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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안부대
만국 수선화 백로 쇠고기 작가 및 작품 소개, 작가 연보 역자 소개 |
Fumiko Hayashi,はやし ふみこ,林 芙美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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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 장교의 시체는 풀이 우거진 연못의 물을 마시러 내려온 모습이었다. 벌써 머리도 상당히 자라 있었다. 사진 속에서 웃고 있던 표정의 주인이 지금은 일개 시체가 되어 이름도 없는 연못가에 물을 마시는 모습으로 죽어 있는 것이다. 눈을 감고 얼굴은 파랗게 부어 버렸으며, 입술에는 나비 두 마리가 앉아 있었다. 나는 마른 국화꽃을 네다섯 송이 꺾어서 그 장교의 옆얼굴 위에 놓아 두었다. 물은 썩고 흐린 것처럼 조용히 빛나고 있다. 작은 연못 주위의 억새는 바람에 나부껴서 몹시도 만추다웠고, 굵은 줄기와 잎은 거친 바람에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 장교 역시 죽어버리고 나니 편안한 연좌蓮座 위 사람이다. 소총옥 여사여, 탄식하지 마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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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권에서는 제2기의 1940년대 전반 전쟁협력 작품인 「북안부대」와 제3기 전후 문학적 생애의 최정점기의 작품 「만국」, 「수선」, 「백로」, 「쇠고기」를 소개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1937년 7월 7일 노구교사건蘆溝橋事件을 계기로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1938년 8월에 발표된 히노 아시헤이火野葦平의 『보리와 병사』(1938년 조선총독부 통역 및 검열관 니시무라 신타로에 의해 『보리와 兵丁』이라는 한국어 제목으로 번역)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이어 같은 해 9월 문학을 선전의 도구로 활용하고자 하는 군과 정보당국에 의해 기쿠치 간 등을 중심으로 종군펜부대가 결성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야시 후미코는 중일전쟁의 발발에 따라 1937년 『마이니치신문』 특파원으로 난징, 상하이에 파견되었다가 1938년 1월 귀국하였고, 1938년 9월 펜부대의 일원으로 상하이에 파견, 이것이 계기가 되어 마이니치신문사의 트럭 아시아호를 타고 한커우에 제일 먼저 도착하여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또한 1942년에는 육군보도반원陸軍報道班員으로서 프랑스령 인도, 네덜란드령 인도에 정식 종군으로 파견되었고, 1940년 북만주 시찰, 1941년 만주국경 위문 등 신문사, 잡지사와 특약을 맺고 보도 여행을 반복하여 많은 전선 르포를 남겼다. 이로써 그녀는 아시아태평양전쟁 중 가장 활발한 여성종군작가이자 언론보국이라는 장르에서 일인자로 평가를 받고 있다. 후미코가 전중에 여성종군작가로서 전쟁을 부추기는 치어리더로서의 전쟁협력적인 작품을 남긴 작가였다는 점을 염두에 두더라도, 전전의 『방랑기』, 전중의 「북안부대」, 전후의 「만국」을 비롯한 번역 작품에 일관되게 흐르는 ‘가난’과 ‘빈곤’이라는 주제는, 그녀의 인생과 오버랩되면서 후미코 문학의 전체상을 이해하는 큰 틀을 제공해 줄 것으로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