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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조감도편
대경성부대관 인천부 인천부 전체 색인도 인천부 부분 색인도 지역별 건물 지도 Part 2 사진 · 해설편 만석정 萬石町 (만석동) 송판정 松坂町 (송월동) 화방정 花房町 (북성동) 산근정 山根町 (전동) 산수정 山手町 (송학동) 지나정 支那町 (선린동) 중정 仲町 (관동) 본정 本町 (중앙동) 해안정 海岸町 (해안동) 내리 ?里 (내동) 용강정 龍岡町 (인현동) 용리 龍里 (용동) 신정 新町 (신포동) 사정 寺町 (답동) 궁정 宮町 (신생동) 빈정 浜町 (사동) 항정 港町 (항동) 송림리 松林里 (송림동) 금곡리 金谷里 (금곡동) 외리 外里 (경동) 율목리 栗木里 (율목동) 류정 柳町 (유동) 화정 花町 (신흥동) 도산정 桃山町 (도원동) 부도정 敷島町 (선화동) 주안 朱安 (주안동) 장의리 長意里 (숭의동) 논고 80년의 시공을 넘은 재회 도미이 마사노리… 내 인생의 항로가 되었던 조감도 김용하 인덱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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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감도 『대경성부대관』은 오랫동안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그 존재는 알려지지 않았다. 내가 처음으로 이 조감도의 존재를 안 시기는 2011년이며 경성에서 자란 어느 일본인이 실물을 보여주었는데 그 세밀함과 아름다움에 놀랐다.
--- p.108 발행 후 80여 년이 지난 지금, 조감도『대경성부대관』과 사진첩『대경성도시대관』의 원본은 겨우 수점 만 그 존재를 확인하는 뿐이다. --- p.109 일본 교토대학교에 유학하던 40여 년 전, 나는 한 장의 아름다운 도면을 발견하고 공개했다. 인천을 그린 채색입체도다. 이 도면이 바로 나를 ‘인천’이라는 도시를 주제로 생애를 걸쳐서 연구하도록 한 장본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도면은 누가 언제 작성한 것일까? 그 수수께끼를 알아내야 되겠다고 나는 다짐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14년, 신기하게도 인쇄된 완전한 도면 2개가 동시에 내 눈앞에 나타났다. 서울역사박물관과 한양대 도미이 마사노리 교수가 각각 입수한 『대경성부대관』이다. 내가 복사한 조감도는 1936년에 발행된 『대경성부대관』의 인천부분이며 채색된 원도임이 밝혀졌다. --- p.114 본서는 2017년에 간행한 『모던 인천 시리즈1-조감도와 사진으로 보는 1930년대』의 개정판이다. 내용에 몇 가지 정정을 가해, 조감도 『대경성부대관』을 기획하고, 배포하겠다는 조선신문 기사를 추가로 게재하였다. 기사에 따르면 경성이나 인천에서 장사를 하거나 관광을 즐기기 위한 상세한 정보가 가득하다고 하여 조선 식민 통치 25년을 맞이한 일본인의 고양감을 부추기는 내용이다. 뒤집어 보면 이는 그야말로 제국주의적 패기로 가득 찬 기록물이었음을 실감할 수 있다. --- p.122 건축가 도미이 마사노리 교수와 인천에서 도시 역사를 연구하는 김용하 박사가 남다른 열정으로 지도와 사진첩이라는 두 자료의 수수께끼를 추적한 것은 이것이 도시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두 연구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잠자고 있던 기록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 현대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편집한 것이다. --- p.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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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기록하기 위해 예사롭지 않은 집념으로 작업이 된『대경성부대관』(1936년 발행)과 사진첩『대경성도시대관』(1937년 발행). 그런데 그 기록이 시대 흐름 속에서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이 세상에는 지난 시대에서 시선을 돌리고 싶어 하는 이도 있고, 역사를 잊고 싶어 하는 이도 있을 거니까.
그리고 80년이 지나 그 기록을 발굴한 사람이 나타났다. 인천의 도시 연구가 김용하 박사와 한양대 건축학부 도미이 마사노리 교수다. 둘은 또한 예사롭지 않은 집념을 가지고 조감도의 제작 과정과 조감도와 사진첩의 연관성을 밝혀냈다. 이 책은 두 연구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잠자고 있던 기록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 현대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편집한 것이다. 이 책을 들고 인천 구도심을 돌아보면 1930년대의 거리나 건물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가 시작된 도시 인천에는 지금도 그 흔적이 짙게 남아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