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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와 무히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청년에게 전하는 21세기 생존 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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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_ 독수리와 콘도르: 촘스키와 무히카를 발견하다

노엄 촘스키
- 노엄 촘스키의 자기소개
- 무히카가 본 촘스키
호세 무히카
- 호세 무히카의 자기소개
- 촘스키가 본 무히카

2_ 우리는 어쩌다 여기까지 왔나


생존 전망
문화 전쟁
기술 혁신과 혼란
신자유주의와 네오파시즘
테러와의 전쟁과 마약과의 전쟁
미국, 몰락하는 제국일까
라틴아메리카, 희망의 등불인가
유럽, 러시아에서는 멀고 미국과는 가까운
중국, 미국 패권의 종말인가

화보: 장면들

3_ 21세기를 위한 가치


사랑과 생명
행복과 자유
공동체와 연대
민주주의와 자치
정치인과 지식인
콘도르의 지혜

4_ 케찰


디지털 사용자 혁명을 위하여
미래는 여전히 우리 앞에 있다

감사를 전하며

저자 소개 3

사울 알비드레스 루이스

관심작가 알림신청
 

Saul Alvidrez Ruiz

1988년생으로 멕시코 출신의 활동가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줄리언 어산지에게 영감을 받아 2012년에 멕시코 학생운동 ‘Yo Soy 132 운동’ 또는 ‘멕시코의 봄’으로 알려진 운동을 주도했다. 이 운동은 21세기 들어 멕시코에서 가장 큰 학생 운동으로, 언론 조작에 맞서 싸우며 전국의 공립대·사립대 학생들을 하나로 묶는 대규모 시위를 조직했다. 활동가로서의 삶은 그를 몇 년간 남미로 떠나게 했다. 그곳에서 그는 첫 다큐멘터리 제작에 착수했다. 책 출간 이후 공개될 예정인 이 다큐멘터리는, 미국의 지성 노엄 촘스키와 우루과이의 전 대통령 호세 ‘페페’ 무히카가 출연하고
1988년생으로 멕시코 출신의 활동가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줄리언 어산지에게 영감을 받아 2012년에 멕시코 학생운동 ‘Yo Soy 132 운동’ 또는 ‘멕시코의 봄’으로 알려진 운동을 주도했다. 이 운동은 21세기 들어 멕시코에서 가장 큰 학생 운동으로, 언론 조작에 맞서 싸우며 전국의 공립대·사립대 학생들을 하나로 묶는 대규모 시위를 조직했다.

활동가로서의 삶은 그를 몇 년간 남미로 떠나게 했다. 그곳에서 그는 첫 다큐멘터리 제작에 착수했다. 책 출간 이후 공개될 예정인 이 다큐멘터리는, 미국의 지성 노엄 촘스키와 우루과이의 전 대통령 호세 ‘페페’ 무히카가 출연하고, 핑크 플로이드의 공동 창립자인 영국의 음악가 로저 워터스가 내레이션에 특별히 참여했다. 알비드레스는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가 생태적·경제적·정치적·사회적으로 지속 불가능한 문명을 물려받았다고 확신한다. 그는 자신의 사명이 젊은 세대 간의 공론을 확장하고, 이를 글로벌 문제 해결에 집중시키는 일이라고 단언한다.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에서 중남미 문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남미 문학이 그리는 디스토피아 세계를 연구한다. 옮긴 책으로 《우리의 적들은 시스템을 알고 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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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최명호

관심작가 알림신청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에 입학, 동 대학원에서 석사를,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멕시코 시몬볼리바르 대학에서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 강사이다. 멕시코 및 베네수엘라 지역 연구, 불평등 문제, 생태 문명 전환 등에 관심을 두고 연구한다. 지은 책으로는 《이주와 불평등: 라틴아메리카 이주 현상에 대한 사회문화적 고찰》, Desigualdades, pobreza y papel del Estado en America Latina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모기 제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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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6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300쪽 | 145*210*20mm
ISBN13
9788959408658

책 속으로

생존을 위해 인류가 직면한 두 가지 거대한 도전 과제는 바로 핵 위협과 환경 재앙입니다. 이 종말적 재앙에 대한 최선의 방어는, 정보를 가지고 참여하는 시민들이 함께 모여 제대로 기능하는 민주주의를 통해 위협을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하는 겁니다.

