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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생님, 실존주의는 참 끔찍해요!
2. 한 잔의 커피는 어디까지 가는가 3. 메스키르히에서 온 마법사 4. 모두이면서 아무도 아닌 5. 꽃이 만발한 아몬드 나무를 깨물다 6. 원고를 먹어버려야 하는 상황을 바라지 않소 7. 점령, 그리고 해방 8. 황폐 9. 만들어지는 인간, 만드는 인간 10. 춤추는 철학자들 11. 등 돌리는 철학자들 12. 가장 불리한 자들의 눈 13. 한번 세계를 맛보고 나면 14. 계측불가의 꽃 |
Sarah Bake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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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사르트르가 자유를 논할 때, 보부아르가 억압을 숨겨진 기전을 드러낼 때, 키르케고르가 불안을 통찰할 때, 카뮈가 저항을 논할 때, 하이데거가 과학 기술의 잠재성을 분석할 때, 또는 메를로퐁티가 인지과학을 논할 때 종종 최신 뉴스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다. 그들의 철학은 여전히 흥미롭다. 그들이 옳거나 틀리기 때문이 아니라 이들 철학이 삶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며 인간의 가장 큰 질문 두 가지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 p.52 만일 당신이 창문을 통해 엿본다면, 우선 친근하게 서로 기대고 있거나 파이프를 뻐끔거리며 논쟁하거나 주장을 강조하고 있는 친근한 광경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웨이터는 테이블 사이를 미끄러지듯 지나가고, 유리잔 부딪치는 소리, 달그락거리는 컵 소리도 들린다. 앞쪽 가장 많은 사람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는 땅딸막한 이와 터번을 두른 우아한 여성이 젊은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있다. 뒤쪽에 있는 비교적 조용한 테이블에는 다른 사람들이 앉아 있다. 몇 명은 댄스플로어에 나가 있다. 아마도 누군가는 위층의 객실에서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딘가에서 성난 목소리들이 들려오는가 하면 어두운 곳에서 연인들이 속삭이는 소리도 들린다. 우리도 들어가서 아마도 앞쪽이나, 아니면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다. 엿들을 수 있는 대화들이 너무도 많아서 어느 쪽에 귀를 기울여야 할지 고민이 된다. 하지만 우선 웨이터가 주문받으러 오기까지 들어보고 싶은 것은… --- p.56 하이데거는 흔들리지 않았다. “아닐세, 나는 내가 맡은 일에 충실하겠네. 이제 와서 보고서 전체를 물리고 쓰지 않겠다고 할 수는 없네. 사람들은 이미 내가 대학 당국에 보고서를 제출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말일세. 할 수 있는 게 없네. 나를 원망하지는 말게.” 이 마지막 말이야말로 뮐러를 가장 황당하게 만들었다. 하이데거가 다른 사람에게 닥칠 위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일에만 신경 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날 헤어질 때 하이데거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문제는 제가 당신을 원망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문제는 저의 생존입니다.” --- p.154 해나 아렌트는 1949년 야스퍼스에게 쓴 편지에서 하이데거가 나쁜 인격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다만 그에게 인격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사르트르도 1944년의 에세이에서 하이데거의 나치주의에 관해 언급하며 매우 유사한 말을 했다. “하이데거의 안에는 인격이란 것이 없었다. 그것이 진실이다.”