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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책을 펴내며_ 쉰의 나이, 나를 탐구하다

제1화 나는 촌놈이다
제2화 부모는 언제나 자식 편이어야 한다
제3화 길가의 들꽃에게도 배우라
제4화 문자를 세우지 마라
제5화 부처와 스승은 만나는 족족 죽여라
제6화 자신과 진리를 등불로 삼고 의지하라
제7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허둥지둥댈 것이다
제8화 수행은 업業을 짓는 일이다
제9화 아내는 하느님처럼 모셔라
제10화 넘치면 덜어내고 모자라면 채워주라
제11화 서로 대하기를 손님 모시듯 하라
제12화 방하 - 놓아라, 버려라, 떠나라
제13화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학적은 바꿀 수 없다
제14화 매 순간 태어나고 죽는다
제15화 한 걸음만 더!
제16화 나는 왜 시를 쓰는가
제17화 세상이 채찍으로 너의 등짝을 세차게 후려치리라
제18화 만물은 서로 돕는다
제19화 나는 어떻게 무상심법을 체득했나
제20화 꿈을 꿔도 좋을까
제21화 위험하지 않으면 학자가 아니다
제22화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
제23화 바로 지금 죽을 것처럼 사랑하며 살자
제24화 당신은 어떤 마음에 점심하려는가
제25화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제26화 나는 왜 존경하는 인물이 없는가
제27화 나는 진보좌파로 살기로 했다
제28화 나이 들수록 마음이 아니라 몸에 의지하라
제29화 공자가 죽어야 자식이 산다
제30화 죽고 사라짐을 두려워 마라
제31화 텍스트의 해체와 재해석 없이 진보와 진화는 없다
제32화 텍스트의 해체와 재해석이 곧 창조다
제33화 호흡 - 생명을 마시고 내뱉다
제34화 남이 나의 삶을 대신 살 수 있을까
제35화 물질과 정신 중에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제36화 고독을 즐기되 고립은 피하라
제37화 끽다거 - 차나 한 잔 드시게
제38화 나는 매일 속세로 출가한다
제39화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라
제40화 나는 어디에, 또 무엇에 목숨을 걸 것인가

에필로그

저자 소개 1

1963년 대구 성서(城西) 망정동(望亭洞)에서 태어난 저자는 성서초등학교·성서중학교·계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계명대학교에서 법학사와 법학석사(국제법)를 취득했다. 저자는 프랑스 엑스마르세유3대학에서 유럽연합(EU)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로 있다. 최근 저자는 법학과 문학 및 인권과 유학의 융합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해방 이후 법정 필화 사건을 다룬 『법정에 선 문학』과 유럽의 고전을 법문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나는 태양 때문에 그를 죽였다』는 전자를, 선진 시대를 대표하는 유묵도법(儒墨道法)의 사상을 현대 인권의 시각에서
1963년 대구 성서(城西) 망정동(望亭洞)에서 태어난 저자는 성서초등학교·성서중학교·계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계명대학교에서 법학사와 법학석사(국제법)를 취득했다. 저자는 프랑스 엑스마르세유3대학에서 유럽연합(EU)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로 있다.

최근 저자는 법학과 문학 및 인권과 유학의 융합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해방 이후 법정 필화 사건을 다룬 『법정에 선 문학』과 유럽의 고전을 법문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나는 태양 때문에 그를 죽였다』는 전자를, 선진 시대를 대표하는 유묵도법(儒墨道法)의 사상을 현대 인권의 시각에서 분석한 『선진유학과 인권』은 후자에 대한 연구 끝에 나온 작품이다.

시인으로서 저자는 여러 권의 시집을 펴냈다. 대표작으로 『바람이 시의 목을 베고』, 『칼을 갈아도 날이 서질 않고』, 『무 한 뼘 배추 두 뼘』, 『교수님 스타일』 등이 있다.

