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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펴낸이의 말 3
자유교육을 자유주의로부터 구출해야 하는 이유 서론 자유주의의 종말 17 1장 지속 불가능한 자유주의 43 2장 개인주의와 국가주의 통합하기 71 3장 반문화로서의 자유주의 99 4장 기술과 자유 상실 133 5장 자유학예에 반대하는 자유주의 157 6장 새로운 귀족정 185 7장 시민권의 퇴화 215 결론 자유주의 이후의 자유 245 후기 270 역자 후기 274 후주 280 참고문헌 296 찾아보기 305 |
Patrick J. Den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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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를 넘어선다는 것은 자유주의의 주된 약속들???특히 서구의 가장 뿌리 깊은 갈망인 정치적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중 일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릇된 인간학의 이미지대로 세계를 재형성하려던 자유주의의 잘못된 이데올로기적 전환 시도를 거부하는 것이다. 세계 최초의 이데올로기이자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이데올로기를 거부한다고 해서 자유주의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게 뻔한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대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혁명적 질서를 뒤집으려는 또 다른 정치혁명은 무질서와 비탄만을 가져올 것이다. 더 나은 길은 지역에 기초하는 더 작은 형태의 저항에 있다. 이론보다는 실천에, 자유주의의 반문화에 맞서 회복력 있는 새로운 문화를 건설하는 활동에 더 나은 길이 있을 것이다.
--- 「서론_자유주의의 종말」 중에서 물질적·경제적 영역에서 자유주의는 자연을 정복하기 위해 오래된 자원의 저수지를 고갈시켜왔다. 오늘날 지도자들의 정치 프로그램은 그게 무엇이든 명백히 자원을 요구한다. 자유주의가 기능하려면 이용하고 소비할 수 있는 물질적 재화를 끊임없이 늘려야만 하고, 따라서 자연 정복과 지배를 끊임없이 확대해야만 한다. 제한과 자제력을 요청하는 사람은 정치 지도자 자리를 넘볼 수 없다. 요컨대 자유주의는 오래된 행동 규범을 새로운 형태의 해방이라는 명목으로 철폐할 수 있고, 자연을 정복해 거의 무한한 선택에 필요한 연료를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는 거대한 도박이었다. 이 노력이 낳은 한 쌍의 결과???도덕적 자제력의 고갈과 물질적 자원의 고갈???를 마주한 우리는 자유주의 다음에 무엇이 올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 「1장 지속 불가능한 자유주의」 중에서 개인주의와 국가주의는 나란히 전진하고, 언제나 서로를 지탱한다. 그리고 자율적 개인의 삭막함과 국가 안에서 추상화되는 구성원, 둘 모두와 대비되는 생생하고 필수적인 관계를 항상 훼손시킨다. 우파와 좌파는 서로 시각이 다르고 상이한 수단을 사용하고 상이한 의제를 주장하긴 하지만, 서로 구별되면서도 연관되는 방식으로 국가주의와 개인주의를 함께 확대한다. 깊은 수준의 이런 협력은 유럽이나 미국 등 현대 자유주의 국가들이 더 국가주의적인 동시에 더 개인주의적인 성격으로 변해온 이유를 설명해준다. 즉 권한과 활동이 중앙정부에 점점 더 집중되는 동시에 사람들이 자발적 결사, 정당, 교회, 공동체, 심지어 가족 같은 중재 단체들에 점점 덜 의존하게 된 이유 말이다. 자유주의자들에게나 보수주의자들에게나 국가는 개인주의의 주된 동력이 되어가고, 개인주의는 국가의 권력과 권한을 확대하는 주된 원천이 되어가고 있다. --- 「2장 개인주의와 국가주의 통합하기」 중에서 자유주의는 무無장소성을 중시한다. 자유주의의 ‘자연상태’는 추상적인 개인들이 똑같이 추상적인 장소에 있다는 무장소 견해를 상정한다. 자유주의는 사람들이 그 누구에게서도 생겨나지 않는다는 인간학적 가정-홉스의 표현대로 “땅에서 버섯처럼 생겨나 서로에 대한 그 어떤 의무도 없이 자란”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가 그 어디에서도 생겨나지 않는다는 가정에도 의존한다. 누군가 태어나고 자라는 장소는 그의 부모나 종교, 관습만큼이나 우연히 정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무엇보다 자유롭게 선택하는 존재로 여겨야 한다. 모든 관계와 제도, 믿음과 마찬가지로 장소 역시 선택하는 존재로 말이다. (…) 이렇듯 장소 없음의 기본 조건은 자유주의가 교묘하고 은밀하게 스며들어 모든 문화를 좀먹고 개인들을 해방해 반문화의 무책임성으로 이끄는 주된 방편 중 하나다. --- 「3장 반문화로서의 자유주의」 중에서 기술사회의 전제조건은 정치기술의 위대한 성취, 즉 자유주의 이론의 ‘응용 기술’인 우리의 헌법이었다. 헌법은 고대의 가르침을 뒤집고 고대적 인간과 뚜렷이 다른 근대적 인간을 형성하고자 하는 일군의 근대 원리를 구체화한 것이다. 