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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역자의 말

가지이 모토지로(梶井基次?) - 레몬(??)
호리 다쓰오(堀辰雄) - 바람이 분다(風立ちぬ)
호리 다쓰오(堀辰雄) - 나오코(菜?子)
요코미 쓰리이치(橫光利一) - 봄은 마차를 타고(春は馬車に?って)
요코미 쓰리이치(橫光利一) - 화원의 사상(花園の思想)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 판도라의 상자(パンドラの匣)

저자 소개 및 작품 해제
작가 연보

저자 소개 11

가지이 모토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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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jiro Kajii,かじい もとじろう,梶井 基次郞

1901년 2월 17일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났다. 기타노(北野)중학교를 거쳐 1919년에 제3고등학교(第三高等?校) 이과에 진학하지만 점차 문학과 음악에 흥미가 있었다. 1920년 9월에는 폐첨카타르(폐결핵) 진단을 받고 잠시 학교를 휴학했다가 11월에 다시 복학하였다. 문학에 대한 관심은 날로 깊어져 1922년부터 습작을 시작하는 한편, 방탕한 생활로 5년 만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24년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하고, 나카타니 다카오(仲谷孝雄) 등과 동인지 [아오조라(靑空)]를 창간했다. 같은 해에 객혈(喀血)과 이복 여동생의 죽음을 겪으며 심적으로 예민하고 불안정해
1901년 2월 17일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났다. 기타노(北野)중학교를 거쳐 1919년에 제3고등학교(第三高等?校) 이과에 진학하지만 점차 문학과 음악에 흥미가 있었다. 1920년 9월에는 폐첨카타르(폐결핵) 진단을 받고 잠시 학교를 휴학했다가 11월에 다시 복학하였다. 문학에 대한 관심은 날로 깊어져 1922년부터 습작을 시작하는 한편, 방탕한 생활로 5년 만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24년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하고, 나카타니 다카오(仲谷孝雄) 등과 동인지 [아오조라(靑空)]를 창간했다. 같은 해에 객혈(喀血)과 이복 여동생의 죽음을 겪으며 심적으로 예민하고 불안정해졌다.

1925년 1월, [아오조라] 창간호에 「레몬」을 발표하고, 병이 깊어가는 와중에도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1926년 말부터 요양을 위해 이즈(伊豆)의 유가시마(湯ヶ島)온천에 머물며 1년여를 보냈다. 이를 계기로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를 비롯한 당시의 문인들과 교류하였다. 1928년 27세에 도쿄로 상경했으나 병세가 악화되어 오사카로 돌아갔다. 병상에서도 창작을 멈추지 않았다. 1931년 5월 작품집 『레몬』이 간행되었으나 이듬해인 1932년 3 월 24일, 서른한 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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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리 다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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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tsuo Hori,ほり たつお,堀 辰雄

도쿄에서 태어나 1921년 제일고보 이과를 거쳐 1929년 도쿄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전쟁 당시의 불안정한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문학 세계를 고수한 작가다. 당시까지 사소설(私小說)적이었던 일본 소설의 흐름 속에서 호리는 픽션이라는 ‘지어낸 이야기’로 낭만파라는 문학 형식을 확립하려 했다. 1923년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알게 되어 그의 작품에 깊은 영향을 받았고, 아쿠타가와의 자살에서 받은 큰 충격을 대학 졸업 논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론」 및 「성가족(聖家族)」에 담아냈다. 전쟁 말기부터 결핵 증상이 악화해 전후에는 거의 작품 활동을 중단한 채 49세의 나
도쿄에서 태어나 1921년 제일고보 이과를 거쳐 1929년 도쿄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전쟁 당시의 불안정한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문학 세계를 고수한 작가다. 당시까지 사소설(私小說)적이었던 일본 소설의 흐름 속에서 호리는 픽션이라는 ‘지어낸 이야기’로 낭만파라는 문학 형식을 확립하려 했다. 1923년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알게 되어 그의 작품에 깊은 영향을 받았고, 아쿠타가와의 자살에서 받은 큰 충격을 대학 졸업 논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론」 및 「성가족(聖家族)」에 담아냈다. 전쟁 말기부터 결핵 증상이 악화해 전후에는 거의 작품 활동을 중단한 채 4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문학은 서정성이 높아 시의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 소설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대표작으로는 「성가족(聖家族)」, 『아름다운 마을(美しい村)』, 「바람이 분다(風立ちぬ)」, 「광야(曠野)」 등이 있다. 이 대표작들에는 사랑을 통해 죽음을 넘어선 곳에서 진정한 생을 발견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이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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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미쓰 리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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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komitsu Riichi ,よこみつ りいち,橫光 利一