저자는 자유·인권·평화가 실현되는 세상을 꿈꾸며 학문의 길을 걷고 있다. 모든 존재는 자유롭고 평등하며 존엄하다는 인문학적 성찰의 바탕 위에서 학문과 문학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학자의 길을 선택한 이상 밥값은 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제 부처님께 밥값을 다했다! 성철 스님 말씀처럼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쉼 없이 정진하며 밥값을 다하는 학자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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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3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240쪽 | 188*257*20mm
ISBN13
9791158545574

책 속으로

불교 수행자들은 백골관을 통해 인간의 몸과 마음을 구성하는 사대와 오온이 사라지고 결국에는 앙상한 뼈만 남는 과정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인생무상을 깨닫는다. ‘오온이 모두 공하다’는 오온개공五蘊皆空이다. 내가 살던 시골집 건너편에 공동묘지가 있었다. 매일 그 위로 아침해가 떠올랐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해 아무런 관심과 의식도 없던 어린 시절, 나와 친구들은 공동묘지를 놀이터 삼아 뛰놀았다. 사대와 오온이 풍화되어 하얀 백골이 된 해골바가지는 막대 끝에 매달린 장난감이 되었다. 더러는 축구공이 되어 우리 발끝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어린 내게 죽음은 전혀 심각하지 않았다. 그저 놀이나 유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백골관을 대하고 나서부터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질풍노도라 불리는 사춘기가 시작되었고,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고민으로 사뭇 진지하고 심각한 때였다. 백골관은 청소년기의 내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도 언젠가 죽으면 사대와 오온이 바람에 흩날려 사라져 버릴 것이 아닌가?” 하릴없이 산등성이나 강가에 앉아 인간과 자연의 본질과 현상에 대해 사색하는 시간이 늘었다.
--- p.28 「제4화 문자를 세우지 마라」중에서

어릴 때부터 형식과 절차에 얽매이는 것을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나를 한동안 교회에 다니게 하고, 또 나름대로 성경을 열심히 읽고 기독교를 공부하게 만든 것은 바로 인간(사람) 예수였다. 천지창조와 원죄, 성령 잉태와 같은 성경 내용에는 강한 거부감이 있었다. 비록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음에도 신과 사회, 인간에 대해 처절하게 고뇌하며 방황하는 예수는 가슴 깊이 자리했다. 40일간 광야를 떠돌며 방황하고 사탄과 당당하게 맞서는 예수는 좌충우돌하는 청소년기의 내 모습이기도 했다. 더욱이 여호와의 성령이 깃든 성전에서 ‘그의 이름을 팔아’ 장사하는 상인들을 채찍으로 후려치고 사회적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온몸으로 부딪혀 싸우는 모습에서 저항자·반항자 예수를 발견했다.
--- p.46 「제7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허둥지둥댈 것이다」중에서

면접은 전공과는 무관하게 진행되었다. 연구자로서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학문을 대하는 태도는 어떠한지, 어떤 계기로 학문을 하게 되었는지, 앞으로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학문을 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일체의 질문도 하지 않았다. 마치 면접은 ‘너는 지방대 출신’이라는 해묵은 관념을 주지시키고, ‘네가 감히 우리 대학을 넘봐’라는 식의 모욕과 굴욕을 주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분’이 그런 식의 면접을 하는 동안 다른 교수들은 고개를 푹 떨구고 서류나 뒤적이며 아무런 이의제기나 항변도 하지 않았다. 참 한심하기 그지없는 풍경이었다. 면접을 마치고 나오는데 학과장이 급히 따라 나오더니 차비라며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화가 치밀어 양복 안주머니에 밀어 넣고는 얼마인지 세어보지도 않았다. 지하철을 타고 친구를 만나러 이동하는데 비구니 스님 한 분이 목탁을 두드리며 탁발을 하고 있었다. ‘에랏! 더러운 돈, 좋은 일에나 쓰자’는 심정으로 스님이 들고 있는 보시함에 봉투를 넣었다.
--- p.88 「제13화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학적은 바꿀 수 없다」중에서

오십 평생 살면서 깨달은 게 있다. 만일 내가 어리석어 바르게 깨닫지 못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세상이 채찍으로 나의 등짝을 세차게 후려치며 가르친다. 이것은 개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와 국가도 마찬가지다. 개인이든 사회와 국가든 바른 깨달음을 얻고 이를 실천하지 못하면 흥망성쇠를 비켜갈 수 없다. 하지만 우선 개인으로서 ‘나’에 착목하자.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찰나의 순간에 바르게 깨닫고 실천하라. 다음에, 다음에 하면서 미루고 머뭇거리다 보면 반드시 윤회의 과보를 받는다. 현생을 제대로 살지도 못하면서 영생의 헛된 꿈을 품어서 무엇하리. 어제의 나는 죽었고 내일은 없다. 바로 지금 살고 바로 지금 죽어라. 그래야 현실의 삶을 의미 있게 살다가 후회 없이 죽을 수 있다.
--- p.112 「제17화 세상이 채찍으로 너의 등짝을 세차게 후려치리라」중에서