일상성의 위대한 철학자가 정작 일상적 인간의 삶에 관한 무언가만큼은 끝내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 p.155 가스통 갈리마르는 그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좀 더 좋은 제목을 생각해 보라고 했다. ‘멜랑콜리아’라는 제목으로는 잘 팔릴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르트르는 대안들을 제시했다. 그가 이 책 의 제목에 관해 1932년에 메모해 두었던 “우연성에 관한 진실”, 아니면 “정신적 고독에 관한 에세이”는 어떻겠냐고 했다. 이런 제안들에 갈리마르가 질겁하자, 사르트르는 방침을 바꿔 어떤 모험 이야기도 없다는 것을 구태여 설명하는 표지 카피와 함께 역설적인 제목인 “앙투안 로캉탱의 기이한 모험”으로 하려 했다. 결국엔 갈리마르 자신이 나서서 간단하고도 충격적인 제목인 『구토』로 하자고 제안했다. --- p.181 메를로퐁티는 보부아르보다 단지 두 달 정도 앞선 1908년 3월 14일에 태어났으며 그녀보다 훨씬 더 자신에게 관대했다. 그는 매우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덕분에 태연자약한 성격으로 사회적 상황들을 순조롭게 헤쳐 나왔다. 그는 아이였을 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랑과 격려의 칭찬을 받고 자랐다고 느꼈고, 그 덕분에 평생토록 밝은 성격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는 가끔은 짜증스러웠지만, 본인이 1959년의 라디오 인터뷰에서 말한 바와 같이 거의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며 지냈다. 그는 이 책 전체에서 그렇게 느끼며 살아간 거의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 소중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메를로퐁티를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에게서 발산되는 행복의 광채를 느꼈다. --- p.187 보부아르에게 삶이 주는 육체적 달콤함은 전혀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무리 많아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이였던 시절, 그녀는 보이는 모든 것이 먹고 싶었다. 그녀는 사탕가게 진열장을 탐욕스러운 눈으로 노려보곤 했다. “찬란하게 반짝이는 설탕에 절인 과일들, 은빛 구름 같은 젤리들, 형형색색으로 피어난 꽃봉오리 같은 초록색, 빨간색, 주황색, 자주색의 신맛 나는 과일 사탕들. 나는 그것들이 내게 약속하는 맛의 즐거움만큼이나 색깔들 그 자체를 갈망했다.” 그녀는 생강 과자로 만들어진 집부터 먹어치웠던 헨젤과 그레텔의 이야기처럼 우주 전체가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어른이 되어서도, “꽃이 만발한 아몬드 나무를 오도독 깨물어 먹고 싶었고, 무지갯빛 누가 사탕 같은 해 질 녘을 베어 물고 싶었다”라고 적었다. --- p.196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사르트르는 강박적일 정도로 관대했다. 돈이 들어오기 무섭게 마치 손에 든 수류탄을 자신에게서 멀리 던져버리려는 듯이 남에게 주어버렸다. 만일 자신 스스로가 돈을 써야 할 경우라 해도, 물건을 사는 데 쓰는 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밤 외출 비용으로 썼는데, 무도장에 가서 큰돈을 쓴다든지 택시를 타고 간다든지, 기타 등등, 간단히 말해 돈을 쓰고 남은 자리에 추억, 혹은 추억 이하의 무엇만을 남겨야 했다. 그가 웨이터들에게 주는 팁은 전설적이었다. 어디든지 커다란 뭉치의 지폐 다발을 들고 다니면서 지폐들을 껍질 벗기듯이 뿌렸다. 그는 자신의 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관대했다. 아낌없이 에세이를 써 주거나 강연을 하는 것은 물론, 누구든지 부탁하기만 하면 서문을 써 줬다. 그에게는 말조차도 신중히 아껴 써야 할 것이 아니었다. --- p.199 오랜 세월을 보낸 여느 결혼생활에서나 존재하는 함께 나눈 추억과 서로의 관찰 내역 및 둘 사이의 농담들이 두 사람을 하나로 묶어주고 있었다. 