‘우리가 그들을 먼저 파괴하자, 그다음 폐허에서 탈출하려고 시도하면 엄하게 처벌하자.’ 이게 유럽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이에요. 유럽이 막대한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할 아프리카에서, 난민 수천 명이 지중해를 건너다 익사하는 상황에 ‘난민 위기’라는 말만 하고 있어요. 사실, 난민 위기는 서구 사회의 심각한 도덕적·문화적 위기입니다.

핵심은 우리가 인류 사회와 역사의 흐름을 극복할 수 있는 도덕적 역량을 갖추는 데 있어요. 지금까지의 증거는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지만, 젊은 세대가 자신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행동에 나선다는 점이 한 줄기 희망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이 하고 있는 노력을 최대한 지원하는 것뿐입니다.

정보기술은 정부가 국민을 통제하는 데 사용할 수 있어요.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대기업은 지구상 모든 개인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어요. 이런 데이터는 사람들을 통제하는 데 쉽게 사용될 수 있죠. 하지만 정보기술은 경제를 민주적이고 참여적으로 운영하는 데에도 활용될 수 있습니다. 노동자들에게 실시간 정보를 제공하여, 이들이 집단적으로 최선의 결정을 내리도록 도움을 줄 수도 있겠죠.

우리(미국)는 타인이 우리에게 하는 짓을 ‘테러’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타인에게 가하는 짓을 그렇게 부르지는 않아요. 이게 미국이 테러를 정의하는 방식이죠. 조지 부시는 9·11 이후 이 용어를 부활시켰습니다.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겠다면서요.

인간의 역사가 그런 것 같습니다. 좌파와 우파라는 개념은 프랑스 혁명 이후에 생긴 용어입니다만, 실제 인류 역사에는 균형적이고 문명적인 측면 한편에는 보수적인 측면도 늘 있었지요. 나는 이 싸움이 계속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결코 100퍼센트 승리하지 못하겠지요. 하지만, 반대로 완전히 패배하지도 않을 겁니다. 우리는 계단을 겨우 몇 걸음도 오르지 못했어요.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작은 차이는, 인간은 어느 정도 자신의 삶에 의미와 방향을 부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존재 이유도 바로 그 기회 때문이죠.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것. 우리가 그걸 하지 않으면, 삶은 자본에 조종당할 겁니다.

또 다른 자유가 있습니다. 그건 우리 각자가 더 많은 자유 시간을 가질 자유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감정을 기르고,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삶의 기본 요소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아이들과의 시간, 친구들과의 시간, 가족과의 시간 등 삶의 기본 요소를 위한 시간이 있어야 해요.

민주주의는 의사결정권을 국민에게 분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드시 그래야 하죠. 모든 권위는 어느 정도 억압을 수반합니다. 관건은 ‘우리가 억압 없는 문명을 창조할 수 있는가’, 즉 ‘인간이 타인을 해치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통치할 수 있는가’예요.

자주적 관리는, 일하는 사람들이 집단적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간다는 걸 뜻해요. 일터를 집단적으로 관리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죠. 열린 정신과 민주적인 참여에 바탕을 두고요. 국가 소유나 개인 소유를 노동자들의 집단 소유로 전환하되, 소유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후대에 물려주고 관리하고 확장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또한 권리 행사와 그에 따른 책임감을 이해해야 해요. 명령받고 복종하는 시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명령하고 스스로 조직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는 상식이 있어요. 우리가 그걸 믿지 않으면, 사람들도 결코 성장하지 못할 겁니다. 운동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근육을 키울 수 있나요? 그리스 민주주의가 위대한 건 바로 ‘자유의 행사’에 있습니다.

공공재를 늘리는 것에서부터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공공재는 대중이 ‘결정할 기회’를 갖는 겁니다. 일상의 사소한 것부터 말이에요. 두 번째로는 ‘집단적 노동의 조직’입니다. 자주적 관리와 노동자들의 책임 의식이 매우 중요합니다. 국가 자산을 늘리자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말하는 건, 국민 스스로가 책임감을 갖고 관리하는 공공자산을 뜻합니다.