헌법은 일종의 선행 기술, 오늘날 우리를 지배하는 것으로 보이는 기술의 전제조건이다. (…) 정부는 개인 자유의 영역을 가능한 한 최대로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며, 이를 위해 시민들에게나 공직자들에게나 자기이익 추구를 장려한다. “야심에는 야심으로 대응해야 한다”면서, 어느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권력을 나누고 분배해야 하지만, 동시에 정부 자체는 개인들을 특정한 장소의 제약에서 해방하고 상업 및 “유용한 기술과 과학”의 확산을 촉진하기 위해 직접 행사할 수 있는 새로운 실질적 권력을 부여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 「4장 기술 발달과 자유의 상실」 중에서 올바로 이해한 자유교육, 즉 한계에 익숙해지고 세계와 특정한 장소와 집단을 보살피는 훈련으로 이해한 자유교육은 단순히 ‘조상’이나 자연에서 벗어나려는 교육이 아니다. 자유교육은 우리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한계 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이다. 그런 생활방식은 실패하기 마련인 개인이나 세대의 자기강화 노력, 또는 자연의 한계와 제재에서 벗어나려는 부질없는 노력으로 우리를 유혹하지 않는다. 특히 오늘날 우리는 오로지 현재 안에서 현재만을 위해 살아가면서, 분수에 맞는???재정 면에서나 환경 면에서나???생활에 대한 ‘조상 전래’의 관심에서 분리된 세태에 너무도 익숙해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현대의 극단적인 현재주의를 넘어서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유교육의 이념, 자연과 문화가 마땅히 가하는 한계와 제약을 배우고 또 받아들이는 상태를 자유로 이해하는 이념을 되살리는 것이다. 고대 전통과 종교 전통에서 공히 권장한 대로, 자유는 제약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욕구를 다스려 더 참된 자유???욕구에 매달리며 세계의 자원 고갈을 외면하는 노예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를 성취하는 우리의 능력이다. 요컨대 자유주의로부터 자유교육을 구출할 필요가 있다. --- 「5장 자유학예에 반대하는 자유주의」 중에서 자유주의의 도구로 바뀐 교육제도 역시 궁극적으로 보면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새로운 귀족정의 체계적인 산물이다. 자유주의의 대단원은 넓고도 깊게 계층화된 사회, 자유주의자들이 영속화하는 데 다방면으로???특히 교육기관을 통해???기여하면서도 탄식하는 사회다. 요컨대 자유주의의 성공은 자유주의가 실패할 조건을 조성한다.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귀족적 통치를 무너뜨리겠다고 주장해온 자유주의는 결국 새롭고 더 강력하고 심지어 더 영속적인 귀족정, 자유주의적 불의의 구조를 유지하고자 끊임없이 싸우는 귀족정이 되고 만다. --- 「6장 새로운 귀족정」 중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는 오늘날 서구의 대다수 사람들이 유일하게 정당한 정치조직 형태로 여기는 정체를 가리킬 때 널리 쓰인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주의’는 형용사처럼 명사 ‘민주주의’와 함께 쓰여 인민이 통치하는 오래된 정체 형태를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 표현은 겉보기 의미와는 다른 목적을 가진다. 우선 ‘자유주의’는 ‘민주주의’를 변경할 뿐 아니라 유구한 정체를 사실상 정반대되는 정체로, 즉 인민들이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적인 사적 개인으로서 물질적이고 안전한 삶을 누리는 데 만족하는 정체로 재규정하자고 제안한다. 그와 함께 명사 ‘민주주의’는 한층 강직한 형태의 시민권을 이른바 대중의 동의로 대신하고자 하는 자유주의 정체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자유주의는 공적인 것보다 사적인 것, 시민 정신보다 자기이익, 공동선보다 개인들의 의견 취합을 끊임없이 강조함으로써 시민권의 퇴화를 불러온다. --- 「7장 시민권의 퇴화」 중에서 이제 우리는 자유주의가 겉으로 내세우는 목표와 정반대로 불평등을 심화하고 자유를 제약함으로써 세계 지배를 계속 확대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어쩌면 다른 길, 독특한 대항문화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선의의 노력에서부터 시작하는 길이 있을지 모른다. 그런 공동체의 삶은 자유주의가 조장하는 듯한 뿌리 뽑히고 비인격화된 삶과는 확연히 다를 것이다. (…) 지난 500년간 진행된 철학적 실험이 수명을 다한 지금, 새롭고 더 나은 길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오늘날 인간 자유의 가장 위대한 증거는 자유주의 이후의 자유를 상상하고 구현하는 우리의 능력에 있다. --- 「결론_자유주의 이후의 자유」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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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시대에 숨은 함정