서로 만나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이 늘 써먹는 농담 하나가 생겼다. 동물원에 갔을 때, 둘은 굉장히 뚱뚱하고 불쌍하게 생긴 바다코끼리를 보았다. 그놈은 관리인이 입에 물고기를 쑤셔 넣는 동안 탄식했다가 마치 애원하는 것처럼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 후부터 사르트르가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면, 보부아르는 그에게 그때의 바다코끼리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 사르트르는 눈을 위로 뜨고 우스꽝스러운 한숨을 크게 내쉬었는데, 이로써 둘 다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 p.201 소설가인 로제 마르탱 뒤 가르는 1936년 9월 친구에게 적은 편지에서 당시의 일반적인 정서가 담긴 목소리를 들려준다. “전쟁만 아니라면 뭐라도 좋아! 그것이 어떤 것이라 해도! 스페인을 파시즘이 장악해도! 그러니 내게 윽박지르지 말게. ‘프랑스를 파시즘이 장악해도!’ 마찬가지로 나는 찬성일세.” 보부아르도 비슷한 생각으로 사르트르에게 말했다. “프랑스가 전쟁에 휘말리는 것보다 차라리 나치에게 장악되는 편이 낫지 않겠어요?” 하지만 사르트르는 가까이서 직접 나치당을 봐왔기 때문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그렇듯 그의 상상력이 제공한 끔찍스러운 세부 설명과 함께 답했다. “내 원고들을 먹어버려야 하거나, 니장이 찻숟가락으로 눈이 파내지는 상황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소.” --- p.206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카뮈를 인간적으로 매우 좋아했지만, 누구도 카뮈의 부조리에 대한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에게 삶은 아무리 광대한 관점에서 본들 부조리한 것이 아니었다. 또한 부조리하다고 말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들에게 삶이란, 비록 사람마다 다른 의미로 나타나긴 해도 진정한 의미로 충만한 것이었다. --- p.253 그녀에게 있어서 멈춰서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들길 원하는 사람은 계속 전력을 다해 자신의 일을 해 나가는 사람만큼 본받아야 할 모델은 아니다. 그녀는 묻는다. 어째서 우리는 멈춤과 무심함에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만일 “나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라고 말하는 아이가 있다면, 우리는 그 아이를 지혜로운 아이라고 생각하는 대신 문제가 있거나 우울한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격리된 어른들은 곧 권태를 느낀다. 연인 사이라 할지라도 너무 오랫동안 그들만의 밀회 장소에만 박혀 있으면, 그들은 서로에게 흥미를 잃는다. 우리는 포만과 휴식의 상황에서 번성하지 않았다. 인간의 실존이 의미하는 것은 ‘초월성’ 혹은 넘어섬이지, ‘내재성’ 혹은 자기 내부에서의 수동적 휴식이 아니다. 즉 인간의 실존은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날까지 끊임없이 행동함을 의미한다. 그런 날은 당신이 숨을 쉬는 한 오지 않을 것이다. --- p.267 1914년 이래로, 특히 1939년 이후 유럽을 비롯한 세계의 사람들은 우리 자신을 완전히 알 수도 신뢰할 수도 없다는 깨달음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어떤 변명도 어떤 설명도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언가 단단한 것에 우리의 존재와 관계를 딛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 p.329 그들 모두가 휘청거리며 밖으로 나왔을 때, 카뮈는 쾨슬러의 어깨에 손을 올려 그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쾨슬러는 그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자 카뮈도 응수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그들을 가까스로 떼어놓았다. 