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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6 발간사
008 기획의 글 021 연표 한국 오페라史 1948~1962 045 먼저 읽기 한국 오페라 前史: 여명기의 한국 오페라 056 인물 탐구_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 1948~1950 060 제 1 막 태동기의 한국 오페라 062 1 장 1948 [춘희]: 한국 최초의 오페라 071 인물 탐구_ 한국 오페라의 개척자 테너 이인선 074 인터뷰_ 음악인 신갑순 078 2 장 1949 [파우스트]: 한국 최초의 프랑스 오페라 082 3 장 1950 [카르멘]: 이인선과 국제오페라사의 약진 090 인터뷰_ 소프라노 김용분 093 공간 탐구_ 경성의 근대 극장, 부민관과 시공관 1950~1954 096 제 2 막 발전기의 한국 오페라098 1 장 1950 [춘향전]: 한국의 첫 창작 오페라 110 인물 탐구_작곡가 현제명 112 2 장 1952 [콩지팟지]: 두 번째 창작 오페라 120 3 장 1954 [왕자 호동]: 현제명의 두 번째 창작 오페라 1954-1961 126 제 3 막 전환기의 한국 오페라 128 1 장 1954~1957 전쟁 직후에도 오페라는 공연되었다 134 2 장 1950 년대 중후반: 민영 오페라단의 부흥 158 인물 탐구_ 소프라노 김자경 161 인터뷰_ 테너 박성원 164 3 장 1958 [토스카]: 한국오페라단의 터전을 마련한 공연 171 인터뷰_ 소프라노 이인숙 1962~ 174 제 4 막 국립오페라단 창단 이후의 한국 오페라 176 1 장 1962 [왕자 호동]: 국립오페라단 창단 작품 182 인터뷰_ 바리톤 박수길 186 2 장 1962 [휘데리오]: 공보부 주최 제 1 회 서울국제음악제 공연작 192 인터뷰_ 작곡가 이건용 196 3 장 1962 년 이후의 한국 오페라 202 더 읽기 연계 세미나_ 한반도에서 일본인 성악가의 연주 활동: 1920~1940 년대 214 패널 토론_ 한국 오페라의 여명과 태동 227 참고 자료 |
손수연의 다른 상품
Korea Opera History Museum(KO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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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자경은 ‘1 월 공연이었는데 영하 15 도의 꽁꽁 얼어붙는 강추위였어요. 어찌나 추운지 무대 위에 숯불을 피워 몸을 녹이려다 공연 도중 숯 냄새로 까무라치는 등 고생이 대단했어요. 그리고 아리아 ‘에스트라노’를 부를 때는 너무나 긴장해서 얼굴에 송송 맺힌 땀이 고드름으로 변할 정도였어요.”라고 회고했다.
---「1 막 1 장 '1948 한국 최초의 오페라 [춘희]’」중에서 “황해도에 개업한 아버지가 노래를 계속하고 싶어 애태우시는 걸 보신 어머니는 과감하게 아버지에게 이탈리아 유학을 권하셨어요. 아버지는 이탈리아에서 병원 조수를 하며 어렵게 학업을 이어가시는 등 고생이 많으셨지만 한국에 남은 어머니도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생계를 꾸려나가셔야 했습니다. [춘희]를 준비할 때는 제대로 된 연습 공간이 없어서 우리 집 마당을 개조해서 연습용 무대로 활용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어머니는 제빵을 배우셔서 집에 오븐을 들여놓고는 빵을 구워 출연진과 스태프들을 매일 먹이셨어요. 또 작품에 사용될 드레스도 모두 재봉질을 해서 직접 만드셨지요.” ---「1 막 1 장 인물 탐구_ '한국 오페라의 개척자 테너 이인선'」중에서 “쉽고 친근한 선율은 오페라 [춘향전]의 큰 약점이자 강점이었다. (중략) 피아노로만 되어 있는 [춘향전]의 원작 악보는 관현악 부분이 너무 불확실하고 소규모로 편성되어 보강이 필요했다. 또한 연극 대본을 오페라 대본으로 옮기다 보니 발성을 위한 가사 처리가 잘 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성악가들의 노래가 또렷이 전달되기 어렵다는 문제점도 있었다. 