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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말
프롤로그/상처받은 마음에 건네는 예수의 심리 수업 1장 / 배움의 기적-왜 지금 성경을 읽어야 하는가 예수가 우리 곁에 온 의미 신약의 핵심인 4복음서 4복음서는 누가 썼을까 우리의 슬픔과 함께하는 예수 행복 선언과 불행 선언 고난으로 빛나는 예수의 리더십 예수 시대의 팔레스티나 공간 우리가 신약을 읽어야 하는 이유 2장 나눔의 기적-예수의 탄생과 어린 시절 예님 탄생에 대한 우리의 기대 동방 박사의 방문과 요셉의 역할 빛바랜 모성을 넘어서는 성모 마리아 서사 어린 예수의 성장 과정과 소년 시절 첫 기적, 가나의 혼인 잔치 요한 세례자 이해하기 광야의 유혹의 상징 갈릴래아 제자들과 기적의 상징 3장 용서의 기적-판단하지 않고 심판하지 않고 용서하는 예수 빛과 소금의 상징 정의와 심판, 죄의 상징 성경에서 ‘본다’가 갖는 뜻 우리는 제대로 듣고 필요한 만큼 말하고 있을까 폭력에 대한 예수의 해법 우리의 선악 판단을 넘어서 다른 이의 잘못을 바로잡아 주는 법 풍랑을 잠재우고 물 위를 걸은 기적 잔치 준비하는 마르타와 향유 붓는 마리아 라자로의 죽음 나는 포도나무요 내 안에 머무시오 용서하시오 그러면 여러분도 용서받을 것입니다 4장 치유의 기적-공감하는 예수, 돌봄의 예수 여성과 약자에 대한 따뜻한 배려 피부병 환자를 고친 예수 중풍 환자를 고친 예수 겨자씨와 나무의 상징 더러운 영을 쫒아낸 예수 예수의 옷에 손을 댄 여성과 다시 살아난 아이 우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성 직업을 차별하지 않은 예수 작은 사람이라는 상징 어린아이처럼 되어야 하늘로 간다 5장 사랑의 기적-평화를 주고 간 예수 군중과 지도자들은 왜 예수를 죽였을까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준 까닭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다 예수에게 베드로와 유다는 어떤 제자일까 예수의 유언,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법 게쎄마니에서의 기도 예수가 가면 오는 분 예수의 적은 누구인가 스스로 선택한 모욕과 조롱 예수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의문과 답 애도의 시기를 견디는 힘 부활한 예수를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에필로그/아멘, 오소서 주 예수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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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자신의 빛을 나누라는 것은 자신을 불쏘시개로 삼아 사랑을 나누라는 의미입니다. 이웃에 소금이 되라는 말씀도, 빛의 은유처럼 주변을 값지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너무 뜨겁고 몰아치는 빛은 주변에 공포의 대상이 되듯, 소금은 정제하지 않으면 오염이 되어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그 빛과 짠맛을 잃지 않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 p.131 예수가 우리 눈을 뜨게 해주는 것은 그 눈으로 자기 욕심을 채우라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예리고의 눈 먼 이들은 다시 볼 수 있게 되자마자 예수를 따랐지만, 우리는 수백 번, 수천 번 눈을 다시 뜨게 해주어도 그분을 따르는 대신 세속의 욕심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눈이 멀었다는 표현은 구약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구약 시대에 거의 무의식 상태에 있던 인류가 예수의 등장 이후 의식화되어 눈이 조금 밝아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진짜 ‘본다’는 행위는 자신의 내부와 사물의 본질을 보는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보고 있는지, 눈을 뜨고는 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시다. --- p.145 폭력에 대한 예수의 해법을 생각해 봅시다. 예수는 상대방과 먼저 화해한 다음 제단에 제물을 바치라고 합니다. 하느님과의 만남과 사랑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우선 사람들과 제대로 만나고 사랑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상대방에게 내 분노를 표현하는 것보다 내가 스스로의 가치를 먼저 존중하고 내 성장에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장이란 얼마나 성숙한 사람이 되느냐, 얼마나 아름답고 조화롭게 살아내느냐와 같은 내적인 성숙을 의미합니다. 죄 없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도 있는데 내 억울함은 아무것도 아니겠지, 하고 생각한다면 자신을 객관화하는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부정적인 감정에 휘둘리기 전에 나 자신부터 객관화해 봅시다. --- p.162 인간에게는 공감 능력이 있어서 아무리 미운 대상이라도 용서할 수 있고, 나와 이해관계가 없어도 너무 힘들어 보이면 돌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그런 본성을 거슬러 나의 ‘자아’ 혹은 내가 속한 ‘집단 그리고 내 뇌에서 나오는 기준에 자의적으로 맞출 때 폭력과 전쟁이 시작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모든 전쟁이 정의의 이름으로 시작되고 있다는 아이러니한 사실과 함께 정의, 공평함, 원칙 등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 p.168 성경에서는 예수의 아버지를 ‘농부’라고 표현하고 예수 자신은 포도나무라고 말합니다. 포도나무인 예수는 농부인 하느님께 자신을 오롯이 맡기고 죽음과 부활도 하느님 뜻하시는 대로 따랐습니다. 또한 포도나무나 올리브나무의 상징은 경작과 노동과 연결되어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십자가로 이어집니다. 십자가는 단순히 벌을 주는 형틀이 아니라 생명의 나무와도 연결됩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죽음, 첫째와 꼴찌의 자리 바뀜, 유용과 무용의 분별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 p.202 죄지은 여성에 대한 저급한 혐오나 분노 대신, 일어난 사실에 대해 한 걸음 떨어져 객관화시키고 사람들로 하여금 추상과 성찰의 태도를 지니게끔 모범을 보여 주는 모습은 예수 이후, 모든 학자가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본능적 폭력성을 초월하는 큰 자비를 보여 준 예수의 모습에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덕목, 즉 따뜻한 자비와 냉정한 이성적 성찰의 마음을 읽어내게 됩니다. --- p.214 아주 작은 것 속에 큰 우주가 들어 있다는 겨자씨의 비유를 묵상해 봅시다. 