그리고 거리에 쾨슬러와 마메인을 남겨둔 채 카뮈를 급히 그의 차에 밀어 넣어 그 자리를 떠났다. 카뮈는 집으로 가는 내내, 운전대 위에 기대 흐느껴 우느라 차를 이리저리 몰면서 말했다. “그는 내 친구였다! 그런 그가 나를 때렸어!” --- p.413 실존주의자들이 어떤 때는 너무 멀리 나갔거나, 너무 많이 쓰면서도 거의 다듬지 않았거나, 터무니없이 거창한 주장을 했거나, 심지어 스스로 망신을 자초했을지라도 그들이 삶의 농밀함과 끊임없이 맞닿아 있었으며 중요한 질문들을 던졌다는 것만은 분명히 말해두어야 한다. 나라면 언제든 그쪽을 택하겠다. 품위 있는 세밀화 따위는 벽난로 장식으로나 남겨두면 그만이다. --- p.479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지금 그의 근본적인 무신론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단지 더 강한 형태의 신비주의를 추구하기 위해 자신의 신앙을 버렸던 하이데거의 무신론과는 너무도 달랐다. 사르트르는 뿌리 깊은 무신론자였고 뼛속까지 인본주의자였다. 어떤 초월적 존재도 존재하지 않으며 이 땅 위의 그 어느 것도 대신해 줄 신의 보상은 없을 거라는 확신 속에서 용감히, 그리고 사려 깊게 살아갔던 그의 능력은 니체조차 뛰어넘었다. 그에게는 지금의 삶이 인간이 가진 전부였으며, 그러므로 그는 그 안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야 했다. --- p.5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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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인류를 가장 사랑한 철학자들에게 묻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질문들 1980년 4월 19일, 파리의 거리는 마비되었다. 무려 5만 명의 군중이 운집했던 것이다. 이들은 한 자그마한 철학자의 장례 행렬에 함께하며 마지막 경의를 표하기 위해 그 자리에 모였다. 그의 이름은 장폴 사르트르. 한사코 국장을 거부했던 그였지만 떠나는 길을 배웅하고자 모인 시민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20세기의 한 거인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철학자들이 국가의 영웅이었던 시대 또한 막을 내렸다. 대관절 어떤 철학이기에, 어떤 시대였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인간이었기에 그토록 많은 이들에게 경애받을 수 있었는가. 그리고 이들의 철학은 지금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전 세계 언론과 인문 독자들의 극찬을 받은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에서 저자 세라 베이크웰은 독자를 세상을 뒤흔들었으며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의 골자를 만든 이들 철학자들의 삶과 사유를 풍성하고도 정교하게 휘감는다. 이 책은 여러 사상가의 생애와 이론을 단순히 나열하지 않는다. 인간의 자유와 책임이라는 문제를 머리가 아니라 인생 전체로 질문했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카뮈를 비롯한 실존주의자들이 전쟁과 점령과 냉전의 혼란한 시대를 통과하며 사유와 삶을 어떻게 서로 얽어냈는지를 한 편의 대하드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칵테일로도 철학을 할 수 있어, 알아?” 20세기 초반의 파리 좌안으로 떠나는 철학 휴가 1933년으로 넘어가던 겨울, 몽파르나스의 바 벡드가즈에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베를린에서 돌아온 친구 레몽 아롱과 마주 앉았다. 그들은 아직 모두 이십 대였다. 아롱은 갑자기 그가 마시던 살구 칵테일 잔을 들더니 말했다. “칵테일로도 철학을 할 수 있어, 알아?” 20세기를 뒤흔들 사상운동이 그 잔에서 태어났다. 추상이 아니라 가장 작은 경험에서부터 출발하는 철학이었다. 