후쿠시마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에서 수학하였다. 기쿠치 간을 만나 문예춘추(文藝春秋)의 동인이 된 이후에 1923년 『파리(蠅)』 『태양』으로 작가로 데뷔하여, 문예시대(文藝時代) 창간과 함께 신감각파(新感覺派)의 중심적인 인물이 되었다. 1928-29년의 형식주의 문학 논쟁 때에 논쟁을 주도하고, 1930년에는 신심리주의적 수법을 구사한 『기계』를 발표, 1935년에는 ‘순문학으로서의 통속소설’을 제창한 ‘순수소설’로 문제를 제기하는 등, 1925년대에서 1935년대에 걸쳐 주도적으로 일본의 현대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심리주의 기법의 영향을 받아 대표작인 『새(鳥)』, 『악마
후쿠시마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에서 수학하였다. 기쿠치 간을 만나 문예춘추(文藝春秋)의 동인이 된 이후에 1923년 『파리(蠅)』 『태양』으로 작가로 데뷔하여, 문예시대(文藝時代) 창간과 함께 신감각파(新感覺派)의 중심적인 인물이 되었다. 1928-29년의 형식주의 문학 논쟁 때에 논쟁을 주도하고, 1930년에는 신심리주의적 수법을 구사한 『기계』를 발표, 1935년에는 ‘순문학으로서의 통속소설’을 제창한 ‘순수소설’로 문제를 제기하는 등, 1925년대에서 1935년대에 걸쳐 주도적으로 일본의 현대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심리주의 기법의 영향을 받아 대표작인 『새(鳥)』, 『악마(?魔)』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그 후 1936년에 유럽으로 건너간 것을 제재로 쓴 『여수(旅愁)』의 내용이 태평양전쟁과 겹쳐져 그 진의가 일부 잘못 전달되어 전후에는 통렬한 비판을 받고 실의에 빠진 가운데 1947년 12월 30일 위궤양에 복막염이 겹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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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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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zai Osamu,だざい おさむ,太宰 治,츠시마 슈지津島修治

1909년 6월 19일, 일본 아오모리 현 쓰가루 군 카나기무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가진 자로서의 죄책감을 느꼈고,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성장한다. 1930년, 프랑스 문학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도쿄제국대학 불문과에 입학하지만, 중퇴하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소설가 이부세 마스지[井伏_二]의 문하생으로 들어간 그는 본명 대신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35년 소설 「역행(逆行)」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1909년 6월 19일, 일본 아오모리 현 쓰가루 군 카나기무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가진 자로서의 죄책감을 느꼈고,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성장한다.

1930년, 프랑스 문학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도쿄제국대학 불문과에 입학하지만, 중퇴하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소설가 이부세 마스지[井伏_二]의 문하생으로 들어간 그는 본명 대신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35년 소설 「역행(逆行)」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35년 제1회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단편 「역행」이 올랐지만 차석에 그쳤고, 1936년에는 첫 단편집 『만년(晩年)』을 발표한다. 복막염 치료에 사용된 진통제 주사로 인해 약물 중독에 빠지는 등 어려운 시기를 겪지만, 소설 집필에 전념한다. 1939년에 스승 이부세 마스지의 중매로 이시하라 미치코와 결혼한 후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많은 작품을 썼다.