중생이 아프면 보살도 아프다!
보살행을 일컫는 말이다. 병고를 겪으면 누구나 처음에는 ‘나’에 집착하고 매달린다. 이 또한 피할 수 없다. 먼저 나의 병고에서 벗어나는 것이 최상의 방책이니까. 하지만 나의 병고에 대해 성찰하게 되면, 서서히 ‘너’와 ‘그’, ‘우리’의 아픔에 대해 공감하고 연민의 마음을 갖게 된다.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는 성인의 말씀이 체득되는 순간이다. 울컥 한 바가지의 눈물을 쏟고 나면 절로 마음이 고요하고 평안해지며, 평화와 기쁨의 물결이 밀려든다. 깨달음과 법열의 순간이다.
--- p.141 「제22화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중에서

공부 잘하는 우등생이기도 했던 나는 한때는 공부를 지독히 못하는 열등생이기도 했다. 우등생일 때는 공부 못하는 친구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공부란 열심히 하면 잘할 수 있는데 왜 저럴까?”라며 속으로 무시하고 비웃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사춘기 동안 정신적 방황으로 길을 잃고 헤매면서 공부를 하지 못하니 추락하는 성적과 함께 내 처지와 대우도 급전직하했다.

(중략) 공부는 잘하면 좋고 잘하지 못해도 좋다. 세상은 공부 잘하는 1%만 살아가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은 99%의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다. 각자는 각자의 몫이 있고 할 일이 있다. 이미 죽어 백골마저 썩어버린 공자에게 얽매여 자녀를 병들게 하고 죽게 할 것인가? 아니면 공자를 죽이고 자녀를 살릴 것인가? 선택은 부모의 두 손에 달려있다.
--- p.179 「제29화 공자가 죽어야 자식이 산다」중에서

사실 세속은 큰 배움터이자 도량이다. 산속으로 출가하든 아니면 속세에서 일상의 삶을 살든 그것은 하나의 방편이다. 누구나 마음만 굳게 먹고 수행정진하면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몸은 산속에 있어도 마음은 속세에 머물러 있다면 제아무리 고된 수행을 해도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 반대로 속진에 찌든 현실에서 오욕칠정으로 점철된 삶을 살지라도 바른 생각과 수행을 하면 누구나 선지식이 될 수 있다.

(중략) 스승의 죽음이 가까워진 것을 직감한 아난다는 더 이상 스승에게 배우지 못하고 의지할 사람 없이 홀로 남겨질 것을 두려워한다. 아난다가 슬퍼하며 부처에게 물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시고 나면 제자들은 누구를 믿고 의지해야 할까요?” 이 말에 부처는 가볍게 제자를 질책한다. “나는 이미 그대들에게 모든 것을 말하였다. 무엇이 두려운가?” 그런 스승에게 아난다는 한 말씀만 들려달라고 간청한다. 제자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부처는 마지막 설법으로 자비를 베푼다. 그 말은 부처가 생전에 남긴 마지막 말이자 유훈이 되었다.
“자신을 등불(스승)로 삼고, 진리를 등불(스승)로 삼으라!”

--- p.223 「제38화 나는 매일 속세로 출가한다」중에서

출판사 리뷰

시 쓰는 법학자 채형복 교수의 자성록
쉰의 나이, 나를 탐구하다

“『논어』 「위정」 편에서 공자가 말한다. ‘五十而知天命(오십이지천명).’ 나이 쉰에는 하늘이 자신에게 부여한 사명이 무엇인지 깨달아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공자처럼 거창하지는 않지만 세속의 나이 쉰에서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문득 나 자신에 대해 궁금해졌다. 지난 세월 동안 나는 어떤 생각으로 살아왔으며, 앞으로 남은 삶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채형복’이란 개인으로서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가? 한마디로 나 자신에 대해 알고 싶었다.”
(‘책을 펴내며’ 중에서)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있는 저자는 ‘법학자-시인’으로 불리고 있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학문을 대표하는 법학과 추상적이고 감성적인 시(詩)는 언뜻 보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법학자라고 해서 시를 쓰지 못하리라는 법이 없고, 시인이라고 해서 법학자가 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럴지라도 법학자가 고도의 감수성을 갖춘 시인이 되어 꾸준히 시를 쓰는 경우를 찾기란 쉽지 않다.