한국은 근대화 과정에서 자유와 평등의 긴장 관계를 제대로 풀지 못한 채 가진 자들의 자유를 옹호하며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자유주의는 경제적 자유주의로 이해되면서 보수의 이데올로기로 간주되고, 민주와 정의를 주장하면 좌파로 규정되는 실정이다. 단체나 조직 이름에 ‘자유’가 있는지 ‘민주’가 있는지를 보면 대충 정치적 색채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저마다 맹점을 갖고 있어, 앉은뱅이를 업고 가는 장님처럼 서로에게 눈과 다리가 되어줄 수 있다면 이상적이겠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오히려 서로의 맹점이 부각되고 있다. 부정선거 음모론과 반공주의에 사로잡혀 반국가세력 척결을 외치며 친위 쿠데타를 벌인 이가 누구보다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짖은 것처럼. 고대 로마인들이 규율을 훈련함으로써 갖게 되는 자제력을 자유의 토대로 보았던 것과 달리 근대인들은 개인의 선택을 중요시하는 자유관을 갖고 있다. 개인의 자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간주하는 개인주의는 모든 인간이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속하고 살면서 맺게 되는 다양한 사회적 관계에 의해 선택을 제약당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간과하거나 외면한다. 개인의 성적 자율성이 좋은 삶을 보장하지 않듯이 자율성이란 가치를 절대시하는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의 기본 전제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개인의 자율에 기초한 자유교육이 실패하게 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의 빛과 그늘 경전에 기초한 율법이 공동체의 유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헌법에 기초한 법률은 개인의 권리 보호에 초점을 맞춘다. 권리는 개인에게 귀속되는 것이다. 근대법의 발전은 개인주의의 발달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개인이 공동체를 위해 살던 시대가 가고 자신을 위해 살아도 되는 시대가 되었다. 부모가 정해준 사람과 결혼해야 했던 시대, 가문을 위해 청상과부가 수절하고 처녀가 가족들에게 명예살인을 당하던 시대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호주제 폐지는 개인주의의 승리다. 전통과 공동체의 구속에서 개인을 해방시켜준 자유주의와 개인주의가 인류에게 비춘 빛과 함께 그늘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빛이 밝은 만큼 그늘도 짙은 법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지역사회, 공동체로부터 벗어나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을 꿈꾸지만, 전통적인 공동체가 해체되고 사회보다 개인이 더 중요해지면서 개인은 더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자유교육을 자유주의에서 구출해야 하는 이유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내 앞가림이나 해야지….’ 개인주의 시대에 어울릴 법한 독백이다. 재산권을 옹호하고 개인의 자율성을 추구하는 자유주의가 성공할수록 양극화가 심화된다. 오늘날 교육은 소수의 엘리트와 다수의 소비 대중을 길러내는 쪽으로 변화하는 중이다. 개인주의 사회에서는 ‘자기책임론’이 횡행한다. 성적이 나쁜 것도 공부를 게을리한 자기책임이고, 좋은 대학에 못 가는 것도 자기책임이다. 비정규직 문제도 개인의 역량 탓으로 돌린다. 능력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은 능력이 노력에 비례한다고 믿지만, 타고나는 재능과 가정환경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자기책임론은 모두를 고립시키고 결국 각자도생 사회를 만든다. 드닌은 개인주의가 심화될수록 국가주의 또한 강화되는 구조가 자유주의에 내장된 버그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사회주의도 생태주의도 병증을 완화하는 정도에 그칠 뿐 백신 기능을 하기엔 역부족이다. 성공할수록 실패하게 되어 있는 자유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안으로 드닌은 작은 규모 공동체의 활성화를 제시하는데, 세계경제가 점점 긴밀하게 엮이고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시대에 지역 공동체가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자연과 문화의 제약으로부터 해방을 약속하는 자유주의에서 자유교육을 구출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귀담아 들을 가치가 있다. 어쩌면 자유주의를 넘어서는 길을 교육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