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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내가 겪은 시가 나를 구원한다
1부 울면서 걷는 마음 『사는 일』 나태주 / 울면서 걸었다 『속리산에서』 나희덕 / 인생은 개척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 『야간 산행』 오세영 / 시시포스의 운명 『생활에게』 이병률 / 일의 기쁨과 슬픔 『동사무소에 가자』 이장욱 / 동사무소만이 알고 있다 『삶은 달걀』 백우선 / 새가 먼저인지 알이 먼저인지… 『밥을 주세요』 김지녀 / 정답이 없는 시 『지하인간』 장정일 / 반지하 인간 『겨울산』 황지우 / 나도 견디고 있다 2부 번지는 마음 『밤』 박시하 / 슬픔과 침묵 『어둠이 아직』 나희덕 / 이토록 충만한 어둠 『초산』 장석주 / 울음이 온몸으로 밀려들어온 후에 『무릎으로 남은』 유병록 / 어찌하여 이번 생에 『사과 없어요』 김이듬 / 소심하면 어때 『밥』 천양희 / ‘혼자’라는 시대 『탕자의 기도』 손택수 / 나는 떠돌이 『껌』 김기택 / 내 안의 파시스트 『아프리카의 어느 어린이가』 / 너는 어느 색이냐고 묻는 말들에 관하여 『형용사로 굴러가는 기차』 박연준 /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수묵 정원 9 - 번짐』 장석남 / 번짐의 기적 3부 슬픔을 공부하는 마음 『어두워지기 전에』 한강 / 한강의 눈꺼풀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심보선 / 기리코의 그림과 함께한 십오 초 『길을 잃다』 이병승 / 발자국이 찍히길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박준 / 슬픔은 자랑 『교조』 송경동 / 답답함과 굳은 마음 사이 『오래된 기도』 이문재 / 눈을 감거나 천천히 『화』 도종환 / 화가 난 내 앞에서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 촘촘한 결핍의 마음 『침대를 타고 달렸어』 신현림 / 돌침대와 라텍스 『내 자아가 머무는 곳』 박서원 / 밧줄이 필요해 『어쩌자고』 진은영 / 어찌할 수 없고, 어찌할 바를 몰라도 4부 늠름한 마음 『외딴섬』 홍영철 / 지금 이대로 『빈 집』 기형도 /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 『전화』 마종기 /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포개어진 의자』 김소연 / 서성이는 의자 『독거』 안현미 / 감사한 일요일 『권오준씨』 정영 / 누구나, 아무나 『너에게』 최승자 / 궁금하고 절박한 『젖이라는 이름의 좆』 김민정 / 맨몸으로 맞서는 시 『이우성』 이우성 / 잘생긴 마음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황인숙 / 고양이의 본능을 품고 5부 사랑에 답하는 마음 『남해금산』 이성복 / 헤어질 결심 『다음 생에 할 일들』 안주철 / 이번 생에는 피식 『국수』 이재무 / 희망의 따근한 국수 『오직 한 사람』 황화자 / 서울 남편 장춘 남편 『남편』 문정희 / 위대한 동맹 『추억의 다림질』 정끝별 / 다리미의 눈물 『물을 만드는 여자』 문정희 / 오줌에 대하여 『둥긂은』 허은실 / 둥글게 굴러가기 위해 『내 늙은 아내』 서정주 / 시처럼 살다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조병화 / 잘 떠나는 연습 6부 고결한 마음 『폐허 이후』 도종환 / 머리에 쌓인 재를 털고 나아가는 시간 『버들가지들이 얼어 은빛으로』 최하림 / 시간을 바라보는 일 『종점』 이우걸 / 다정한 그 어깨는 어디로 갔을까? 『뒷골목 풍경』 이동순 / 그리운 소음 『눈』 윤동주 / 하얗고 시려운 마음을 생각하며 『내 기분』 강달막 할머니 / 사랑스러운 기분 『무서운 손자』 강춘자 할머니 / 가장 무서운 시간 『늙은 여자』 최정례 / 몇 겹의 여자 『웃지 마세요 당신,』 이규리 / 대답할 수 없는 물음 『엄마가 들어 있다』 이수익 / 살과 살의 추억 『귀여운 아버지』 최승자 / 세상의 모든 아버지에게 『바람 속에 답이 있다』 밥 딜런 / 바람만이, 노래만이 에필로그 추천사 조용하게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주는 것 -이우성 인용시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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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 마을에서부터 여기까지 저 너머 큰 길까지 두 시간 걸어가면서. 타박 타박 타박… 그때… 나는 오십 중반에 완전히 망한 사람이었습니다. 거드름 피우며 행세했던 장학사를 그만두고 초등학교 교감으로 내려왔고, 서울에서도 완전히 잊힌 시인이었어요. 망했다는 걸 인정하고 울면서 길을 걸었어요. 울면서 걸으며 시도 쓰고 풀꽃 그림도 그렸습니다. 그 길이 없었으면 나는 끝이었을 거예요. 울면서 걸으면서 나는 달라졌어요. 울면서 『사는 일』이라는 시를 써서 지금의 내가 있어요.”