저자의 본업은 로스쿨에서 법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교수이다. 프랑스에서 공부한 저자는 국내에서 유럽연합(EU)법과 국제인권법 분야를 대표하는 전문가이다. 단독과 공저로 수십 권의 학술저서와 백수십 편의 학술논문을 발표했으니 학문에 대한 그의 열정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저자의 관심은 전공 분야의 연구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이성 중심’의 법학이 가진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보완, 극복할 목적으로 ‘감성 중심’의 시 창작에 몰두하고 있기도 하다.

저자는 ‘법과 문학’, ‘인권(법)과 유학’ 등 서로 섞이기 어려운 학문의 결합을 시도한다. 그가 법학과 인접학문의 새로운 만남을 시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문은 전통과 독자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 가치에만 매몰되어 인접학문의 연구 성과를 도외시하고 다학문적 만남을 기피하고 외면해서는 아니 된다고 믿는 까닭이다. 학문이든 사람이든 서로 부단히 만나 교류하고 결합을 시도함으로써 새로운 시사점을 얻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 학자로서 그는 전통사상을 본받아 현대사회에 맞게 새롭게 창조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다발골수종이란 혈액암으로 투병 중에 있다. 아프기 몇 해 전 자신의 인생 오십 년을 성찰하고 되돌아보는 글을 써서 모아두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또다시 내일, 다음에’ 미루기보다는 평소 ‘지금 여기’에 살고 죽는다는 삶의 가치관에 따라 그간의 글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나는 매일 속세로 출가한다』는 자신의 내면을 철학적·사변적으로 탐구한 자성록(自省錄)이다. 흔히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이 자신의 업적을 과장하여 정치나 비즈니스에 활용할 목적으로 쓴 회고록이나 자서전과는 전적으로 다른 유형의 글이다. 저자는 자신의 삶을 규정짓는 40개의 주제를 정한 후 인위적으로 무엇을 더하거나 빼지 않고 진솔하고 담담한 필치로 삶을 대하는 가치관을 그리고 있다.

“나는 어떤 지식인인가? 어떤 지식인이 되려 하는가?
스스로 묻고 답한다면, 나는 자성(自省)의 지식인 혹은 성찰(省察)의 지식인이다. 어릴 적부터 내가 추구한 지식 혹은 철학적 사유의 핵심은 나-자아(自我) 또는 나의 내면 탐구였다. 내가 개인의 주체성을 강조하고 주체적 개인이 누리는 자유를 역설하는 것도 ‘나’에 대한 철학적 고민의 결과이다.”
(「제3화 길가의 들꽃에게도 배우라」 중에서)

저자는 ‘나-자아’에 대한 성찰과 탐구를 철학적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나’라는 개인이 자신의 삶의 주체로 바로 서지 않고는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자유와 권리를 향유할 수 없다.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저자는 “위험하지 않으면 학자가 아니다”라는 지식인상을 정립한다. 천 길 벼랑과 같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한 걸음 더 내딛지 않고는 학자는 진보할 수 없다. 지식인-학자로서 저자는 매 순간 살고 죽으면서 나날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명철한 깨달음을 현실에서 실천하려 한다.

“나는 어디에, 또 무엇에 목숨을 걸 것인가.”

이 책의 마지막 글에서 저자는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그러고는 “죽음은 삶처럼 위대하다”는 월트 휘트먼의 시구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마지막 바람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매 순간 살고 죽은 나는 매 순간 ‘새로운 나’로 태어난다.
지금-여기서 과거의 죽은 나를, 미래에 존재하지도 않는 나를 찾지 말라.”

어느 법학자-시인의 인생 50년을 자성록으로 묶어낸 이 글은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저자가 쓴 한 줄, 한 쪽의 글에라도 공감하게 된다면 그 모든 이들의 삶이 나날이 새롭고 행복하리라 믿는다.

머리말

초고를 쓴 지 여러 해가 지났다. 원고를 묵히고 출간을 주저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하지만 무엇보다 고통으로 아우성치는 세상의 아픔을 외면한 채 시답잖은 사적 이야기나 하는 것 같은 자괴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부끄럼을 떨치고 책을 내기로 용기를 낸다. 반듯한 이성과 논리로 치장된 학자의 모습에서 벗어나 개인으로서 나의 속살을 드러내고 싶었다. 오히려 그것이 대중과 소통하고, 또 나를 알고 있는 지인들에게 친근감을 주리라는 믿음도 한몫했다.

한 주에도 몇 차례 부고를 받는다. 머잖아 나도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갈 것이다. 이제 현생에서 살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죽기 전까지 삶은 계속될 것이고, 매일 매 순간 나는 새롭게 태어나고 죽을 것이다. 살아 숨 쉬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사랑하며 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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