1947년에는 전쟁에서 패한 일본 사회의 혼란한 현실을 반영한 작품인 「사양(斜陽)」을 발표한다. 전후 「사양」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인기 작가가 된다. 그의 작가적 위상은 1948년에 발표된, 작가 개인의 체험을 반영한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을 통해 더욱 견고해진다. 수차례 자살 기도를 거듭했던 대표작은 『만년(晩年)』, 『사양(斜陽)』, 「달려라 메로스」, 『쓰기루(津?)』, 「여학생」, 「비용의 아내」, 등. 그는 1948년 6월 13일, 폐 질환이 악화되자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人間失格)』을 남기고 카페 여급과 함께 저수지에 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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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일어일문학과 재학 중
고려대학교 철학과 재학 중.
1989년생.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근현대 일본문학·문화를 전공하여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고려대학교 글로벌 일본연구원에서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일본 현대소설에 나타난 불안정한 노동 서사 연구-오야마다 히로코(小山田浩子)의 「공장(工場)」을 중심으로-』(2020), 『게공선 붐 이후 일본소설에서 보이는 격차문제와 연대의식 고찰-소설 「블루시트」와 「고역열차」를 중심으로-』(202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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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일어일문학과 재학 중.
고려대학교 문화창의학부 재학 중.

기획김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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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교수, 인문학과동아시아문화산업협동과정 주임. 고려대학교와 쓰쿠바대학에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문학을 연구하였고, 현재는 [근대초기 한일 문학의 결핵 표상에 대한 사회문화사적 비교] 등, 전염병을 다룬 문학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식민지시기 조선의 일본어문학에 나타난 결핵 표상─도쿠토미 로카(??蘆花)의 『호토토기스(不如?)』 후속작 시노하라 레이요(篠原嶺葉)의 『신불여귀(新不如?)』를 중심으로─?(『일본연구』제38집, 2022.8), ?3·1운동 직후 재조일본인 여성의 조선표상과 신경쇠약─ 『경성일보』 현상문학 후지사와 게이코의 반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교수, 인문학과동아시아문화산업협동과정 주임. 고려대학교와 쓰쿠바대학에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문학을 연구하였고, 현재는 [근대초기 한일 문학의 결핵 표상에 대한 사회문화사적 비교] 등, 전염병을 다룬 문학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식민지시기 조선의 일본어문학에 나타난 결핵 표상─도쿠토미 로카(??蘆花)의 『호토토기스(不如?)』 후속작 시노하라 레이요(篠原嶺葉)의 『신불여귀(新不如?)』를 중심으로─?(『일본연구』제38집, 2022.8), ?3·1운동 직후 재조일본인 여성의 조선표상과 신경쇠약─ 『경성일보』 현상문학 후지사와 게이코의 반도의 자연과 사람을 중심으로 ─?(『일본연구』 제35집, 2021.2) 등이 있고, 저역서에 다니자키 준이치로 저 『열쇠』(역서, 민음사, 2018), 『현상소설 파도치는 반도·반도의 자연과 사람』(공역, 역락, 2020.5), 『식민지 문화정치와 경성일보: 월경적 일본문학·문화론의 가능성을 묻다』(편저, 역락, 2021.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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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4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536쪽 | 153*225*33mm
ISBN13
9791167425966

출판사 리뷰

전지요양은 로마시대부터 폐로(肺?) 환자를 대상으로 권장되어, A.D.134-201년에 나폴리 부근에 보양소가 건설되었고, 중세 이후 부유층 환자가 공기가 깨끗한 마을로 여행을 하며 여관이나 간이숙박소에 투숙하여 병을 치료하는 일은 흔히 있었다. 그러나 본격적 전지 요양은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등지에서 실시되었으며, 근대 의학의 발전과 공기의 발견에 따라 옥외의 청정한 공기와 온화한 기후가 폐병 요양지로 선호되어 온난한 지중해 해변이나 온천지대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따라서 18세기까지는 산악지방은 기피 대상이 되었으나 낭만주의 시대에는 전원취미가 지배적이 되면서 선호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근대적 새너토리엄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독일의 헤르만 브레머(Hermann Brehmer, 1829-98)는 산악지대 주민에 결핵이 적은 사실에 주목, 고도가 높으면 기압이 내려가 심장이 튼튼해진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흐름을 따라 알렉산더 스펭글러(Alexander Spengler, 1827-1901)는 스위스의 다보스(Davos)에 새너토리엄을 건설하여 전 유럽에서 고산요법 치료를 받기 위해 환자가 쇄도하게 되었고, 19세기에는 스위스 산악지대에 새너토리엄이 건설되었다.