그러니 이 철학을 이해하는 가장 정확한 길 역시 같은 곳에 있다. 그들이 마시고, 사랑하고, 싸우던 삶의 한복판이다. 베이크웰은 흑백 사진 속에 굳어 있던 거장들을 카페의 소음 속으로 되돌려 놓는다. 카뮈는 친구들 앞에서 누구보다 단순하고 유쾌한 사람이었고, 사르트르는 원고료를 받으면 지폐뭉치를 들고 다니며 필요한 이들에게는 언제고 나눠주었다. 바텐더들에게 전설적인 팁을 남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세련미의 대명사와 같은 보부아르는 점령기의 궁핍 속에서라면 썩어가는 고기마저 요리로 살려낼 정도로 생활력이 대단했다. 이들 곁에는 덜 알려진 매혹적인 인물들도 있다. 그중에서도 이 소란한 천재들 사이에서 만나는 이 모두에게 ‘행복의 광채’를 발산하며, 나치에게조차 무례하게 굴기 힘들어했던 안정형 철학자 메를로퐁티는 이 책이 독자에게 건네는 뜻밖의 선물이다. 그러나 이들의 철학은 한가한 유희나 차가운 관조와는 거리가 멀었다. 점령과 해방 뒤 냉전이 이어졌던 그 시절, 그들의 사상은 한 순간도 진심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며 세상의 파도 앞에서 방파제를 쌓는 대신 성큼성큼 걸어 들어간 그들의 생생한 궤적을 함께하다 보면 희미해졌던 세상과 인생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은 흥미롭지만, 인간은 훨씬 더 흥미롭다.” 현대 지성의 거장들을 통해 묻는 삶과 사유의 관계 이들의 철학은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베이크웰은 이 질문에 자신의 이야기로 답한다. 십 대에 실존주의에 빠졌던 그는 사상이 전부이고 그것을 만든 인간은 부차적이라 믿었다. 수십 년이 지나 이 책을 쓰며 그 믿음은 정반대로 뒤집혔다. 생각은 흥미롭지만, 사람은 훨씬 더 흥미롭다는 것. 사상은 그것을 살아낸 삶과 분리되는 순간 알맹이를 잃는다는 것. 그 역전의 중심에 두 사람이 있다. 사르트르는 자주 틀렸고, 공개적으로 틀렸고, 그때마다 다시 생각했다. 정치적 입장을 뒤집었고 자신의 옛 저작을 스스로 반박했다. 오랫동안 이것은 그의 경박함의 증거로 읽혔다. 반면 심오함의 대명사였던 하이데거는 나치 협력이라는 자기 생애의 가장 무거운 질문 앞에서 끝내 해명하지 않았고, 사과하지 않았고, 침묵했다. 베이크웰은 이 대비 앞에서 통념을 뒤집는다. 부동은 심오함이 아니었고, 흔들림은 경박함이 아니었다. 자기 시대가 던진 질문에 마지막까지 응답한 쪽은 흔들리던 사람이었다. 거듭 틀리고 공격당했지만 그의 적들조차 증언했듯 ‘선했던’ 사르트르의 장례 행렬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말을 바꾸면 지는 것으로 여겨지는 시대, 과거의 생각이 지금의 사람을 ‘취소’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시대에 이 재평가는 뜻밖의 위로가 된다. 자유란 한 번 정한 입장을 사수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다시 생각하고 다시 결단할 권리를 놓지 않는 것이다. 이 책은 그 자유를 가르치는 대신 목격하게 한다. 그리고 목격은 언제나 훈계보다 오래 남는다. “수십 년 독서 생활 중 가장 반가운 복간 소식” _소설가 황정은 산뜻한 옷을 입고 우리 곁으로 돌아온 전설의 절판 도서 이 책은 2017년 국내에 처음 소개된 이래 애서가들 사이에서 조용하고 끈질긴 사랑을 받아왔다. 황정은 작가가 “아끼느라 몇 년째 다 읽지 못한 책”으로 거듭 언급한 책으로도 알려져 있다. 절판 이후에도 이 책을 찾는 독자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아, 중고서점에서 16만 원대라는 가격에 거래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곱씹을수록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는, 소장하고 두고두고 다시 펼치고 싶은 책이기에, 많은 독자가 도서관에서 잠시 빌려 읽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이번 판은 그 아쉬움에 대한 응답이면서, 동시에 이 책의 본령을 회복하는 작업이다.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은 여느 연구서 이상의 깊은 조사와 통찰 위에 쓰였지만, 무엇보다 먼저 ‘재미있는 책’이다. 