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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편지 저는 무기력 교사입니다
대한민국 학교는 죽었습니다 제가 조금 더 힘을 내겠습니다 교대에서는 학교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런 연수를 교대에서 배웠더라면 슈퍼맨과 공공의 적 사이, 우리 교사 맞지요?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학교에서 수통 바꾸기가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무기력 교사가 탄생하고 있습니다 “네, 그냥 안 하기로 했어요” ‘우리들의 학교’에서 교사도 학생도 상처받습니다 당신은 태양인가요, 아니면 바람인가요? 그 아이는 도대체 왜 그렇게 됐을까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법을 아시나요? 어떤 세상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으세요? 교사들은 모두 예술가잖아요 학부모님, 아이에게 스스로 해결할 기회를 먼저 주세요 오늘 당장 미래를 살래요 가르친다는 건 ( ) 것 닫는 편지 미지의 그대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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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사실 운입니다. 몇 년 전 만난 그런 아이와 학부모를 또다시 만난다면, 솔직히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감당할 자신이. 그렇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보렵니다. 그동안 더 단단해지고, 이 땅의 교육이 다시 살아나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도록 노력해 볼까 합니다. 거기까지 가는 길에 형이랑 나누는 편지가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p.24 심지어 저는 학생한테서 이런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어요. 장난인 듯 보이기는 하지만 도서관에서 학생이 심하게 맞고 있다는 제보를 듣고도 살피러 가지 않는 교사를 보았다고요. 함께 근무한 어느 교감 선생님이 신규 교사가 담임을 맡은 학급에서 분실 사고가 자주 발생하자 이렇게 조언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범인을 잡겠다고 괜히 심하게 아이들을 다그치면 문제가 더 복잡하게 꼬일 수 있으니 믿음과 사랑으로 지도하세요.” --- p.71 결과는? 지금 같은 무법과 무질서 교실이 탄생하지요. 무질서 교실을 최소한의 질서 있는 교실로 바꾸려는 교사가 하는 행동은 ‘아동 학대’ 고소전에서 먹잇감이 되었습니다. 교사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아무 힘없는 교사는 교육할 수가 없습니다. 교육을 할 수 없는 교사는 무기력합니다. 이제 학교에서 더는 진짜 ‘선생’을 찾기 힘들다는 형 말이 가슴에 아프게 꽂힙니다. --- p.90~91 어쩌면 지금도 저는 이렇게 함께 나누는 편지에 기대어 학교를 떠나고 싶은 제 마음을 강하게 붙들고 싶은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제기하는 반론은 제 생각이 잘못이라는 말로 들리기는커녕 새로운 관점으로 나아가게 자극하는 촉매제가 되고 있어요. 차이 때문에 불안하기보다는 다양성이라는 공존의 가치를 새삼 떠올립니다. --- p.95 근본적으로는 더 큰 사회 문제를 함께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교감 뺨 때린 아이’ 사례는 아이 하나를 악마로 만든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문제 행동을 보인 아이를 ‘분리’하고 ‘물리적 제지’를 하는 일 못지않게 그 아이가 그런 문제 행동을 하는 이유도 알아야 합니다. …… 그 아이가 지닌 문제는 그대로 보호자가 지닌 문제입니다. 가정환경이 문제입니다. 더 깊게 파고들면 ‘계급’ 문제일 수도 있고 ‘내 새끼 지상주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 p.161 유튜브에 자녀 교육을 잘하는 데 필요한 조언이 넘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어요. 그런데 정작 학교는 깊은 늪에서 빠져나올 기미가 없어요. 오로지 내 자녀만 잘되면 된다는 좁은 생각에 갇혀 있어서 그래요.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이 무도한 자본주의 체제에 끼인 부속품이 될 수밖에 없어요. 선생님께서 지난 편지에서 말씀하신 대로 ‘저 높은 지배 계급’들이 원하는 상태이죠. 우리를 뿔뿔이 흩어진 개인으로 만들어 모든 문제가 일어난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게 해서 사회 구조적 문제를 놓치게 만드는 거죠. --- p.171 서이초 사태 이후 ‘괴물’ 학부모에 너무 몰입하는 바람에 모든 학부모가 ‘괴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우리가 겪은 집단적 트라우마가 우리를 그렇게 몰아가고 있어요. 우리는 일상적으로 괴물 학부모를 만나고, 그러한 상황이 ‘교권 사태’를 만나면서 우리 감정을 헤집고 증폭시킨 탓이죠. 괴물 학부모를 만나 극단적 선택을 하는 동료 교사를 접하며 공감하고 함께 슬퍼하면서 우리 마음은 균형을 잡기가 힘들어졌어요. 이해가 안 되지는 않아요. 우리가 이렇게 기울어진 데는 그럴 만한 상황과 맥락이 충분히 있어요. --- p.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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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선생’과 ‘괴물 학부모’ ― 교원 양성 제도 개혁부터 ‘내 새끼 지상주의’까지