나는 정치인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정치를 타락시킨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자본주의 병에 걸렸어요. 지위, 명예, 돈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정치를 합니다. 이는 정치에 침을 뱉는 짓이죠.

세계 곳곳의 원주민 공동체는 우리에게 필사적으로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보존하면서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식을요. 반면 우리, 이른바 ‘독수리의 민족’은 자연을 파괴하는 법만 알고 있죠.

살아 있다는 건 기적이에요. 우리 각자에게 가장 큰 기적이죠. 하지만 단지 태어났기 때문에 그냥 식물처럼 살 수도 있겠죠. 반대로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어요. 이게 바로 의식이 우리에게 준 특권입니다. 그 덕분에 우린 문명을 창조할 수 있었죠. 즉,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겁니다.

삶의 가치는 승리하는 데에 있지 않아요. 승리란 없습니다. 결국에는 죽음이 늘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승리는,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넓은 의미에서, 넘어질 때마다 일어나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노엄 촘스키의 조언_

“소수가 명령하고 다수가 이에 복종하는 위계적이고 억압적인 사회 모델을 극복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좌파가 직면한 커다란 숙제입니다. 오직 명령만을 따르는 사회적 조건을 사람들이 기꺼이 받아들이는 구조를 반드시 깨야 하죠.”

호세 무히카의 조언_


“승리란 없습니다. 결국에는 죽음이 늘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승리는,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넓은 의미에서, 넘어질 때마다 일어나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 다시 만날 그날까지, 건투를 빕니다.”

1장 「독수리와 콘도르」에서 이 책의 저자 사울 알비드레스는, 아직 청년이지만 신념을 위해 싸우다 정치적 궁지에 내몰린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으로 말문을 연다. 꿈과 당찬 포부로 가득한 멕시코 청년인 그가 목격한 세상은 그야말로 부조리함으로 가득했다. 그는 청년의 기발함과 패기, 그리고 시민으로서의 분노로 ‘Yo Soy 132(나는 132번째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대권에 나선 부패한 후보자를 낙선시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늘 그래왔듯, 기득권 세력과 언론의 힘은 막강했고, 그 후보자는 당선되고 말았다. 사울은 그의 당선으로 정치·사회적으로 탄압을 받고 이국의 땅으로 도피하는 신세가 된다. 그는 볼리비아의 낯선 거리에서 우연히 ‘독수리와 콘도르’ 조각상을 마주한다. 패배감과 우울감에 빠져 지내던 그에게 이 조각상은 다시 일어날 힘을 준다. 독수리와 콘도르 조각상이 상징하는 건 단지 북미와 남미만이 아니었다. 사울에게 그 조각상은 즉각 촘스키와 무히카를 떠올렸다. 그는 이 우연한 계기를 통해 다시 삶의 목표를 세우고, 전쟁과 기후위기 등 온갖 위험에 내몰린 우리 세계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촘스키와 무히카를 찾아 나선다.

2장 「우리는 어쩌다 여기까지 왔나」에서는 촘스키와 무히카의 대담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지금 우리 세계에 대한 촘스키 교수의 분석으로 시작하는 2장은 인류가 직면한 현실이 매우 위험하고 위협적이라는 암울한 상황임을 보여준다. 촘스키는 우리 인류가 당면한 위협을 크게 두 가지로 인식한다. 바로 핵(전쟁)과 환경 재앙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인간은 ‘인류세’라는 지질학적 시대를 열었다. 이는 인간의 활동이 전 지구적으로 환경을 극적으로 변화시킴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변화는 고약하게도 긍정적이지 않았다. ‘운명의 날 시계’는 인류의 종말을 알리는 자정을 향해 그 어느 때보다 빨리 바늘을 움직이고 있다. 무히카는 우리 인류의 위기를, 촘스키가 언급한 두 위협을 마땅히 해결해야 할 정치에 있다고 본다. 정확하게는 시민들에게 정치적 결정권이 없을뿐더러, 정치가 시장 이익에 종속된 상황을 분개한다.