이와 함께 우리 눈에 작은 것이 정말 작고 보잘것없는 것인지, 또 크고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이 과연 정말 그렇게 중요하고 대단한 것인지 생각해 봅시다. 예수는 우리가 생각하는 크고 작음이 매우 헛되며 언제든 그것은 처지가 바뀔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것은 크고 어떤 것은 작다고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서 생각하는 것도 우리의 쓸데없는 분별심 아닐까요? --- p.233 우리 내부에는 그림자처럼 깊숙이 숨어 있는 작은 사람이 있습니다. 내가 감추는 그림자는 형체도 모호하고 작은 비문명화된 아이와 같은 인물일지도 모릅니다. 근사하게 드러나는 사회적 자아와 달리 감추고 싶은 그림자 자아에는 여러 가지 열등한 많은 것들이 숨어 있지만, 바로 그 열등한 속성들이 가장 우월한 존재로 이끄는 인도자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나를 믿는 이 가운데 작은 이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지 말라는 예수의 경고는 약자를 괴롭히는 이들이 그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되지만, 우리 안의 작은 사람(약점)을 숨기지 말라는 경고로도 읽힙니다. 내면의 진실을 들여다보라는 예수의 말씀을 생각해 봅시다. --- p.267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것에는 정화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는 더 나아가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고 당부하는데 이는 단순한 카타르시스 단계가 아니라 공동체를 공고하게 만들어 서로의 상처와 고통을 나누라는 주문입니다. 이제 스승이자 주님인 분이 떠나고 나면 남은 이들끼리 잘 연대하고 서로를 정화하고 위로하면서 삶이라는 지난한 여정을 마쳐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발씻김의 신비를 통해 겸손하게 봉사하고 정화하는 과정의 의미를 생각해 봅시다. --- p.288 우리는 모두 죽음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먼저 죽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배워서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는 각자의 선택일 것입니다.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삶에 집착한 이들과 달리 매일 성스러운 죽음을 준비하면서 사는 사람들의 삶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십자가형을 당하기 전 죽음을 준비하는 예수의 모습을 보면서 삶의 마지막에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생각해 봅시다. --- p.310 예수는 자신이 심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용서하고 화해하고 사랑하기 위해 온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러니 심판하지 말고, 판단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적을 꼭 외부에서만 찾으려 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악한 면을 되돌아보고 이를 정화하도록 노력하는 가운데 사랑의 신비가 드러날 것입니다. --- p.326 예수가 보여 준 수난의 길은 나를 박해하는 원수, 나를 배신한 지인들에 대한 완전한 용서와 화해입니다. 예수는 미움 대신 우리에게 평화를 주고 갔습니다. 자신의 감정과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우리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예수의 마지막 순간입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올 때 우리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새롭게 만나야 할지 생각해 봅시다. --- p.339 애도의 진정한 목적은 그저 상실의 슬픔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있으라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진정한 애도를 통해 이별과 상실 이상의 더 높은 차원으로 몸과 마음을 움직여 계속 가라는 명령이 아닐까요. 예수의 마지막 순간 하나하나를 묵상하면서 애도의 시기를 견디는 힘을 얻기 바랍니다. --- p.3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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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 예수를 만났을 때, 고통은 해석되고, 상처는 치유된다”
예수의 삶은 단지 종교적 상징에 머물지 않는다. 이 책은 신약 속 예수를 인간 내면의 심층과 맞닿아 있는 심리적 원형(Archetype)으로 새롭게 조명한다. 예수의 낮아짐, 침묵, 나눔, 치유의 행위는 우리가 겪는 삶의 혼란과 고통 속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저자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자 융 분석심리학자인 전문성을 바탕으로, 예수의 가르침을 심리학적 시선으로 해석하며 독자에게 삶의 본질을 마주하게 한다. 예수는 가르치고, 나누고, 치유했다. 그는 빛이 되되 공포가 되지 않기를, 소금이 되되 오염되지 않기를 가르친다. 고통 속에서도 분노를 선택하지 않고, 침묵 속에서 사랑을 보여 주는 그의 모습은, 진정한 용서와 화해란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예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곧,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 저자는 우리가 외면하고 감추었던 그림자 자아를 마주하고 정화하는 과정을 예수의 삶 속에서 발견하게 한다. 폭력과 분노의 시대, 예수는 우리에게 화해와 연대의 길을 건넨다. 서로의 발을 씻으며 고통을 나누고, 삶의 끝을 준비하면서도 마지막까지 사랑을 잊지 않은 그의 모습은, 우리가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애도하고,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조용히 일러준다. 성경의 언어와 심리학의 통찰이 어우러진 이 책은,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내밀한 위로가 되며, 신앙과 삶, 심리와 존재의 진실한 길을 제시한다. 이 책에서 우리는 예수의 시선으로 ▲용서와 화해의 가능성을 배우고, ▲죽음과 애도의 과정을 통과하는 법을 배우며, ▲진짜 ‘본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약자와 여성에 대한 돌봄의 의미를 깨닫고, ▲다른 이의 잘못을 온전하게 직면하고 고쳐주는 태도를 배우고, ▲작고 무의미해 보이는 것 속에 담긴 깊은 진실을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가장 낮은 곳에서 만난 예수는 당신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