이와 같은 흐름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일본 역시 에도시대 말에서 메이지 시대에 걸쳐 부국강병을 위한 산업화, 도시화가 추진되며 환자 수가 증가하였다. 이에 따라, 일본은 튜베르클린 접종(1891), 결핵예방령 발령(1904), [결핵 요양소 법률]제정(1914) 등 이른 시기부터 결핵에 대한 대응을 제도화하였다. 아울러 서구에서 수용한 의학 지식을 바탕으로, 유럽의 새너토리엄을 도입하게 된다.

일본에서 새너토리엄은 도쿄대학 의과대학의 독일인 교수 베르츠(Erwin von Balz, 1849.1.13.- 1913.8.31)를 통해 설립이 시작되었다. 그는 근대 독일의 새너토리엄의 시조가 된 산악지방 새너토리엄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일본에 고산요양소의 필요성을 주장하여 하코네(箱根) 구사쓰(草津), 이카호(伊香保) 등의 온천장을 요양소로 개조할 것을 추천하였다. 이후 1887년 나가요 센사이(長???, 1838-1902)는 가마쿠라해변병원(鎌倉海?病院)을 폐병 대상 요양소로 개원하였다.

이 병원은 하루 숙박료가 2엔 50전, 이는 당시 제국호텔 1박 숙박료와 같은 금액으로 적어도 중등 이상의 환자를 대상으로 하였다. 이로 인해 요양소는 호텔로서의 성격을 띠면서 상류계층의 별장지, 피서지, 피한지라는 이미지가 형성되었다. 즉 서양의학 수용과 함께 결핵에 대한 낭만적 이미지, 상류사회의 병이라는 이미지도 함께 도입이 된 것이었다. 본격적인 일본 최초의 사립결핵요양소는 1889년 의사 쓰루사키 헤이사부로(鶴崎平三?, 1855-1934)가 설립한 스마우라요양병원(須磨浦療病院)으로, 쓰루사키는 베르츠의 제자로서 기후요양소의 효용을 배워 설립한 것이다. 이후 가마쿠라병원(鎌倉病院, 1892년), 히라쓰카쿄운도분원(平塚杏雲堂分院, 1897년-2004), 게이후엔(?風園,1899년, 현재 노인홈), 난코인(南湖院, 1899, 현재 노인홈) 등 사립 새너토리엄 붐이 일게 된다. 특히 난코인의 경우, 설립자 다카다 고안(高田?安)은 베르츠 문하였고, 개원 시기가 도카이도선(東海道線)의 지가사키(茅が崎) 역 개통과 도쿠토미 로카(?富蘆花)의 「불여귀(不如?)」(1898-99)의 인기와 겹치면서 크게 번성하여, 1926년에는 동양제일의 새너토리엄이 되었다. 그리고 산악지대를 선호했던 독일 새너토리엄의 영향으로, 1926년 일본 최초의 고원요양소인 후지미 고원요양소(富士見高原療養所)가 야쓰가타케 후지미고원(八ヶ岳富士見高原)에 설립된다. 동시에 결핵이 전염병이라는 지식이 확산되면서, 결핵 환자나 새너토리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함께 확산된다.