두 ‘어른’이 인식한 상황하에서는 그것이 문화이든 기술이든 무엇이든 모두 시장 논리에 종속될 뿐이다. ‘공공’의 가치는 저평가되거나 훼손되고, ‘시장’의 이익만이 자유와 평화의 이름으로 우선된다. 테러와의 전쟁, 마약과의 전쟁은 자국 우선주의에 경도된 특정 국가의 이익에만 복무할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위상은 어떠한가, 라틴아메리카의 역할은 무엇일까, 유럽의 상황은 어떠한가, 그리고 중국의 등장은? 2장에서는 이러한 묵직한 내용을, 사울의 질문과 촘스키와 무히카의 대답을 통해 담았다. 21세기의 4분의 1을 지나고 있는 우리 세계는 분명 위기에 봉착했다. 하지만 우리 세계는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조차 못하는 게 아닐까?

3장 「21세기를 위한 가치」에서는 2장의 진단에 따른 대안을 두루 모색한다. 세상이 돌아가게 떠받치는 기둥들에 균열이 생기면, 이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역할은 바로 근본에서 찾을 수 있다. 근본은 ‘가치’에 기반한다. 촘스키와 무히카는 위기에 내몰린 우리 세계에 반드시 필요한 가치를 역설한다. 사랑, 생명, 행복, 자유, 공동체, 연대, 민주주의와 자치. 이러한 가치는 인류라는 거대한 공동체가 자신들이 초래한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열기 위해 필수적이다. 그러면서 무히카는 말한다.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넘어질 때마다 일어나 다시 서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살아갈 이유가”가 필요하다. 다만 무슨 거창하고 원대한 목표를 말하는 게 아니다. “과학에 대한 열정이나 스포츠에 대한 사랑, 그림, 낚시, 축구, 햇볕 아래 엎드려 누워 있기” 같은 작은 것이 중요하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일상’이 아닐까. 평범할 수 있는 일상이야말로, 그것을 행복하게 누리는 것이야말로 ‘열정’에 다름이 아니다. 이런 열정이 인류를 진보하게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시민들이 4~6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투표를 통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기회를 겨우 가질 뿐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 인류가 맞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삶의 작은 공동체를 회복하고,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자신의 생각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 명령받고 복종하는 시대에서 벗어나, 우리 스스로 명령하고 스스로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대중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큰 ‘공공재’다. 이는 단지 정치적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작은 마을의 운영은 물론이고, 기업이라는 이익에 복무하는 집단에도 해당한다. 촘스키와 무히카는 이를 위해 젊은 세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젊은 세대가 느끼는 불안감은 이 시대 전체가 품은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바로 가까운 미래를 책임질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4장 「케찰」에서는 저자인 사울이 구상하는 ‘디지털 사용자 혁명’에 관한 내용과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음을 촘스키와 무히카의 입을 통해 확인한다. 현재 문명을 “청소년기의 한복판”에 있다고 본 사울은, 갑자기 생겨난 능력을 통제하지 못하는 우리 세계를 자신이 포함된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이들 세대의 역사적 사명으로 인류 문명사에 성숙한 문명을 세우는 일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사울은, 사회구조의 아래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는 방식으로 시민들이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마침 디지털 시대인 지금은 이러한 직접민주주의적 구조를 만드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 사울은 권력과 시민 사이의 중개자, 즉 소수 권력자를 역사에서 퇴출시키고, 사용자(시민)가 시스템을 지배하는 ‘혁명’이 필요하다며, 젊은 세대는 자신들이 물려받은 낡은 모델을 중단시키고 그 ‘혁명’에 나서야 함을 힘주어 말한다.

촘스키는 매일 밤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보낸 이메일 때문에 슬픈 현실을 토로한다. 젊은이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건 잘못됐다며, 젊은 세대에게 조언한다. “스스로 생각하세요.” 그리고 눈가리개를 벗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라고. 무히카는 자신의 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자신들의 실패를 바로잡고 문명을 구할 책임을 떠넘겼음을 통감한다. 그리고 진정한 승리는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것임을 재차 강조한다. 행복은 작은 것에서도 얻을 수 있음을, 그렇지 않으면 어떤 것으로도 얻을 수 없음을 언급한 그는, 생사를 넘어온 게릴라 출신답게 어쩌면 책을 통해 세상에 전하는 마지막 말을 끝으로 남겼다. “다시 만날 그날까지,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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