선생은 자신을 휴짓조각이나 돌멩이처럼 길 위에 던져 놓았다고 했습니다. 나태주 선생과 길 위에서 주거니 받거니 읊은 수많은 시가 있지만, 이 시 『사는 일』이 가장 기억납니다. ‘오늘도 하루 잘 살았다, 굽은 길은 굽게 가고, 곧은 길은 곧게 가고… 걷지 않아도 좋을 길을 두어 시간 땀 흘려 걷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나쁘지 아니했다…’ --- 「울면서 걸었다」 중에서 어린이의 뼈 때리는 통찰에 얼굴이 훅 달아오르는 시입니다. 정말 그러고 보니 아플 때도 추울 때도 블랙은 언제나 블랙입니다. 태어날 때도 죽을 때도 블랙은 한결같은 블랙입니다. 반면 추울 때는 새파랗게, 더울 때는 시뻘겋게, 태어날 때는 분홍색, 죽을 때는 회색… 환경에 따라 색을 바꾸는 쪽은 화이트지요. 그럼, 아이의 반문처럼 정말 누가 ‘유색 인종’일까요? 오직 색을 기준으로 관찰한 어린 현자의 과학적 일침에, 세상 만사가 다 달리 보입니다. --- 「너는 어느 색이냐고 묻는 말들에 관하여」 중에서 그를 볼 때마다 저는 그의 얇은 눈꺼풀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때론 어둠의 닻으로 때론 빛의 돛으로 움직이는 그의 얇은 눈꺼풀은 늘 세계를 항해하느라 예민하게 떨렸고, 완전히 닫거나 열지 않은 채였습니다. 사람들이 폭력의 어둠에 눈 감으려 할 때, 서로를 향한 염려의 빛을 보지 못할 때마다, 그의 눈꺼풀은 언어라는 빛의 실로 우리를 이어주기 위해 아름다운 모스 부호로 진동했습니다. 그렇게 빛 속의 숨은 어둠을 세고 있는 한강 작가의 눈꺼풀을 떠올리며, 무엇보다 한강이 노벨문학상 시상식에서 발표한 아름다운 강연과 소감 전문을 전 국민이 읽을 수 있었던 건, 2024년 연말의 가장 큰 행운이었습니다. 그 글에는 한강이 감지해온 빛과 어둠이 씨실과 날실처럼 정교한 태피스트리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 「한강의 눈꺼풀」 중에서 조선족 이춘자 할머니와 오래 함께 살았습니다. 한들한들 손발과 순한 마음을 가진 이춘자 할머니는 저를 대신해 제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재웠습니다. 늦은 밤 마감을 하고 돌아와 춘자 할머니와 아이들 곁에 누우면 잠시나마 평안했습니다. 춘자 할머니는 돈 벌어다 주고 꽃놀이도 데리고 가고 찜질방에도 함께가는 저를 ‘서울 남편’이라고 부르며 좋아했습니다. 춘자 할머니의 진짜 남편은 중국 장춘에 있었습니다. 착한 남편 덕에 한국에 오기 전까지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놀았다’고 ‘공주처럼 살았다’고 그녀는 제 앞에서 능청을 떨곤 했습니다. 그러던 장춘 남편이 며칠째 목소리가 안 나온다고 전화기 너머로 ‘꺽꺽’대는 소리만 내더니… 갑자기 저 세상으로 떠났습니다. 남편이 떠난 뒤 살이 마르고 얼굴이 꺼멓게 타들어가는 그녀를 일으켜, 밤의 숲길을 걸었습니다. 별빛 아래 벤치에서 꺼이꺼이 우는 춘자 할머니의 등을 쓸어주었습니다. --- 「서울 남편 장춘 남편」 중에서 『페허 이후』라는 시에는 그 ‘계속하는 생명의 힘’이 있습니다. ‘화산재에 덮히고 용암이 녹는 산기슭에도 살아서 재를 털며 돌아오는 벌레와 짐승이 있다’라는 대목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내가 나를 버리지 않고,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고… 폐허 속에서도 머리를 들어 재를 털며 돌아오는 ‘나’를 상상합니다. 이제껏 그렇게 해왔으니, 앞으로도 재를 털고 나아가겠습니다. --- 「머리에 쌓인 재를 털고 나아가는 시간」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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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지도 속으로, 친절히 안내하고 같이 여행하다
