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프롤로그_『한일 고대사의 재건축』 시리즈를 시작하며
한일 역사전쟁의 종지부를 찍고 싶다 왜(倭)라는 단어의 생경함 ·5 마름모꼴 바다와 해인족 ‘왜(倭)’ ·7 한일 고대사연구의 비극 ‘역사전쟁’ ·8 고대사의 ‘내부 장벽’ 국내판 역사전쟁 ·13 ‘신라 법흥왕은 선비족 모용씨의 후예였다’ 발간 이후 ·14 1부. 해인족과 한반도왜 1장 _ ‘최초 왜인’ 호공(瓠公)의 정체(正體) ‘한일 고대사의 로제타석’ 호공(瓠公) 기사 ·29 호공의 박은 잠수용 태왁을 의미한다 ·32 호공이 건넌 바다는 고(古)울산만인가? ·35 “호공의 고향, 고울산만 남쪽은 왜의 땅” ·43 2장 _ 종족명 왜(倭)의 출현과 한반도왜(韓半島倭) 왜(倭)라는 족속명의 탄생 ·49 족속명 왜(倭)의 기원에 관한 기존의 설명들 ·53 왜(倭)는 진한인들이 붙여준 타칭(他稱)인가? ·57 ‘초기왜’ 실체는 동해남부 해변인 ·67 속성차이가 부른 신라와 왜의 ‘악연’ ·74 3장 _ 농경의 시작과 해인족의 운명 변화 야요이문화(彌生文化)와 ‘퍼즐 빠진 조각그림’ ·80 마름모꼴 바다와 해인족(海人族) ·83 신석기시대 흑요석(黑曜石) 교역권 ·91 농경시대 개막과 농민집단의 해변 진출 ·96 농경화의 진전과 해인족에 강요된 운명 ·100 4장 _ 농민집단 열도행과 해인족의 성장 규슈에서 확인되는 진주농민들의 흔적 ·107 금관가야 왕자와 동해남부 해변인의 자력(自力) 이주 ·112 한반도 전국시대(戰國時代)와 농민집단 열도 이주 ·117 농민집단 열도행과 해인족의 역할 ·126 해인족의 도해사업(渡海事業)과 강제이주 발생 ·130 2부. 반도왜 몰락과 열도왜 시대 5장 _ 해인족의 나라 포상국(浦上國) 전성시대 해상무역의 발전과 해변경제의 변화 ·144 해변의 중국계 유물과 염철 전매 관련성 ·148 도해(渡海) 비즈니스와 해변사회의 번성 ·162 해인족의 나라, 포상국(浦上國)의 등장과 발전 ·166 6장 _ 포상팔국 전쟁과 한반도왜의 몰락 신라의 팽창과 해변사회의 위기고조 ·171 내륙세계와 해상세계의 갈등 심화 ·174 해상과 농경세력의 대충돌 ‘포상팔국(浦上八國) 전쟁’ ·182 포상팔국 전쟁의 본질은 ‘인간사냥을 둘러싼 대결’ ·186 포상팔국의 실패와 한반도왜의 소멸 ·190 7장 _ 반도왜에서 열도왜로① - ‘왜 인식’ 변화 왜지(倭地) 범위의 3단계 인식 변화 ·194 최초의 왜지(倭地)는 동해남부 해변 ·197 남해안→영산강유역→규슈·혼슈…멀어지는 왜 ·204 반도왜 전승이 적은 이유, 왜=열도라는 고정관념 탓인가? ·209 8장 _ 반도왜에서 열도왜로② - 해인족의 이주 연오랑세오녀 설화(延烏郞細烏女 說話)가 전하는 역사 ·212 해인족의 도주와 왜땅〈倭地〉이 된 일본열도 ·216 농경민-해인족 구분이 사라진 ‘열도왜’ ·218 풍성해진 경제, 왜의 국력 신장 ·221 철(鐵), 열도를 움직인 한반도의 힘 ·223 3부. 임나(任那)의 진실 9장 _ 지역명 임나의 출현과 다양한 분화 임나(任那)가 지닌 여러 얼굴들 ·232 북조해(北阻海) 조건과 ‘고(古)울산만 남쪽땅’ ·237 신라가 임나라는 이름을 외면한 이유 ·244 ‘최초임나=초기왜=초기가야’라는 등식의 성립 ·251 “본국에서 물 건너 땅으로”…일본에서 격하된 임나 ·259 “본국이자 맹주국”…가야권에서 격상된 임나 ·263 10장 _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의 실체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의 등장 ·268 임나일본부를 둘러싼 한일 역사전쟁 ·273 ‘재백제일본왕인(在百濟日本王人)’에서 얻는 통찰 ·278 “임나일본부는 외교관이 활동하던 대사관” ·280 11장 _ ‘숨겨진 존재’ 임나일본부 파견주체 AD 6세기 백제-왜-일본부 간의 삼각갈등 ·286 삼각갈등이 증언하는 ‘일본부 파견주체’ ·292 가야(임나)와 일본부 파견주체, 협력과 갈등관계 ·296 하지왕이 ‘본국왕(本國王)’을 칭한 까닭은? ·301 12장 _ 가야(임나)의 몰락이 증언하는 역사 AD 6세기 가야(임나)의 몰락사 ·305 백제의 임나영토 탈취와 응신왜국 역할 ·308 숭신왜국의 몰락과 신라의 가야 합병 ·316 백제-신라에 양분된 임나의 영역 ·325 백제-응신왜국 ‘뒤늦은 갈등’의 배경은? ·327 ‘임나 기록’이 말하는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편찬원칙 ·333 에필로그 _ 왜와 임나의 수수께끼를 푸는 여정 시대에 따라 달라진 왜와 임나 ·338 초기왜 활동상은 한일공동의 역사 ·340 임나(任那)의 진실은? ·342 참고문헌 ·344 |
張漢植
장한식의 다른 상품
|
‘초기왜’는 일본열도인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라 한반도 동남부의 해변인을 지칭하는 용어였다는 것이 필자의 일관된 주장이다. 진한의 농민들이 경주 인근의 어로종사자들을 멸칭하는 용어로 출발하였다는 말이다. (…) 한인과 이웃한 곳에 살았던 초기왜는 다른 종족이 아니다. 직업과 살아가는 생활방식이 다를 뿐이다.
