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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꿈결같은 방 가운데 놓여 있던 행복
도사였고 거인이었고 귀여운 폭군이었던 남자 머리말 1. 불행한 출발 대저택의 외로운 소년 17년 만에 나타난 아버지 처음 노래를 쓰다 도중하차한 수의사의 길 평화와 사랑의 물결에 몸을 맡기고 2. 거울공화국의 히피 1968년 봄. 서울 조국에서 노래할 수 있다 최초의 히피. 한국에 등장하다 드라마센터 콘서트 독재 치하의 아방가르드들 명신 지워버리고 싶은 군대 시절 오랜 진통 끝에 나온 첫 앨범 3. 두 사람의 아내 뉴욕의 결혼 생활 삼총사 그녀가 떠난 자리 모두 잊고 새로 시작하고 싶어 천사들의 담화 몽고의 공주 모스크바 땅을 밟다 돌아온 명신 4. 뒤늦은 스포트라이트 뜻밖의 후원자 일본 공연에 한국 대표라니요 당신은 훌륭한 예술가니까 잘 해낼 거예요 일본 공연. 진짜 일본 사람들 30년 만의 귀환 중국의 로커 최건을 만나다 5. 나는 세상을 노래한다 내가 '한국의 밥 딜런'이라고 HOT 옆에서 하드록을 해도 좋아 문화적 혼혈아의 한국 사랑 아시아의 스위스를 꿈꾸며 내가 본 미국 공짜주의 에필로그 연보 경계를 넘는 음악시인 한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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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코는 말했다. '일본에 당신 팬이 많아요. 후쿠오카엔 특히 더하고요. 젊은이들이 당신 음악을 아주 좋아한답니다(후쿠오카는 일본에서 재일교포가 가장 많이 사는 곳이다). 당신과 연락을 하려고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한국에는 소속 음반사나 매니저도 없어서 허탕만 쳤지요.
그러다 연세대 조한혜정 교수(조 교수는 내 사촌이고 여성운동 지도자이다)가 '현대 아시아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해 강연을 하러 일본에 왔기에 연락을 주선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분이 '한대수는 우리 사촌오빤데 지금 뉴욕에 삽니다. 오빠가 중요한 일은 전화로 상의하지 않으니 팩스를 보내보세요. 오빠한테 직접 연락해서 물어보는 편이 좋겠네요'하더군요. 그렇게 된 겁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왜 접니까? 송창식이나 김민기, 신중현도 있고, 양희은도 있잖아요? 다들 저보다 유명하고 요즘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데요.' '알아요. 하지만 가와카미(크로스비트 일본 대표)와 전 당신 음악이야말로 한국을 대표한다고 생각해요. 당신 음악이 더 우리 마음에 와 닿아요.' --- p. 1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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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실을 유엔 인권위원회에 알려야 해. "
하지만 3년이 다 되어갈 무렵에는 스무 대를 맞고도 끄떡없었다. 나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 누구도 인간이 아니었다. 우리는 양심을 내팽개친 짐승이었다. 그들은 말했다. 이런 훈련 관행은 일본인들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잔혹성의 추악한 일면이었다. 나는 부대에서 두 번째로 키가 컸던 탓에 항상 남들보다 더 맞았다. 혹시 이런 것이 병사들을 살인기계로 만드는 방법이라고? 내 생각은 다르다. 오히려 상관에게 앙심을 품게 만들 수 있다. 병사들이 상관을 죽일지. 적을 죽일지는 모르는 일이다. 둘 다 증오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 p.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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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실을 유엔 인권위원회에 알려야 해. "
하지만 3년이 다 되어갈 무렵에는 스무 대를 맞고도 끄떡없었다. 나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 누구도 인간이 아니었다. 우리는 양심을 내팽개친 짐승이었다. 그들은 말했다. 이런 훈련 관행은 일본인들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잔혹성의 추악한 일면이었다. 나는 부대에서 두 번째로 키가 컸던 탓에 항상 남들보다 더 맞았다. 혹시 이런 것이 병사들을 살인기계로 만드는 방법이라고? 내 생각은 다르다. 오히려 상관에게 앙심을 품게 만들 수 있다. 병사들이 상관을 죽일지. 적을 죽일지는 모르는 일이다. 둘 다 증오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 p.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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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대수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쓴 자서전이다. 한대수 하면 많은 이들은 '물 좀 주소' 하고 내뱉는 그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를 기억하고 '한국 최초의 싱어송라이터, 포크 록의 선구자'라는 말을 자동으로 떠올린다.
그는 철저하게 잊혀진 인물이었다. 충격적인 데뷔 앨범만을 남기고 자의든 타의든 미국으로 가버린 뒤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최근에 돌아와 방송을 타고 콘서트에 얼굴을 내밀고 음반을 내기까지는 그랬다. 이제 그의 얼굴을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고 음반을 사서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자기 식대로 보려 하고 자기 추억 속에 가두려 한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그가 누구인지 모른다. 그에 대한 대접은 이것으로 충분한가. 그에 대해 더 알 이유는 없는가. 그는 그저 흔한 가수일 뿐인가. 지금도 그는 자신이 '히피'라고 말한다. '가수'가 아닌 '작곡가'라고 말한다. 과거의 자신과 노래는 잊어도 좋다고 말한다. 지금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라고 한다. 그리고 자기 삶과 음악을 정당하게 평가해 달라고 한다. 이것이 한대수가 굳이 자서전을 쓴 까닭이다. 이 책에는 한대수 자신의 지나온 생활과 경험, 음악세계가 진지하게 그려져 있다. 이런 삶도 있던가 싶다. 1960, 70년대에 한국에서 몇 안 되는 아방가르드 예술가들과 교유했고, 마리화나와 히피문화, 록 뮤직의 본고장에서 히피로, 로커로 살았다. 그는 나이 오십이 넘어서야 자기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을 만난다고 했다. 30 넘은 이들은 자신을 좋게(?) 오해하지만 10대, 20대가 자신을 알아주더라는 것이다. 한대수는 그냥 가수가 아니고 그저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다. 누구보다 진지한 음악가이고 호된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창작의 열정을 잃지 않았다. 자기 여자에게 성실했고 자기를 버리고 거부한 사람들을 결코 나쁘게 말하는 법이 없다. 노동자로 일하고 책을 읽고 사진을 찍고 시를 쓰고 음악을 만들고 아내를 위해 밥을 짓고 도시락을 싼다. 이 책은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오히려 패배와 좌절, 고독과 화해의 이야기이다. 그가 인터넷에 빠져 있고 테크노에 열광하고 하기 싫은 일은 절대 안 하는 오늘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사랑과 평화' '관용'을 이야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