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부
2부 3부 4부 5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
George Sand,본명 : 오로르 뒤팽 Aurore Dupin
조르주 상드의 다른 상품
이재희의 다른 상품
|
1.
지금 저는 아주 비참합니다. 저는 평상시와 다르지요. 제가 당신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당신이 한 남자를 사랑할 수 있는지 없는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제 생각의 답은 ‘아니오!’인데, 이 말은 상상만으로도 매우 끔찍해서 표현하기조차 힘겹습니다. --- 본문 중에서 2. “꿈을 꾸어서도 안 되고 기도도 하면 안 될 일이네요. 산다는 것에 만족하고 순진하게 어느 선량한 신을 믿어야 할 것 같군요. 허영심만 없다면 인간은 그것으로도 충분할 거예요. 하지만 인간은 신을 검토하고 신의 작품을 재검토하기를 원하지요. 인간은 신을 알고 심문하여 신을 자신의 필요에 따라 유리하게 만들고 고통의 책임자로 돌리기를 원합니다. 인간은 신을 자신과 대등하게 만들기를 원해요. 시를 만들고 하늘과 땅 사이에 그토록 실망시키는 수많은 꿈을 설치한 것은 당신의 교만이에요. 신은 당신의 비참함의 장본인이 아닐까요?” --- 본문 중에서 3. “그가 자살했다고? 불경한 사람. 도대체 그 사람은 어떤 죄를 범했을까? 그는 우리의 기도를 받을 자격이 없어요. 수도원장님은 성지에 그가 묻히는 것을 거절했대요. 그는 틀림없이 어떤 가증스러운 짓을 했을 거예요. 그처럼 관대하고 성스러운 원장님이 그런 조처를 했을 정도니까요. 용서를 단념하고 자기의 잘못을 인정해서 자살한 사람은 마음에 부끄러운 상처가 있었을 거예요. 그를 동정하지 맙시다. 더구나 영원한 형벌을 받은 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수도사가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물러갑시다. 밤새도록 그를 지키는 것은 수도사의 일입니다. 그는 악마를 쫓는 주문을 할 수 있어요. 만일 악마가 그의 먹이를 요구하러 오면 수도사는 그 악마를 쫓아낼 것입니다. 떠납시다.” --- 본문 중에서 |
|
조르주 상드의 많은 작품들 중에서 가장 분류하기 힘들고 가장 호되게 비난받은 소설이다. 주인공 렐리아는 상드의 제2의 필명이 될 정도로 네쉬(Nessus)의 피막처럼 상드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또한 조르주 상드 자신도 그런 결합을 여러 번 되풀이하여 꾀했다. 우리는 열정적인 시인들이 렐리아(상드)에게 바친 수많은 시들과, 상드의 얼굴에 침을 뱉듯이 그 이름을 내던지며 신랄하게 매도하는 독설가들의 수많은 풍자문들을 동시에 찾아볼 수 있다.
이 형이상학적인 소설−아마도 조르주 상드는 이 작품에서 평생의 관심사였던 위대함의 비밀을 간파하려고 시도했으리라−은 그녀에게는 물론이고 낭만주의 사조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우리는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이 살아 있는 존재라기보다는 사상과 은유를 인격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렐리아는 사랑하고 믿고 기도하기를 원하지만 분별력이 없다. 렐리아는 사랑을 할 수 없고 신앙을 가질 수도 없다. 그녀는 영원한 의심, 정신적 불모, 목적 없는 인생에 대한 환멸이라는 선고를 받은 ‘구제불능의 렐리아’이며 또한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렐리아를 정열적으로 사랑하는 이상주의자 스테니오는 이런 렐리아로 인해 절망한다. 절망 속에서 스테니오는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되고 마침내 자살에 이른다. 한편 미치광이가 된 마뉘스는 렐리아의 목을 조른다. 트랑모르만이 이 책의 등장인물들을 짓누르는 저주로부터 벗어난다. 조르주 상드의 수많은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은 새로운 출발점에서 끝난다. 독자들은 ‘희망’이라는 단어가 쓰라림과 절망으로 가득찬 이 소설의 마지막 단어들 중 하나이며, 이를 통해 무(無)에 귀착되지 않는 문을 열어두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리라. 이 시(詩)적인 소설은 때때로 과장되었고 냉정하다. 1839년도 판의 서문에서 조르주 상드 자신도 이 작품의 내용이 장황하며 수사적 허식이 많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여러 장(章)에서 나타나고 있는 서정성은 그녀의 어느 작품보다도 뛰어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