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3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보헤미아(현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나 독일어를 쓰는 유대인 사회에서 성장했다. 1901년 프라하 대학에 입학해 독문학과 법학을 공부했으며, 1906년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어릴 때부터 작가를 꿈꿔 1904년 「어느 투쟁의 기록」, 1906년 「시골의 결혼 준비」를 집필했고, 1908년 노동자상해보험공사에 취직한 이후로도 14년 동안 직장생활과 글쓰기 작업을 병행했다. 「선고」 「변신」 「유형지에서」 등의 단편과 『실종자』 『소송』 『성』 등의 미완성 장편, 작품집 『관찰』 『시골 의사』 『단식 광대』 등 많은 작품을 썼고 일기와 편지 등도 방대한 양을 남겼다. 인간 운명의 부조리성과 인간 존재의 근원적 불안에 대한 통찰을 그려내, 사르트르와 카뮈에 의해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았다. 1917년 폐결핵 진단을 받아 여러 요양원을 전전한 끝에 병이 악화되어 1924년 빈 근교의 한 요양원에서 사망했다.
나는 오로지 콱 물거나 쿡쿡 찌르는 책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읽는 책이 단 한주먹으로 정수리를 갈겨 우리를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하러 우리가 책을 읽겠는가? 한 권의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만 한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세트 3 (양장)
작품은 나이고 내 이야기들은 나다,나와 관계없는 것은 아무 것도 쓰지 못한다.
한국경제
그들은 편안하게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의견을 나누다 보니 전망이 나쁘지 않았다. 그동안 서로 자세히 물어본 적 없었던 세 사람의 일자리는 모두 썩 괜찮은 편이었고, 특히 앞으로 잘될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지금 살고 있는 집만 옮겨도 금세 상황이 좋아질 터였다. 그레고르가 고른 지금 집보다 작고 싸지만 위치가 좋고 더 실용적인 집을 구
「내보내야 해요」 누이동생이 소리쳤다. 「그게 유일한 방법이에요, 아버지. 이게 오빠라는 생각을 버리셔야 해요. 우리가 이렇게 오래 그렇게 믿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진짜 불행이에요. 그런데 도대체 이게 어떻게 오빠일 수가 있지요? 만약 이게 오빠였더라면, 사람이 이런 동물과 함께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진작에 알아차리고 자기 발로 떠났을 테지요. 그랬더라면 오빠는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는 다시 조금도 자기 식구들 걱정을 할 기분이 아니었고, 자기를 잘 돌봐주지 않는 데 대한 분노만 가득 찼고, 자기가 무엇이 먹고 싶은지 상상도 못하면서, 어떻게 하면 찬광 안에 들어가, 거기서, 배야 안 고프지만, 자기 입에 맞는 것을 먹을지 계획을 세웠다. 무엇을 주어야 그레고르 마음에 들지 이제는 더 이상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누이동생은 아침과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