--- p.67~68 남부해변에는 또 하나의 경제상의 무기가 있었으니 바로 ‘도해(渡海) 관련 사업’이다. 한반도 해인족은 내륙의 농민집단에게 대안지가 존재한다는 ‘정보’와 대안의 땅으로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농민들을 일본열도로 보냈고, 그 덕분에 일본의 야요이 농경문화는 출현할 수 있었다. (…) 가칭 ‘도해(渡海) 비즈니스’이다. --- p.162~163 삼국지 동이전에 따르면 변진구야국(弁辰狗倻國)은 변진한 24국 중 하나이니 삼한의 구성원이 분명하다. 그런데 같은 시대 왜의 실상을 전하는 왜인전에 ‘기북안 구야한국(其北岸 狗耶韓國)’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왜) 북쪽 끝은 구야한국이다.”라는 뜻이다. 왜의 북안이 구야한국이라니? 삼국지 가운데서 논란이 가장 심한 대목이기도 하다. 일본학자들은 구야한국이 왜의 영역이라는 증거라고 해석하였다. 반면 한국의 학자들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겼다. (…) 그러나 문맥 그대로 해석하면 ‘구야한국은 왜의 북쪽해안’으로 풀이하는 것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 즉 ‘반도왜 관념’이 거의 사라진 AD 3세기에도 한반도 남해안을 놓고 “우리는 한(韓)”이라고 소개하는 현지인의 증언과 “저들은 왜(倭)”라고 말하는 내륙인의 증언이 엇갈리고 있었고, 삼국지 편찬자는 혼란을 겪고 있었음을 시사한다고 하겠다. --- p.206~207 (…) 이렇게 볼 때 ‘본가야’는 곧 ‘임나가라’와 같은 말이었다고 짐작된다. 임나가라에서의 ‘임나’는 본국, 맹주국, 중심국을 뜻하는 일종의 관형사이다. 임나는 미칭(美稱) 내지 우호(優號)인 만큼 ‘임나가라’는 그렇게 불리기를 희망한 세력이 스스로 채택한 용어라고 하겠다. 반면 인접국으로서 ‘임나’의 의미를 정확히 알았던 신라는 적대국을 임나라는 좋은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던 것이다. --- p.246 |
|
한일 고대사의 미싱링크(잃어버린 고리),
‘왜(倭)’의 기원을 한일 고대사 재건축의 토대로 삼다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시리즈는 총 세 권으로 구성돼 있다. 제1권에서는 한일 고대사를 다시 세우기 위해 임나의 지역명칭 문제를 주로 살핀다. 임나의 실체를 밝히는 것만으로도 임나일본부설을 단박에 일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책은 먼저 ‘왜(倭)’라는 족속명에 주목한다. 우리는 보통 ‘왜’를, 종족으로는 ‘일본인’, 지역으로는 ‘일본열도’로 여긴다. 그러나 저자는 “왜는 처음부터 한반도에 있었다.”는 주장을 제시하며 기존의 시각을 뒤집는다. 그 근거로 고대 한반도의 ‘해변인’이 지금의 ‘왜놈’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밝힌다. 그리고 “최초단계에서 왜와 임나는 동일한 존재”라는 다소 충격적인 결론을 내놓는다. 책은 지면의 대부분을 ‘왜’의 실체와 그 변모를 다루는 데 할애하고 있다. 한일 고대사를 재건축하는 데 필요한 가장 핵심적인 실마리이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왜’의 기원과 역사가 새로이 정의됨에 따라 한일 고대사의 풀리지 않았던 여러 장면들이 해결된다. 우리는 여태까지 ‘왜’를 직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책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줄도 몰랐던 잃어버린 고리, ‘왜’를 직시하면 새로 세우는 한일 고대사의 얼개는 더 튼튼히 짜일 수 있을 것이다. 현직 기자의 집요한 시각으로 20년간 짜온 한일 고대사의 새로운 청사진 저자 장한식의 고대사 재건축 청사진은 그가 1999년 출간한 『신라 법흥왕은 선비족 모용씨의 후예였다』에서부터 출발하였다. 이 책은 문제의 기마민족이 모용선비라는 주장을 펼쳐 역사학계에서 파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 단초에서 시작하여 20여 년간 고대의 한일관계라는 화두를 놓고 많이 읽고 오래 생각한 끝에 저자는 고대사 전체를 관통할 수 있는 얼개를 꾸몄다. 그러는 동안에 꾸준히 독자적인 시각의 역사서를 저술해 오기도 하였다. 장한식은 KBS 현직 방송기자이다. 기자의 시각과 작업방식이 독특하고도 단단한 역사서를 만들어냈다. 도그마적 역사해석에서 과감히 벗어나, 덜 주목 받거나 아주 사소한 단서 하나도 집요하게 파고드는 기자의 시각이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야를 제공한다. 또 사건의 이면에서 육하원칙이란 그물로 확보한 작은 단서를 모아 큰 그림을 구축하는 작업방식은 독자들을 역사 여행에 완벽히 몰입시킨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에게 『한일 고대사의 재건축』시리즈는 비장하면서도 신선한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