그러나 오페라가 생소한 당시 관객들에게는 간결하고 복잡하지 않은 점이 오히려 쉽게 접근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오페라에서 이몽룡과 춘향이 사랑을 주고받는 대목에 등장한 이중창 ‘사랑가’는 장안의 유행가가 됐다. ‘한 번을 보아도 내 사랑, 열 번을 보아도 내 사랑’으로 시작하는 사랑의 이중창은 우리 민족이라면 어디선가 한 번은 들어본 중독성 있는 멜로디였고, 입에 딱 붙는 가사였다.” ---「2 막 1 장 ‘한국의 첫 창작 오페라 [춘향전]’」중에서 “당시 학생 신분으로 합창에 참여한 바리톤 박수길의 증언에 따르면 ‘독일 성악가들이 노래하는 순간에 성량이 너무 크고 음색이 윤택해서 그동안 존경하면서 들었던 선생님들의 노래가 무색해져 버린 순간을 경험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이 오페라 가수로 활동하고 있었으나 본고장 가수들의 기량에는 미치지 못했던 것으로, 초기 단계였던 우리 오페라와 세계 무대의 격차를 말해준다. ---「4 막 2 장 ‘1962 공보부 주최 제 1 회 국제음악제 오페라 [휘데리오]’」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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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빙’을 넘어선 ‘내러티브’이기를
이 책은 단순히 오페라 공연 기록의 나열이 아니다. 그 오페라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어떤 이들이 어떤 고초를 겪었는가, 오페라 비단 휘장 앞뒤에선 어떤 희비극이 펼쳐졌는가, 그 공연이 당시 어떠한 세태의 흐름을 떠받치고 있었는가, 그러한 사실을 사이사이에 틈입했다. 사재를 털어 오페라 공연을 올리느라 무대 뒤 아내의 통곡까지 감내한 테너 이인선의 1950 년 [카르멘] 공연 스토리가 그 예다. 영하 15 도의 강추위에 무대 위에서 숯불로 몸을 녹이다 주역 김자경이 숯 냄새로 졸도한 1948 년의 [춘희] 에피소드도 매한가지다.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 한국 오페라의 개척자 이인선, 초창기 오페라 중흥을 이끈 작곡가 현제명, 전환기 민영 오페라단의 약진을 주도한 소프라노 김자경…. 이 책에는 한국 오페라 초기 역사를 떠받든 인물들의 스토리가 중요한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장엄한 예술 또한 미욱하고도 위대한 인간이 착안하고 활약하여, 또한 희생하여 만들어낸 창조물임을 알게 한다. 또한 그 연대기의 저변을 인간이 만든 당대의 정치·사회·경제·문화가 도저하게 떠받치고 있음도 알리고 있다. 한국 근현대사와 오페라 역사의 발자취를 자연스레 꿰는, 살아 있는 오페라 이야기라 하겠다. 그러한 이유로 이 책은 단지 ‘아카이빙’이라기보다 그를 뛰어넘은 ‘내러티브’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인에게 오페라는 무엇이었던가?’를 밝히려 애쓴 땀의 기록 이 책이 ‘내러티브’로 읽혀야 할 또다른 이유는 시종일관 ‘한국인에게 오페라는 과연 무엇이었던가?’라는 질문을 건넨다는 것이다. 해방 정국과 전쟁에 시달리며 보통 사람은 한 끼를 먹고, 운 좋은 날 두 끼를 먹던 나라에서, 게다가 피란지에서까지 오페라라는 “귀족 취미에 맞는” “결코 인민 대중적인 것은 못 된다”던 예술을 줄기차게 행한 이유를 묻고 있다. 그 답은 당대에 활동한 음악인의 증언, 당시를 연구하는 후대의 음악 관계자 등의 주장을 통해 독자 스스로 유추해보게 한다. “세계에서 다 하므로 하고 싶었던 것” “한 끼밖에 못 먹지만, 마음을 나눠서 음악이라는 언어로 시대를 순환해 보자라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 “문화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 오페라 제작 및 자국어 오페라를 보유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여긴 것” “음악 공부를 한 사람이 오페라라는 장르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면 의당 해야 되는 걸로 생각한 것” 등등이 그 답을 찾아가기 위한 열쇠이다. 한국오페라역사박물관의 행보를 기록하다이 책은 2024 년 10 월부터 2025 년 3 월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개최한 한국오페라역사박물관의 첫 기획 전시 [한국 오페라 첫 15 년의 궤적 1948-1962]의 기록도 담고 있다. 80 년에 이르는 한국 오페라 자료를 발굴하고 수집, 보존해온 한국오페라역사박물관의 발자취를 살피는 지상(紙上) 전시라 할 수 있다. 또 전시와 연계해 2024 년 11 월 28 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학술 세미나 ‘한국 오페라의 여명과 태동’의 자료도 수록했다. 일본 오페라 연구의 권위자인 아사코 이시다 쇼와음악대학교 교수의 학술 발제, 이경재 오페라 연출가 · 송현민 객석 편집장 · 손수연 교수의 주제 토론 등을 통해 초기 한국 오페라에 대한 논의를 확장한 귀중한 자료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