이상과 같이 결핵균 발견에 따른 의학 지식이나 정확한 병리학적 지식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당시 의사들은 안정, 충분한 영양섭취, 해수욕, 산책과 같은 적당한 운동 외에는 적당한 치료법이 부재했기 때문에, 의학적 지식보다 기온, 습도, 풍향, 강우량, 지질, 지형을 강조했음을 알 수 있다. 즉 ‘의학의 무력’을 의사가 권하는 ‘전지요양’이라는 요법으로 드러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그 의료는 치료를 요하는 환자라기보다는 부유한 유한계급을 위한 것이었다. 1934년 국공립 병원, 요양원 등 결핵환자 수용 정원은 13,334명이었고, 결핵 환자 수는 약 120만 명으로 추정된다. 즉 환자의 100분이 1만 수용되는 상황으로 새너토리엄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는 것은 선택된 소수에 불과했다. 이와 같은 새너토리엄의 성격과 그곳에서의 생활상은 결핵에 대해, 고통스러운 질병으로서 부정적 이미지보다는 선택받은 소수 상류계층의 특권적 삶으로서 선망의 대상이 되면서 낭만화되는 경향이 있었다. 가마쿠라 해변병원은 그 특권적 삶의 질로 인하여 호텔의 이미지가 만들어져서 결국은 가마쿠라 호텔로 이름을 바꾸었고, 스마보양원(須磨保養院)은 전지요양을 온 폐병환자만이 아니라 일반 보양객을 수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의학이 아닌 기후, 영양, 운동을 포함한 생활습관을 내세우는 새너토리엄의 속성은 위생과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현대 사회의 힐링 공간으로서의 리조트나 고령화시대 노인 요양원의 속성과도 통하는 바가 있다. 이는 실제로 위에서 언급한 새너토리엄이 현재는 대부분 호텔이나 리조트, 노인 홈 등 힐링과 용양의 공간으로 변신한 것으로도 증명되고 있다.

이와 같은 새너토리엄에 대한 이미지의 형성은, 당시 그곳에 수용된 경험을 한 저명 문학자들의 문학활동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스마우라요양병원의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난코인의 구니키다돗포(?木田??), 히라쓰카 라이초(平塚らいてう), 오테 다쿠지(大手拓次), 유가시마온천(湯ヶ島?泉)의 가지이 모토지로, 후지미고원요양소의 호리 다쓰오 등, 결핵 환자로서 새너토리엄에 수용되었던 작가들은, 치료법이 없는 결핵이라는 불치병에 대한 공포, 좌절의 심리, 당시 주변 사람들의 공포와 배제의 시선, 죽음과 함께 하는 일상에서 오는 삶과 죽음에 대한 다양한 태도, 그리고 사랑의 의미 등을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이들 작품을 통해 결핵 환자나 새너토리엄에 대한 이미지는 일반인에게 유포되어 갔다. 동시에 이들 작가들은, 친구인 진자이 기요시(神西?)가 치료제인 스토렙토마이신을 권유하자 ‘나에게서 결핵균을 몰아내면 무엇이 남나’(神西?「白い花」??文芸 1953年8月?『堀辰雄全集』別?二, pp.245-247)라고 반문한 호리 다쓰오와 같이, 오랫동안 결핵과 함께 하며, 결핵의 증상 혹은 결핵을 둘러싼 다양한 상황을 자신의 문학적 토양으로 삼기까지했다.

본서에서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본인 혹은 가족의 결핵으로 인해 새너토리엄 생활을 경험하고 그것을 그린, 가지이 모토지로의「레몬」, 호리 다쓰오의 「바람이 분다」와 「나오코」, 요코미쓰 리이치의 「봄은 마차를 타고」와 「화원의 사상」, 다자이 오사무의 「판도라의 상자」를 ‘새너토리엄 문학’의 개념으로 묶어 번역 소개한다. 이들 새너토리엄 문학은 의학적으로 그 병원균과 증상, 전파경로가 명확히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치료제가 없는, 결핵 환자의 어두운 삶 속에서 죽음을 직시하며 삶에 대한 희망과 사랑에 대해 절실한 자세로 임하고자 했던 작가들의 고뇌가 담겨 있다. 동시에 이들 문학은 기후, 영양, 운동, 정신적 안정을 내세우며 위생과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새너토리엄에서의 생활상을 그림으로써,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힐링과 치유의 공간으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들 작품은 감염병 문학의 차원을 넘어 우리 삶의 보편적 문제를 다룬다고 할 수 있으며, 다양한 이유로 삶에 대한 좌절과 불안과 고독을 느끼는 현대의 독자들에게 판도라 상자 속 희망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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