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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 이순신을 경제전문가로 재조명한 책
개정판에 부쳐 프롤로그 | 이순신을 보는 새로운 시각 제1부 이순신, 7년전쟁의 중심에 서다 1장. 7년전쟁의 재구성 ‘통보된 기습’ 1592년 4월 13일 부산포 | ‘정보의 빈곤’ 바다를 버린 대가 | 도요토미의 실수, 일본의 착각 | 2단계 전쟁-일본, 수륙병진을 시도하다 | 침략군의 비극 “조선 수군을 몰랐다” 2장. 이순신과 한산대첩 제법 용맹하나 국량은 부족한 장수, 원균 | 주도면밀한 선비형 무장, 이순신 | ‘조선의 살라미스’ 견내량과 한산바다 | 한산대첩의 ‘숨겨진 진상’ 3장. ‘원균의 역설’ 이순신, 삼도수군통제사 취임하다 이순신과 원균의 갈등, 불화 | 이순신 함대의 한산도 이진(移陣) | 제2차 진주성 전투와 수군통제사직 신설 제2부 한산수국에서 경제기반을 확립하다 4장. 한산수국의 ‘건국’-영역확보와 해변의 대개간(大開墾) 경제적 자립의 필요성 | 수군 군정체제(軍政體制) 수립-수국의 영역을 확보하다 | 둔전책(屯田策)-버려진 땅을 일궈 백성과 군사를 먹이다 5장. 한산수국의 경제전쟁 - 말업(末業)을 키워 전비를 조달하다 ‘바다 농사’를 본격화하다 | 국내외 해상무역에 나서다 | 공업 생산력을 확충하다 6장. 한산수국 독자행보 3년 6개월 강력한 인재풀을 갖추다 | 독자적 상벌체제를 확립하다 | 한산수국 ‘조선의 3분의 1’ 제3부 1597년 이순신, 역사의 전면에 서다 7장. 정유재란과 한산수국의 붕괴 선조, 이순신을 불신하다 | 조정과 일본군의 ‘이순신 죽이기’ 공모 | 체포당하는 이순신, 한산수국의 몰락 | 백의종군하며 재기를 준비하다 8장. 청해진 옛터에서 수국을 재건하다 원균의 몰락과 이순신의 재기 | ‘기적의 싸움’ 명량대첩 | 보화도에 기지를 건설하다 | ‘제2의 수국’ 고금도 군영 9장. 정치적 도약-이순신, 대명 수군도독에 제수되다 인재들의 운집 | 이순신, 명군의 신망을 얻다 | 명나라 수군도독(水軍都督)에 오르다 | 대명 수군도독 이순신의 ‘꿈’ 제4부 이순신은 죽고 조선은 살아남다 10장. 이순신의 죽음과 수국의 체제 편입 이순신 ‘도독’ 제수와 조정의 불안감 증폭 | 머리 좋은 선조의 ‘자객 활용론’ | 수수께끼의 인물 ‘손문욱(孫文彧)’ | 홀중비환(忽中飛丸), ‘갑자기 날아든 탄환에 맞다’ | 왕의 승리, 수국의 체제 편입 11장. 수국의 계승-‘해변의 총독부’ 삼도수군통제영 종전 후 최대 논쟁-해방 본영(海防 本營)의 위치 선정 | 두룡포에 통제영을 건설하다 | 통제사, ‘해상 총독(海上總督)’으로 격상되다 | ‘3만 6,009장졸, 548함대’의 병권을 쥐다 에필로그 | 이순신 수국 프로젝트의 현재적 의미 |책속의 책| ‘바다를 버린 나라 조선’ 포상팔국에서 삼별초까지-한반도 해상왕국의 전설 공도정책(空島政策)과 해금령(海禁令)|기말이반본(棄末而反本)-이데올로기가 된 해양 천시 | 조선은 왜 대마도를 지키지 못했나? | “해변은 2등 백성의 땅” 참고문헌 그림과 사진, 도움주신 분들 |
張漢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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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웅 이순신’의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 「첫 문장」 중에서 이 책은 ‘수국’의 건국과 명멸을 담은 역사서이다. 즉, 이순신이 역사의 주역으로 등장한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그가 이룩한 수국의 성과가 훗날 어떤 모양새로 계승되는지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추적해 본 것이다. --- p.12 이순신의 ‘수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국 탄생의 배경이 된 7년전쟁, 1592년 봄부터 1598년 말까지 7년간 지속된 동아시아 국제전(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종합한 개념이다.)을 제대로 이해하여야 한다. 사실 7년전쟁은 매우 식상한 주제이지만 이순신이 그 주인공이었고, 수국의 출범을 가져다준 시대상황이라는 점에서 세밀하게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 p.23 원균은 이순신과의 합동작전 때도 몸을 사리지 않았다. 원균의 트레이드마크는 ‘전어선등(戰於先登)’, 즉 전투에서 앞장선다는 뜻이다. 전공에서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에다가 관할지역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타도의 병력을 요청하였다는 자책감이 겹쳤기 때문이리라. 원균의 장기는 당파(撞破)였다. --- p.61 통영과 거제 사이 견내량 해협의 해류는 썰물 때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고 밀물 때는 반대로 움직인다. 일본 측의 기록에 의하면 한산싸움 직전, 바닷물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수심이 낮아지는 썰물 때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수군은 바닥이 낮아 노가 닿는 견내량이 아니라 수심이 깊은 한산 앞바다로 적을 유인한 다음 해류 흐름이 바뀔 때 타격하는 정교한 작전을 미리부터 세웠다고 판단된다. --- p.78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부지런히 먹을거리를 구해야 했던 수군의 고단한 처지가 고스란히 『난중일기』에 담겨 있다. 