영미권에서 이 책은 서가에 모셔두는 대작이 아니라 카페와 지하철에서 소설처럼 읽히는 베스트셀러였다. 그 본성에 맞는 옷을 입히기 위해 어디든 품고 다닐 수 있도록 최대한 가볍게 했고, 번역과 문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세심하게 다듬었으며, 표지 또한 권위를 강조하기보다 독자를 이 흥미로운 세계로 초대하는 문이 되도록 디자인했다. 생각이라는 것이 점점 무의미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시절이다. 판단은 외주를 주고 확신은 빌려 쓰는 시대에,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그 생각을 삶으로 감당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시 내놓는다. 한 세기 전 파리의 카페에서 그랬듯, 철학은 지금도 삶을 바꿀 수 있다. 자리에 앉아, 잔을 앞에 두고, 첫 장을 펼치는 것으로 충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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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줄을 많이 그으며 읽었는데 어떤 대목은 줄도 잘 긋지 못하고 눈물만 툭툭 흘리면서 읽었다. 읽을 내용이 줄어드는 게 아까워서 실은 마지막 장을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다. 다시 출간된다는 소식에 책을 꺼내 두었다. 이 멋지고 좋은 책을 다시 만날 수 있어 무척, 무척 기쁘다.” - 황정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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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에 대한 책을 읽다가 버스 정거장을 놓치는 건 흔한 일이 아니지만 나는 실제로 그랬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카뮈와 하이데거 등에 대한 이 이야기는 너무도 이상하고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이 책이 상을 타지 못하면 내 책을 먹어버릴 것이다.”
《인디펜던트》 “이 책은 매력적인 사소한 디테일들로 가득하다. 까뮈를 ‘단순하고 쾌활한 영혼’이라 묘사하는 대목은, 사르트르가 의외로 매력적인 도날드 덕 흉내를 냈다는 이야기만큼이나 놀라울 수 있다… 실존주의자들의 사상은 최신의 뉴스처럼 생생하다.” 《뉴욕타임스》 “저자가 이 생생한 집단 전기에서 묘사하듯, 카뮈나 보부아르 같은 실존주의자들은 파시즘과 전체주의, 획일성이 지배하던 시대 속에서 용기 있는 자유사상가들이었다.” 《보스턴 글로브》 “이 책은 세계에 실존주의가 미친 문화적 영향에 대한 매혹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실존주의는 결국 선택의 문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자유로울 것인가? 어떻게 ‘진정한’ 인간이 될 것인가? 베이크웰은 이러한 질문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하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가디언》 “이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는 밀도 높은 철학적 개념들을 그것을 논했던 인물들의 다채로운 삶과 환경 속에 녹여낸다. 이들의 상이한 성격과 굴곡진 평판은 ‘생각은 흥미롭지만, 인간은 훨씬 더 흥미롭다’는 베이크웰의 관점을 설득력 있게 뒷받침한다.” 《뉴요커》 “이 사려 깊고 공정하며 섬세한 실존주의자들에 대한 기록 은 그들의 연이은 죽음으로 끝나는데, 그 여운은 마치 위대한 서사소설을 읽고 난 뒤 느끼는 향수와 상실감과도 같다.” 《텔레그래프》 “이 책은 실존주의를 오늘날의 세계와 철학적으로 관계맺는 유효한 방법으로 다시 중심에 놓는다. 맥락은 달라졌을 지라도, 질문은 여전히 동일하다. 산산이 부서진 세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만들어낼 것인가?” 