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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初期 土班武職의 性格 朝鮮前期 土兵에 대하여 壬亂前의 西北邊界政策 丁卯·丙子胡亂時 義兵 硏究 2. 麗末鮮初의 선비群과 吉再의 位相 牛溪 成渾에 대한 史的 考察 都元帥 權慄論 芝峰 李目卒光 愚伏 鄭經世 硏究 尤庵 宋時烈 思想에 관한 一考 黃玹의 生涯와 思想 3. 朝鮮時代 선비像 淸白吏制度의 史的 考察 朝鮮後期 實學者의 歷史認識과 文化理解의 近代的 性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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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율을 가장 잘 이해한 사람은 누구보다도 선조였다. 권율이 온갖 비판을 받으면서도 도원수직을 왜란이 끝날 때까지 오랜 기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선조의 신임이 두터웠기 때문이다. 그는 도원수에 대힌 비판이 계속 이어지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우리나라는 시비를 알 수 없다. 권율의 사람됨은 내가 한 번도 보지 않았지만 그 처사를 보건대 범용한 인물은 아니다. 다만 근래에는 일을 하지 않는 것 같다....... 비방이 많이 일어나니 원수가 견딜 수 없을 것이다. " 위에서 알 수 있듯이 권율은 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선조는 그를 광주목사로 내려보낸 이후 여러 싸움에서 이긴 것을 잊지 않았고 도원수를 교체하라는 강한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그 직을 감당할 인재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권율을 계속 도원수직에 머물게 하였다. --- p.244~2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