일기에 사냥기사가 자주 발견되지만 이는 장수들의 오락 기록이 아니라 일반 군졸들까지 참가한 ‘육류’ 확보용 생계 수단으로 보아야 한다. --- p.117 무릇 나라라고 한다면 반드시 영역이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산수국’의 지경(地境)은 어디인가? 경상-전라-충청 삼도의 해변고을이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삼남의 해변이 저절로 수국의 땅이 된 것은 아니다. --- p.121 이윤을 따라 길을 여는 상인의 행로는 예나 지금이나 정치, 군사의 장벽을 뛰어넘는 법이다. 식량과 철, 옷감 등을 실은 외상(外商)들의 배는 소리도 없이 남해 바다로 들어왔고, 통제영에서 구운 소금과 말린 해조류, 건어물, 그릇 등과 바꾸어 조용히 떠나갔을 것이다. --- p.159 한마디로 ‘임금이 바다의 사정은 전혀 모른 채 적과 싸우라고 보채기만 하고 있다.’는 푸념에 다름 아니다. 사실 이순신은 순전히 자신의 역량으로 서 · 남해변에 자립경영의 터전, 즉 ‘수국’을 세웠고 그에 기반하여 적과 싸웠다. --- p.216 이순신의 죽음이 ‘전사’가 맞다면 임금 입장에서는 참으로 적절한 순간에 죽어 준 셈이다. 일본군과 수십 차례 전투를 치른 이순신이 7년전쟁의 마지막 싸움, 그것도 승리가 확정적인 최후 단계에서 숨진 것이 전적으로 우연일까? 기가 막힐 정도로 절묘하기에 우연으로 돌리기가 개운하지 않은 것이다. --- p.339 실록에서는 탄환을 쏜 주체를 ‘적=일본군’으로 규정한 반면, 조카의 기록에서는 탄환의 출발점을 명시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일반적으로는 일본군이 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조카 이분은 분명 ‘갑자기 날아든 총탄’이라고만 적고 있다. 조카 이분이 ‘적환(敵丸, 적의 탄환)’이라는 말 대신 굳이 ‘비환(飛丸, 날아든 탄환)’이라고 쓴 이유는 무엇일까? --- p.3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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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의 재발견
‘수국프로젝트’ 물의 나라, 수국(水國)과 이순신 ‘물 위에 뜬 나라’가 있었다. 한반도에 역사가 생겨난 이후 가장 엄혹했던 시절, 버려진 해변과 섬, 바다 위로 쫓겨난 백성들로서 이룩한, 작지만 굳센 공동체였다. 조선국 안의 또 다른 나라, 가칭하여 ‘수국(水國)’이었다. 7년 전쟁이라는 일대 혼란기에 불꽃처럼 생겨났다가 종전과 함께 왕조체제 안으로 녹아들어간 ‘군·산·정(軍·産·政)복합체’가 곧 수국이다. 수국을 세운 사람은 이순신이다. 수국은 이순신이 7년전쟁에서 경제기반을 확립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된 배경이 되었다. 7년전쟁의 기간 동안 조정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한 상황에서 이순신이 눈을 돌린 것은 ‘경제’였다. 이순신이 7년전쟁에서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경제’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둔전책’을 통해 버려진 땅을 일궈 백성과 군사를 먹여 살렸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바다 농사’를 본격화하였고, 국내외 해상무역에 나섰으며, 공업 생산력을 확충하였다. 이순신이 강한 적과 싸워 언제나 이길 수 있었던 비결 역시 수국, 즉 전쟁의 물적 기반을 튼튼히 구축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수국이라는 명칭은 저자가 즉흥적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이순신이 평소 사용했던 표현을 인용한 것이다. 상승장군(常勝將軍) 이순신의 진정한 힘 이순신은 분명 싸움을 잘한 명장이다. 7년이라는 전쟁 기간 동안 일본군과 스물세 번 싸워 모두 이겼다는 설(23전 23승)이 정설처럼 통한다. 이순신은 탁월한 전략 전술로 한산·명량·노량해전에서 승리함으로써 나라를 망국의 위기에서 구해냈다고 칭송한다. 그러나 이순신을 단순히 ‘전쟁 기술이 좋은 무장(武將)’으로만 규정한다면 그의 진가를, 그의 삶이 지닌 역사적 무게를 제대로 알 수 없다. 이제는 이순신을 바라보는 눈을 한 단계 높여야 한다. 당시 일본은 이순신의 함대보다 몇 배나 많고, 몇 배나 부유한 상대였다. 그런 강력한 적과 싸워 결코 패배하지 않았던 근본적 배경을 탐색하는 일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이룩한 공적은 참으로 웅장하였지만, 알려진 것보다는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더 많다. 이순신의 성과는 시대의 흐름과 함께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이 책의 본질적인 의미도 여기에 있다. 『이순신 수국 프로젝트』는 ‘상승장군(常勝將軍)’ 이순신의 진정한 힘이 어디에 있는지를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 준다. 저자는 이순신을 전투에 능한 군신(軍神)이라기보다는 버려진 해변의 빈 땅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세운 대(大)경제인이자 건국영웅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단순한 장수가 아니라 창업군주에 가까웠던 이순신…….