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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난한 유년 시절, 아름다운 빛들과 만나다
천하의 울보 골목대장의 깨달음 나약한 생각이 불운을 부른다 풋내기, 사업에 뛰어들다 죄를 묻지 않는 우정 2.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초라한 시작 세라믹, 내 인생의 전환점 대립과 결단 나의 사랑 앙사코 젊은이들듸 반란 절대 포기하지 말라 모두가 경영자 IBM의 테스트를 통과하라 인간중심의 경영 경영은 마라톤이다 오일 쇼크 다각화는 양날의 칼 신이 준 시련 환경친화 기업으로 거듭나다 모스크바에서의 담판 돕고 싶은 일념으로 인류의 미래를 기원하며 새로운 도전, 제2전전 시련을 기회로 양보와 배려 3. 그리고 남은 꿈들이 나를 밀고 간다 나의 철학, 나의 삶 은혜를 갚아야 할 때 국경을 넘어서 "경영을 가르쳐주십시오." KDDI의 탄생 가족에게 의지하며 |
Kazuo Inamori,いなもり がずを,稻盛 和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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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재계의 살아있는 경영신화, 교세라그룹 이나모리 자서전
지금은 아인트호벤으로 옮긴 박지성. 그가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고 있을 때, 교토 퍼플상가의 스폰서인 교세라그룹의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 회장은 직접 박지성 선수를 만나 간곡하게 잔류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마침내 박지성이 아인트호벤 행을 결정하고 나자, 이나모리 회장은 환송회에 참석해 “박지성 군, 언제든 돌아온다면 환영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아쉬워했다 한다. 이나모리 회장은 이처럼 자신의 회사 소속인 교토 퍼플상가의 한 선수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직접 만나 대화를 할 만큼 사람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 그리고 그것이 일본 가고시마 남단 조그만 마을에서 태어난 그가 지금의 대기업 회장 자리에까지 오르는 발판이 되었다 한다. 이 책에는 한 평범한 젊은이가 기술력 하나로 회사를 만들고, 세계 최고 기업으로 키우기까지의 신념과 열정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일본 기업인들로부터 ‘경영의 신(神)’으로 불리는 경영철학이 담겨 있다. 낙방, 또 낙방!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현재 전세계 세라믹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는 교세라 그룹은 1984년 설립한 통신업체 KDDI를 비롯 디지털 부품, 휴대폰, 사진기, 디지털 카메라, 반도체 부품 등을 망라한 종합정보통신그룹으로 자본금 1,157억 332만 엔, 종업원 수 1만 4,568명, 세계 각국에 161개의 지사를 거느리고 있는 일본 초일류그룹. 1996년에는 소니를 제치고 일본 내 수익률 1위 기업으로 부상했다. 이나모리 가즈오가 교세라를 만든 것은 27세 때, 단돈 300만 엔으로 창업했다. 그때까지 그의 삶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중학교 시험에 두 번이나 낙방했고, 대학입시에도 실패를 거듭했으며, 취직시험에도 연이어 낙방했다. 게다가 교수의 추천으로 어렵사리 들어간 회사는 망하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그곳에서 당시 새로운 분야였던 세라믹을 접하고 연구에 매진하게 된다. 청년 이나모리는 임금협상을 위한 노조총파업 속에서도 ‘회사의 앞잡이’라는 비난을 들어가며 연구에 몰두한다. 그 때 같이 근무하던 ‘아사코’와 사랑에 빠지는 러브스토리가 이 책에 실려 있는데, 아사코는 ‘씨없는 수박’을 개발한 우장춘 박사의 넷째 딸. 이나모리 회장의 경영철학, 이타(利他)와 공생(共生)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영자’ ‘경영의 신(神)’ 등 이나모리 회장을 지칭하는 표현은 한둘이 아니다. 그는 일본의 기업 경영자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며, 벤처업계에서는 살아 있는 경영신화로 대접받고 있다. 그가 단지 맨주먹으로 오늘의 대기업을 만들었다고 해서 그렇게 불리는 걸까? 무엇이 그를 살아있는 경영의 신으로 만들었을까? 그의 위대한 점은 투명경영의 원조라는 점이다. 기업은 도덕과 윤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되며, 이마에 땀 흘려가며 얻은 이익이 기업이 추구해야 할 참된 가치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깨끗한 회계를 강조하는 그의 신조 때문에 지금까지도 교세라 그룹은 담당회계사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완벽한 회계관리를 해오고 있다. 그와 더불어 세라믹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업으로 키운 이후에도 그는 여전히 도전정신을 버리지 않고 재결정 보석, 인공치근, 태양열 전지 등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무모하다고 하는 일에 도전했다. 제2전전을 창립, 통신사업에 뛰어들 당시 돈키호테가 풍차를 상대하는 것이라는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공격적이며 창의적인 방법으로 NTT에 이어 시장점유율 2위로 끌어올리는 업적을 달성한다. 현재 이나모리 회장은 모든 현직에서 물러나 세상을 위해, 인류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평소의 신념에 따라 세이와주큐(盛和塾)를 세워 많은 벤처기업인들을 길러내고 있다. 이곳 출신의 대표적인 경영자로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 시게다 야쓰미쓰(重田康光) 히카리통신 사장 등이 있다. 또한 그는 이나모리 재단을 설립하여 훌륭한 과학자나 예술가에게 교토상을 수여하고 있는데, 1998년에는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아시아인 중 최초로 수상했다. 나아가 지역 주민들을 위해 도서관을 짓고, 교토 퍼플상가를 지원하는 등 스포츠 스폰서 역할도 열심히 나서고 있다. 무엇보다 이나모리 회장을 가장 존경스럽게 만드는 것은 마음자세를 중시하고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경영자라는 점이다. 그는 회사에 ‘다과실’이라는 회의실을 따로 마련해 놓고 틈나는 대로 직원들과 모여 음식과 차를 들면서 대화를 나눈다고 한다. 직원 한 사람 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며 경영을 하는 그의 태도에서 교세라의 사훈 ‘경천애인(敬天愛人)’에 담긴 깊은 뜻을 읽을 수 있다. 기업을 개인의 것으로 사유화하기보다는 남을 위해 경영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평생을 몸바쳐온 그의 경영철학은 우리나라의 경영자들뿐 아니라, 일반 샐러리맨들에게도 좋은 가르침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