《브루클린 레일》 “부제에 등장하는 살구 칵테일과 때로는 경쾌하기까지 한 문체는 가볍고 수다스러운 독서를 약속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저자는 각 작가가 1930년대와 그 이후의 도덕적·정치적 위기에 어떻게 응답했는지를 판단하고 설명하며, 사람들이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를 어떻게 사유하는지에 대해 만만치 않은 질문을 던진다. 그녀는 이러한 답을 전기적 서사의 형식으로 구성하는데, 이는 현대 철학이 추구해온 거대하고 비인격적인 개념들보다, 개별 삶의 이야기 속에서 발견되는 다양하고 상충하는 진실들이 더 깊고 더 밝게 우리를 비춘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주제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이 사상가들이 무엇을 생각했고 무엇을 썼으며 카페에서 어떤 논쟁을 벌였는지를 놀라울 만큼 명료하게 그려낸다.” 《뉴욕타임스 북리뷰》 “이 생동감 넘치는 실존주의 운동의 역사는 철학과 전기가 분리될 수 없다는 강력한 주장을 펼치며, ‘존재’, ‘무’, ‘자기기만’과 같은 밀도 높은 개념들을 그것을 논쟁했던 인물들의 다채로운 삶과 환경 속에 녹여낸다. 이 책은 여러 인물을 함께 다루는 연구이기도 하지만, 하이데거와 사르트르에 초점을 맞춘다. 하이데거는 신탁을 내리는 듯 난해하고 나치와의 연루라는 그림자를 지닌 인물로, 사르트르는 지적으로 방종하고 소련에 동조한 인물로 그려진다. 이들의 상이한 성격과 굴곡진 평판은 ‘생각은 흥미롭지만, 인간은 훨씬 더 흥미롭다’는 베이크웰의 관점을 설득력 있게 뒷받침한다.” 《뉴요커》 “베이크웰은 20세기 실존주의를 ‘책임 있는 깨어 있음의 과제’와 ‘인간의 정체성, 목적, 자유에 대한 질문’에 평생을 바친 철학자들의 놀라운 삶을 통해 탁월하게 설명한다. 생생한 인물 묘사와 난해한 철학 개념을 명료하게 압축하는 능력을 통해, 그녀는 실존주의의 이야기를 ‘유럽이 겪은 한 세기의 이야기’ 속에서 진정성, 반항, 자유, 책임이라는 핵심 논쟁을 극적으로 펼쳐 보인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이 책은 내게 올해의 책이다. 20세기 가장 강력한 철학적 운동의 발자취를 이토록 풍부하고 내면을 환기시키는 여행기처럼 쓰다니 놀랍다.” 《TLS》 “대단하다… 엄밀하고 명료하다… 사유하는 모든 이에게 강력히 추천한다.” 《라이브러리 저널》 “이 사상가들과 그 주변 인물들을 다룬 유익하면서도 흥미로운 책에서 저자는 넓은 의미에서의 실존주의가 페미니즘, 동성애 권리, 반인종주의, 반식민주의 등 다양한 급진적 운동에 영감을 제공했다고 평가한다. 몇 잔의 칵테일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셈이다.” 《이코노미스트》 “베이크웰은 무겁고 복잡한 철학적 개념들을 전율을 느끼게 할 만큼 생동감 있게 만들었다—그 점만으로도 그녀는 찬사를 받을 만하며, 반드시 읽혀야 한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이 책에서 서사의 추진력은 전기에서 나오지만, 핵심은 철학에서 비롯된다… 베이크웰은 핵심 개념을 정확한 인용과 자신의 언어를 결합해 결정적으로 응축해내는 재능을 지녔다… 이 책을 가장 잘 요약하는 문장은 아마 그녀 자신의 말일 것이다. ‘사유는 관대해야 하고, 그 식욕은 왕성해야 한다.’ 그녀의 지적 허기는 전염성이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 “베이크웰의 글은 밝고 가벼운 터치를 지녔다… 어려운 철학 개념을 능숙하게 다루면서도 읽기 매우 즐겁다. 현대 지적 역사를 소개하는 데 이보다 더 나은 입문서는 떠오르지 않는다.” 《뉴스데이》 “이 책은 철학자들의 모임에서나 나올 법한 기묘한 인물들로 가득하며, 잘 알려지지 않은 지식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무엇보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쓰였다. 심지어 끔찍한 하이데거조차 그의 우스꽝스러움 속에서 인간적으로 그려진다.” 《선데이 타임스》 “가벼운 제목에 속지 말라. 이 책은 이른바 ‘대륙 철학자들’을 다룬 깊은 지성과 공감의 산물이다. 동시에 책장을 계속 넘기게 만드는 작품이다. 마지막 장을 끝냈을 때 너무 아쉬워서, 거의—정말 거의—서점으로 달려가 메를로퐁티의 책을 찾고 싶어질 정도였다.” - 《파리스 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