 그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부숴야만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p.168 “전 음악을 아주 좋아하는데, 음악이 별로 도덕적이지 않기 때문이어서라고 생각해요. 다른 건 모두 도덕적이에요. 저는 그렇지 않은 것을 찾고 있습니다. 도덕적인 것에선 늘 고통만 받았거든요.” ---p.185 각자에게 진짜 소명은 단 하나였다.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이다. ---p.237 “사랑은 간청해서는 안 돼요. (…) 또한 요구해서도 안 되죠. 사랑은 자신 속에서 확신에 이르는 힘을 가져야 하는 거예요.” ---p.2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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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세계를 깨뜨리고 스스로에게 다가가는 여정
『데미안』의 서문에서 헤르만 헤세는 자신이 삶을 완벽하게 꿰뚫어 보고 정돈된 의미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고백한다. 이 고백은 소설 전체를 관통한다. 『데미안』이 그리는 성장은 곧게 뻗은 상승의 과정이 아니다. 방황과 실패, 불안과 끌림을 온몸으로 통과하며 한 인간이 마침내 자기 자신에게 다가가는 여정이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불안과 혼란에 휩싸인 젊은이들에게 『데미안』이 강렬하게 다가간 것은, 기존의 가치와 질서를 다시 확인시켜 주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근본부터 의심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뒤 새로운 삶의 방향과 의미를 찾던 젊은 세대에게 헤세는 완성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선과 악을 나누는 익숙한 기준에 의미를 던지고, 자기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스스로 따라가야 한다고 말할 뿐이다. 『데미안』이 한 세대를 넘어 시대의 상징으로 남은 힘은 위안이나 해답에 있지 않다. 익숙한 답을 의심하고 스스로 길을 찾아가도록 만드는 단호한 질문에 있다. 『데미안』의 울림은 헤세가 이야기를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생의 고통을 직접 통과한 사람의 자리에서 써 내려갔다는 데에서도 비롯된다. 가족의 죽음과 아내의 투병, 스스로 겪은 심리적 위기 속에서 헤세는 칼 구스타프 융의 정신분석에 깊은 영향을 받으며 작품을 집필했다. 그래서 싱클레어의 방황은 정교하게 통제된 성장담이라기보다,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기 위해 실패와 이탈을 거듭하는 한 인간의 기록에 가깝다. 정신적 지주인 데미안 역시 정답을 알려 주는 완벽한 스승이 아니다. 그는 싱클레어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세계의 경계를 끊임없이 흔들고,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도록 이끄는 존재다. 미완성으로 완성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위한 문학 그래서 『데미안』의 성장은 완성으로 끝나지 않는다.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내 안의 수많은 목소리 가운데 진정 나의 것은 무엇인지, 마침내 찾아낸 자신을 어떻게 살아 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끝내 닫히지 않는다. 출간 후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데미안』이 끊임없이 새롭게 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작품은 삶의 정답을 가르치는 대신, 더 이상 자신의 삶을 남이 정해 준 답에 맡길 수 없는 순간까지 독자를 데려간다. 결국 『데미안』이 말하는 자기 발견은 ‘진짜 나’를 찾아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발견한 자신을 온전히 살아 내는 일에 가깝다. 한 세계를 깨뜨린 뒤에는 또 다른 세계를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 그렇기에 싱클레어의 여정은 20세기 초의 한 청년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자신이 누구인지 묻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선택해야 하는 모든 인간에게 여전히 현재형인 이야기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