삶의 순간순간 ‘마음’이라는 약하고 여린 곳을 지켜준 시, 진심이 담긴 문장과 에세이 63편을 골라 엮었다. 나태주의 「사는 일」, 한강의 「어두워지기 전에」, 이성복의 「남해 금산」, 최승자의 「귀여운 아버지」까지…. 시대와 감정을 넘나드는 시들과 함께, 각 시마다 김지수 작가의 해설과 감상, 그만의 이야기가 곁들여져 있어 시를 처음 만나는 독자에게도 친절하고 천천히, 시를 안내한다. 첫 책 『시, 나의 가장 가난한 사치』는 2017년 『괜찮아, 내가 시 읽어줄게』로 새 옷을 입었으나 절판이 되고 말았다. 그리 묻혀 있는 책을 찾는 이들이 가끔 연락을 해왔다. 그리하여 2024년 겨울부터 다시 예전 원고를 다듬고, 새로운 시 10편을 추가로 더해 『지켜야 할 마음이 있습니다』로 다시 엮었다. 오랜 시간의 먼지를 털고 새 옷을 입고, 다시 새 독자를 이제 만나려 한다. 이 시들이 당신의 마음을 지켜주기를 시는 읽을 때마다 다르고 또 새롭게 다가온다. 슬픔도 기쁨도 오롯이 담아내며, 언제나 마음을 받아주는 그릇이 된다. 당신이 혹, 시를 잘 몰라도 괜찮다. 오늘 처음 만나는 시라고 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 시는 이제까지 한 번도 당신을 잊은 적 없다. 그러니 마음이 가려는 쪽으로, 이 책 속의 시들을 읽고, 흔들리고, 사랑하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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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나를 위로하고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적이 있다. 지금은 아니다. 시인도 사람이고, 시인도 지금 이 세계를 살아내는 게 힘들기 때문이다. 나를 위로할 힘이, 당신을 위로할 힘이 나에게 없어, 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으며, 그리하여 내가 생각하는 시란, 지금의 시란, 그저 힘없는 고백일 뿐이라고… 말할 수밖에.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만은 붙들고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이 책 『지켜야 할 마음이 있습니다』는 말하는 것이다. 만져봐. 네 마음이 아직 거기 있어? 물으며 웃고, 능청스럽게 다가와서 손잡고, 그 온기를 마음 깊이, 더 깊이, 밀어 넣는다. 그럴수록 열심히 살아야지, 긍정해야지, 힘내야지, 할 수 있어… 따위의 말 대신, 아이를 재우듯 조용하게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주는 것. 그러고 보면 불면증은 어른의 일이고, 자장가가 필요한 건 어른이구나. 나구나, 당신이구나…. 그래서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 이 책을 읽는 당신도 하게 될 거라고, 적는 게 나의 오만이 아니면 좋겠다 - 이우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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