곽노근과 권이근, 두 교사는 학생을 지도하다가 ‘아동 학대’로 신고당하고 부당한 간섭과 지나친 업무에 하루하루 지치는 평범한 선생님이다. 자율연수 휴직을 활용해 한국을 떠난 권이근 교사는 열 살 어린 교대 동기 곽노근 교사에게 한 달에 한 번씩 편지를 주고받으며 교육 문제를 풀어 보자 제안한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에서 두 교사는 한국 교사들이 ‘교권 없는 교사’로 허허벌판에 선 허수아비처럼 힘없는 존재라며 쓴웃음을 짓는다. 교사가 ‘공공의 적’이 된 듯하다는 자조 섞인 푸념은, 요즘 학교를 보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무기력 교사의 탄생』은 ‘진짜 선생’이 사라지고 ‘괴물 학부모’가 출몰하는 학교에서 일하는 교사들 이야기다. 미디어에서 교사나 학교 이야기를 요즘처럼 사건이나 사고로 자주 다룬 때가 없다. 학교와 교육이 문제라고 다들 떠들지만 ‘내 아이 좋은 대학 보내기’가 지상 과제인 현실에서는 뾰족한 해법이 없다. 사건이 벌어지고 비판이 들끓을 때마다 모두 공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외치지만, 진짜 문제는 지금까지 아무도 ‘정상 학교’를 본 적 없다는 현실이다. 교사는 ‘신규’ 때부터 가르치는 일 빼고도 130개나 되는 업무를 수행해야 하고, 끊임없이 평가받아야 하고, 홀로 민원에 시달려야 한다. 교장과 교감 등 학교 관리자는 행정 업무를 지원하거나 격에 맞는 의전을 누리는 데 그칠 뿐 서이초 사건 뒤 본격적으로 떠오른 수업 방해 학생 분리 지도와 학부모 민원 대응 체계 개편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문제는 ‘학교를 가르치지 않는’ 교대에서 시작된다. 교대에서는 학부모가 학교 교육 공동체에 속하는 협력적 관계라며 교과서 같은 이야기만 반복할 뿐 ‘내 새끼 지상주의’를 기본으로 장착한 채 감당하기 힘든 민원을 남발하는 주체라는 사실을 알려 주지 않는다. 교대 커리큘럼에는 학급 운영에 관련된 과목이 없고 특수 교육 관련 과목도 수박 겉핥기다. 군대에서 한국전쟁 때 쓰던 수통을 몇 십 년 뒤에도 쓰듯, 학교는 여전히 보수적이고 경직돼 있다. 두 교사는 현장 경험을 토대로 여러 구체적인 제안을 한다. 이를테면 교대를 3년 다니다가 학교 현장에 1년 나가 교실을 경험한 뒤 2년 정도 연구 과정을 거쳐 정교사로 임용되는 방식 등이다. 학교 현장을 미리 경험한 젊은 예비 교사들이 교대를 졸업해 경험 갖춘 신규 교사가 되거나 교육 행정직으로 진출할 방안이 마련된다면 관료들이 모인 교육부를 개혁하고 학교를 정상화하는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다고 두 교사는 상상한다. 두 교사가 드러내는 어쩔 수 없는 ‘교사 편향’은 교사들에게 닥친 위기를 반영한다. 학교를 둘러싼 교육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이고, 교사들은 오늘도 계속 죽거나 상처받거나 떠나기 때문이다. 교사가 힘들고 불안하면 아이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교사라면 다들 느낄 만한 문제들, 학교에 발 딛고 지내면서 몸으로 부대끼며 겪은 일들을 교사다운 시각과 언어로 풀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3무 교실’에서 움트는 희망 ― 가르치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봄 흙’들 무기력, 무질서, 무법. 지금 학교는 제도와 인력을 미처 갖추지 않은 채 ‘3무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야 하는 교사 개인에게 교육에 관련된 모든 일을 맡긴다. 재량권이 제한된 교사가 학부모를 상대하고 민원을 처리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일을 책임져야 하는 얄궂은 상황에서, 아무리 역량이 뛰어나고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교사라 해도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없다. 그렇지만 교사는 아이들이 성장하도록 도울 수 있을 때만 온전한 존재로 살아가는 운명을 타고난 ‘봄 흙’이다. 두 교사, 아니 많은 교사는 오늘도 ‘겨울을 이긴 봄꽃’처럼 찬란하게 피어날 아이들을 위해 가르치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학교를 지키려 마음으로 쓴 편지를 띄운다. 더는 무기력 교사가 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교실 문을 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