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했던 바닷가의 어리고 작은 나라 수국은 장군의 죽음과 함께 체제 안으로 소멸되었지만 한국과 동양의 역사에 긴 여운을 남겼다. 이순신이 조선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와 해양의 가치 이순신은 ‘바다를 버린 왕국’ 조선에 해양의 가치를 일깨워 주었다. 그가 세우고 아꼈던 ‘물나라, 수국’은 종전 이후 삼도수군통제영으로 계승되며 우리 해양문화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훗날 식민지로 조락했던 그의 조국이 해양강국으로 재기하는 데 있어 정신적 자부심의 원천이 되었다. 조선의 양반 사대부들이 바다를 버린 지 200년이 흘렀을 즈음, 조일전쟁(임진왜란)이 터지고 이순신의 한산수국이 등장한 것은 조선의 명줄을 늘려 주었을 뿐만 아니라 소멸지경에 몰렸던 ‘해양 DNA’를 다시 일깨워 준 계기가 되었다. 공도정책과 해금정책을 사실상 폐기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국의 존재기간은 너무 짧았던 탓에 그 힘을 국가의 온전한 정책으로 투사(投射)할 수가 없었고, 그나마 이순신 사후 물거품으로 사라졌다. 조선의 해양문화는 왕조가 멸망하기까지 삼도수군통제영이라는 작은 불씨에 의존한 채 위태롭게 이어져왔을 뿐 제대로 발양되지 못하였다. 한 마디로 조선의 해변은 왕조의 처음부터 끝까지 사대부가 살만한 땅이 못된다고 낙인찍힌 채 5백 년 동안 움츠러든 셈이다. 실학자로 분류되는 조선 후기의 이중환마저 그의 책 택리지(擇里志)에서 바다 가까운 고을들은 사대부가 살만한 곳이 못 된다고 적고 있을 정도이므로 다른 선비들은 말할 것도 없다. 해변을 기피하고 천시하는 풍조였기에 조선은 19세기 후반부터 서세동점의 물결에 시달려야 했고 20세기 초입에 들어서는 서구 해양문명을 먼저 습득한 섬나라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고통을 겪었다. 19세기의 개화(開化)는 곧 개항(開港)을 통한 해양화에 다름 아니었지만 바다를 닫아걸었던 조선 체제로서는 이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았고, 인재 또한 부족하였다. 조선 왕조가 망하고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것은 해양 포기가 초래한 민족사적 비극으로 규정할 수 있다. 장한식 저자는 『이순신 수국 프로젝트』와 『바다 지킨 용의 도시 삼도수군통제영』 두 권의 책을 통해 이순신과 수국, 그리고 통제영이 남긴 조선의 해양 정신과 문화를 복원하고 있다. 『이순신 수국 프로젝트』에서는 이순신이 바다에서 조선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를 경제적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하고 해양의 가치를 파악한다. 그리고 이 책의 후속편인 『바다 지킨 용의 도시 삼도수군통제영』에서는 조일전쟁의 부산물인 통제영이 300년 가까이 유지되는 동안 조선 전반에 미쳤던 영향과 의미를 살피며 남해의 소도시 통영의 역사적 무게를 복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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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을 영국의 넬슨 제독과 비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넬슨 제독은 영국 정부의 든든한 지원을 받은 상태에서 ‘프랑스와 에스파냐의 연합 함대’를 격멸시킬 수 있었지만, 조선의 이순신에게는 조정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태에서 7년전쟁을 치러야 했기 때문입니다. 즉, 넬슨 제독과 이순신은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제가 이순신에 관련된 서적을 볼 때마다 들었던 생각은 ‘이순신은 어떻게 7년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을까?’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 순간 저의 궁금증은 하나둘씩 풀려나갔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7년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수국’에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 책에서는 ‘한산수국’이 만들어진 후 이순신이 어떻게 경제기반을 만들었으며, 전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경기가 어려워질수록 CEO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순신은 CEO로서의 면모를 두루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이순신을 경제전문가로 보는 저자의 탁월한 안목을 느껴보고 싶다면, ‘제2부 한산수국에서 경제기반을 확립하다’ 부분을 반드시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 윤형식 (전 매경비즈 대표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